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화제작
삶을 달리는 자의 떠나보냄

- 김금희 소설 『첫 여름, 완주』

  • 오늘의 화제작
  • 2025년 겨울호 (통권 98호)
삶을 달리는 자의 떠나보냄

- 김금희 소설 『첫 여름, 완주』

 

삼십 대 여성이고 직업은 프리랜서 성우인 손열매는 난생처음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자꾸만 목소리가 떨리고 어떤 날은 전혀 나오지 않아서였다. 종합 심리 검사를 받은 뒤, 손열매는 “발성 문제는 우울증의 신체화가 일어난 결과”(16쪽)라는 의사의 진단을 듣는다. 의사는 외출을 자주 하고 여러 사람을 만나라 조언한다. 이미 4개월 동안 사적으로 사람을 만난 적이 없던 손열매는, 얼마 전 돈을 떼먹고 잠적한 고수미를 찾아야겠다고 결심한다. 고수미는 “남북 물길이 합쳐지는” “푸른 물결”(18쪽)이 있는 완평이 고향이다. 고수미가 완평의 본가에 있으리라 여기며 손열매는 짐을 꾸리고 나선다. 그녀의 첫 여름 완주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김금희의 『첫 여름, 완주』에서 주목해야 할 단어는 ‘완주’다. 자동차 경주, 마라톤 경주처럼 남들과 승부를 겨루기 위한 것이든, 삶의 노정에서 자신을 시험하고 성장하고자 하는 것이든 우리는 목표 지점에 이르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그래서 완주라는 말은 목적지, 끝마침, 성취 등의 말들을 자연스레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첫 여름, 완주』에서 중요한 것은 목적지가 아니라 출발지다. 우리가 어떤 지점에 이르는 동안 무엇을 잃었으며 왜 잃어야만 했는가를 작품은 묻는다. 시간이 그러하듯 삶은 떠나왔던 곳으로 돌아갈 수 없다. 삶은 구불구불 이어지지만, 결코 출발지로 돌아갈 수 없는 길이다. 그러니 우리가 삶의 어느 단락에 완주라는 말을 붙였을 땐, 출발지에 있던 무언가로부터 떠나왔음을 의미한다.

손열매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완평에 도착한 그녀는 고수미의 엄마를 만나지만 정작 고수미는 집에 들어온 적이 없다는 말을 듣는다. 돌아갈 곳이 없는 손열매는 매달 육십만 원을 고수미가 빌려 간 돈에서 제한다는 조건으로 고수미의 본가에서 지내게 된다. 그동안 완평의 여러 사람이 손열매의 여름을 스쳐 간다. 그중엔 이후 손열매의 남자 친구가 되는, 산속 완주 나무 아래서 살아가는 청년 어저귀가 있다. 완평에서 지내는 동안 손열매는 삶의 생기를 되찾는다. 이때 생기란, 주변 사람과 상황이 비로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뜻이 아니다. 주변 대상들에 오히려 무심해지며 흘려보낼 줄 아는 넉넉함을 갖췄다는 뜻이다.

 

받지 못한 사랑에 대한 트라우마가 절대 유기되지 않겠다는 자기 보호로 이끌었고 그렇게 해서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나서는 아주 깊은 외로움이 종일 열매를 붙들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의 마음이나 육체, 때론 삶 자체를 소모하고 말아야 끝날 듯한, 익명의 손들에 대책 없이 쥐어지는 거리의 전단지처럼 남발되는 외로움.

하지만 이제는 그런 충동들을 잠재우며 무심하게 길을 걷는 감각을 알 것 같았다. 논둑을 논둑으로만 보고 한낮의 볕은 볕으로만 보며 주인보다 뒤처져 걷는 늙은 개는 늙은 개로만 보는 것.

- 『첫 여름, 완주』 152쪽 

 

그녀의 삶은 소중한 사람들을 잃는 일의 연속이었다. 충남 보령에서 살던 그녀의 가족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각자 살길을 찾는답시고 뿔뿔이 흩어졌다. 손열매는 십이 년 사귄 남자 친구와 모든 걸 나눌 정도로 각별했지만, 그의 지독한 구두쇠 기질에 모욕감을 느껴 헤어졌다. 육 년을 동거한 고수미에게는 천삼백만 원을 뜯겨 완평까지 뒤쫓아 왔다. 돈으로 대표되는 현실의 냉랭함과 각박함은 손열매에게 더 이상 누군가를 잃고 싶지 않다는 강박을 갖게 했다. 그러니 어저귀를 비롯한 많은 사람과 어울리게 된 완평은 근사한 정착지이자 종착지가 될 수 있다. 목소리도 다시 나오기 시작했고, 이젠 누군가를 잃지 않겠다는 강박도 내려놓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소설은 말한다. 손열매의 목적지는 완평이 아니라고. 완평은 그녀의 첫 여름 완주에서 출발지에 해당한다고 말이다.

“손열매 삶에는 가능한 한 영원해 볼게”(175쪽)라 말한 어저귀는 산불로 완주 나무가 불타 없어지면서 영영 사라진다. 고수미의 엄마는 암이 재발해 상태가 위독해지고, 완평은 재개발 기류에 휩쓸려 주민들끼리 불화에 빠진다. 평화로워 보였던 완평 역시 변화의 순간에 내몰렸고, 또다시 소중한 이들을 잃은 손열매는 서울로 돌아온다. 그곳에서 코인 투자에 매달려 있던 고수미를 만나게 된다. 늘 돈 걱정만 하던 과거의 손열매처럼, 고수미는 떼먹은 돈을 갚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수미가 소중하게 생각했던 어떤 것이 있다면 다 시들어 버린 듯”(199쪽)한 모습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손열매야말로, 영원히 머무를 것 같던 완평을 떠나 조금은 의연해진 모습이다. “나 사랑을 잃었네”(212쪽)라 읊조리는 손열매는, 동시에 “더 이상 어저귀는 돌아올 수 없을 것이다. 완주 나무가 항상 출발점이었으니까.”(202쪽)라 생각하며 지난 날로 돌아갈 수 없음을 깨닫는다. 『첫 여름, 완주』가 단순한 성장담으로 그치지 않게 되는 지점이다. 손열매의 여름은 완평에 가는 일이 아니라 완평에서 돌아오는 일로 귀결된다. 삶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변화한다. 그동안 나를 둘러싼 세계 역시 변화하며, 무언가를 새로이 얻었다면 다른 무언가를 잃을 수밖에 없다. “얼마나 많은 이별이 이 여름에 깃들어 있는 것일까”(136쪽)라고 느끼기 위해선 정말로 이별을 겪어보는 수밖에 없다.

 

그러자 열매에게는 대상이 뭔지가 아니라 자신에게 어떤 감각이 남는지가 중요해졌다.

- 『첫 여름, 완주』 155쪽 

 

『첫 여름, 완주』라는 제목의 첫인상은 완주를 이룬 자의 성취감과 희열이다. 하지만 소설은 손열매가 하나의 여름을 매듭짓기 위해 잃어야 했던 대상들을 강조한다. 그렇다 해서 소설은 비관에 빠지지 않는다. 손열매의 완주가 상실만을 남겼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위 인용문에서처럼, 중요한 것은 대상이 아니라 그 대상이 남긴 감각이기 때문이다. 소설의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우울증이라는 의사의 진단에 손열매는 말도 안 된다며, 자기가 얼마나 밝은 인간인가를 주장한다. 그러자 의사는 말한다. “이상한 말 같지만 우리가 우리 정신은 스스로 속여도 몸은 속일 수가 없거든요.”(16쪽) 우울감이 너무 심하면 사람은 우울함에 무감각해지고 만다. 감각 없는 삶의 시간은 어떠한 감각도 기억도 남기지 못한다. 생각해 보자. 왜 소설 속 여름은 손열매에게 ‘첫 여름, 완주’였던 걸까? 서른 번 넘게 겪었을 그녀의 지난 여름이 아닌, 왜 사랑을 비롯한 많은 것을 잃고 서울로 돌아온 이번 여름에 완주라는 말이 붙은 것일까? 손열매의 삶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고, 여름은 매년 올 것이다. 새로운 삶의 영역으로 나아가려면 지금 서 있는 곳을 떠나가야 한다. 그것은 슬프지만 무력한 이별이 아니다. 삶의 노정을 힘껏 달리는 자의 이별이다.

최선재
평론가, 2000년생
평론 「소음에서 고요로 향하는 존재의 발소리―황유원론」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