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베인

  • 단편소설
  • 2025년 겨울호 (통권 98호)
베인

헬스장에서 돌아온 원모가 운동복을 세탁 바구니에 던지듯 넣으며 말했다.

“유령 신부 또 왔더라. 오늘도 러닝 뛰던데.”

“왜 자꾸 멀쩡한 사람한테 유령이래.”

“아니, 진짜 똑같이 생겼다니까? 너도 보면 바로 유령 신부구나 할 걸?”

원모가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들이붓듯 마시는 동안 나는 바구니를 들고 세탁기가 있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원모의 땀에 전 옷가지가 내 빨랫감들과 한데 엉켜 있도록 둘 수 없었다. 기름처럼 끈끈한 땀이 내 살을 타고 엉겨 붙는 느낌. 운동을 전혀 하지않는 내 후줄근한 피부는 운동 후의 열기로 번들거리는 원모를 볼 때면 나도 모르게 움츠러든다. 원모에게 한 번도 말한 적은 없지만 나는 원모와 닿고 싶을 때보다 닿기 싫을 때가 더 많다. 타인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왜 점점 거슬리는 일만 늘어갈까. 보통은 타인의 존재가 무디어지거나, 편해져야 하지 않나? 원모는 심지어 타인도 아니고, 아닌 정도가 아니라 애인이고, 괜찮은 사람인데. 자기 일에 성실하고 코인이나 주식을 하는 대신 아프리카 분쟁국 아동에게 정기 후원을 하는 데다, 아, 내가 열일곱 살 때 항 암 치료를 받느라 일 년 늦게 졸업했다고 말했을 때 눈물이 맺힌 눈으로 살아있어 줘서 고맙다고 말하기까지 했었지. 정작 나는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아직도 낯설어서 멀뚱한 얼굴로 원모를 바라보기만 했지만.(어릴 때 암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대체로 나보다 더 큰 감사와 감동을 느끼는 것 같다.)

빨래를 돌리고 나오니 원모가 내 작은 집의 반은 차지하는 것 같은 큰 몸집으로 스쿼트를 하다 갑자기 웃었다. 뭐가 웃기냐고 되물었더니 원모가 말했다. 유령 신부랑 러닝 대결을 했다고. 

유령 신부는 원모가 다니는 헬스장에서 종종 마주치는 여자였다. 애니메이션 유령 신부 캐릭터와 똑같이 생겼다고 원모는 그렇게 불렀다. 여자는 팔다리의 뼈가 그대로 드러날 정도로 마른 몸으로 달린다고 했다. 원모는 여자가 한 번도 러닝 머신 위를 벗어나 있는 모습을 본 적 없었다. 헬스장에서 마주칠 때마다 여자는 눈을 크게 뜨고, 핸드폰이나 텔레비전도 보지 않고, 정면만 바라보며 뛴다고 했다. 처음에 원모는 저렇게 마른 사람이 운동하다 큰일 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 여자를 지켜봤다고 했지만 이제는 여자를 내게 중계해 줘야 하는 콘텐츠쯤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너 그렇게 마른 사람 본 적 있어? 진짜 거짓말 안 하고, 뼈다귀가 움직이는 것 같아. 종아리랑 허벅지에 살과 근육이 거의 안 붙어 있어. 진짜 뼈뿐이야. 뼈가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니까. 멀리서 보면 몸이, 몸이 아니라 선이야. 그냥 둥근 머리가 직선 위에 꽂혀 있어. 아니, 그냥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인 나까지 걱정되더라고. 여자들은 정말 그렇게까지 마르면 예뻐 보일 거라고 생각하나?

그런 문제가 아닐 거야.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을 거야. 나는 그렇게 말하곤 했지만 정작 그럼 어떤 게 중요한지, 왜 그렇게까지 하는 여자들이 있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무슨 대결을 했다고?”

세탁기를 돌린 뒤 손을 씻고 나오며 묻자 원모는 스쿼트 한 세트를 끝냈는지 허리를 폈다. 원모의 관자놀이에서부터 땀 한 줄기가 흘러내려 턱에 고였다. 면도 자국이 파여 있는 턱끝에 맺힌 물방울을 아슬아슬한 심정으로 바라보며 손끝의 물기를 함부로 털어냈다.

“아니, 내가 한 번도 유령 신부가 러닝 머신을 멈추는 걸 본 적이 없어서 오늘 그냥 옆에서 달려봤거든. 언제까지 하는지 궁금한 거야. 직원한테 슬쩍 물어봤을 땐 거의 매일 두 시간씩은 뛰는 것 같다는데, 말이 안 되잖아. 네가 그렇게 말랐는데, 아마 음식도 거의 안 먹을 텐데, 두 시간을 뛸 수 있겠어? 그래서 오늘은 근력 루틴 포기하고 나도 러닝 좀 탔지. 비슷한 속도로 맞춰서 뛰니까 그 여자도 처음엔 평소처럼 정면만 보고 있다가 나를 슬쩍 쳐다보고는 속도를 좀 높이더라? 나도 그것보다 한 두 단계 더 높였지. 그러다 모니터에서 다크 나이트가 나오고 있길래, 집중해서 보느라 한 삼사십 분 더 달렸나? 갑자기 숨소리가 들려서 옆에 보니까 여자가 그새 자세도 흐트러지고, 고개도 막 이리저리 꺾이면서 뛰고 있더라고. 그런데도 기어이 계속하더라. 그대로 가다간 큰일 날 것 같아서 내가 먼저 얼른 내려왔지. 그 여자도 시간 체크하더니 조금 더 뛰다가 바로 머신끄고 가더라고. 똑바로 서 있는 게 신기한 상태 같은데도, 양손을 허리에 딱 받치고 꼿꼿이 걸어가던데.”

한 줌이면 잡힐 것 같은 허리를 두 손으로 짚고 걸어 나가는 여자의 뒷모습. 나는 그런 자세로, 뼈밖에 남지 않은 손으로 앞뒤가 딱 붙은 것 같은 허리를 짚는 버릇이 있던 여자애를 알았다. 그 애는 종잇장처럼 납작한 허리를 만지고 있으면 안심이 된다고 말하곤 했다. 나는 그때 그 애를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나와 그 애의 사이에는 부피나 양감이 없었다. 아주 딱딱하고 얇은 이해와 그게 전부라고 생각했던 시절만 있었다.

“그게 웃겨?”

“아니, 그냥 그 상황이 웃기잖아. 나처럼 건장한 남자랑 그렇게 꼬챙이처럼 마른 여자애가 나란히 한 시간 넘게 뛰고 있다는 게.”

“그러니까 그게 왜 웃기냐고.”

“웃기다기보다. 아, 뭐, 내가 웃기다는데 네 허락 맡아야 하냐? 끝까지 뛸 줄 몰랐는데 진짜 뛰잖아. 그러다가 쓰러지면 어떡하려고 그러냐고. 러닝 머신에서 넘어지면 얼굴 갈린다, 너?”

“걱정하는 게 아니라 비웃고 싶은 거잖아.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후원 아동 사진은 볼 때마다 울면서.”

“아 어떻게 같아. 먹을 게 없어서 굶는 애랑, 먹을 게 넘치는 데도 자기 맘대로 안 처먹다가 그 꼴이 된 사람이 어떻게 같냐고. 솔직히 난 좀 화나더라. 그런 여자들 보면.”

“자기는 모르잖아. 사람들이 우리 몸을 어떻게 보는지. 조금만 마르거나 쪄도 얼마나 많은 말을 들어야 하는지.”

“조금만이 아니라니까, 그 여자는. 그리고 사람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극단적으로 살이 찌거나 빠진 사람들 보면 무섭잖아. 본능적으로. 그런 상태가 정상은 아니니까.”

“정상이든 비정상이든 그걸 네가 왜 신경 쓰냐고.”

내 목소리가 튀어 오르자, 원모는 다시 스쿼트 자세를 잡다 말고 나를 쳐다보며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나한테 화내는 거야?”

아니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원모한테는 애초에 큰 기대가 없었다. 다만 나는 지금도 그때를 제대로 설명하지도, 정리하지도 못하는 스스로에게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 

 

*

 

고등학교 1학년 첫 여름방학 때 내 왼쪽 신장에 암이 자라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아직도 선명하게, 보충 수업에 늦어 4층 높이의 빌라 계단을 단숨에 뛰어 내려갔던 아침을 기억한다. 아빠가 엄마에게는 가격을 속이고 산 비싼 자전거가 묶여 있고 아랫집 할머니네 마늘이 신문지 위에 자루째 널려 있던 계단참의 차갑고 알싸한 공기. 계단을 내려오는 동안 왼쪽 옆구리에 전에 없던 무거운 통증이 있었다. 생경하고 이질적인 통증이었다. 간밤에 누군가 내 갈비뼈를 열어 뱃속에 몰래 뾰족한 돌덩어리 하나를 심어놓고 간 듯한. 통증은 몸을 움직일 때 커졌고, 가만히 있으면 거의 느껴지지 않았지만 사라지지는 않았다. 보충 수업을 들으러 가던 여름 방학 한 달 내내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허리를 부여잡았다. 그렇게 붙잡지 않으면 뱃속의 돌덩어리가 온 내장을 휩쓸고 돌아다닐 것 같아서. 동네 병원에서는 엑스레이를 찍어보고 변비라고 했다. 정말 변비인 줄 알고, 관장까지 했다. 그리고 보충 수업 마지막 날, 학교 화장실에서 혈뇨를 보고 쓰러졌다. 암이 꽤 진행된 후였지만 다행히 전이가 없어 왼쪽 신장의 제거 수술부터 받았다. 그 후 항암 치료를 하느라 병원에 입퇴원을 반복하다 일 년 후 학교로 돌아갔다. 다시 1학년 1학기로. 마치 지난 일 년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거기서 그 애, 아연을 만났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연합고사에서 중간 성적인 아이들이 가던 곳이었지만, 동네가 낙후된 탓에 입학 평균은 계속 낮아지고 자퇴율은 오르고 있었다. 그 지역은 1970년대 대기업의 전자 부품 공장이 들어오면서 당시로서는 드물던 단지형 아파트와 빌라, 상업지구까지 갖춘 도시로 가장 먼저 발전했지만, 서울 외곽으로 확장을 시작한 지하철 노선이 들어오려다 무산되고, 오염 물질 유출 문제로 공장 시설도 대부분 지방으로 이전하며 시에서 가장 오래되고 더러운 동네가 되었다. 한때 공장에 다니던 아버지들은 아이들의 자랑이었지만, 내가 학교에 다닐 무렵에 공장 사택에 살던 아이들은 아버지의 직업을 밝히는 순간(반드시 그래야 할 때가 오는데), 상대의 반응에 상관없이 상처 입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지하철역은 우리 동네에서 버스를 타고 이십 분은 가야 하는 허허벌판에 생겼다. 그 일대 땅을 보수 정당 국회의원을 대대로 배출한 집안이 소유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는 했다. 거짓말처럼 불과 몇 년 만에 그곳은 뉴타운이 되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건설되고, 대학교 분교와 대학 병원까지 들어왔다. 아연이의 아버지가 그 병원의 마취과 교수였다. 아연이는 학기 시작 직전에 이사 왔는데 뉴타운에 생긴 학교는 입학 정원이 마감되어 우리 학교로 올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의사인데다 어머니는 대기업 산하 패션 브랜드의 디자이너로 각자 일이 너무 바빠서 미리 전입 신고를 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고. 그 말을 할 때 아연이의 말투와 표정에서는 부모의 무관심에 대한 책망보다, 그들을 바쁘게 만드는 직업에 대한 은근한 자랑스러움이 느껴졌다. 

그때는 아직 중고등학교 1학년들을 대상으로 교실에서 신체검사를 의무적으로 시행하던 때였다. 4월 초, 벌써 초반 무리를 이미 형성한 반 친구들 앞에서 몸무게를 잴 때 아연이의 얼굴을 기억한다. 키 162센티에, 37킬로그램을 가리키던 눈금. 몸무게 주변을 둘러싸서 구경하던 아이들의 탄성. 고개를 들어 좌중을 둘러보다 굳이 나와 눈을 맞추며 고개를 까딱이는 무심한, 아니 승리자의 얼굴. 마치 너는 이 느낌을 알지 않느냐는 듯한. 나와 아연이는 나란히 그해 전교에서 최저 몸무게를 기록했다. 그전까지 아연이는 내게 관심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일부러 무시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를 피했는데, 내가 자기보다 몇백 그램 정도 몸무게가 더 나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로 내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너 진짜 한쪽 신장 없어? 아, 언니라고 불러야 하나?”

그때까지 교실에서 어느 무리에도 속하지 못하던 사람은 나와 그 애뿐이었지만 우리는 다른 아이들보다 더 철저히 서로를 무시하려고 노력했다. 남겨진 애들끼리 붙어 다니는 모습을 보이느니 계속 혼자인 편이 나았다. 아무렇지 않은 혼자. 친구가 없어서 외로운 티를 내는 순간 나는 특이한 애에서 불쌍한 애로 전락하게 될 것을 알았다. 안 그래도 이미 내 몰골을 보면 다들 그렇게 느끼고 있을 테니, 조금이라도 덜 불쌍해지기 위해 나는 나름 필사적이었다.

나와 달리 아연이는 늘 여유로워 보였다. 뉴타운 학교에 자리가 생기면 바로 전학을 갈 예정이었는데다, 다른 아이들이 로드샵 화장품을 쓸 때 혼자 명품 화장품과 향수를 가지고 다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연이는 쉬는 시간마다 브랜드 로고가 크게 박힌 팩트나 립스틱을 꺼내 요란하게 화장을 수정했다. 다른 아이들은 아연이를 조금 재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아연이는 기꺼이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을 받아냈고 때로는 보란 듯이 마른 다리를 휘적이며 무언가를 찾는 척하며 교실을 한 바퀴 돌기도 했다. 아연이가 지나간 자리에는 늘 진한 향수 냄새가 남았다.

나는, 나이도 한 살 많은데다 항암치료로 빠진 머리가 제멋대로 자라는 중이라 누가 봐도 건강해 보이지는 않았다. 게다가 남아 있는 신장까지 약해진 탓에 강박적으로 식단을 관리하는 중이어서 급식 대신 무염식 도시락을 따로 먹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나에게 일어난 일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째서 그날 아침에 그런 통증을 느껴야 했는지, 아직 술이나 담배로 인생을 망칠 기회도 없었는데 스무 살도 되기 전에 내 몸에서 왜 그런 게 자라났는지, 신장을 떼어내고도 병원에서 항암제에 절여져야만 했는지, 무엇보다, 그 모든 일을 겪었음에도 나는 어째서 당연하게 학교로 돌아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일상을 살아내야 하는지. 부모도, 의사도, 누구도 나에게 설명해 주지 않았다. 나는 아픈 애니까, 부모의 걱정거리자, 의사의 치료 대상, 그뿐이었다. 그때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누구도 나에게 관심을 주길 원하지 않았고,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아연이가 쉬는 시간에 내 책상으로 찾아와, 관심인지 시비인지 알 수 없는 말투로, 내게 정말 신장이 없냐고 말을 걸어왔을 때, 나는 어떤 얼굴로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바보처럼 눈을 깜빡이다가, 맞아, 나 신장 하나 없어, 하고 대답했다.

“그럼, 살이 덜 찌나?”

돌이켜보면 그 말은 모욕적이었다. 나는 신장을 하나 잃었고, 평생 투석의 두려움에 시달리는 처지가 되었다. 항암 치료를 하는 동안 음식을 먹고 싶은데도 먹는 족족 토해서 식도가 헐었다. 내게 몸무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저 내가 병들었다는 증거일 뿐.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아연이의 말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 외로웠나? 아마 그랬겠지. 별수 없이. 그래서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럴걸? 소변이 반만 만들어지잖아.”

내 말에 아연이는 웃었다. 정말 크게. 

그날부터 우리는 점심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동안 나는 교실에 혼자 남아 엄마가 싸준 허여멀겋고 간이 안 된 음식들을 먹었다. 아니, 실은 조금 먹는 척하다 화장실에 다 버리곤 했다. 맛이 느껴지지 않는 음식을 먹는 게 괴로웠고, 그냥 그거라도 내 마음대로 버릴 수 있다는 게 좋았던 것 같다. 내게 쏟아지는 엄마의 눈물과 한숨과 걱정을 버리는 것보다 간편했으니까. 그리고 이 주에 한 번은 병원에 가서 소변 검사를 했다. 크레아티닌이나 GFR(사구체여과율) 수치가 조금 오를 때마다 엄마의 얼굴이 먼저 하얗게 변했고, 극단적인 저염식에서 그나마 남아있던 소금기도 다 뺀 음식들로만 도시락을 싸곤 했다.

아연이는 항상 제일 먼저 급식소로 뛰어가는 아이들 틈에 섞여 사라진 뒤 점심시간이 끝나기 직전에야 교실에 돌아오곤 했는데, 당연히 급식실에 가는 건 아니었다. 아연이는 나를 자기의 아지트로 데려갔다.

뒤 운동장의 폐소각장.

언뜻 보면 벽돌로 지은 초소처럼 보이는 소각장의 정면에는 박스 하나가 들어갈 크기로 쓰레기 투입구가 뚫려 있었다. 아연이는 그 구멍 사이를 기어서 통과했다. 토끼굴로 사라지는 앨리스도 아니면서.

뒤 운동장은 무덤이 많은 산에 맞닿아있어 음지인데다, 소각장뿐만 아니라 한때 토끼가 번식했지만 이제는 토끼 똥만 잔뜩 남은 사육장, 뚜껑이 제대로 닫히지 않는 거대한 음식물 쓰레기 수거함도 있었다. 벌레와 쥐, 오래된 악취와 버려진 그림자들만 우글대는 곳이었다. 가끔 노는 애들이 모여서 담배를 피우다 걸리거나, 누군가를 ‘다굴’하는 장소이기도 했지만, 대개 그런 일들은 밤에 일어났다. 점심시간에는 아무도 없었다. 운동장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소음이 전혀 다른 세계에 속한 것 같았다. 나는 괜히 주위를 둘러보며 망설였다. 먼저 소각장으로 들어간 아연이는 아무 말도 없었다. 정말 다른 세계로 사라지기라도 한 것처럼. 그때 아연이가 빨리 들어오라고, 뭐하냐고, 한마디만 했다면 나는 도망갔을 것이다. 확신할 수 있다. 하지만 아연이에게는 그 정도의 인내심이 있었다. 나는 그 안으로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쨌든 내게도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낼, 그러니까 친구를 만들 유일한 기회였으니까.

그 안의 공기를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위로 까마득히 솟은(실제로는 별로 길지도 않지만) 굴뚝에서 내려오는 한 줄기 빛의 기둥, 그 주변으로 옅어진 어둠을 통해 부유하는 먼지가 보인다. 의외로 까만 재가 아니라 아주 가벼운, 솜털 같은 부유물이다. 비좁지만 천장이 높아 허리를 수그리지 않아도 된다. 신기할 정도로 공간이 몸에 꼭 맞는 느낌이다. 흙바닥은 축축하고 까끌까끌하다. 옷이 더러워지는 게 신경 쓰이지만 살이 닿는 것보다 나아서 최대한 치마를 끌어당겨 엉덩이를 붙이고 무릎은 세워 앉는다. 아연이는 두 다리를 쭉 뻗고 있다.

“안 더러워.”

아연이가 말한다.

“다 타고 남은 것들은 안 더러워. 세균도 없고. 묻은 것도 털면 금방 훌훌 날아가.”

거기서 아연이는 점심시간을 보낸다. 아연이는 점심시간의 모든 것이 끔찍하다.

“애들이 교실로 돌아오기 시작하면 복도에서부터 냄새가 퍼져. 급식실에서부터 묻어온 그 음식 냄새, 언니는 알지? 나는 그 냄새가 진짜 싫어. 온갖 양념에 섞이고 물에 불리고 기름에 태운 것들이 냄새로라도 내 몸속에 들어온다는 게 진짜 짜증 나. 내가향수 뿌리는 것도 애들이 뒤에서 씹듯이 명품 향수 자랑하려고 뿌리는 게 아니고, 그런 냄새로부터 나를 보호해야 해서 어쩔 수 없이 뿌리는 거거든. 또, 내가 뭐 거식증이라느니 그러는데, 나는 그냥 무작정 굶는 게 아니라, 정화 과정 중이라서 계획하에 식단을 조절하는 거야. 치아 교정하듯이, 내 체질을 교정 중이라서 지금이 되게 중요한 시기야. 나는 음식 안 싫어해. 잘 먹어. 집에 가면 호밀빵에 훈제 연어랑 절인 오이 얹어서 먹어. 언니는 아직 어디 아파서 못 먹는 거야?”

우리는 어깨가 거의 닿을 만큼 가까이 앉아 있었지만 어둠 때문인지 나와 아연이 모두 자기만의 우주에 있는 것 같다. 아연이의 말이 억겁의 시공간을 건너서 내게로 오는 듯하다. 굴뚝에서 내려오는 희미한 빛의 기둥을 통해 아연이의 작은 눈을 거의 다 차지하고 있는 검은 눈동자가 나를 똑바로 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거의 처음으로, 내가 병원에서 겪은 일들을 말해야 했다. 항암제를 맞으면 몸이 어떻게 망가지는지. 위로는 토를 하고 아래로는 설사할 때 내 몸이 얼마나 하찮고 더럽게 느껴지는지. 몸에 면역 세포 수가 0으로 떨어지면 모든 게 나를 공격할 수 있고 아주 작은 상처에도 응급실에 가야 하며 치료하려고 맞은 항암제로 인해 남은 신장도 기능이 손상되어 어쩌면 평생 간을 하지 않은 음식만 먹어야 할 수도 있다고도. 물론, 실은 항암치료를 하는 동안에도 계속 토를 하면서도 끊임없이 음식을 밀어 넣었다는 이야기나, 지금도 아주 맵고 짜고 단 음식들, 떡볶이나 닭강정 같은 것들을 얼마나 먹고 싶은지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왠지 아연이에게 그런 말을 하면 내가 더러워 보일 것 같았으니까. 

아연이는 내가 말할 때도 자신의 무릎을 집요하게 보고 있었다. 그리고, 긴 한숨을 쉬었다. 관객들이 자신의 고뇌를 알아주길 바라는 연극배우처럼.

“언니, 그래도, 덕분에 언니는 이제 정화된 거라고 생각해. 고통스럽고 힘들었겠지만, 지금처럼 몸을 깨끗하게 유지하면 앞으로 아플 일 없을 거야.”

아연이는 그렇게 말하며 불쑥 내 손을 잡았다. 딱딱하고 뻣뻣한 손이었지만, 분명 따뜻했다.

 

*

 

우리가 잿더미 위에서 보낸 점심시간은 그해 가을에 중단되었다. 육아휴직 대체자로 온 신임 보건 교사가 우리를 점심시간에 상담실로 불렀기 때문이었다. 보건 교사는 간호사 경력이 있는 키 큰 젊은 여자였다. 최미온. 이름처럼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한 온기가 느껴지지는 사람이었다. 여자아이들은 미온쌤, 하고 그를 친근하게 불렀고 때로 실수인 척 언니라고 부르는 아이들도 있었다. 나와 아연이는 우리끼리 최묜, 이라고 불렀다. 우리에게 최미온 선생님은 초대받지 않은 침입자였으니까.  

최미온 선생님이 우리를 부르기 전까지, 우리에게는 잿더미보다 단단한 세계가 생겼다. 교실에서는 여전히서로를 이방인처럼 대했지만, 그 어둠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모든 걸(물론, 차마 말하지 못하는 부분은 빼고) 받아들였다. 우리의 부모, 선생, 반 아이들, 학원 아이들, 노래는 못하지만 얼굴과 몸이 취향인 우리의 아이돌들…. 우리는 음식을 씹듯이 그들을 잘게 잘게 썰고 씹어서 음미했다. 우리 사이는 무르익어, 아연이네 집에 초대받아서 간 적도 있었다. 차마 아연이를 우리 집에 초대하지는 못했지만.

뉴타운의 넓은 신축 아파트에서 나와 아연이는 아연이네 어머니의 옷장을 조심스레 구경하고, 패션 잡지를 보면서 모델의 포즈를 흉내 내다가 우스꽝스럽게 넘어지고, 우리가 좋아하던 아이돌 그룹의 콘서트 DVD를 보면서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했다. 우리가 그 모든 일을 하는 동안 누구도 우리를 방해하지 않았다. 아연이네 집은 넓고, 휑했다. 깔끔하고 정돈되어 있다고 할 수도 있었지만, 애초에 정리할 게 없는 것처럼 보였다. 모든 게 제자리에 있다고, 아연이는 집을 둘러보는 내게 말했다. 옷장을 구경할 때도 내게 몇 번이나, 건드리면 안 돼, 보기만 해, 하고 주의를 줬다. 마치 값비싼 예술 작품을 안내하는 사람처럼. 집에서는 잘 먹는다는 아연이의 말과 달리, 저녁 늦게까지 그 집에서 그 애가 무언가를 먹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나는 그때쯤 되자 배가 너무 고파서, 퍽퍽한 맨밥이라도 퍼먹고 싶었지만, 아연이는 자기의 몸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조금의 관심도 없어 보였다. 뱃속에서 끊임없이 물이 졸졸 새는 듯한 소리가 들렸는데도, 마치 저 벽 뒤의 배관에서 나는 소리처럼 취급했다. 

그날 아연이는 자신의 방을 제외한 모든 공간을 소개한 뒤에야 자신의 방으로 나를 들였다. 방문은 굳게 닫혀있었고, 아연이는 열쇠까지 꺼내서 문을 열었다.

“우리 집은 각자 방 열쇠 자기가 관리해.”

아연이의 방은 그 집에서 가장 커 보였다. 옷장도 책장도 침대도 내 것보다 두 배는 되어 보였는데, 자세히 보니 방의 한 면이 거울이었다. 그뿐 아니라 옷장의 문이나 책장에도 거울이 붙어 있어서 그 방에 들어온 순간 나는 수십 갈래로 조각 나 박제된 것 같았다. 아연이는 내가 방 안에 들어가 있는 동안 입구에서 문을 잡고 기다리고 있었다. 마음껏 구경하고 다시 나오라는 듯이. 형광등 빛이 사방에서 내 눈을 쏘아댔다. 나는 피로를 감추려고 높은 목소리로 방이 정말 크고 예쁘다고 말했고, 진심으로 감탄하는 척을 하며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그 방에서 나오다 아연이가 문지기처럼 지키고 있던 문에 눈먼 새처럼 부딪쳤다. 잠깐 문이 흔들리며 그 뒤에 걸려있던 옷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건 중학교 교복이었다. 무척 커다란. 나와 아연이가 누울 수 있을 정도로 폭이 큰 회색 주름치마와 남색 마이. 아연이는 바닥에 시체처럼 늘어져 있는 교복을 다시 걸어놓지도 않고 문을 닫았다.

2학기가 시작되고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우리는 영문도 모른 채 점심시간에 외떨어진 상담실에 나란히 앉아 최미온 선생님을 기다렸다. 아연이는 불안할 때 버릇대로 허리에 양손을 짚은 채 다리를 떨며 고개를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상담실의 낡은 초록색 펠트가 깔린 책상, 색이 바래 원래 색을 알 수 없는 커튼, 안 쓰는 의자며 책상이 한 구석에 쌓여 있었다. 그때 학생 상담은 매우 심각한 사안일 때만 이뤄졌다. 우리는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고 심지어 성적도 나쁘지 않았는데도 초조했다.

“늦어서 미안해.”

최미온 선생님이 검은 비닐봉지를 달랑이며 들어와 우리 앞에 놓았다. 그리고 우리의 의견은 묻지도 않고, 점심은 먹어야 해서, 라고 말하며 카스텔라와 흰 우유를 꺼내서 먹기 시작했다.

“나는 입맛 없을 때, 카스테라랑 흰 우유가 생각나더라.”

“그게 입맛이 없는 거예요?”

아연이가 대꾸하자 선생님은 맞네, 하고 고개를 몇 번이나 끄덕였다.

“어머, 나는 그럼 입맛이 없었던 적이 없나 봐.”

내가 웃자 아연이가 나를 흘끗 바라봤다. 그날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의 지난 신체검사 기록을 보았다고.

“음, 내가 알기로 너네 나이에, 그 키에 그 몸무게는 성장에 위험할 수 있어서.”

“저 키 안 큰 지 이 년 넘었어요.”

아연의 말에 선생님은 또 고개를 끄덕였다.

“아, 성장이란 게, 키만이 아니라, 너희 마음도 계속 자라는 중이잖아. 계속 무언가를 배우고, 많이 느껴야 할 때잖아. 그런 과정에 좋지 않다는 뜻이었어.”

“저 성적 괜찮아요.”

선생님은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고 아연이를 보았다.

“내가 괜히 참견한다고 말하고 싶은 거지?”

아연이는 그 말에 허리를 짚고 있던 손을 풀며 손사래를 쳤다.

“그런 건 아니고요.”

선생님은 아닌 게 아닌 걸 알지만 넘어가 줄게, 하고 말하는 듯한 어른스러운 웃음을 아연이에게 지어 보이고 내 몸 상태를 물었다. 나는 병원에 이 주에 한 번씩 가서 신장 기능을 검사하는 중이고, 거의 무염식으로 식단 조절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크레아티닌이랑 GFR 수치 선생님한테 알려줄 수 있어?”

병원에 갔을 때 의사가 보여주었던 수치를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이게 정말 나쁜건지 따로 찾아보려고 했지만, 무서워서 찾아보지는 않았다. 내 답을 듣고 선생님은 잠깐 고개를 기웃거리다 말했다. 

“선생님이 알기로, 그 정도면 관리만 잘 하면 되는 수준이고, 위험한 수치는 아니거든? 무염식을 할 정도는 아니고 하루에 나트륨 섭취를 2000mg 안으로만 조정하는 저염식이면 충분할 것 같아. 어머니가 아마 걱정되셔서 간을 아예 안 하고 음식을 주시는 모양이네. 이건 선생님이 한번 어머님께 말씀드려 봐도 괜찮을까?”

선생님의 질문에 아연이가 나를 빤히 바라봤다. 아연이의 시선은 분명했다. 거부해. 호의를 가장한 참견을 거부해. 하지만, 조금이라도 간을 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가능성은 내게 너무 컸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선생님은 내가 무심코 탁자에 얹어두고 있던 손을 살짝 잡으며 말했다. 고마워.

그날 후로 최미온 선생님은 우리를 일주일에 두세 번씩 상담실로 불렀다. 선생님은 우리의 안부를 간단하게 붇고는, 자신의 노트북을 가져와 영화를 틀어주었다. 그냥 편하게 있어, 어차피 너네 점심 안 먹잖아. 선생님은 그런 말을 천연덕스럽게 하고는 첫 영화로 <카모메 식당>을 틀었다. 영화 속에서 핀란드에 작은 식당을 차린 여자가 반듯한 밀가루 반죽은 착착 접어서 시나몬 가루를 뿌렸다. 오븐에 들어간 반죽이 부풀어 오르면서 시나몬 가루가 진득하게 녹는다. 가게 앞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냄새에 이끌려 가게를 기웃거린다. 식당 주인은 커피와 시나몬 빵을 한 입 먹는다. 바삭하고, 달큼하고, 까끌까끌한 단맛이 입안에 퍼지겠지. 우리가 영화를 보는 동안 선생님은 어디서 사 왔는지 아직도 계피 향이 진하게 나는 시나몬 롤을 천천히 뜯어 먹었다. 그리고, 슬쩍 우리 앞에 하나 두었다. 곤란했다. 아연이는 자기 앞에 놓인 빵은 쳐다보지도 않았고, 꿋꿋이 노트북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영화를 감상한다기보다, 검열하는 듯이. 무언가 대단히 잘못되고 부당한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듯, 양손으로 한 줌도 안 될 것 같은 허리를 짚은 채, 꼿꼿이. 나는 내 눈앞에 놓인 빵과 영화 속에서 빵을 베어 무는 사람들과, 아연이의 검은 눈동자를 바라보았고, 끝내 빵으로 손을 가져갈 수 없었다. 

그날 선생님은 아연이가 먼저 나간 뒤 미적거리며 남아 있던 내 교복 조끼 주머니에 휴지로 싼 빵을 넣어주었다. 나는 그 빵을 화장실에서 먹었다. 암모니아 냄새와 소독약 냄새를 뚫고 쌉싸름하고 향긋한 단맛이 너무 잘 느껴졌다. 아연이와는 그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내 입에서 나는 단내를 분명 알아차릴 테니까. 

선생님이 부르지 않을 때 우리는 여전히 폐소각장의 어둠 속에서 자리를 잡고 우리를 제외한 세상의 모든 것들을 공격했지만, 어쩐지 최미온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찰리와 초콜릿>을 틀어주면서 초콜릿을 주었고, 지금은 제목을 까먹은, 유럽 시골에서 쿠키를 굽다가 마녀로 오해받는 여자가 나오는 영화를 보여줄 때는 초콜릿 칩이 크게 박혀 있는 쿠키를 놓아두었다. 아연이는 한 번도 굴복하지 않았지만, 나는 늘 화장실에서 선생님이 주머니에 넣어준 음식들을 먹어 치웠다. 그 정도 음식은 냄새도 안 나고 우리의 정화 과정에 큰 해가 될 것 같지 않았지만, 물론 아연이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아연이는 상담실에서 있었던 시간은 깔끔히 도려낸 것처럼 언급하지 않았다. 우리끼리 있을 때는 여전히 누구도 우리를 이해할 수 없으며, 우리에게는 우리만의 삶의 방식이 있다는 공모를 끊임없이 확인했다.

“체세포가 다 바뀌는 데 5년이 걸린데. 그런데 인간의 세포는 스무 살부터 노화가 시작된다고 하니까, 그때는 완전히 바꾸는 데 한계가 있는 거지. 그니까 우리는 여기서 중간에 망치면 끝이야. 다시는 정화되기 어려워. 언니도 알지?”

당연히 알지. 나는 대답하곤 했다. 그때 나는 분명 알았으니까. 정말 믿었으니까. 외부에서 들어오는 모든 물질을 적절히 통제하면 언젠가 우리의 몸이 깨끗해지리라는 것을. 나의 하나 남은 신장이 부담 없이 기능할 날이 오리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몰랐다. 아연이가 조금씩 몸무게가 늘고 있었다는 것을, 뒤에서 몰래 최미온 선생님의 옛 미니 홈피를 찾아서 뒤져보고, 선생님의 학교를 알아내서 도서관까지 찾아가 선생님이 학보에 실었던 글까지 전부 찾아봤다는 것을. 그리고 마침내, 최미온 선생님이 레즈비언이며 자기를 상담실에서 부적절하게 만졌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을. 그때는 전혀 알지 못했다.

 

*

 

내가 이 주에 한 번씩 병원에 가기 위해 학교를 빠지는 사이, 최미온 선생님이 아연이와 단둘이 상담실에 있었고, 아연이가 성적 수치심을 느낄 정도로 아연이를 만지며 사랑한다고 속삭였다고, 아연이는 어머니에게 울면서 털어놓았다. 아연이의 어머니는 주변 지인들을 수소문해 교육청에 인맥이 있는 사람을 통해 이 일을 곧바로 알렸고, 사실 관계를 조사하기도 전에 최미온 선생님은 정직되었다. 

내가 아는 것은 그 후의 일이다.

나는 다시 상담실로 불려 갔다. 이번에는 정말 문제가 생겼구나, 생각했다. 최미온 선생님이 학교에 없었으니까. 최미온 선생님이 항상 우리에게 줄 음식을 가져다 놓았던 테이블에는 당시 학년 부장인 윤리의 수첩과 핸드폰이 놓여 있었다. 윤리는 당시만 해도 허용되던 기다란 체벌용 막대기를 습관처럼 옆구리에 낀 채 낡은 사무용 의자의 허리를 최대한 젖히고 앉아서 내게 손짓했다. 정년 퇴임이 가까워진 나이에 교감도 교장도 되지 못한 평교사 처지라는 게 항상 불만이었던 윤리는 한때 교사 노조 활동을 꽤 열심히 했다가 승진이 막히자 탈퇴했는데, 양쪽 어디에서도 반기지 않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언제나 인상을 쓰고 다녔고, 발바닥을 때리는 체벌로 유명했다.

“최미온 선생님이 너한테 부적절한 말이나 행동한 거 있어? 괜찮으니까 다 말해도 돼.”

윤리는 내게 물었다. 나로서는 이 말이 어디에서 나온 건지 짐작할 수 없었고, ‘부적절한 말이나 행동’이 암시하는 바도 그 순간에는 단번에 알아채기 어려웠다. 우리를 불러 영화를 보여주고, 음식을 사준 게 부적절한 행동이라면 행동인가? 그런 생각을 하느라 내가 말을 못하자 윤리는 옆구리에 끼고 있던 막대를 들어 내 어깨를 쿡 찔렀다.

“이런 데, 만지거나 이상한 말 안 했냐고.”

나는 그 막대기에 찔린 어깨를 쓰다듬으며 윤리를 노려봤다.

“그런 일 없었는데요.”

“정말이야? 솔직하게 말해도 괜찮아. 최미온 선생이, 그, 뭐냐, 레즈비언이란다.”

레즈비언이란 말이 그렇게 뱉어져도 되나, 그런 생각은 나중에, 아주 나중에, 이미 모든 게 늦었을 때 들었다. 나는 가만히 있었다. 영문도 모른 채. 그 상담실 의자에 앉아서 윤리가 막대기로 찌르면 찔리면서. 윤리의 말이 꽂히는 대로 가만히 받아내면서, 아니에요, 라는 말만 반복하다가 교실로 돌아왔다. 교실로 돌아오면서 하나씩 정리되기 시작했다. 언제 한번, 스치듯이 아연이가 했던 말.

“최묜, 대학교 때 들었던 동아리 이름이 되게 웃기더라. 반이반인가? 반의반도 아니고.”

무슨 동아린데? 내가 묻자 아연이는 글쎄, 하고 말을 돌렸다. 분명 알고 있었겠지. 이반, 이라는 말의 뜻을. 나는 교실로 가서 얼굴에 파우더를 바르고 있던 아연이 앞에 섰다. 교실에서는 서로 아는 척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규칙이었지만, 애초에 ‘우리’가 존재할 때 얘기였다.

“너 최미온 선생님에 관해서 뭐라고 했어?”

내 말에 아연이는 잠깐 눈썹을 올리며 놀라는 척을 하더니 다시 거울을 봤다.

“언니 없을 때 일어난 일이라 말해도 몰라.”

“뭐라고 했냐고.”

“나 피해자거든? 함부로 말하지 마.”

“거짓말하지 말고, 빨리 아니라고 말해.”

나는 마른 나뭇가지 같은 아연이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런 힘이 어디서 났는지 모르겠다. 아연이는 내게 끌려 일어났다가 온몸으로 나를 밀쳐내고 복도로 달려 나갔다. 아연이를 뒤따라 폐소각장 앞까지 따라갔다. 공기는 축축하고 그날따라 음식 쉰내가 심했다. 하늘은 가을답게 높고 깊었지만 뒷산의 나뭇잎들은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힘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빨리 윤리한테 가서 말해. 거짓말이라고.”

“어차피 내가 지금 와서 아니라고 해도 이미 끝났어. 최묜이 레즈비언인 건 사실이니까.”

“그게 무슨 상관인데? 선생님이 잘못한 건 없잖아.”

“잘못한 게 없어도 잘못한 것 같잖아. 그러면 당하는 거야. 별수 없이.”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 말만큼은 진심이라는 것을, 아연이가 진심으로 믿고 있는 진리라는 것을 바로 알 것 같았으니까. 어떤 사람이 온몸으로 껴안고 있는 믿음 앞에서는 무력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마 아연이도 잘못한 것 없이, 잘못한 거 같다는 이유로 어떤 일들을 당했겠지. 그렇지만, 그렇다고….

“너네 집에 갔을 때 있잖아, 그 커다란 교복 보고 내가 무슨 생각했는지 줄 알아?”

아연이는 나를 보며 말을 끝까지 해보라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자기에게 타격을 줄 수 없다는 완고한 고집이 보이자 나도 속이 끓어올랐다.

“아, 알 것 같네. 네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그냥, 딱 알겠더라.”

“네가 뭘 아는데.”

“그 크고 깨끗한 집이나, 부모님의 직업이나, 네가 가지고 있는 명품 화장품 같은 거, 네가 지금 굶다시피 살 빼는 거, 그거 그냥 다 껍데기잖아. 진짜 너는 그 교복 안에 있잖아. 그러니까 못 버리고 걸어놓는 거, 다 보여.”

나는 그대로 몸을 돌려 뒤 운동장의 지독한 그늘을 벗어났다. 아연이는 폐소각장으로 기어이 다시 들어갔을까? 여전히 자기는 깨끗해지고 있다고 믿으면서? 그날 이후로 나는 다시는 그곳으로, 폐소각장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점심시간에는 엄마가 싸준, 예전보다 맛이 느껴지는 도시락을 혼자 먹었다. 아연이가 곧 전학을 간다는 소문이 돌았다. 아연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선생님은 우리가 걱정되어 상담을 해준 것뿐이라고, 학교에 여러 번 말했지만 선생님은 돌아오지 않았다. 내겐 다시 나만 남았다. 여전히 제구실을 못 하는 신장과, 항암치료로 바싹 말라버린 몸과, 언제 다시 통증을 느껴서 그 모든 일을 반복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내 몫이 아닌 것 같지만 어느새 뱃 속 깊숙이 자리 잡은 죄책감. 그것들이 아주 오랫동안 지겹게도 나였다. 그런 구질구질하고 무겁고 나약한 것들만이.

 

*

 

아연이는 2학기 중간고사가 끝나고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뉴타운의 학교로 전학갔다. 그날 나는 책상 서랍에서 쪽지를 발견했다. 그 쪽지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었다.

- 눈앞에서 누가 총을 맞고 쓰러져도 내 손가락이 종이에 베인 상처가 더 아픈 게 인간이야. 언니는 다를 거라고 착각하지 마.

그리고, 주소가 같이 적혀 있었다. 그해 가을이 끝나갈 무렵 나는 그 주소로 카스텔라처럼 부드럽고 달콤하지만 더 비싼 롤케이크를 하나 포장해서 들고 찾아갔다. 큰 대학교가 있는 동네의 가파른 오르막 골목에 있는 집이었다. 가는 동안 어떤 말을 해야 할 지 생각하느라 버스를 놓치고 길을 몇 번이나 잘못 들었다.

선생님, 저는 정말 몰랐어요. 이건 다 아연이가 혼자 꾸민 일이고, 저는 몇 번이나 선생님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저는 이 주에 한 번은 병원에 가서 소변을 받아야 하잖아요. 그동안 선생님이 아연이와 단둘이 상담실에 있을 때 일어난 일을 사실 알지는 못해요. 그걸 몰라서 제가 큰 도움이 못 되어 드린 것 같아요. 그런데요, 그건 제 잘못은 아니고, 저는 정말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어요. 몇 번이나 저한테는 그런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했어요. 저는 선생님이 저희를 도와주려고 하셨다는 걸 알아요. 선생님이 처음 주신 시나몬롤의 맛을 아직도 잊지 못해요. 선생님과 함께 상담실에서 보내는 점심시간을 기다렸어요. 아연이와 함께 캄캄한 소각장에서 보낼 때보다 좋았어요. 선생님 덕분에 다시 음식을 맛보고 싶어졌어요. 누가 뭐래도, 선생님이 좋은 분이라는 걸 저는 알아요….

그런 말들을, 나는 준비했다. 그리고 용서받고 싶었다. 내가 잘못한 건 없지만 잘못한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 견디기 어려웠으니까. 선생님은 기꺼이 나를 반겨주며, 너는 정말 착한 아이였다고, 아연이와 달리 처음부터 깨끗한 영혼을 가졌다고 알아봐 주기를 기대했다.

무작정 선생님이 사는 다세대 빌라의 골목 앞에서 기다렸다. 토요일이었다. 선생님이 외출했다면 돌아올 것이고 집에 있었다면 저녁을 먹으러 나올 것 같았다. 그리고 그날, 해가 벌써 기울기 시작하는 어스름에, 바람보다 냉기가 먼저 번지는 골목의 그늘에서 나는 선생님을 보았다. 헝클어진 긴 머리를 느슨하게 묶고, 트레이닝 복을 입은 채 빌라 건물의 유리문을 열고 나오는 선생님을. 그리고, 선생님에게 다가가려던 순간, 선생님의 뒤를 따라 나온 우리 학교 교복을 입은 여자도 보았다. 쇼핑몰 모델로 유명했던 3학년 선배였다. 그들은 팔짱을 낀 채 골목을 내려갔다. 어깨를 쓸어주기도 하면서. 무언가 끊임없이 속삭이며 웃기도 하면서. 

어떻게 웃지.

그게 가장 처음 든 생각이었다. 나는 선생님이 우리를, 아니 나를 그 상담실에 그대로 두고 오게 되어 슬퍼하고 있을 거라고 기대했나? 그리고 나는, 정말 궁금해졌다. 선생님과 아연이가 단둘이 상담실에 있을 때 어떤 말과 몸짓이 오갔을지. 내가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에 환멸을 느끼면서. 그건 배신감이었을까?

나는 상자를 열고 가지고 온 롤케이크를 꺼내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발로 밟았다. 여러 번, 퍽퍽 비닐이 찢어지며 흙이 들어가고 너무 부드러운 빵은 쉽게 무너졌다. 개미들이 몰려왔다. 나는 상자를 다시 봉투에 넣고 선생님네 집 현관문에 걸어둔 뒤 단숨에 그 골목을 빠져나왔다. 왜인지 가는 내내 그 3학년 선배가 모델이라는 쇼핑몰을 찾아서 선배의 사진을 오래도록 바라봤다. 나의 지겨울 정도로 평범한 얼굴과 비교하며.

내가 살던 동네, 매일 더 빠르게 낡아가던 그 동네를 벗어나는 데는 그보다 오래 걸렸다. 하지만, 결국 나는 그 모든 시간을 뒤로하고, 오 년이 지나 완치 판정까지 받아내며 살아남았다. 살아 있다는 별다른 느낌도 없이, 그렇게 되었다. 

 

*

 

원모는 우리 사이에 분위기가 좋지 않다고 느낄 때마다 함께 누워서 영화를 보자고 한다. 보통 우리가 몇 번이나 돌려본 오래된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본다. 젊고 아름다운 배우들이 사랑에 빠지고, 오해가 생기거나 외부의 방해로 좌절을 겪고, 결국에는 다시 만나 영원히 사랑을 이어간다는 이야기. 원모는 모든 갈등은 그런 식으로 해결된다고 믿었다. 몸을 옆에 붙이고 누운 채 함께 있다 보면, 사소한 다툼과 갈등은 사라지고 끝내 사랑만 남는다고. 그날 원모와 나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을 봤다.

“이 영화는 톰 행크스와 맥라이언이 영화 마지막에 비로소 연애를 시작한다는 게 좋아. 시작할 때가 원래 제일 많이 설레잖아.”

원모가 아직 영화의 타이틀이 사라지기도 전에 말했다. 지금 영화 시작도 안 했어, 내가 말하자 원모는 웃었다. 시작하면서 끝나는 이야기도 있으니까, 끝나면서 시작하는 이야기도 있겠지? 이혼하면서 시작하는 이야기 있잖아 왜. 아, 네가 세 번이나 본 드라마. 다시 볼까? 오랜만에.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하다 낮잠을 잤다. 눈을 떴을 때는 해가졌고, 영화는 끝나 있었으며, 나는 어떤 꿈을 꾸었으나 기억하지 못했다. 원모는 옆에서 코를 크게 골며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침대 옆 창밖에서 벌써 술에 취해 목소리가 커진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마, 축축하고 컴컴한 곳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꿈이었던 것 같다. 허기진 채로.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꿈이어서 기억이 나지 않나 보네, 생각하며 잠에 빠진 원모의 서늘한 이마를 쓸어본다. 아마도, 우리는 조만간 헤어지겠지. 그건 유령 신부 때문만은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아니라고 할 수도 없지만. 밤은 점점 무겁고 깊이 내려앉는다. 나는 왜 내게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사람들을 자꾸 미워하게 될까. 나는 그때 선생님을 미워했었나. 아무리 그래도, 비싼 롤케이크를 밟지는 말걸. 아니 밟았으면 내가 가지고 올 걸. 문고리에 걸어 두지는 말걸. 못난 마음을 들키지는 말걸.

혹 그 여자를, 헬스장에서 계속 뛰고 있는 여자를, 아니, 어딘가에서 아직도 스스로를 정화하고 있을 아연이를 만나게 된다면, 말해주고 싶다. 아무리 땀을 흘려도, 몸의 부피를 줄여도, 줄어들지도 빼낼 수도 없는 게 있을 거라고. 너무 애쓰지 말자고.

성혜령
소설가, 1989년생
소설집 『버섯 농장』 『산으로 가는 이야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