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까지 죽도록 살아야 한다, 신앙

  • 2025년 겨울호 (통권 98호)
죽을 때까지 죽도록 살아야 한다, 신앙

죽을 때까지 죽도록 살아야 한다

 

혼자서 밥을 짓다 보면 창밖을 바라볼 때가 있다

친구들은 군대로 끌려가거나 화장이 짙어졌다

다들 하고 싶은 일이 많고 누군가에 조금씩 취해 있었다

소중한 것들이 셈을 치르듯이

폭염과 폭우로 점차 흩어졌다 옥상에서 올려다보면

그리운 것은 모두 저편이거나

잊지도 떠나지도 못한 채 먼지가 이는 것처럼

온종일 뒤척거리고 있었다

모자란 공납금 때문에 컵라면을 씹거나 수돗물을 마시거나

낡은 지폐처럼 취해서

벽을 함부로 부수거나

최선을 다한다는 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시간일까

요양병원 지하에는 장례식장이 있었다

국화 앞에서 크게 울었던 사람은 모두 노인이었다

들꽃들은 얼마나 하염없이 원을 그리다가 흩어진 것인가

화장터를 나서니 지평선은 뻗어 나가지 못한 채 위로 자라고

아직 다 망가지지 않아서

재개발되지 못한 집은 알약이 걸리듯 철거만 기다린다

어머니는 아버지 영정사진을 들고 멍하니 서 있다

밥솥에서 김이 피어오른다

 

 

신앙

 

어제는 네 숨을 쉬었다 여전히 우리는 겨울비보다 서러웠다 산 바람이 죽은 가슴을 쓰다듬는 듯했다 눈을 뜨니 네가 없었다 가족과 친척이 나의 제사를 지내고 있었다 굶주리고 목마른 서로의 삶에 서늘한 밥과 국을 나누었다 증오도 없이 입김이 얼었다 수치도 없이 그늘이 번졌다 왜 두 손을 모은 사람을 마주하면 흔들리는 상여가 보일까 구름이 펄럭여서 눈발이 떠오를까 혼자 살아남았다는 흔적이 허름해지도록 강가를 바라보았다 네가 여름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밑창에 끼인 진흙처럼 무덤이 구겨져 있었다 갈대가 자라는 살얼음에서 어스름이 젖어가고 있었다 돌아보지도 돌아갈 수도 없이 이승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계속 걸었다

최백규
시인, 1992년생
시집 『네가 울어서 꽃은 진다』 『여름은 사랑의 천사』,
어린이책 『너의 장점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