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우리 그리고 제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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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년 겨울호 (통권 98호)
우리 그리고 제임스

제임스를 처음 만난 날은 호재와 내가 발자국 수영장에 가기로 한 날이었다. 발자국 수영장은 거인의 발자국 모양으로 움푹 팼는데 비가 며칠 이어지면 물이 고이고 비가 멈추면 서서히 물이 빠져 마른 땅이 되는 곳이었다.

“이수야, 저기!”

호재가 가리킨 곳에, 전에 없이 우뚝 솟은 무언가가 있었다. 반투명 커튼을 친 듯 빗줄기가 시야를 가리고 있어서 내 눈엔 갑자기 작은 성당이 세워진 듯 보였다.

“우릴 못 본 것 같아. 살살 도망치자.”

내가 소리를 낮춰 말했다.

“위협적이진 않은 것 같아.”

어느새 나타난 정훈이가 말했다.

“언제 왔어?”

“한 시간 전에. 너네가 언제 올지 몰라서. 내가 다가가도 제임스는 조용히 뭘 만들기만 하더라고.”

호재가 묻자, 정훈이가 대답했다.

제임스는 갓 태어난 아기처럼 앉아 달걀을 다루듯 조심스레 바위를 손바닥으로 문지르고 있었다.

“제임스라고?”

“내가 지었어. 어쩐지 어울리잖아.”

정훈이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고 나는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집에 돌아와서 엄마와 아빠에게 우리가 본 것을 이야기했지만 믿지 않았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호재네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정훈이는 또 거짓말을 했다고 혼이 났다고 했다. 우리 부모님을 포함해서 마을 사람들이 제임스를 발견한 건 정오 무렵이었다.

소문을 듣고 몰려온 마을 사람들은 손에 길고 뾰족한 도구들을 들고 있었다. 그러나 호재와 정훈이와 내가 그랬듯 사람들은 제임스가 만들어 놓은 조각들을 보고 안도했다. 제임스가 바위로 만든 물고기, 늑대, 동그라미들은 기이하고도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제임스는 매일 그렇게 뭐든 만들었고 그 소문을 듣고 먼 곳의 사람들이 찾아왔다. 사람들은 제임스가 어디에서 왔고 왜 그러고 있는지 궁금해하지 않았고 심지어 누가 제임스란 이름을 지었는지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정훈이는 그 이름을 자기가 지었다고 떠들고 다녔지만 나와 호재가 거들지 않아서 정훈이 말을 믿는 사람은 없었다. 산에서 호랑이를 봤다느니 강에서 눈사람 모양의 영혼들을 봤다느니 정훈이가 우리에게 했던 말 중 사실은 하나도 없었다.

“정말이에요. 제가 제임스를 처음 발견했어요. 이름도 제가 붙여줬고요!”

아무도 정훈이의 말을 믿지 않았다. 사람들은 오직 제임스가 오늘은 무엇을 만들었는지 궁금해할 뿐이었다.

 

그 후 호재와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나무 위에 올라앉아 제임스를 보았다. 우리 마을의 산 중턱에 오른 뒤 다시 나무 위에 오르면 마을을 한눈에 볼 수 있어서다. 우리 마을은 아랫마을을 내려다볼 수 있는 높은 곳에 있다. 나무 뒤로는 돌이 드러난 산이 있고 앞으로는 우리 마을과 아랫마을이 보이고 마른 호수에 앉아 온종일 조각하기에 바쁜 제임스가 보인다. 제임스는 어떤 때는 두 손으로 바위를 잡고 동글동글 문지르고 어떤 때는 양발로 돌을 단단히 붙잡은 뒤 왼손과 오른손을 번갈아 가며 한 손으로 문지른다.

제임스의 소식은 다른 도시로 빠르게 퍼졌다. 사람들은 제임스의 조각상을 직접 보고, 사고 싶어 해서 우리 마을 사람들은 돌덩이를 구경 시켜주다가 조각상을 팔게 되었다.

“오늘은 파란 바탕에 노란 줄무늬 옷이네.”

호재가 제임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나무줄기를 잡고 서서 더 제임스의 몸놀림을 보았다.

“제임스는 저런 옷이 마음에 들까?”

“가끔 옷을 잡아 뜯기도 하는 걸 보면 답답한가 봐.”

내 말에 호재가 건성으로 대답했다.

“이수야, 정훈이가 달빛 아래서 제임스가 옷 갈아입는 걸 봤대.”

주변에 아무도 없을 걸 알면서도 호재가 작게 말했다.

“넌 정훈이 말을 믿니?”

내가 말했다.

우리 개 복실이가 하늘나라로 간 다음 날 정훈이가 우리 집 앞에서 피리를 불고있었다.

“너네 집에 가서 불어. 듣고 싶지 않아.”

내가 창을 열고 힘없는 목소리로 말하자 그제야 정훈이가 피리 불기를 그쳤다.

“이수야, 슬퍼하지 마, 복실이는 아주아주 좋은 곳에 갔을 거야.”

무엇이든 다 아는 체하는 정훈이가 싫었다.

 

겨울 방학을 하던 날 우리는 정훈이의 리코더 연주를 들으며 제임스에게로 갔다. 우리가 다가가자, 제임스가 우리 쪽을 보았다.

그 모습에 정훈이가 연주를 멈췄고 다시 제임스는 조각을 시작했다.

“제임스가 우리 쳐다보는 줄 알았어.”

내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제임스는 흰자위가 안 보여서 우리를 본 건지 혹은 그냥 조각하다가 목이 아파서 고개를 잠시 돌린 건지 분명하진 않잖아? 그럼, 제임스도 목이 아프다는 건데….”

정훈이가 말했다.

“제임스도 아픔을 느끼겠지. 당연히.”

내가 말했고 정훈이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연주를 시작했다.

제임스가 조각을 멈추고 우리를 보았다. 우리가 정훈이를 툭 치자 정훈이가 연주를 멈췄다. 그러자 다시 제임스가 조각을 시작했다. 이번엔 호재가 자신의 리코더를 꺼내 불었고 제임스는 계속 조각을 했다. 우리는 그렇게 해서 제임스가 정훈이의 리코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걸 알아냈다. 

“그 앞에서 뭣들 하는 거니?”

동네 어른 셋이 우리 앞에 멈춰 서더니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그냥 노는 거예요.”

정훈이가 대답하자 어른들은 한 마디씩 제임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임스는 어차피 소리는 못 들어. 천둥번개가 쳐도 돌을 깎고 있잖아? 제임스를 위한 연주회 같은 건 소용없지.”

“제임스가 너무 먹어. 돈이 많이 들어.”

동네 어른 한 분이 우리 동네 사람이라면 늘 하는 말을 중얼거렸다.

“하지만 제임스는 아름다운 걸 만들잖아. 우린 그걸 파는 덕에 고된 일을 안 해도 되고.”

“얘, 다시 그 피리 불어 봐.”

갑자기 한 분이 그렇게 말했다.

“리코더예요. 제가 해볼게요.”

호재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힘을 다해 숨을 불어 넣어 <보람찬 하루>와 <눈물의 아리랑 고개>를 연주했다. 얼마나 세게 불던지 삑삑거리는 소리가 섞여 나왔는데 어른들은 가만히 그 곡을 듣고 서서 제임스가 한편으론 불쌍하다는 이야기도 하고, 제임스가 언제까지 살아 있을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도 나눴다.

“제임스는 못 들어요. 보셨죠?”

내가 말했다.

정훈이의 리코더 연주만 들을 수 있다는 걸 아무도 알면 안 될 것 같았다.

우리 셋은 이따금 제임스를 만나러 갔고, 그때마다 정훈이는 리코더 연주를 했다. 하지만 정훈이가 제임스가 들을 수 있다고 떠들고 다니는 바람에 나와 호재는 정훈이를 멀리하게 됐다. 다행히도 정훈이의 말을 믿은 아이는 없었지만 말이다.

 

토요일마다 축제가 열린다. 제임스 주변으로 장이 열리고 전국에서 제임스를 보러온 사람들로 마을이 들썩인다. 우리 부모님은 잔치 국수를 팔고 호재네 부모님은 복주머니를 판다. 그 복주머니 안에는 제임스 모형의 조각상이 들어있고 조각상 배 부위에 좋은 말들이 새겨져 있다. 행복·사랑·화평·기쁨 같은 말들이다.

장터에는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풍선·솜사탕·핫도그 같은 것도 있지만 화살 던지기로 제임스 인형 뽑기, 클레이로 제임스 만들기 같은 체험 행사도 있다. 그리고 제임스와는 상관도 없는 참기름, 순면 잠옷 세트, 은팔찌 같은 어른용 물품들도 가득하다.

나는 부모님을 도와 공터로 나갔다. 모두 텐트 아래에서 오늘 팔 물건들을 늘어놓고 있었다.

“너도 오늘은 용돈이 조금 필요하겠지?”

아빠가 실어 온 장국이 담긴 통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내게 돈을 주었다.

제임스 장날은 돈을 많이 벌기 때문에 엄마 아빠도 들떠있고, 내게도 용돈을 두둑

하게 준다.

나는 호재네 상점으로 가서 돈을 내고 복주머니 하나를 골랐다. 제임스의 배에는 ‘용기’라는 말이 새겨있었다.

“정훈이 복주머니에는 절제라는 말이 나왔는데 정훈이가 교환해달라고 했어. 그래서 다시 뽑았지.”

“그 다음엔 뭘 뽑았니?”

“자유.”

“걔는 늘 제멋대로인데 무슨 자유가 필요해?”

우리는 회오리 감자를 하나씩 사 들고 제임스 아래로 갔다. 제임스는 언제나 그렇듯 돌을 부여잡고 조각을 할 뿐이었다.

“제임스가 도망가 버리면 이 축제도 끝나겠지?”

호재가 말했다.

“장터도 축제도 끝나겠지.”

정훈이는 관광객들에게 약간의 돈을 받고 즉석 사진을 찍어 주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뒤편에 제임스가 나오는 사진을 갖고 싶어 했고, 정훈이는 어떤 각도에서 찍어야 더 만족할 만한 사진이 찍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너네는 당연히 공짜야.”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돌아다니던 정훈이가 호재와 나를 발견하고 다가와서 말했다.

“됐어. 우리가 관광객도 아니고.”

내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냥 찍자.”

호재가 갑자기 내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

“그래, 이 위치가 좋겠어.”

정훈이가 우리 앞에 쪼그리고 앉아 구도를 잡으며 중얼거렸다.

“빨리 찍어.”

호재가 재촉하는데도 정훈이는 사진을 빨리 찍지 않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찍어 줄까?”

지나가던 어른이 정훈이에게 물었다.

“네, 여기요, 이렇게요.”

정훈이가 달려와 내 옆에 섰고 우리는 함께 세 장의 사진을 찍었다.

한 장엔 호재가 눈을 감았고 또 한 장은 내가 눈을 감았지만, 세 번째 사진은 우리 모두 활짝 웃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뒤로 제임스가 산처럼 버티고 있었고 우리 주변으로 장터를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있었다.

우린 장터에서 이런저런 일을 하거나 놀았지만, 가끔씩 제임스에게 다가갔다. 

 

밤사이 지진이 있었다.

나는 아침을 먹고 바로 호재네 집으로 달려갔다. 호재네 창고가 무너져있었고, 호재네 가족이 무너진 창고에서 물건들을 빼 와서 마당에 옮기고 있었다. 나는 호재를 도와 창고 정리를 했다. 호재의 부모님은 무너진 창고 벽을 치우기 위해 윗동네로 트럭을 빌리러 갔다.

호재는 창고 선반에 있던 어릴 때 가지고 놀던 마을 놀이 세트 상자를 찾아왔다.

“이 상자는 깨지지 않았네. 제일 위 칸에 있었는데.”

호재는 녹이 슬어서 빡빡한 상자의 잠금장치를 열었다. 그 안에는 우리가 어릴 때 함께 했던 마을 놀이 세트가 들어있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집·트럭·기차·사람·동물이 있었고 상자 바닥에는 쉽게 그려진 마을 지도가 있었다.

호재와 나는 잠시 종이 지도 위에 모형들을 올려놓고 어릴 때 했던 마을 놀이를 생각했다.

“생각해 보니 그땐 호수가 있었고 제임스는 없었네.”

호재가 손에 쥔 모형 트럭으로 지도의 호수 주변을 빙빙 돌며 말했다.

“어제도 트럭을 타고 온 사람들이 제임스가 안고 있던 큰 바위도 가져가 버렸어. 제임스는 그걸 안 뺏기려고 꼭 껴안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제임스의 발바닥을 긴 장대로 쿡쿡 찔렀지.”

우린 보드게임을 하다가도 문득문득 제임스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나는 주머니 속 제임스를 만지며 어떻게 하면 제임스가 이 마을을 떠날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진으로 무너졌던 마을은 복구 작업이 거의 완성되었고, 다시 축제가 열렸다. 호재와 나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바쁘고 들뜬 틈을 타서 마을 놀이용 지도를 들고 산길을 탐색했다.

축제가 끝난 밤이면 마을 사람들은 피곤해져서 깊이 잠든다. 그날 밤 호재와 나는 몰래 제임스가 있는 공터로 갔다. 달빛 아래 제임스는 불편한 옷을 벗으려 애쓰는 듯 옷깃을 잡아당겼다.

윗옷을 벗은 제임스는 돌을 잡고 손으로 문지르기 시작했다. 달빛 아래 제임스가 조각하는 모습은 어린아이가 공놀이하는 것처럼 보였다. 제임스는 돌을 매만지다가 가끔 자기 얼굴에 대어 보기도 했다.

“호재야, 우리가 용기를 내야겠지?”

“그래. 우리가.”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떠오르지 않았다. 제임스는 너무 커서 달빛 아래에서도 큰 그림자를 만들어낼 테고 걸음 소리는 쿵쿵 울릴 테니 제임스가 움직이면 마을 사람 모두 알 것이었다. 게다가 제임스는 나와 호재가 무슨 짓을 해도 쳐다보지도 않았다.

 

나는 집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워 한동안 뒤척이다가 일어나서 책상에 앉았다. 스탠드 불을 켜고 공책을 펼쳐 마을 가운데 제임스를 그렸다. 콩알만큼 작게. 그런 뒤 제임스를 중심으로 산 능선에 있는 우리 동네, 산 아래의 호재네 동네를 그렸다. 그리고 숲으로 이어지는 길들은 숲이라고만 적었다. 나는 문득 엄마에게 좀 더 큰 지도가 있다는게 생각났다. 부동산을 할 때 사무실 벽에 붙어 있던 것이었다. 나는 살금살금 문을 열고 거실로 갔다.

나는 신발장 옆 장을 열어서 긴 막대에 돌돌 말린 지도를 꺼내서 방으로 들어왔다. 지도를 침대 위에 펼치고 손전등으로 이곳저곳을 비춰보다가 지도 위에 제임스 조각상을 올렸다. 손전등을 켜고 우리 마을과 우리 마을 밖의 마을들을 보았다. 마치 달빛 아래 제임스가 혼자 남겨진 것처럼 보였다.

 

학교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나는 정훈이와 호재와 산에 올랐다. 정훈이는 오랜만에 우리가 놀이에 끼워주니 들뜬 듯했다.

“너희가 언젠가 나를 부를 줄 알았어. 원래 둘보다 셋이 재밌는 법이니까. 그래야 삼총사라고 부를 수도 있어."

“네가 제임스 얘길 떠들고 다녀서 우린 널 안 볼 생각이었어.”

호재가 말했다.

“하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는걸. 그럼 됐잖아?”

정훈이가 태연하게 말했다.

“영원히 제임스를 도울 수 없을 뻔 했어. 너 때문에.”

내 말에 정훈이는 멈춰 서서 고개를 저었다.

“제임스는 그냥 여기 있는 게 좋은 걸지도 몰라.”

정훈이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사람들은 제임스가 먹기만 한다고 하잖아.”

다행히도 호재가 입을 열었다.

“그래 뭐, 그렇기는 하지. 사람들은 제임스가 만든 조각들이 좋은 거지, 제임스를 좋아하는 건 아니니까.”

정훈이가 그렇게 말했고 우리는 다시 산을 올랐다.

 

그날 이후 우리는 몇 번 더 그 나무 아래에 모였다.

우리는 어른들의 눈을 피해서 제임스를 찾아가곤 했는데 그때마다 정훈이가 리코더를 불고 그때마다 내가 다시 그린 지도 위에 있는 제임스로 인형극을 보여주었다.

밧줄을 늘어놓아 원을 만들고 그 안에 제임스와 비슷한 줄무늬 옷을 입은 호재가 조각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정훈이는 옆에서 리코더를 불었다. 그러면 제임스는 줄무늬 옷을 입은 호재를 보았다. 우리가 그 공연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대부분 어두운 시간이어서 나는 언제나 손전등 세 개를 모아 쥐고 제임스 역을 맡은 호재가 제임스의 눈에 잘 보이도록 빛을 비춰주었다.

제임스는 우리가 연극을 시작하면 조각을 멈추고 가만히 우리를 내려다보았다. 제임스가 큰 지도 위에 우리 셋과 자신의 모습이 놓인 것을 구별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얼마 뒤 제임스가 어린아이 조각 세 개와 제임스 자신의 모습을 본뜬 조각상 한 개를 만든 것 때문에 마을이 술렁였지만. 마을 사람들 모두 그것이 호재와 나와 정훈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연극을 보던 제임스가 제임스 역을 맡은 호재가 밧줄로 만든 호수를 벗어나 떠나는 장면을 보고 쥐고 있던 돌을 바닥에 살포시 내려놓았다. 제임스의 검은 눈이 흔들리는 것 같았고, 어깨가 아주 조금 떨렸다. 

우린 보슬비가 내려 야영객이 없는 축제가 끝난 날 제임스를 떠나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제임스 축제가 있는 토요일 밤이면 마을 주민 모두 깊이 잠든다. 온종일 쉴 틈 없이 손님들을 상대해야 해서다.

호재가 축제 때 남은 폭죽을 하나 터뜨렸다. 순식간에 마을이 환해졌지만, 어느집에서도 불빛 하나 새어 나오지 않았다.

“여기, 이 돌무더기 뒤로 돌아가면 큰 나무 터널이 있어. 거기 지나서 물웅덩이, 그 다음엔 숲길이야. 그 길로 가면 돼.”

나는 제임스가 알아듣지 못하는 것을 알면서도 줄무늬 옷을 입은 인형을 지도 위에서 움직이며 말했다.

“이렇게 천천히 걸으면 아무도 못 알아차릴 거야.”

내가 그렇게 말하고 제임스를 올려다보았다.

제임스는 우리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하겠지만 어쩐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고, 손으로 가슴 위를 살며시 문질렀다. 우리는 그걸 ‘고마워’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이제 가자.”

정훈이가 제임스에게 말하고 연주를 시작했다. 나도 곧장 달려가 숲 가장자리에 손전등을 번쩍였다. 연극이 시작되기 전처럼 심장이 쿵쿵 뛰었다.

제임스는 우리 공연에서 본 그대로,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제임스, 쿵쿵 울리지 않게 아주 살살 걸어야 해.”

호재는 다시 한번 그렇게 말하며 살금살금 걷는 몸짓을 해 보였다. 제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임스는 정훈이가 연주를 멈추면 다시 잠시 멈춰 서고 다시 연주가 시작되면 발뒤꿈치부터 내려놓고,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한 번 더 발을 멈췄다. 마치 어린아이가 술래잡기에서 들키지 않기 위해 조심조심 걷는 것처럼.

정훈이가 피리를 불며 앞서 걷고 정훈이 양옆에서 나와 호재가 전등을 들고 걸었다. 작은 징검다리가 있는 냇가를 지날 때 내가 발을 헛디뎌 미끄러질 뻔하긴 했지만, 우리는 냇가도 무사히 건넜고, 우리가 걸어서 한 번도 넘어보지 않은 큰 산 앞까지 나올 수 있었다.

“그다음에 제임스는 어떻게 될까?”

호재가 손등으로 자신의 얼굴에 흘러내린 빗줄기를 닦으며 중얼거렸지만 우리 중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다

구름에 덮인 달빛 때문에 산은 검은 그림자처럼 느껴졌다.

“이제 어디든지 가서 무엇이든지 해.”

정훈이가 외쳤다.

나는 멀리 닿지도 않는 세 개의 손전등 빛을 모아 제임스가 가야 할 길을 향해 비추었다.

그러자 제임스가 우리에게 자신의 가슴을 문질러 고맙다는 표현을 한 뒤 정훈이가 피리를 불지 않았는데도 한 걸음을 디뎠고 또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렇게 제임스가 커튼처럼 가늘고 촘촘한 빗줄기 속으로 사라졌다.

“앞으로 네 말 난 믿을 거야. 그러니까 내겐 있는 그대로 말해.”

내가 말하자 정훈이가 눈물인지 빗물인지 알 수 없는 것을 닦으며 또 고개만 끄덕였다.

나는 주머니에 넣고 있던 배에 용기라는 글자가 새겨진 제임스 조각상을 정훈이의 손에 쥐여주었다.

집에 오는 내내 우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비를 맞으며 걷기만 했다.

 

다음 날 아침, 마을이 크게 술렁였다. 제임스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우리 마을의 제임스 축제는 끝났고, 사람들은 더 이상 마을에 찾아오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제임스가 마지막으로 만들어 놓았던 아이 셋의 조각상은 팔지 않고 그곳에 두었고, 제임스를 점점 잊었다.

아주 멀리서, 정말 아주 멀리서, 땅이 살짝 흔들리는 것 같을 때면 우리는 고개를 든다.

“혹시, 정말 혹시, 제임스일지도 몰라.”

정훈이가 그런 말을 하면 나는 살짝 흘겨보지만 우리는 곧 함께 웃는다.

가끔 우리 셋은 나무 위에 올라앉아 먼 산을 바라본다. 그 산 너머 어딘가에서 제임스가 행복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리고 때로는 쿵쿵 발소리를 울리며 제임스가 다시 오지 않을까를 생각하면서. 

 

송미경
동화 작가
소설 『메리 소이 이야기』, 동화 『어떤 아이가』 『돌 씹어 먹는 아이』 『햄릿과 나』 『가정 통신문 소동』 『생쥐 소소 선생』,
그림책 『토끼가 되었어』 『안개 숲을 지날 때』 『오늘의 개, 새』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