문화유산발굴기
한국인의 봉황, 아시조가 한반도에 찾아온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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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년 겨울호 (통권 98호)
한국인의 봉황, 아시조가 한반도에 찾아온 이유

옛 전설이나 신화에 나오는 가장 흔한 괴물 중 한국에서 가장 먼저 이야기해 볼만한 동물은 용일 것이다. 그렇다면 용 다음으로 많은 괴물 이야기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예로부터 용과 짝이 되는 말로 많이 사용되던 봉황도 좋은 후보가 되리라 생각한다.

봉황은 한자어다. 당연히 봉황이란 한자 표기의 뿌리는 중국 고전에 있다. 고대 중국 기록에서 봉황은 대단히 아름답고 신비로운 새다. 지금 봉황이라는 새를 찾아볼 수는 없으므로 진짜 새가 아니라 상상 속의 신비로운 동물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수컷 봉황을 봉()이라고 하고, 암컷 봉황을 황()이라고 부르니 둘을 합쳐서 봉황이라는 말을 쓴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봉황을 한 글자로 줄여서 쓸 때는 그냥 ‘봉()’이라고도 한다.

중국에는 현재까지 소중히 보관되어 전해지는 고대의 서적들이 많다. 이 서적들 속 옛 기록을 보면 봉황에 대해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풀이해서 설명해 놓은 내용들도 자주 보인다. 예를 들어 『설문해자』 같은 책을 보면, 그 모습의 앞부분은 기러기를 닮았고, 뒤는 기린을 닮았으며, 뱀의 목, 물고기의 꼬리, 황새의 이마, 원앙새의 깃, 용의 무늬, 호랑이의 등, 제비의 턱, 닭의 부리를 갖추어 다섯 가지 색깔을 지닌 아름다운 새라고 봉황을 묘사한다. 대단히 희귀하고 기이하면서도 신령스러운 새이기 때문에 고대 중국의 역사 기록에는 봉황이 아무 때나 눈에 띄는 새는 아니며, 나라를 다스리는 임금이 정말 훌륭한 사람일 때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봉황 이야기는 순전히 중국에서 건너온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한글이 개발되기 전에는 기록을 전부 한문으로 남겼기 때문에 이야기 속 신비로운 새를 대체로 봉황으로 많이 표현했을 뿐, 중국의 봉황 이야기와는 갈래가 다른 한국만의 이상한 새 괴물 이야기도 분명히 있었던 것 같다. 그뿐만 아니라 고대의 한국에서는 이런 새에 신비로운 이야기가 무척 유행한 것 같기도 하다.

 

금동봉황머리고리큰칼 ⓒ국립경주박물관    

 

금동봉황머리고리큰칼 손잡이의 새 머리 모양 장식

ⓒ국립경주박물관    

 

가장 대표적으로 보물로 지정된 고대 유물 중에 국립경주박물관이 소장한 <봉황장식 고리자루큰칼>이라는 유물은 손잡이 끝부분에 기이한 새 머리 모양의 장식을 만들어 붙여 놓았다. 귀한 금과 동을 이용해 만들어서 지금까지도 그 모습이 상당히 멋지게 남아 있다. 값비싼 재질을 활용해 만든 만큼 분명 이 칼은 지역의 높은 지배자나 장군 아니면 임금이나 왕자쯤 되는 사람이 소유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 고대 한국인들은 그런 높은 지위와 지배력의 상징인 칼을 멋지게 장식하기 위해 왜 하필 새의 머리 모양을 활용했을까?

21세기인 현재 새의 머리라는 말은 일반인들 사이에 무엇인가 나쁜 의미로 쓰이지 그렇게 고귀한 모양으로 취급되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현재와 달리 수천 년 전의 고대 유물에서는 새 모양을 멋진 상징으로 사용한 사례가 꽤 많다. 새 머리 모양의 장식이 붙어 있는 칼은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된 보물뿐 아니라 여러 가지가 더 있고, 고대의 토기, 그릇 종류 중에는 특이한 새나 오리 모양을 닮은 모습으로 만들어진 것도 꽤 많다. 심지어 민속 풍습으로 최근까지 남아 있던 ‘솟대’ 풍습을 고대의 새 숭배와 연결하는 학자들도 있다. 『삼국지』 같은 옛 역사책에 실린 기록을 보면 고대 한반도 남부, 삼한 지역에는 ‘소도(蘇塗)’라고 하는 일종의 성지(聖地)를 정해 두곤 했는데 바로 이 소도에서 솟대가 유래했다고 보는 것이다. 솟대는 기다랗게 세워 둔 나무 막대 모양의 장식 내지는 표식인데 흔히 꼭대기를 나뭇가지에 앉은 새모양으로 장식하곤 했다.

중국의 봉황처럼 한국에도 신비로운 상상 속의 새를 귀하게 여기던 풍습이 있었을 것이다. 한반도의 고대 유물을 보면 용 모양을 표현한 물건보다 새 모양을 표현한 물건이 더 많다. 어쩌면 중국 사람들이 용을 위엄 있는 동물로 여겼던 것 이상으로 고대 한국에서는 신비로운 새를 가장 높고 대단한 것의 상징으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봉황이라는 한자어 말고 아예 나름대로 한국인들이 쓰던 다른 말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아시조(阿是鳥)’라는 말이다. 조선 후기의 책인 『성호사설』이나 『동사강목』 같은 책에는 중국에서 봉황이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한 것을 조선에서는 ‘아시조’라는 다른 말로 불렀다는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 조()는 그냥 새라는 뜻이므로 보통은 굳이 “아시조”라고 부르지 않고 그냥 “아시”라고 불렀을 수도 있다. 어쩌면 순우리말로 “아시새”라는 말을 썼을 가능성도 있다.

조선 후기의 이런 기록에서는 아시조를 고구려 역사에 등장하는 안시성과 연결하곤 한다. 서기 645년 당나라의 태종인 이세민이 고구려를 공격했다. 이세민은 많은 군사를 동원했지만 안시성의 방어에 막혀 결국 고구려 정복에 실패한다. 이것이 역사에 유명한 안시성 전투다. 소설, TV 드라마, 영화의 소재로도 몇 차례 등장한 적이 있어 현재 한국에서 잘 알려졌지만, 옛 역사에 관심이 많던 선비들 역시 안시성 전투라는 사건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성호사설』이나 『동사강목』에서는 고구려 때의 안시성이 바로 조선 후기 당시 중국 청나라에서 ‘봉황성’이라고 부르는 성이라고 추측했다. 그리고 그 근거로 중국에서 봉황이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한 새를 조선에서는 ‘아시조’라고 한다는 이야기를 덧붙인 것이다. 만약 이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옛날 고구려의 안시성에는 원래 봉황 비슷한 신비로운 새인 아시조가 나타났다는 전설이 있었거나 아시조에 비유할 정도로 좋은 성이라는 말이 있었기 때문에 아마도 ‘아시 성’이라고 불렸고, 그 말이 변해 안시성이라는 이름이 되었을 거라고도 추측해 봄 직하다.

그렇다면 한반도에는 왜 이렇게 신비로운 새에 대한 전설이 뿌리 깊게 자리 잡을 수 있었을까?

하나 연결해 볼만한 이야기는 한반도라는 지형이 먼 곳에서 철새가 찾아오기 좋은 땅이라는 사실이다. 한반도는 사계절이 뚜렷한 곳이라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시간 변화에 따라 기온과 환경이 급변하는 지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겨울 철새는 대개 추운 날씨를 피해 더 추운 머나먼 북쪽에서 한반도로 왔다가 떠나고, 여름 철새는 대개 더운 날씨를 피해 훨씬 더운 머나먼 남쪽에서 한반도로 와 머물다 떠나곤 한다. 겨울 철새만 95종 132만 마리가 관찰되었다는 국립생물자원관의 2024년 조사 결과가 있을 정도로 한반도는 다양한 철새가 멀리서 오기에 썩 좋은 환경이다.

게다가 이런 철새 중에는 아주 먼 곳에서 날아오는 것들도 많다. 먼 거리를 여행하는 새로 자주 언급되는 도요새 부류의 새들인데, 한반도에 나타나는 것들이 50종 이상이라고 한다. 그중에 멀리서 오는 것은 1만km 가까이 떨어진 남반구의 뉴질랜드 지역에서 날아오는 것도 있다.

 

『동사강목』 ©국립중앙박물관    

 

『성호사설』 ⓒ규장각    

 

『지봉유설』 ⓒ국립중앙도서관

 

철새들이 머나먼 다른 나라에서 오는 만큼 그 모습이 특이하고 아름다운 것들도 많다. 온몸이 알록달록한 여덟 색깔로 빛나는 팔색조는 멀리 말레이시아 지역에서 출발해 여름철에 한반도까지 찾아오며, 거대한 육식성 맹금류인 독수리는 몽골 고원에서 출발해 겨울철에 한반도까지 온다. 이렇게 먼 곳에서 오는 철새들을 보면 환경의 변화에 따라 오던 철새가 가끔 안 올 때도 있고 안 날아오던 철새가 날아올 때도 있다. 예를 들어 2025년 가을에는 울산에서 9년 동안 발견되지 않던 철새인 넓적부리도요새라는 국제적인 희귀 조류가 다시 돌아오기도 했다.

먼 옛날부터 한반도에 살던 사람들이 아주 먼 곳에서 가끔 나타나는 낯설고 이상한 새들에 대한 신비한 이야기를 상상하기 좋은 환경이지 않았을까? 특히 반도 형태인 한반도 지형의 특성상 바다를 건너 멀리 떠난 새들이 어떤 곳까지 가는지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지구 전체의 지리에 대해 알고 있고 과학자들의 추적도 가능한 지금이야 팔색조가 말레이시아까지 날아가고 도요새가 뉴질랜드까지 날아간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러나 먼 옛날 사람들은 희귀한 새가 바다 건너 하염없이 날아가 버리면 그것이 저 멀리 아주 신비로운 마법의 나라까지 가는지, 아니면 아예 구름 위 하늘나라까지 가는지 그저 막연히 상상만 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양한 철새가 찾아드는 개성적이고도 풍요로운 한반도의 생태계 덕택에 고대인들이 그처럼 봉황과 아시조의 신비에 대해 빠져 들었다고 생각한다.

봉황 이야기라고 하면 하나 또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가 조문국(召文國) 이야기다. 결국 신라에게 정복당해 사라지기는 했지만 대략 1,800년 전까지 지금의 경상북도 의성에 조문국이라고 하는 도시가 그들 만의 나라를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후 이곳 조문국의 중심 도시 근처 땅이 마치 봉황과 같다고 하는 신비로운 전설이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조문국 사적지 전경 ©의성조문국박물관    

 

고대로부터 한반도에는 신비로운 새를 좋아하는 문화가 많이 퍼져 있었던 만큼 한국에는 지금도 봉 또는 봉황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지명이 여럿 있다. 예를 들어 경상남도 김해시에는 봉황동이 있고 전라남도 나주시에는 봉황면이 있다. 그런데 그런 여러 지역 중에서도 나는 의성에 관한 이야기가 풍부한 내용을 가진 편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의성의 금성산, 비봉산 지역은 땅 모양이 봉황 모양이라든가, 땅에 봉황의 기운이 깃들었다는 식의 이야기가 꽤 퍼져 있다. 조선시대에도 장현광의 「봉대설」과 같은 글에 의성의 옛 중심지 지역 땅 모양이 어떻게 해서 봉황 모습으로 해석되었는지 상세히 설명한 대목이 있다. 그러니 의성을 봉황의 땅이라는 이야기는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온 것으로 추정된다.

왜 하필 의성에 이렇게 봉황 이야기가 강렬하게 연결되었을까? 아닌 게 아니라 금성산, 비봉산 지역을 등산하면서 찬찬히 둘러보면 다른 곳과는 조금 다른 것 같은 특이한 땅 모양과 바위가 보이기는 한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바로 이 지역이 지금으로부터 7,000만 년 전인 먼 옛날에 화산이 폭발한 곳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7,000만 년 전이면 공룡이 돌아다니던 아주 오랜 옛날로, 지금 의성 지역의 산 모습은 아주 많이 변했다. 그래서 의성의 산들이 한라산이나 백두산처럼 전형적인 화산 모양으로 남아 있지는 않다. 하지만 바위와 땅의 모습에 어느 정도는 화산 흔적이 남아 독특한 경관을 이루고 있다. 의성의 화산 흔적은 우리나라에서 확인된 화산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축에 속한다. 현재 이곳은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7,000만 년 전 화산 폭발에 대해서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옛사람들은 뭔가 땅이 특이해 보이기는 하는데 그것을 마땅히 설명할 말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봉황의 기운이 깃들었다든가 하는 말을 만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보면 의성의 봉황, 아시조는 화산의 힘을 품고 있는 새라고 생각해도 좋지 않을까? 

공교로운 우연일 수도 있지만 조선 중기의 책 『지봉유설』에는 꼬리에서 불꽃에 휩싸인 채 하늘을 날아오르는 봉황의 모습을 꿈속에서 보았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리고 그것이 이름에 봉() 자와 화()자가 들어가는 사람이 과거에 급제할 징조였다고 설명했다. 신비의 새가 불과 함께 날아오르는 이런 모습은 마침 고대 그리스의 기록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상상 속의 새인 불사조 ‘피닉스’가 불꽃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모습과 비슷하고, 그래서 더욱 묘하다.

이와 같이 예로부터 한국인들이 생활과 문화를 영위해 온 한반도와 그 자연환경에 대한 다양한 방향의 애정 어린 관심을 곁들일 때 나는 한국의 옛이야기에 관한 상상을 더욱더 풍성하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곽재식
소설가, 숭실사이버대학교 환경안전공학과 교수, 1982년생
저서 『괴물 과학 안내서』 『괴물 조선의 또 다른 풍경』 『한국 괴물 백과』 『곽재식의 고전 유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