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의 문학
폐허 속 가자의 문학

  • 이 계절의 문학
  • 2025년 겨울호 (통권 98호)
폐허 속 가자의 문학

“내가 죽어야 한다면,/ 당신은 살아주게/ 내 이야기를 전해야지/ 나의 물건들을 팔아/ 천 조각을 사야지/ 끈도 몇 개 사야지,/ (긴 꼬리를 달아 하얗게 만들지)/ 가자지구 어딘가 아이 하나가/ 하늘을 바라보네/ 화염 속 가버린 아빠를 기다리네―/ 작별 인사는 하지 않아/ 그의 육신에도/ 자신에게도―/ 저길 봐, 당신이 만든 나의 연이 날아오르지/ 그리고 잠시 생각해, 천사가 저기 있어/ 사랑이 다시 와/ 내가 만약 죽어야 한다면/ 그로 하여 희망을 가져다주게/ 이야기가 되어주게”

이 시의 출처를 아는 독자가 계실까.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 퍼부은 포탄을 시인이라고, 소설가라고 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아니, 어쩌면 더 무력하겠다. 2023년 10월 전쟁 발발 이후, (아마도 화염 속) 떠난 작가가 최소 13명에 이른다는 집계가 나왔을 때가 2024년 1월이었다. ‘작가’의 기준이 뭐든, 2023년 12월 6일 북 가자지구 공습에 목숨을 잃은 리파아트 아르이르(Refaat Alareer, 1979~2023)를 빼놓을 순 없다. 학생들에게 문학을 가르치는 시인인 그가 2011년 쓴 시의 제목이 「내가 죽어야 한다면(If I Must Die)」이었으니, ‘시참(詩讖)’이란 말은 참혹하게 진실이 된다.

지난해 정초 그렇게 리파아트 소식과 국내 소개된 적 없던 그의 시를 깜냥 옮겨 보도했었다. 당시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리파아트가 죽은 뒤로 가자지구는 2년 더 폐허였고 사지였다. 산 자를 추리고 아직 죽지 않은 자를 살리기도 어려운 마당에, 죽은 자에 대한 집계를 주기마다 찾아다녔다. 기자 일이란 게 이리 얄궂다. 장례식장에서 유가족에게 질문할 수 없다며 2년 시험 준비 끝에 입사했던 언론사 일을 그만뒀던 2005년 한 지인이 예고한 바다.

지난달이다. 휴전할 즈음, 급기야 기자는 AI(퍼플렉시티)를 통해 아랍계 매체(알자지라, 알 아라비 알 자디드, 알 바얀 등)와 독립 매체 보도를 메타 분석해달라고 했다. 영국 방송 BBC와 프랑스 매체, 미국 문학 전문 웹사이트 리터러리 허브(Liberary Hub) 등까지 단건처럼 파편화한 팔레스타인 작가 사망 정보를 긁어모으는 일을 1차로, 2025년 10월 현재까지 가자지구에서 목숨을 잃은 문학인만 최소 20명 넘게 추정된다고 알려준다. 저널리즘, 문화계를 포함하면 30~40명 내외로까지 AI는 본다지만, 실상 우리는 알고 있다. 진실이 어디 겨우 숫자에나 있겠는가. 리파아트의 바람대로 죽은 자의 이야기가 살아남은 자의 희망이 되고, 아빠가 사라진 자리에 천사가 나타난다면, 역설적으로 가자는 ‘희망’밖에 남지 않은 땅이다. 맞다, 이 표현엔 한편의 냉소와 비관이 있되, 그것이 틀렸음을 올해 보고 들은 대로 써보고자 한다.

지난 8월 9일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열린 ‘2025 에든버러 국제 북 페스티벌’에 국내 매체 유일하게 취재 다녀왔다. 예루살렘에서 독립서점을 운영하는 팔레스타인계 작가 마흐무드 무나(43)가 개막일 주요 행사 연사였다. 올해 2월 9일 이스라엘 경찰이 급습해 수백 권의 책을 압수해 간 서점(Educational Bookshop, 교육서점)의 주인이자 출판인이다. 당시 서점에서 딸과 있다가 바로 체포되어 구금, 가택연금, 20일간의 서점 출입 금지까지 당했다. “테러리즘을 선동 지원하는 내용의 책 판매”가 경찰이 내건 최초 혐의였다. 외신으로 타전된바, 같은 책방지기로 마흐무드와 함께 끌려간 조카 아흐마드 무나(33)가 수갑 찬 채 바짝 얼어 경계하는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흡사 살상을 막 저지른 이의 형색으로 연출되는 카메라의 시선까지. 

“웃긴 건 경찰들이 책 내용은 뭔지도 모른다는 거예요. 구글 번역기로 영어, 아랍어로 된 제목을 번역하고, 팔레스타인 국기가 있는지 (…) 보고서 빠르게 결정해 쓰레기 봉지에 담더라고요. 우리는 한 번도 겉표지로 책을 판단한 적이 없는데 말이죠.”

경찰 압수수색 한 달 뒤인 3월 9일 전 세계 시민들을 대상으로 열린 영상 대담에서 아흐마드가 한 말이었다. 팔레스타인 인권 활동을 서방에 알리는 미국 단체 익스텐드가 추진한 대담 소식을 접하고 참가 신청해 서울 시각 한 새벽에 접속해 그의 안부를 확인하고자 했을 때, 아흐마드는 “또 슬픈 게 뭔지 아냐” 되물었고 “아니, 웃긴 데 슬펐다. 감옥이 정말 꽉 찼더란 거다. (자신들과 같은) 많은 사람으로. 상태도 너무너무 열악했다. 끔찍하고 불쾌하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변기가 다 보이고, 화장지, 비누는 없고. 베개도 없이 엄청 얇은 담요 한 장뿐이라 자는 것 말곤 아무것도 못 하는데 시간을 또 알 수는 없다. 창문도 없다. 너무 굴욕적이었다. 갇히고 조사받고 지낸 전 과정이 충격적이다”라고 말했다. “미안합니다. 말이 많네요…”라고 되레 사과하면서 말이다.

둘의 혐의는 이후 ‘공공질서 위반’으로 바뀌었다. 형량이 줄긴 했다. 애초 경찰은 서점을 폐쇄하려고까지 했다. 왜일까? 이스라엘이 몇 년 새 검열을 강화 중이긴 했으나, 서점이 털리기에 앞서 출간된 마흐무드의 책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2024년 10월 영국 독립 출판사에서 펴낸 『가자의 새벽: 팔레스타인 삶과 문화 이야기』. 가자지구에서 목숨과 삶을 견뎌내는 이들을 전화 통화 등을 통해 엮었다. 작중 유세프 알쿠리는 말한다.

“우리는 피에 굶주린 문맹 테러리스트로 표현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름답고 생명을 사랑하며 배려하는 공동체입니다. 여러분을 맞이하고 먹이고 보호할 겁니다. 세계는 가자 사람들이 필요해요. 절망에 굴하지 않고, 언제나 이길 방법을 찾아낼 사람들이죠. 가자를 지울 수는 없습니다. 가자지구를 점령하고 파괴할 수는 있어도 결코 우리에게서 빼앗을 수는 없습니다….”

이 대목의 마지막 말이 알짬이거니와, 억압하고 파괴하려는 이들에게 진짜 공포는 저들의 테러가 아니라 저들의 서사라고 유세프는 ‘증거’해낸다.

“가자를 실제로 재건할 때까지, 기억 속에서, 상상 속에서, 마음속에서 우리는 늘 가자를 재건할 것입니다.” 

올 2월 출간된 가자지구 시인 선집 『가자: 죽음 전 삶이 있는가?』에 20대 작가 누르 알딘 하자즈(1998~2023)도 참가하고 있다. 리파아트보다 사나흘 앞선 공습에 유명을 달리했으니, 그는 책을 보지 못했다. 선집에 참여한 작가 26명 가운데 누르를 포함해 2명이 이후 죽임을 당했다. 시집에 실린 글이 누르의 유언 격이다.  

“마지막 장면은 신경 쓰지 말아요. 불에 타든, 익사하든, 높은 데서 떨어지든, 칼에 찔리든. 가자에서 우리는 죽음 전에도 여러 번 죽습니다.”

‘죽고 또 죽는다’라는 누르의 시구는 ‘짓고 또 짓는다’라는 유세프의 말과 멀지 않겠다. 파괴됨과 동시에 지켜내고 회복하고 축성하는 원리, 죽은 자의 이야기가 살아남은 자의 희망이 된다는 시의 근거 아닐까. 가자지구는 이제 겨울을 맞겠지만, 나의 냉소만 지독히 찼다, 틀렸다.

임인택
한겨레 문학 담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