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누구보다 잘하는 일

  • 단편소설
  • 2025년 겨울호 (통권 98호)
누구보다 잘하는 일

우리집도 잠깐 잘 살았던 때가 있었다.

옥 씨의 말이었다.

너희는 그런 것도 누리고 살았지.

 

*

 

조이 이모는 제천에 살고 있다고 했다. 자매는 아침부터 일어나 준비를 시작했다. 일찍 일어난 것은 오랜만이었다. 밤사이 차갑게 식은 방바닥에 발을 딛자, 무릎까지 단숨에 찬기가 올라왔다. 화장실에서 씻는 동안엔 몇 번이나 몸서리를 칠 수밖에 없었다. 자매는 원래도 겨울을 좋아하지 않았다. 겨울엔 결로현상 때문에 곰팡이가 잘 슬었고, 난방비는 전기세보다 비쌌다. 자매는 나서기 전 마지막으로 보일러를 껐는지 여러 번 확인하고 수도가 얼지 않도록 물이 조금 흐르게 둔 뒤 따뜻한 옷을 챙겨 입고 나섰다.

더 이상 같이 살지 않는데도 자매가 사는 집은 어딘가 늘 비슷한 구석이 있어서 계절마다 자매가 외출을 준비하는 방식도 비슷비슷했다. 

언니 쪽은 아주 어릴 적에 조이 이모네 집에 가본 적이 있었다. 그때 조이 이모는 서울 한복판에서 살고 있었다. 언니는 그 집을 어렴풋이 기억했다. 꼭대기 층 아파트의 높은 천장, 커다란 액자들이 양옆으로 걸린 긴 복도와 말도 안 되게 큰 주방, 집 곳곳에 자신의 방보다 커 보이던 화분들이 놓여있던 것이 떠올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계단. 집안에 계단이 있는 걸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자신보다 세 살이 많은 조이 이모의 딸이 손님이 온 걸 알아채고는 계단에서 내려왔다. 조이 이모의 딸은 2층에 있는 자신의 방으로 손을 잡아끌었다. 방 중간을 가로지르는 포인트 띠 벽지도 처음으로 봤다. 끝없이 이어진 리본 무늬가 방을 포장지처럼 빙 둘러 감싸고 있었다. 낮은 옷장과 침대 그리고 전집이 가지런히 꽂힌 책장이 있었다. 책장 위엔 다양한 브랜드에서 나온 마론 인형이 놓여있었는데, 인형들은 모두 제각각의 콘셉트로 옷을 입고 있었다. 신발까지 완벽한 세트였다.

그리고 그때의 조이 이모는 마론 인형처럼 젊고 예뻤다. 집에서도 스타킹을 신고있던 조이 이모의 매끈한 종아리를 훔쳐보던 기억이 났다. 이모는 딸이 더 이상 입지 않는 옷과 장난감들을 한 상자 챙겨주었다. 그 안에 마론 인형은 없었다.

한편 동생 쪽이 기억하는 조이 이모는 좀 더 나이가 든 모습이었다. 동생은 어릴적 옥 씨와 조이 이모와 함께 자주 목욕탕에 갔다. 갈 때마다 동생은 그 둘의 배를, 정확히 말하면 배 아래의 둔덕을 바라보았다. 둘에게 나란히 제왕절개 자국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둘은 연신 온탕과 냉탕을 오가다가 마지막으로는 온몸에 요플레를 발랐다. 처진 뱃살 사이에 요플레의 건더기가 끼었다. 둘은 동생의 몸에도 요플레를 발라주었다. 동생은 따뜻한 요플레 냄새를 맡다가 목욕탕 바닥에 토했다

미리 언니의 집 앞에 와 차를 대놓고 있던 동생이, 언니가 차에 타자 내비게이션을 켜며 물었다.

제천 어디라고?

언니는 옥 씨가 알려 준 주소를 일러주었다. 내비게이션 주소상 그 주소엔 작은 건 물 외엔 아무것도 뜨지 않았다. 심지어 길 모양도 그 앞에서 끊겨 있었다.

여기 맞겠지?

맞지 않을까.

출발한다.

히터를 틀었으나 동생의 차는 좀처럼 따뜻해지지 않았다.

 

*

 

옥 씨의 입원이 예상보다 길어진 탓에 자매는 번갈아 간병해야 했다. 간병 일정을 짜는 데는 별문제가 없었는데, 자매 둘 다 직장에 다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언니는 UX 라이팅 외주로 생활을 꾸려가는 중이라 노트북만 있으면 어디서든 일할 수 있었고, 동생도 지방에 며칠씩 출장만 다녀오면 나머지 업무는 대부분 집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자매도 대학을 졸업한 뒤 얼마간은 회사에 다니며 매일 출근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저마다의 이유로 그만둔 뒤로는 늘 이런 식으로 일했다. 최소한의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정도로만 벌었고 그걸로 충분했다. 가끔 남들처럼 지하철에 몸을 구겨 넣고 출근해, 퇴근 시간을 기다리는 삶을 살지 못하는 것에 자괴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건 아주 가끔이었다. 출근하지 않아도 할 일은 많았다. 먹고 싸고 자는 생활을 지속하다 보면 일이라는 건 집안일이라는 형식으로도 새롭게 쌓였고, 그런 몇몇 일들을 처리하다 보면 하루가 빠르게 흘러갔으니까. 그들은 본래 시간을 들여 본인들을 매일 같이 탓할 만큼 부지런한 성정이 아니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 자매는 남들처럼 살지 못한 인생에 대해 반성하고 있었다. 어느 나이쯤에는 이런저런 걸 하고, 결혼이나 출산 같은 큰 사건들과 함께 집을 넓혀가고… 순서대로 배치된 서사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삶.

너무, 이제 와서… 인가?

동생이 물었고, 언니가 답했다.

넌 그래도 나보다는 젊잖아. 이제 와서라도 알게 돼서 다행이지.

동생은 구직 앱을 켜는 습관이 생겼다.

 

*

 

자매가 병원에서 옥 씨를 위해 할 일은 별로 없었다. 옥 씨의 병과 관련된 일은 의료진들이 모두 해주었고, 의료진이 옥 씨를 위해 뭔가를 해주었다고 알려주어도 자매는 잘 모르는 말들이었다. 자매가 할 일은 그저 옥 씨의 대화상대가 되어주는 것뿐이었다. 

옥 씨는 평소에도 말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그것은 수다스러운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대화의 방향을 모두 자신의 상황으로 끼워 맞추는 것이라고나 할까. 예를 들어 이런 식이었다. 자매가 오늘 날씨가 좋다, 라고 말하면 그래서 내가 어제 창문을 열어놨다가 감기에 걸렸지 뭐니, 하는. 어쨌든 옥 씨는 입원하기 전에도 하루에 한 번은 꼭 자매에게 전화를 걸었다.

뭐 하고 있어?

보통 옥 씨의 간드러지고 다정한 목소리로 통화는 시작됐다. 하지만 통화가 끝날 때쯤엔 늘 옥 씨가 화를 내거나, 한탄하거나, 자매가 옥 씨 모르게 조용히 울거나 하는 것으로 통화는 종료되었다. 자매가 우는 걸 알면 옥 씨의 통화는 끝나지 않았으므로 자매는 통화 중에 우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살아오는 내내 노력했다. 그 결과 자매는 소리 없이 우는 데 익숙해졌고, 그 덕분에 남들보다 잘하는 것이 하나쯤은 있다는 생각에 묘한 위안을 얻기도 했다.

6인실 병실에서 옥 씨의 침대는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었다.

창 쪽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옥 씨는 그 말을 하며 덧붙였다.

나는 평생 그런 복도 없다.

옥 씨를 바라보고 왼쪽, 그러니까 병원 복도 쪽 침대엔 옥 씨와 비슷한 또래의 여자가 입원해 있었다. 여자는 하루 종일 병실 TV에서 눈을 떼지 않았고 찾아오는 사람도 없는 것 같았다. 옥 씨가 바라던 창가 쪽엔 자매와 비슷한 또래의 여자가 침대를 썼다. 혹을 떼도 떼도 자꾸 생겨서 아예 떼버렸다고, 젊은 나이에 여자가 자궁도 없이 어쩌겠느냐는 얘기를 자매는 옥 씨에게 들었다. 옥 씨도 여자와 같은 수술을 했다. 그랬으면서 옥 씨는 자신은 아이도 둘이나 낳았고 나이도 먹을 만큼 먹어서 여자의 경우와는 다르다고 꼭 덧붙였다.

옥 씨가 병실 침대에 누워서 하는 것은 모든 시절을 기억하며 슬퍼하는 거였다. 침대 위치부터 살아온 인생까지 옥 씨에겐 슬퍼하지 않을 게 하나도 없었다. 옥 씨가 워낙에 세세한 것-그러니까 어릴 때 오빠가 네잎클로버를 뺏어갔다든가, 엄마가 막냇동생에게만 봉지째로 과자를 주었다든가 하는-까지 기억하는 것을 보며 자매는 옥 씨의 치매는 당분간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듣고 있다가 자매는 어느 날 생각하기도 했다. 여기 누워 있는 게 옥 씨가 아니라 자신이면 좋겠다고. 모든 게 부모 탓이고, 남편 탓이고, 형제 탓이고, 자식 탓이고, 돈 탓이고, 그러니까 결국 다 자신이 탓이 아니며 그런 불쌍한 자신이 이런 병까지 얻게 되었다고, 자매도 옥 씨처럼 맘 놓고 남 탓을 하며 슬퍼하고 싶었다.

만약 자매가 그랬다면 옥 씨는 어떤 반응이었을까. 옥 씨도 자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었을까.

아마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옥 씨는 아픈 자식을 둔 자신을 불쌍히 여겼을 것이며, 자매는 아픈 와중에 자식이 아파 슬픈 옥 씨까지 달래야 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나니 몸이 건강한 것이 그나마 다행인 것 같기도 했다.

병실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옥 씨는 늘,

이제 정말 여자로 사는 일은 완전히 끝난 거야.

라며 말을 끝냈다. 그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알 수 없었다.

 

*

 

제천까지는 두 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했다.

요즘엔 뭘 해?

동생이 언니에게 물으며 전자담배를 끼웠다. 손가락 한 마디만큼 열어둔 창으로 바깥의 차가운 공기가 들어왔다.

앱에 들어갈 문구나 맨날 고르고 있지, 뭐. 같은 뜻 같아도 동의합니다, 동의, 예, 중에서 골라야 하고 괜찮습니다, 아니요, 취소 중에 또 고민하고….

그게 고민까지 할 일이야?

응, 그게… 본문을 바꾸다 보면 ‘예’라는 말이 맥락상 동의하지 않는 게 되고 그러기도 하거든. ‘괜찮습니다’도 그래. 거절할 때도 쓰고 좋다는 뜻일 때도 있고… 은근히 헷갈리는 게 많아.

동생은 작게 열린 창틈으로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동생의 차에는 여러 가지 장비가 많았고, 도로의 요철에 맞춰 그것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언니는 잠시 뒷좌석을 바라봤다. 어디에 쓰이는지 영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넌 좀 어때?

나도 늘 같지. 겨울이라 일이 좀 줄어든 것 빼곤.

동생은 일이 들어오면 촬영지에 가서 조명 시설을 설치했고, 평소에는 외주로 영상 편집을 맡아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동생은 언니에게 몇몇 회사를 언급하며 말했다.

알아본다고 알아보는데도 요새는 직원을 잘 안 뽑더라. 또 나 정도 하는 애들은 많아서….

동생의 얘기를 듣다가 언니는 곧 주 2회 정도 출근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서영이 기억나? 내 대학 동기. 최근에 독서 논술 학원을 차렸대. 마침 강사를 구한 다더라고.

잘됐네.

잘됐네, 라는 말을 곱씹으며 언니는 며칠 전 병원에서 엄마와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머릿속으로 병원비를 대강 굴려보다가 옥 씨에게 보험에 관해 물어봤을 때였다. 옥씨는 예상 밖의 대답을 했다.

그 많던 보험이 다 어딜 갔어?

언니가 옥 씨에게 물었다. 옥 씨는 한 달에 한두 번은 전화를 걸어와서 매번 이런저런 해결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고, 요즘엔 벌이도 시원찮은데다가, 보험료며 뭐며 다달이 나가는 것도 만만찮아서 죽게 생겼다, 아닌 게 아니라 오늘이야말로 정말 죽겠다, 는 말을 해서 그럴 때마다 늘 돈을 보냈기 때문이다. 

다 해지했지. 내가 가뜩이나 어려웠니.

대체 옥 씨에게 준 돈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때때로 옥 씨에게 줄 돈이 정말 한푼도 없을 때가 많았다. 그럴 때면 옥 씨는 언니에게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라고 시켰다. 언니는 만들 수 있는 마이너스 통장은 다 만들었다. 그랬는데도 돈이 모자라서 결국 동생도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었다. 그 때문에 자매에겐 각각 빚이 조금씩 있었다. 돈을 받아 갈 때 옥 씨는 말했다.

내가 자식 돈은 절대 안 떼먹는다.

그리고 꼭 덧붙였다.

근데, 너네 키우면서 돈이 오죽 많이 들었니.

그 말을 들으면 돈을 빌려주면서도 자매인데도 늘 옥 씨에게 돈을 갚는 기분이었다. 이제 자매는 더 큰 빚을 져야 했다. 하지만 자매에겐 직장이 없었으므로 아무도 그렇게 큰돈을 내어주지 않았고…

자매는 오늘 조이 이모를 찾아가게 된 것이다.

 

*

 

언니가 고등학생에서 성인이 될 즈음, 그러니까 동생 쪽이 막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을 무렵, 옥 씨의 남편이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그걸 일이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뭔가를 시작했다. 

옥 씨의 남편은 살아오며 이런저런 사업을 시작했다가 말아먹길 반복했고, 시작한 뒤 말아먹기까지의 기간이 늘 빨랐으므로 일없이 집에서만 지낸 시간이 길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언니의 주양육을 도맡게 되었다. 옥 씨의 남편은 새로운 게임기가 나오면 꼭 옥 씨를 졸라 사곤 했다. 그리고 언니와 함께 그걸 플레이했다. 옥 씨의 남편과 언니는 보글보글이라는 게임을 좋아했다. 고래 유령에게 먹히는 바람에 한 번도 끝까지 깬 적은 없었지만, 둘은 매번 그걸 했다. 언젠가는 거의 마지막 스테이지에서 죽고 나서 바닥에 머리를 박고 있던 언니가 옥 씨의 남편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근데, 이거 다 깨고 나면 어떻게 돼?

나도 안 깨봐서 몰라. 언젠가 같이 깨보자.

언니는 ‘같이’라는 말이 듣기 좋다고 생각했다. 옥 씨의 남편은 언니에게 자신의 꿈에 대해, 정확히는 가지고 싶은 것들에 대해, 말해주기도 했다.

나는 언젠가 파테크 필리프를 꼭 살 거야. 차는… 좀 고민되긴 하는데, 그래도 욕심 안 부리고 BMW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언니는 옥 씨의 남편으로부터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브랜드에 대해 전해 들었다. 옥 씨의 남편은 그건 월급쟁이들은 살 수 없는 거라고 했다. 그래서 사업을 해야 하는 거라고.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언니는 옥 씨의 남편이 언젠가는 그것들을 꼭 갖게 되기를 바랐다. 자신이 그것들을 갖게 해줄 수 있지 않을까, 꿈꿔보기도 했다.

옥 씨의 남편이 큰돈을 벌어 제일 먼저 한 것도 가족들에게 명품을 사준 일이었다. 언니에겐 가죽 스트랩으로 된 카르티에 시계를, 옥 씨에겐 프라다 나일론 백을 선물했다. 옥 씨는 브랜드엔 관심이 없었으므로 그걸 목욕탕 가방으로 쓰다 잃어버렸고, 언니는 그 시계를 단 한 번도 차지 않고 지금까지 상자에 넣어두고 있다.

동생 쪽은 옥 씨의 남편에 대한 기억이 희미한 편이었다. 옥 씨가 갓난아기를 출산한 지 얼마 안 되었고 또 돌보기도 해야 했으므로 일을 할 수가 없던 터라 옥 씨의 남편은 울며 겨자 먹기로 직장을 구해야 했고, 경력이 없는 옥 씨의 남편을 고용할 회사는 거의 없었으므로 친구의 소개로 먼 곳까지 가게 된 거였다. 동생이 자라는 동안 옥 씨의 남편은 늘 가족과 떨어져 살았다. 그래서 동생의 주 양육자는 옥 씨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일을 하지 않고 집안에 앉아 있으니 옥 씨도 몰랐던 욕망이 끓어올랐다. 옥 씨는 동생을 잘 키우고 싶었다. 옥 씨와 동생은 백화점 문화센터의 온갖 수업을 듣고 다녔다. 동생이 한국 무용과 스피치 수업을 듣는 동안 옥 씨는 캘리그라피와 동양화 수업을 들었다. 동생이 무용 발표회를 할 때쯤 옥 씨의 동양화도 백화점 한구석에 걸렸다. 둘은 매일 같이 백화점 셔틀버스를 타고 다니며 몇 년을 보냈다.

어쨌든 한동안 집에만 있던 남편이 무언가를 시작하고 또 돈도 갖다주어서 옥 씨는 매일 기분이 좋았다. 옥 씨는 두꺼운 요리책을 사서 새로운 요리를 시도해 보기도 했다. 하필 프랑스 요리책이었고 집엔 오븐도 뭣도 없었으며 무엇보다 옥 씨 또한 프랑스 요리를 먹어본 적이 없어서 실험적인 맛들이 펼쳐지긴 했지만, 옥 씨의 기분이 좋아서 자매도 기분이 좋았다.

2년 남짓한 시간, 그들은 같은 건물의 반지하에서 3층으로 이사했다. 옥 씨는 방학기간에 언니에겐 라식 수술을 시켜주고 동생은 필리핀으로 어학연수 보냈다.

문제는 자매가 계속 가난한 동네에 살았다는 것이다. 언니의 경우 다른 지역으로 대학에 다니고 있어서 괜찮았지만, 동생은 필리핀에서 돌아온 뒤 친구들이 자신을 대하는 것이 미묘하게 달라진 것을 느꼈다. 아이들은 누구보다 사소한 변화를 감지하는데 특화돼 있다. 같은 반 아이들은 동생의 말투나 옷차림을 은근히 흉내 내기도 했고, 점심시간에 앉을 자리가 미세하게 변하기도 했다.

처음에 동생은 편의점에서 먹을 것들을 사서 늘 들고 다녔다. 그걸 나눠주면 분위기가 조금 나아졌고, 점심시간에 고정 자리도 생겼다. 그다음엔 떡볶이, 피자, 노래방. 동생은 그걸 거절할 수 없었고, 고등학생쯤 되자 이 구조는 거의 규칙처럼 굳어졌다. 누구보다 먼저 계산대 앞에 서는 아이.

옥 씨의 남편이 돈을 번 방식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모든 게 끝나는 건 한순간이었다. 옥 씨의 남편은 감옥에 갔다.

그래도 동생은 계산대 앞에 서야 했다. 그래서 먼 동네를 돌아다니며 뭔가를 훔치기도 했다. 그걸 중고나라에 가져다 팔면서 동생의 고등학교 시절은 그렇게 지나갔다.

그 사실은 옥 씨도 언니도 몰랐다.

 

*

 

조이 이모의 집 주변엔 내비게이션의 지도처럼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 집은 기이하게 거대했다. 마당엔 자매의 키만 한 장식용 분수가 있었는데, 물은 나오지 않는 것 같았다. 차를 대충 그 언저리에 세웠다. 세찬 바람이 낙엽들을 굴리고 있었다. 입구에 있는 벨을 누르자 누름과 거의 동시에 철컥하고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자매는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커다란 소파 네 개 정도가 반원을 그리고 놓여있는 거실이 나타났다. 거실 한 가운데엔 집과 어울리지 않는 오방 난로가 있었다. 난로의 적외선 코일이 붉게 빛나며 주변을 물들였다. 거실에선 주방까지 한눈에 담겼다. 조이 이모는 주방 쪽에서 걸어 나와 자매를 맞이했다. 살이 많이 불어난 듯했고 그 탓에 조금 뒤뚱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이게 얼마 만이야.

조이 이모는 자매를 한 번씩 안더니 소파에 앉을 것을 권했다.

난로 앞으로 가. 거기가 따뜻해. 밥은 먹고 왔니?

자매가 고개를 젓자, 조이 이모는 그럴 줄 알고 뭘 좀 해놨다며 다시 주방으로 돌아갔다. 자매는 소파 앞에 앉으려다 물었다.

좀 도와드릴까요?

됐어, 됐어. 그냥 한 끼 때우는 거라 뭐 없어.

자매는 다시 어정쩡하게 소파에 앉았다. 난로를 조금만 벗어나도 집 안 크기만큼의 한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자매는 거의 난로에 붙다시피 하며 집안을 둘러보았다. 

조이 이모의 집에는 여전히 계단이 있었다. 계단 아래에서 위쪽으로 늘어선 방들을 볼 수 있었다. 언니는 조이 이모의 딸이 아직도 조이 이모와 함께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대충 보아도 오랫동안 사람이 드나들지 않은 방들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계단 난간에는 먼지 쌓인 스카프가 여러 개 걸려 있었고, 계단 칸의 끄트머리마다 에프킬라와 작은 인형, 돋보기안경 같은 것들이 놓여있었다. 거실에 달린 커다란 TV에서는 한의사가 나와서 건강에 대해 설파하고 있었다. 화면 아래에는 ‘진짜 건강은 무엇인가’라는 자막이 떠 있었다. 의사는 조금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건강이 최고라는 말을 겪어봐야 아는 게 정말 속상합니다. 돈도, 명예도, 성공도… 건강 잃으면 다 소용없다는 말을 건강할 땐 몰라요. 더 망가지기 전에 지금이라도 시작하셔야 합니다.

이모는 자매를 불러 차린 걸 가져가게 했다. 된장국과 김치, 감자볶음과 무생채가 반찬이었다. 된장국에서는 시래기 특유의 풋풋한 향이 올라왔고, 감자볶음은 간이 조금 심심했으며, 무생채는 막 무쳐 새콤한 냄새가 돌았다. 김장은 오래 익은 맛이어서 젓가락을 대기 전에 이미 신맛이 느껴졌다.

시래기랑 감자랑 무랑 다 여기서 얻은 거야.

자매는 오면서 보았던 허허벌판의 땅들을 떠올리며 숟가락을 들었다. 따뜻한 밥이 들어가니 추위가 조금 잦아드는 것 같았다. 조이 이모는 TV 채널을 돌리며 물었다.

엄마는 좀 어때?

자매는 밥을 먹으면서 옥 씨의 안부를 전했다. 조이 이모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소파 옆에 놓여있던 재떨이를 끌어와서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물었다.

어떠냐, 기분이?

그러고는 자매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깔깔 웃으며 말했다.

너네 둘 다 이제 엄마 뱃속으로 다시는 못 들어간다.

그 말을 듣자 자매는 옥 씨의 말버릇을 떠올렸다. 자매의 삶이 못마땅할 때마다 옥씨는 늘, 너네를 내 뱃속으로 다시 넣고 싶다,고 했다. 자신들이 이미 사라진 자리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잠시 낯설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고, 자매는 조이 이모를 따라 웃었다.

 

*

 

조이 이모는 자매가 밥을 다 먹자, 설거지는 그냥 두라면서 자매를 계단으로 이끌었다.

너희가 와준다고 해서 다행이지 뭐냐. 마침 혼자 하기 힘들었는데.

자매는 어리둥절해하며 조이 이모가 이끄는 대로 계단을 올랐다. 자매는 옥 씨가 한 말, 그러니까 나는 절대 너네한테는 빚 안 진다, 병원비 정도는 내가 해결할 수 있다, 마침 조이 이모에게 자신이 예전에 빌려주었던 돈이 있으니 그 돈을 받아서 병원비로 써라, 는 말만 전해 들었을 뿐이었으니까.

2층엔 문이 네 개 있었다. 이모는 익숙하게 앞장서 문을 하나 열었다. 방 안쪽엔 담금주와 골프클럽, 크기가 모두 다른 박스들이 무질서하게 놓여있었다.

박스 풀어서 이 쓰레기봉투에 넣으면 되고, 큰 물건들도 다 버릴 거니까 문 앞에 놔줘.

조이 이모는 큰 물건을 말할 때 골프클럽을 툭툭 쳤다.

필요한 거 있으면 가져가고. 뭐가 있는지는 나도 몰라.

조이 이모가 내려가고 자매는 방 안에 덩그러니 남겨졌다. 처음 와보는 집이지만 어딘지 익숙한, 오래된 집에서 나는 냄새가 방에 짙게 깔려 있었다. 자매는 일단 제일 앞에 놓인 박스를 열었다. 홍학 모양 칵테일 픽, 누군가의 기념일이 적힌 수건들, 아크릴로 된 각종 키링들이 들어 있었다. 두 번째 박스는 더 무거웠다. 테이프를 뜯자 옷이 빽빽하게 눌린 채 나왔다. 골프 모자와 양털 조끼, 가격표가 달린 스포츠 양말 같은 것들이었다. 자매는 말없이 상자의 테이프를 뜯어 안에 들어있는 물건들을 꺼내길 반복했다. 무엇이 추억의 물건이고 무엇이 버릴 물건인지에 관한 판단은 일단 보류해 두었다.

언니의 손이 잠깐 멈춘 것은 담금주 앞에 있는 상자를 열었을 때였다. 안에는 연필깎이와 색연필 세트, 분홍색으로 가장자리가 닳은 공책들이 있었다. 표지에는 네임펜으로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언니의 기억이 맞다면 그건 조이 이모 딸의 이름이었다. 두툼한 사진 앨범과 일기장도 있었다. 그 모든 걸 꺼내다 언니는 몇 권의 잡지를 발견했다.

그건 마론 인형의 브랜드에서 제작한 잡지였다. 언니는 그걸 본 적이 있었다. 조이 이모 딸의 책장에 꽂힌 책 중 이게 있었다. 이 잡지에는 마론 인형이 겪는 일상 속 이야기가 실려있었다. 인형에겐 남자 친구도 있었고, 다니는 학교도, 단짝 친구도 있었다. 이걸 보기 전까지 언니는 마론 인형을 가지고 놀 때마다 그때그때 모든 설정을 다 지어내기만 했으므로, 인형에게 이미 정해진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조이 이모의 딸은 남자 마론 인형을 가져와 언니에게 보여주었다. 인형의 남자 친구인 ‘준’이라고 했다. 자신의 삶을 가지고 있는 인형. 피자집에서 남자 친구와 했던 데이트, 파티에 초대받아 드레스를 고르던 순간들, 친구들의 고유한 이름. 인형의 정해진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아이들은 따로 있었다. 심지어 인형은 자신만의 사서함도 가지고 있었다. 그날 하루 종일 사서함 번호를 잊을까 봐 몇 번이고 되뇌었던 기억이 났다. 젊고 아름다운 조이 이모가 차려준 처음 먹어보는 음식에도, 조이 이모의 딸이 보여주던 애니메이션을 보면서도 그 번호를 잊지 않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사서함 번호를 눌러보았다. 인형의 목소리는 언니가 상상하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그때 동생이 박스를 가리키며 언니를 불렀다.

이것 봐.

동생은 언니에게 송장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모 이름이 박조희인가 봐.

살펴보니 택배의 수신인은 모두 박조희였다. 자매는 어릴 때부터 조이 이모가 영어 이름을 가졌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중요한 사실은 아니었고, 동생은 박스 하나를 뜯어 새것으로 보이는 제습기 하나를 꺼냈다.

곰팡이 없애는 데 도움이 좀 되지 않을까?

자매는 제습기와 전기 헤어롤 세팅기, 핫팩 한 상자와 5천 원짜리 문화상품권을 챙기고 정리를 마쳤다.

 

*

 

집에 가기 전 조이 이모는 감자와 고구마 같은 걸 싸주며 말했다.

내가 예전에 너네 엄마랑 등산 갔다가 내려오면서 웬 트럭에서 사주를 본 적이 있거든. 거기서 나보고 돈 생기면 무조건 땅이라도 하나 사라고, 돈 빠져나가기 시작하면사람도 같이 빠져 나간다고. 그 얘기 듣고 나오는데 너네 엄마가 그러더라. 자기 가게 차리는데 딱 7천이 부족하다고.

자매는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너네 엄마 진짜 대단하지 않냐. 방금 그런 말 듣고 나온 사람한테 돈을 다 빌리고.

그러면서 다 너네 먹여 살린 거야. 내가 이곳저곳에 받을 돈이 아직 많다. 지금 땅만 팔리면 딸한테도 다시 연락할 거고… 아무튼 오늘 이모 보러 와줘서 고맙다.

자매는 옥 씨가 조이 이모에게 돈에 관련된 아무런 말도 전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말을 꺼내야 하는 것은 자신들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지만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자매는 감자와 고구마가 담긴 봉투를 나눠받았고, 다시 차에 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특별히 막히지도, 그렇다고 특별히 빠르지도 않았다.

 

*

 

이제 출혈도 잡히고 미세 감염도 모두 해결되어 의사는 문제없이 생활하면 된다고 했지만, 옥 씨는 퇴원하는 날 꼭 영정사진을 찍어야겠다고 우겼다. 그리고 사진을 찍으려면 화장을 좀 해야 하는데 마스카라가 다 굳고 루주도 없으니 챙겨오라고 덧붙였다. 언니는 옥 씨의 화장품을 사고, 동생은 사진관을 예약하기로 했다.

옥 씨의 퇴원 전날은 언니가 학원에 처음 출근하는 날이었다. 친구는 언니에게 미리 몇몇 도서 목록을 넘겨주며, 수업은 편하게 진행하면 된다고 했다. 언니는 목록을 훑다가 그중 비교적 얇고 익숙해 보이는 한 권을 골라 들고 갔다.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었다. 가족이기에 어쩔 수 없이 함께 통과해야 할 수밖에 없는 시절이 있고, 그러한 시절을 포착한 소설이라고 이야기해 줄 작정이었다. 교실에 들어서니 아이들은 이미 반쯤 모여 있었고, 책을 펼친 채 앉아 있었다. 언니는 소설에 관해 설명하기 전, 아이들에게 감상을 물었다. 한 아이가 대답했다.

주인공이 너무 답답해요.

아이는 말을 이었다.

가족들이랑 연을 끊으면 되잖아요. 이런 소설 다신 안 읽고 싶어요. 고구마 소설.

주변에도 가족과 연락하지 않고 지내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언니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글쎄, 그러기엔….

수업이 끝나고 언니는 고구마를 생각하며 화장품 가게에 들렀다. 옥 씨를 위해 살 것들을 보고 있는데 동생 쪽에서 전화를 걸어왔다.

언니, 세탁기에 이불 돌렸는데 오류 났어.

물 먹으니까 무거워져서 그럴걸?

탈수도 안 되는데 어떻게 해?

이불 꺼내서 물 좀 짜고 다시 넣어봐. 안 되면 반 접어서 탈수 다시 해보고.

언니는 마스카라와 립스틱을 골라 직원을 불렀다. 집에 가는 길엔 동생에게 해결되었냐는 메시지를 보냈고, 답은 오지 않았다.

 

*

 

퇴원하는 날 옥 씨는 오랜만에 화장을 했다. 동생이 챙겨온 전기 헤어롤 세팅기로 머리도 말았다. 옥 씨는 병실에 딸린 화장실 거울에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가 멀리했다가 하며 자신의 모습을 확인했다.

옥 씨의 주변은 며칠 사이에 구성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처음부터 함께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퇴원했는지, 버려진 슬리퍼 한 켤레와 반쯤 남은 생수병이 쓰레기통에 들어있었다. 이제 막 접수를 마치고 올라왔는지 한 여자가 들어왔다. 여자는 창가 쪽 침대를 안내받았고, 자매는 여자가 자리에 만족할지 궁금해했다.

자매는 짐이 든 가방 두 개와 옥 씨의 외투를 챙겨 들었다. 병실 문을 나설 때 병동 특유의 따뜻한 공기와 복도의 찬기가 엇갈려 느껴졌다. 수납 창구로 가까이 다가설 때 옥 씨는 정해진 자리처럼 벤치에 앉았고, 자매가 대신 줄을 섰다. 창구 앞에서 자매는 카드를 내밀었다. 할부로 결제된 액수는 대충 확인했다. 그들은 본래 시간을 들여 지출 내역을 계산할 만큼 부지런한 성정이 아니었으므로.

동생이 예약한 사진관은 병원 근처의 오래된 상가 건물 1층에 있었다. 유리문엔 여러 스티커가 붙어있었으나 낡아서 내용을 확인하기 힘들었다. 전면 창 안쪽엔 가족사진, 증명사진 같은 여러 샘플들이 놓여 있었다.

자매는 옥 씨가 조명을 받고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조명이 옥 씨의 주름을 조금 가려주긴 했으나 그래도 처진 턱살은 그대로 드러났다. 무릎에 얹힌 손은 얼굴보다 더 주름지고 늙어있었다. 자연스레 자매는 옥 씨의 예전 모습을 떠올렸다.

언니에게 떠오른 장면은 이랬다. 거북이가 나오는 동화책에 푹 빠져 있던 시절, 옥씨와 함께 목욕탕에 다니던 때였다. 늘 가던 목욕탕엔 냉탕의 한쪽 벽에 화려한 양각 조각이 새겨져 있었다. 포도 넝쿨이 가득 새겨진 벽 한가운데 구불구불한 머리의 여자가 서 있었다. 여자가 들고 있는 항아리에서는 물이 졸졸 흘러나왔다. 언니는 그 물을 맞는 걸 좋아했다. 물을 맞으며 자세히 벽을 들여다보면 포도 넝쿨 사이에 조개나 구름 같은 것들이 숨어있는 게 보이기도 했다.

옥 씨는 때를 다 밀고 나면 냉탕에 있는 언니를 찾아 들어왔다. 그리고 언니가 좋아하는 거북이 흉내를 내주었다.

아가 거북이야, 어디 있니.

그러면 언니는 신이 나서 냉탕 끝으로 가서 외쳤다.

엄마, 엄마. 저를 구해주세요. 파도가 너무 거세서 엄마에게 갈 수 없어요.

사랑하는 아가 거북이야, 엄마가 꼭 구해줄게.

옥 씨가 개헤엄을 치며 언니에게로 다가가서 등에 업었다. 맨살에 닿는 옥 씨의 피부는 매끈했다. 옥 씨는 언니를 업은 채로 냉탕의 반대편까지 수영을 해서 갔다. 그리고 언니를 냉탕 난간에 앉히며 말했다.

이제 우리는 안전하단다.

언니는 옥 씨의 목을 꽉 끌어안고 웃었다.

한편 동생에게 떠오른 장면은 이런 것이었다.

아침부터 친구들과 함께 놀이터에서 뛰어놀고 집에 들어왔을 때였다. 거실 바닥에는 햇빛이 길게 드리워져 있었고, 부엌에서는 물소리가 났다. 싱크대에 그릇이 놓이는 소리, 배수구의 음식물을 터는 소리가 들려왔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고 동생을 귀가한 것을 발견한 옥 씨는 고무장갑을 벗지도 않고 동생에게 달려왔다. 그리고 동생의 정수리에 코를 박고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아, 바람 냄새를 묻혀왔네.

그러면 동생은 옥 씨의 허리에 매달려 함께 주방으로 향했다. 옥 씨의 허리춤에 얼굴을 파묻고 옥 씨처럼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자기 옷에 남은 흙먼지 냄새와 옥 씨의 살냄새가 섞였다. 옥 씨는 동생을 매단 채로 계속 설거지했다. 동생의 얼굴 쪽에 물이 튀기도 했다. 동생이 고개를 저어 물을 털어내려고 하면, 옥 씨는 아예 동생을 향해 손에 묻은 물을 털었다. 동생은 옥 씨의 등에 얼굴을 문지르며 그 물을 닦아 냈다.

베란다에서는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베란다를 쪽으로 난 부엌 창에는 동생이 모아둔 조약돌, 병뚜껑, 뽑기 캡슐의 반쪽이 올려져 있었다. 그것들이 놓아져 있던 순서도 정확히 기억났다.

자매는 자신들에게 소리 없이 우는 것 외에도 잘하는 게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건 바로 남다른 기억력이었다. 모두 옥 씨가 만들어주었거나 옥 씨를 닮은 것이었다. 자매는 자신들이 지켜보았던 옥 씨의 삶도 세세히 기억하고 있었다. 중학교도 가지 못하고 식모살이를 했던 것이나, 공장에서 일한 돈으로 오빠와 동생들을 모두 먹여 살린 것, 남편의 빚을 대신 갚느라 평생 쉬지 않고 일을 한 것들을.

그래서 사진관에서 나와 옥 씨가 목욕탕에 가고 싶다고 했을 때 자매는 묵묵히 옥씨를 따라 걸었다.

 

*

 

얼마 뒤 자매는 각자의 집에서 싹이 난 고구마를 발견했다. 고구마 키우기를 검색해 보기도 했지만, 무언가를 키운다는 것이 영 내키지 않았다. 결국 자매는 싹이 난 고구마도 음식물쓰레기가 맞는지 잠시 고민했고, 각자의 고구마를 버렸다. 옥 씨의 영정사진을 찾으러 갈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걸 생각하는 데 휴대폰이 울렸다. 어김없이 옥 씨의 전화였고, 자매는 자신들이 잘하는 일을 하러 갔다. 

송지현
소설가, 1987년생
소설집 『이를테면 에필로그의 방식으로』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 에세이 「동해 생활」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