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의 풍경
연애와 죽음과 패션 사이의 대화

  • 근대의 풍경
  • 2025년 겨울호 (통권 98호)
연애와 죽음과 패션 사이의 대화

패션: 나는 패션, 당신의 자매랍니다.

죽음: 내 자매라고요?

패션: 그럼요. 우리 둘 다 데카당스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합니까?

 ― 자코모 레오파르디, 「패션과 죽음 사이의 대화」

 

만약 1920년 12월, 경성의 어느 카페에서 ‘패션’과 ‘죽음’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면, 이 만남을 주관한 것은 ‘연애’였을 것이다. 그때 그곳에서 ‘연애’와 ‘죽음’과 ‘패션’은 서로의 분위기와 기분과 열정을 나누고 뒤섞으며 연대했던 세 자매였다. 소위 ‘자유연애’는 그 시대의 트렌드이자 패션이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실연’도 유행처럼 여겨졌으며, 비극적인 사랑의 아우라와 가십의 호기심에 둘러싸여 ‘정사(情死)’가 연예 기사처럼 연일 보도되었다.

1920년대 초기 새로운 문학을 휘감고 있었던 취향과 정신은 낭만주의였다. 훗날 이 시기 낭만주의는 퇴폐적 낭만주의라는 꼬리표를 붙이게 되는데, 데카당스는 사랑과 죽음과 패션 사이를 오갔던 낭만적 열정의 파고와 상상력의 흐름이 마침내 쓰러지듯 몸을 눕힌 해변이었다. “아! 그대여!/ 그대의 흰 손과 팔을/ 이 어두운 나라로 내밀어 주시오!/ 내가 가리라, 내가 가리라”(박영희, 「유령의 나라」 부분, 《백조》 2호, 1922).

 

    
1920년대 초기 뉴웨이브를 이끈 신예작가들의 동인지 ≪백조≫ 창간호와 ≪창조≫ 8호와 9호  

 

이러한 낭만주의 문학을 주도했던 문학청년들은 10년 전에 자유연애의 선봉장으로 그들의 동경과 환호를 한 몸에 받았던 선배 이광수와 적극적으로 대립각을 만들어 내며 격정적인 파토스를 뿜어냈다. 그리고 이광수는 어느덧 데카당스로 흐르는 뉴웨이브를 꾸짖듯이 발언하기 시작했다. 격렬한 논란을 낳았던 이광수의 「문사와 수양」(《창조》 8호, 1921). “아아, 사랑하는 반도의 청년 문사제위여”, “데카당스와 같은 망국정조에 빠져 더 이상 흐느적거리지 말고 이제 문사의 본분을 자각하고 수양, 또 수양하라.” “문사라 하면, 반드시 연애를 담(談)할 것이라고 믿고 감상적 연애와 문학을 혼동하는 그대들의 모습은 심히 걱정스럽구나.” 이 장면에서 이광수의 계몽주의는 낭만주의에 등을 돌린다. 그러나 자아의 해방, 감정의 해방, 자유연애론 등으로 구성된 이광수의 감성적 계몽주의는 처음부터 낭만주의를 품고 있었다. 그의 계몽주의는 낭만주의가 일정 수위를 넘어 범람하지 못하게 지키는 조심성 많은 낭만주의의 파수꾼 같은 것이었다. 계몽주의와 낭만주의와 데카당스는 서로 이웃하고 있었고 쉽게 서로의 벽을 허물었다. 1920년대 초반에 이들은 서로 다른 표정을 짓고 종종 적대자의 포즈를 취하기도 했으나, 뼛속 깊이 같은 DNA를 공유한 한 시대의 세 자매였다. 이 시절을 대표하는 문예지 《창조》와 《폐허》는 다른 이름으로 이 세 자매를 번갈아 불러내었다. 《창조》의 욕망과 《폐허》의 열광은 마치 부모처럼 같은 땅에서 이 세 자매를 키웠다.

그 시대 문학인들은 ‘연애’ 혹은 ‘사랑’이 일으키는 내면의 파노라마를 통해 ‘자아’에 실감을 부여하려고 했다. 연애는 ‘내면’의 진동(떨림)과 불꽃(열정)을 감각적으로 경험하게 해주는 더없이 좋은 사건이었다. 연애와 내면의 발견! 그리고 ‘내면의 발견’과 ‘근대문학’의 관계에 관해서는 가라타니 고진이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에서 흥미롭게 그 역사적 조명을 비춘 바 있다. 그러니 근대문학을 소위 ‘시작(starting)’했다는 문학청년이라면 마땅히 “연애를 담(談)”해야 하지 않았겠는가. 이들에게 연애는 시대 정신이 흐르는 유행(流行)이었으며, 가문(부모)이 주도하는 결혼제도로 표상되는 전근대적인 질서를 향해 던지는 선전포고의 형식이었고, 근대적인 스타일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나가겠다는 선언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세속의 현실논리를 떠나 예술적인 초월로 존재를 고양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이들은 연애에서 거대한 관습의 벽을 뚫고 나갈 수 있는 주체의 에너지를 확인했으며, 사랑을 이상화하고 신성화함으로써 그 사랑에 참여하고 있는 자신의 정신을 이상적인 경지에서 발견할 수도 있었다. 연애는 “감격의 정점”, “신성의 정점”, “행복의 정점”(새별, 「생의 비애」, 《창조》 5호)에 한 존재를 올려놓는 일로 생각되었다.

예술적으로 찬양되고 영감의 원천으로 간주하는 뮤즈와 같은 여성의 이미지가 탄생하게 된 것은 이러한 연애의 감수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반면에 사랑을 배신했다고 여겨지는 여성은 가차없이 악마적인 수사학의 맹공격을 받았다. 황홀한 여신과 혐오스러운 악마 사이에 위태로운 사다리를 걸어놓고 수시로 오르내리며 사랑의 조울증을 앓았던 그 시대 청년들은 자신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자기기만적인 논리를 한 번도 제대로 들춰보지 못했다. ‘자유연애’는 새로운 남자와 새로운 여자를 나란히 호명하는 모양새를 취했으나 연애드라마의 플롯과 의미는 전적으로 모던‘보이’들의 원근법에 따라 작동되었다. 이러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여자대학은 “첩 제조소”나 “첩 양성소”(이동원, 「피아노의 울림」, 《창조》 5호)와 같은 혐오 발언의 대상이 되곤 했다.

자신의 고상한 사랑에 좌절을 안긴 여성을 악마화하는 수사학은 다만 개인 차원의 분노와 분통 속에서만 터져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변심한 여인을 둘러싼 수사학은 또한 모던보이들의 원근법에서 ‘모든 여자(여자라는 존재)’를 정의 내리는 데 사용되던 것이기도 했다. 이를테면 이렇다. “모든 여자는 그의 미(美)를 죄악으로 옮기는 미적(迷的) 창부”이니 그네들의 “완전한 육체에는 정신의 추악을 감추고 있”다 (박영희, 「생의 비애」, 《백조》 3호). 김동인은 「영혼」(《창조》 9호)이란 짧은 글에서, 여자는 영혼이 없는 고로 정신적이고 창조적인 활동인 글쓰기를 감히 감당할 수 없는 존재라 단정을 지었다.

한때는 순결한 애인이었으나 이제는 사탄이 돼버린 한 여성 때문에 받는 실연의 고통은 무가치한 것으로 폄하될 것 같지만, 그 시대 작가들은 이 고통을 감추거나 누르려고 애쓰기보다는 오히려 지나치게 느껴질 만큼 드러내고 싶어 했다. 그 무엇이든 ‘나’로 귀결하는 나르시시즘적인 이들의 논리는 이렇다. “무가치한 고통, 내가 이렇게 약하였던가. 아니, 이렇게 내 사랑이 강하고 순결하였다.”(이동원, 「흑연일총(黑煙一叢)」, 《창조》 7호) 이 시기는 연애가 유행하듯이 실연이 유행하는 때라고 할 수 있었지만, 더 정확히 표현하면 실연의 ‘고통’이 유행하는 때였다고 할 수 있다. 연애가 ‘자아’의 힘과 가치를 실감케 하는 사건으로 작용했듯이, ‘실연’과 ‘실연의 고통’과 나아가 ‘자살’까지도 ‘자아’의 진정성을 증명하는 계기로 활용될 수 있었던 것. 어떠한 경우라도 중요한 것은, 끔찍이도 집착했던 ‘자아’!

“형님, 마침내 고백할 날이 왔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김동인의 두 번째 소설 「마음이 여튼 자여」의 남자 주인공 K는, 그 당시의 젊은이들이 대개 그랬듯, 새로운 연애의 문법을 연애 소설에서 배웠다. 그리고 그는 연애와 실연 때문에 내내 철썩이는 영혼의 파도에 이리저리 쓸려 다니다가 밤이 되면 자신의 어지러운 마음을 고백할 장소로 일기 쓰기를 찾는다. 이 소설에서는 고통의 무게를 증명하는 데 동원되는 유서 또한 일기와 나란히 놓인다. 이 소설에서 새롭게 출현한 인물은 ‘일기를 쓰는 자’, 나를 보여주기 위해 일기를 보여주는 자, 일기 속에 진실이 있다고 말하는 자다. 일기는 ‘고백’의 욕망과 연관된 글쓰기이며, ‘내면’의 발견과 긴밀한 글쓰기다. 근대 문학사에 출현한 이후로, 작가로서의 자의식과 창작욕을 지폈던 가장 강력한 에너지 중 하나가 이 고백의 욕망이라는 점에서 “마침내 고백할 날이 왔습니다”라는 문장은 문학사적인 문장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도 ‘고백’은 ‘연애’와 각별하게 친밀한 단어다.

100년 전의 ‘연애’를 재구성해 보느라 20년 만에 영인본 옛날 잡지들을 꺼내보았는데, 시간의 먼지 속에서 문득 철 지난 질문이 되돌아와 내게 짓궂은 표정을 짓는다.

“오버(over)하는 건 연애의 본질일까, 실수일까?”(김행숙, 「연애편지를 쓰자」)

김행숙
시인, 강남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1970년생
시집 『사춘기』 『이별의 능력』 『타인의 의미』 『에코의 초상』 『1914년』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
저서 『문학이란 무엇이었는가』 『창조와 폐허를 가로지르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