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을회관에서 언니들과 함께하는 점심식사 |
간만에 마을회관에 갔더니 영구 언니가 엉덩이 탁탁 치며 반깁니다. 아흔 넘은 지 오래인데 늘 ‘신랑’이라 부르던 남편이 돌아가신 후 부쩍 야위었습니다. 뒤늦게 들어선 금례 언니가 내 가슴을 살짝 두드리며 환히 웃습니다. 치매기가 좀 있다는데 나를 반기는 걸 보아 안심해도 될 듯하네요. 부엌에선 양배추가 데쳐지고 감자볶음에 고등어구이 냄새가 나고 승분 언니가 배추겉절이를 합니다. “비가 계속 와서 그런가, 배추들이 누워서 일어날 생각을 않던데…”, 걱정 섞인 질문에 “갸들이 물을 너무 많이 먹어서 일어나덜 못햐. 몸이 좀 가벼워지면 다시 설 겨”. 오래 농사지어온 믿음의 답이 돌아오자, 물배 불러서 일어서지도 못하는 배추가 바로 내가 됩니다. “누룽지에 둥굴레차 부어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데…” 꼬시던 영자 언니 목소리가 바로 어제인 듯 들립니다. 시래기 지짐에 고봉밥 먹고 빵빵해진 배에 둥굴레 누룽지까지 채운 미련퉁이 내가 보이네요.
사람은 밥만이 아니라 추억도 함께 먹는 모양입니다. 민물새우탕에 수제비라든가, 옻닭에 찰밥이라거나 산에 움튼 온갖 나무순들로 가득한 언니들과의 밥상이 생각납니다. 바깥 부엌에서 솔솔 나는 미역국 냄새를 맡으며, 취와 돌나물과 참두릅과 고추나물과 깻잎장아찌와 쌈장이 정갈하게 놓인 밥상에 초대되어 감탄하고 신기해하는 제가 보입니다. “밥 먹으러 오슈” 전화 받고 가면, 빗소리 장단 맞춰 톡탁거리는 도마질 소리가 재생됩니다. 호박전을 입에 넣어주며, “늙도 젊도 않은 호박이라 맛나네” 흰소리를 되새기며, “밥맛 읎을 땐 숟가락 맞드는 사램만 있어도 넘어가유” 쭈욱 들이키는 단소리도 들립니다, “달 몇 번 더 윙크하믄 여든 되쥬?” 벙그러지는 웃음소리에, “겉만 프르죽죽하지 맘은 파릇파릇한 봄똥이쥬” 맞장구치는 소리도 퍼집니다. 불러주셔서 고맙다고, 맛나게 자셔 주니께 고맙다고, 봉다리 들고 문 앞에서 듣던 슬래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오늘인 듯 새롭습니다.
백로 지나고, 밤새 내린 서리에 호박잎이 시든다는 상강이군요. 집 앞 감나무를 보니 겨울이 문 앞에 와 있는 걸 알겠습니다. 며칠 전까지 주황빛으로 물든 제법 큰 감들이 어느새 사라지고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하늘을 받들고 있네요. 천안 시내에서 버스로 30여 분 걸리는 사구실 마을에 산 지도 10년 넘었습니다. 저도 몰랐습니다. 역마살 넘치는 제가 한 곳에서 이렇게 오래 살줄. 이런저런 이유로 젊은 시절 참 많이도 떠돌아다닌 제가 이곳에 눌러앉은 건 언니들이 해준 밥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연고도 없이 용감하게 산골 마을에 이사 온 10여 년 전, 저는 매끼 밥걱정을 안 하는 제가 놀라웠습니다. 누룽지나 커피 혹은 두유나 미숫가루 등으로 아침을 대충 때우고 나면 귀신같이 누군가가 부르니까요. 어김없이 함께 먹을 풍성한 식탁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일주일에 서너 번 정도 마을회관에 모여 함께 먹는 점심은 제게 어린 시절의 떠들썩한 밥상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동네 물길을 청소한다거나 꽃밭을 만드는 등 공동 작업이나 특별한 마을 행사가 있는 날이면 밥이 더 맛있어집니다. 마을 산신제를 지내는 정월 초사흘이나 삼복이나 누군가 한턱내는 날에는 그야말로 진수성찬이죠. 제법 품이 드는 콩이나 깨를 털거나 마늘을 쪼개거나 심고 난 후에는 우우 몰려가 같이 식사합니다. 일하고 난 밥상은 언제나 달콤했죠. 혼자 사는 언니들과 저녁 끼니를 함께 하는 때도 많았습니다. 낮에 남은 밥과 반찬으로 비빔밥이나 볶음밥을 해 먹기도 하고, 문득 한 집에 모여서 제법 거나한 파티 비슷한 성찬도 제법 즐겼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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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먹는 밥은 늘 풍성하고 맛있었습니다. 밭에서 막 따거나 뽑은 상추나 가지, 호박, 배추 등의 푸성귀들이 넘쳐나는 데다, 산과 들에서 자라는 나물도 제법 되더군요. 참두릅이나 냉이 달래는 물론이고. 오갈피 순이나 옻 순, 엄나무 순, 다래 순이나 고추나무나 가죽나물이나 꽃나물 등 산야초 종류도 다양합니다. 공짜 나물들이 그렇게 많은지 몰랐어요. 볕 좋은 날, 함께 쑥 캐러 가서 데친 후 방앗간에서 쑥떡을 해본 것도 이 동네에서 처음 경험했습니다. 쑥이나 달래가 봄에만 있는 것도 아니더군요. 여름 더위가 수그러들면 어김없이 그 작은 것들이 새끼를 쳐 입동 후까지 자라다니요. 봄이나 가을에 채취해 데친 다음 냉동실에 보관한 나물들이 종류별로 안겨 옵니다. “시금치 가다나섯”, “고마찐 것하고 물김치 노코 와서”, “모시떡 가다놔서” 살짝 다녀간 언니들의 문자가 시보다 더 시 같았습니다.
봄이 올 무렵, 찹쌀죽과 동치미 국물 안에 든 푸른 시금치와 부추를 상상해 보셨나요? 어떻게 언니들은 겨울을 헤치고 얼굴 내민 부추와 시금치를 동치미 국물에 넣어 물김치 담글 생각을 했을까. 아픈지 어찌 알고, 토란이 동동 떠다니는 소고기 뭇국과 강낭콩, 대추, 밤이 가득 든 찰밥을 들고 우리집 문을 두드릴 마음을 먹었을까. 숱한 밥상머리에서 나는 언니들이 살아온 맵고 쓰고 달고 신 땅의 이야기와 지혜와 자비도 얻어먹은 것 같습니다. 10년 사이, 한분 두분 양로원에 들어가거나 자식들이 모셔가면서, 한 해 다르게 잃어버린 풍경이 쌓여갑니다. 떡국이나 동태탕이 끓는 회관 부엌에서 추던 곱창 부르스와 옷깃을 여며주다 소주 한잔 마시고 흘러간 노래를 부르던 그 흥성한 오후가 벌써 그립습니다. 지상에서의 한 끼, 오늘 여기 함께한 언니들이 사라진 날의 밥상이 슬프도록 아름다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