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학의 순간들
여성이 쓰고 여성이 읽는 문학

  • 우리 문학의 순간들
  • 2025년 겨울호 (통권 98호)
여성이 쓰고 여성이 읽는 문학

동인지 ≪또 하나의 문화≫ 제3호는 ‘여성해방의 문학’이라는 표제를 달고 1987년 세상에 나왔다. 잘 알려져 있듯 이 호를 주도적으로 만든 사람은 ‘또문’의 유일한 문인 동인이었던 시인 고정희였다. 고정희는 사회학자 조한혜정, 소설가 박완서, 극작가 엄인희 등과 함께 한 권두 좌담 「페미니즘 문학과 여성운동」에서 페미니즘 문학의 전망에 대해 논하면서, 특히 여성 평론가가 부재한 한국 문단의 아쉬운 현실을 수차례 언급한다. 같은 좌담에서 박완서는 한국에서 본격적인 페미니즘 소설이 나오기에는 아직 조금 이른 시기인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페미니즘 작품을 모아 특집호를 만들고자 했던 고정희 역시 여성 해방적 의식이 뚜렷하면서도 보편적으로도 ‘좋은’ 작품은 시기상조인 듯하다는 진단을 내린다. 덧붙여 여성문학을 지원해 줄 평론가가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특별한 안타까움을 드러낸다.

또 하나의 좌담을 떠올려보자. 가히 한국 평단의 르네상스라고 할 만한 1990년대를 보내고 2000년대를 맞이하는 시점에서 ≪문학동네≫가 기획한 좌담 「다시 문학이란 무엇인가」이다. 이 좌담에는 신수정·김미현·이광호·이성욱·황종연 평론가가 참석했는데 1990년대 문학의 특징 중 하나로 ‘여성문학과 페미니즘’이라는 주제가 중요하게 거론된다. 박완서·신경숙·이혜경·공선옥·은희경·하성란·배수아·송경아·김이태 등 많은 여성 작가가 언급되기도 한다. 특히 김미현은 1990년대에 여성문학에 대한 논의가 “주어진 영토 내에서만의 제한된 담론”이었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한다. 실제로 해당 주제에 대해 사회자인 신수정과 김미현 두 여성 평론가만이 마치 대담을 나누듯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는 장면은 꽤 상징적으로 읽힌다. 지금의 시점에서 보자면 무척 낯설지만 어쩐지 여전히 익숙하기도 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좌담 「다시 문학이란 무엇인가」가 실린 

≪문학동네≫ 2000년 봄호   

 

좌담 「한국 문학은 여성의 것이 되었나」가 실린 

≪자음과모음≫ 2023년 가을호    

 

고정희가 여성 평론가의 부재를 지적한 뒤 10년이 넘게 지난 시점에서, 그러니까 여성 평론가가 더 이상 문단의 예외적 존재가 아니게 된 상황에서도, 여성문학에 관한 논의가 제한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특히 이 좌담에서 평론가 신수정은 제도권 바깥의 대항 담론의 형태에서 시스템 내부의 주류 담론으로 자리 잡은 여성문학의 위상에 대해 “문학이 주변화되는 과정과 여성문학의 부상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인지” 묻고 있는데, 이 질문은 2000년대 이후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제는 수적인 측면을 포함하여 여러 방면에서 여성들이 한국 문단의 주류로서 활약하게 된 사정을 돌아보게 한다.

한국 문학의 생산 주체 중 여성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급격히 증가해 오고 있다. 문학상 수상집 엔솔로지가 대부분 여성의 작품으로만 채워지게 된 것도 한두 해 전의 일은 아니다. 비단 생산 주체뿐일까. ㅎ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여성 독자들의 페미니즘적 각성과 요청이 현재 한국 문단의 다채로운 흐름을 만들기도 했다는 자명한 사실도 떠올려 볼 수 있다. 전 세대에 걸쳐 독서 인구의 성별화가 뚜렷해지고 있는 최근의 상황에서 다양한 문학 텍스트를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주체는 대개 여성인 것이다. 여성 문인의 수가 많아지는 사정과 무관하게 관습적으로 주로 남성들에게만 관대했던 잡지 편집위원이나 심사위원의 자리도 이제는 여성들로 많이 채워지고 있다. 한국문학의 공급과 수요를 이제는 특정 젠더가 맡게 되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닌 셈이다. 그렇다면 이제 한국문학은 여성의 것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여성 비평가로서 꽉 채운 20년을, 연구자로서는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온, 아직도 어디서건 말석이 내 자리 같지만 어느새 중견이 되어버린 한국 문단의 오래된 일원으로서, 나에게는 불행히도 위 질문에 대해 단호히 그렇지 않다고 말할 경험들이 많이 쌓여 있다. 그리고 그 작고 큰 경험들은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그것들을 여기에 거칠게 풀어놓는 대신 최근의 또 다른 좌담을 떠올려보고 싶다. 바로 위 질문을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던 자리다. 평론가 노태훈과 심진경, 시인 황인찬과 하재연, 그리고 소설가 이현석이 참여한 「한국 문학은 여성의 것이 되었나」라는 제목의 좌담으로 ≪자음과모음≫ 2023년 가을호에 실려 있다.

황인찬 시인과 하재연 시인은 2000년대가 여성 시인들이 과반을 차지하게 된 시기임을 지적하면서, 특히 시의 영역에서는 2010년대 중후반 문단 내 성폭력 문제에 대한 성찰이 또 다른 중요한 변곡점이 되었음을 공통으로 말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이현석 소설가는 문학장에서 여성의 수적 우위가 갈수록 강화되는 현상을 권력과 자본의 관점에서 좀 더 신랄하게 분석한다. “작가들이 문예지 지면에 소설을 발표하고, 평론가들이 실시간 비평에 동원되고, 그중 몇몇 작품이 책으로 묶여 출간되는 이 영역은 불안정·저임금·비정규직·비정형 노동을 특징으로 하”는 바,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문학장에 여성의 비중이 높아지는 것이 마냥 긍정적인 신호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정확히 반대의 영역, 즉 안정·고임금·정규직·정형 노동을 특징으로 하는 “국문과와 문창과의 정교수직” 자리에는 여전히 남성의 비율이 높다는 자명한 사실도 언급한다.

하재연 시인의 다음과 같은 분석도 날카롭다. 권력이나 자본의 측면에서 글쓰기라는 직업이 이제 더 이상 남성들에게는 매력적인 분야일 수 없어 그들은 문학장을 떠나고 있지만, 어느 분야에서건 상대적으로 저임금·비정규·불안정 형태의 노동에 종사해 왔던 여성들에게는 글쓰기와 다른 노동의 질적 차이가 크지 않아 그들은 여전히 여기 남아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재밌는 건, 작가 축제나 세계적인 북페어에 가면 초청되거나 상을 받는 많은 한국 작가가 여성인 반면, 거기 나와 축사를 하는 기관장이나 주관자들은 대부분 남성인 것을 보게 됩니다”라는 직설적인 발언도 시선을 끈다. 아무리 문학장이 여성들로 채워지고 있다고 한들 “문학을 둘러싼 문학 환경에서의 권력 구조와 배분 관계는 크게 달라졌다고 할 수”없다는 것이다.

구구절절 다 맞는 중요한 말들이지만, 위와 같은 내용들이 나에게는 그다지 새롭게도, 그리고 뭔가통쾌하게도 들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고백해야겠다. 문제는 명백하지만 전혀 바뀌지 않는 현실의 여러 장면이 씁쓸하게 떠올랐을 뿐이다. 2000년의 초입에 신수정 평론가가 말했던, 여성문학을 부상할 수 있게한 조건으로서 문학의 주변화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전반적으로 상징 자본을 잃어가는 문학에 대해서도, 특정 문인에게 관심이 쏠리는 현상에 대해서도, 나눌 것이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좋은 것은 다 남성들이 누리는 것만 같은 문단과 대학의 편협함에 대해서도, 우리는 여전히 할 말이 많다. 그런데 여기에 빠져 있는 것이 있다. 이른바 ‘한국문단을 여성의 것’으로 만든 장본인이라 할 수 있는 여성 독자에 관한 것이다. 나누어 가질 권력과 자본이 아무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문학을 찾아 읽고 있는 여성 독자들을 생각해야 한다. 한 명의 독자라도 누군가는 내 글을 읽고 있다는 사실이 주는 긴장과 그로 인한 자긍심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외부의 시선으로는 구차해 보이는 형태의 작업일지언정 그러한 긴장과 자긍심이 글 쓰는 나의 삶을 적어도 깊이 있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최은영 단편소설 『몫』    

여성서사에 대한 문단 안팎의 요청이 강렬했던 2018년에 최은영 작가는 「몫」이라는 단편을 썼다. 여성에게 가해지는 구조적 폭력에 관한 소설로 읽힐 수 있지만 나는 이 작품을 글쓰기에 관해 자신에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면서 스스로 성장해 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로 읽었다. 물론 이 소설에 등장하는 정윤·희영·해진의 삶이 행복하고 그럴듯한 것이었다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불행하고 구차하고 처절했다고 말해야 할지 모른다. 그런데도 이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알 수 없는 용기와 위로를 얻었다. 내가 쓴 글이 나에게 조금의 자긍심도 돌려주지 않는다면 그 글로 내가 아무리 멋진 것을 얻는다 한들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러한 자문은 반복되는 현실의 좌절이 불러온 체념이 아니라, 늘 새롭게 글쓰기를 시작하고 싶은 다짐에서 나올 것이라 생각하고 싶다. 그 다짐을 잊지 않기 위해 여기 적어 둔다. 그렇게, 한국 문학은 결국 끝까지 남아 계속 쓰고 읽는 자의 것이 될 것이다. 

 

조연정
문학평론가, 1977년생
저서 『만짐의 시간』 『여성시학, 1980∼1990』 『장전된 시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