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누구보다 잘하는 일

  • 단편소설
  • 2026년 여름호 (통권 100호)
누구보다 잘하는 일

우리집도 잠깐 잘 살았던 때가 있었다.

옥 씨의 말이었다.

너희는 그런 것도 누리고 살았지.

 

*

 

조이 이모는 제천에 살고 있다고 했다. 자매는 아침부터 일어나 준비를 시작했다. 일찍 일어난 것은 오랜만이었다. 밤사이 차갑게 식은 방바닥에 발을 딛자, 무릎까지 단숨에 찬기가 올라왔다. 화장실에서 씻는 동안엔 몇 번이나 몸서리를 칠 수밖에 없었다. 자매는 원래도 겨울을 좋아하지 않았다. 겨울엔 결로현상 때문에 곰팡이가 잘 슬었고, 난방비는 전기세보다 비쌌다. 자매는 나서기 전 마지막으로 보일러를 껐는지 여러 번 확인하고 수도가 얼지 않도록 물이 조금 흐르게 둔 뒤 따뜻한 옷을 챙겨 입고 나섰다.

더 이상 같이 살지 않는데도 자매가 사는 집은 어딘가 늘 비슷한 구석이 있어서 계절마다 자매가 외출을 준비하는 방식도 비슷비슷했다. 

언니 쪽은 아주 어릴 적에 조이 이모네 집에 가본 적이 있었다. 그때 조이 이모는 서울 한복판에서 살고 있었다. 언니는 그 집을 어렴풋이 기억했다. 꼭대기 층 아파트의 높은 천장, 커다란 액자들이 양옆으로 걸린 긴 복도와 말도 안 되게 큰 주방, 집 곳곳에 자신의 방보다 커 보이던 화분들이 놓여있던 것이 떠올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계단. 집안에 계단이 있는 걸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자신보다 세 살이 많은 조이 이모의 딸이 손님이 온 걸 알아채고는 계단에서 내려왔다. 조이 이모의 딸은 2층에 있는 자신의 방으로 손을 잡아끌었다. 방 중간을 가로지르는 포인트 띠 벽지도 처음으로 봤다. 끝없이 이어진 리본 무늬가 방을 포장지처럼 빙 둘러 감싸고 있었다. 낮은 옷장과 침대 그리고 전집이 가지런히 꽂힌 책장이 있었다. 책장 위엔 다양한 브랜드에서 나온 마론 인형이 놓여있었는데, 인형들은 모두 제각각의 콘셉트로 옷을 입고 있었다. 신발까지 완벽한 세트였다.

그리고 그때의 조이 이모는 마론 인형처럼 젊고 예뻤다. 집에서도 스타킹을 신고있던 조이 이모의 매끈한 종아리를 훔쳐보던 기억이 났다. 이모는 딸이 더 이상 입지 않는 옷과 장난감들을 한 상자 챙겨주었다. 그 안에 마론 인형은 없었다.

한편 동생 쪽이 기억하는 조이 이모는 좀 더 나이가 든 모습이었다. 동생은 어릴적 옥 씨와 조이 이모와 함께 자주 목욕탕에 갔다. 갈 때마다 동생은 그 둘의 배를, 정확히 말하면 배 아래의 둔덕을 바라보았다. 둘에게 나란히 제왕절개 자국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둘은 연신 온탕과 냉탕을 오가다가 마지막으로는 온몸에 요플레를 발랐다. 처진 뱃살 사이에 요플레의 건더기가 끼었다. 둘은 동생의 몸에도 요플레를 발라주었다. 동생은 따뜻한 요플레 냄새를 맡다가 목욕탕 바닥에 토했다

미리 언니의 집 앞에 와 차를 대놓고 있던 동생이, 언니가 차에 타자 내비게이션을 켜며 물었다.

제천 어디라고?

언니는 옥 씨가 알려 준 주소를 일러주었다. 내비게이션 주소상 그 주소엔 작은 건 물 외엔 아무것도 뜨지 않았다. 심지어 길 모양도 그 앞에서 끊겨 있었다.

여기 맞겠지?

맞지 않을까.

출발한다.

히터를 틀었으나 동생의 차는 좀처럼 따뜻해지지 않았다.

  * 계간 <대산문화> 2025 겨울호(통권 98호)에 전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송지현
소설가, 1987년생
소설집 『이를테면 에필로그의 방식으로』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 에세이 「동해 생활」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