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편소설 「패리스 힐튼을 찾습니다」
- 단편소설 「패리스 힐튼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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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한국 문학을 사랑하고, 글쓰기를 좋아했던 나이지만, 감히 작가가 되겠다는 거창한 꿈을 꾸지는 못했다. 다만 막연히 글을 쓰는 삶을 동경해 왔었다. 그런 욕망을 바탕으로 중학교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교지 편집부 생활을 했었고, 퍽 즐겁게 기사를 쓰고는 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여러 사람을 만나고 인터뷰 기사를 쓰는 것을 좋아했었다. 그 때문에 동아리 선배가 잡지사에 자리가 났다고 했을 때, 별다른 고민 없이 지원할 수 있었다. 대학 마지막 학기에 운 좋게 취업에 성공했지만, 첫 직장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격무와 박봉은 물론이거니와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리는 통에 정신적으로 점점 지쳐갔다. 무엇보다도 괴로웠던 건 내가 쓰고 있는 글이 나 자신을 표현하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 그저 타인의 이야기를 받아 적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포르쉐에서 나온 신차와 휘슬러에서 나온 새 프라이팬을 소개하는 기사를 쓰다가 결심했다. 오롯이 내 목소리로, 나 자신에 대해서 원 없이 얘기하는 글을 쓰겠노라고. 그렇게 나는 문학과지성사에서 운영하던 ‘문지문화원’에서 소설 창작 아카데미를 수강하며 처음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퇴근하고 난 후 시간을 쪼개고 쪼개 소설을 쓰고, 수업을 들었는데 그게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다. 호기심에 등록했던 수업을 3학기나 연속으로 듣게 되었고, 당시 수업을 진행하신 소설가 강영숙 선생님께서 넌지시 대학원에 진학해 보는 게 어떠냐고 권유해 주셨다.
![]() 필자의 데뷔작이 수록된 소설집 |
소심하고 겁이 많으면서도 은근히 충동적인 구석이 있는 나는 과감하게 첫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 문예창작과에 들어갔다. “대학원 2년 동안 후회 없을 만큼 원 없이 소설을 써 보고 안 되면 미련 없이 포기하자.” 스스로에게 배수진을 치는 마음이었다. 운 좋게 처음으로 쓴 소설이 신인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그때 나는 당연히 내가 금세 등단할 줄 알았다. 이후로도 몇 번이고 최종심에 올라갔지만, 번번이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그렇게 대학원을 수료했을 때 내게 남은 것은 50번이 넘는 낙선의 기억과 카드 빚이었다. 학자금 대출의 액수가 수천만 원대에 이르렀고, 카드 대금 체납으로 교통카드까지 끊겨 도보 50분 거리인 학교까지 걸어가기도 했다. 벼랑 끝에 서 있던 나는 결국 돈을 벌기 위해 다시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딱 2년만 하기로 스스로 약속했음에도 한 번 맛 본 ‘완성’의 단맛을 잊을 수가 없어서 계속 소설을 썼다. 퇴근하고 나서는 너무 기진맥진해서 아예 글을 쓸 수가 없었기에, 일찍 일어나 새벽 시간에 글을 쓰겠노라 작정했다. 그리고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6시쯤 회사 1층의 24시간 카페에 도착해 8시 57분까지 소설을 쓰다 사무실로 뛰어 올라갔다.
그 무렵 대학원에서 만난 친구들(나를 제외하면 모두 등단한 소설가들이었다)과 함께 ‘황금 족발 비밀 결사대’라는 스터디 그룹을 만들었다(내가 다닌 대학의 인근에 족발 촌이 있었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었다). 그들과 매주 만나 문예지에 발표된 소설을 읽고, 욕하고, 또 내 소설을 읽혀 보기도 하고, 다시 썼다. 친구들은 내게 입버릇처럼 말했다. “너는 평소엔 웃긴데 글만 쓰면 왜 그렇게 진지하냐. 그냥 네 말투로 써봐. 너답게.” 나는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으로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나다운 게 뭔데.’ 그런 고민을 이어가다 그냥 다 내려놓고, 나와 내 주변의 삶에 대해 담담하게 쓰기로 마음먹었다. 개를 잃어버린 친구를 도와 개를 찾아다녔던 일, 술자리에서 일어났던 크고 작은 사건들과, 지난날의 부끄러운 과오들까지 모두 소설에 들어갔다. 그렇게 뚝딱뚝딱 써내려간 작품이 「패리스 힐튼을 찾습니다」와 「중국산 모조 비아그라와 제제, 어디에도 고이지 못하는 소변에 대한 짧은 농담」이었다. 습관처럼 공모전에 내면서도 별 생각이 없었다. 50번이 넘는 실패의 기억이 뼛속 깊이 새겨져 있는 탓이었다.
2016년 7월 20일, 나는 서울역 맥도날드에서 건강검진 차 올라오고 있는 어머니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날씨는 푹푹 찌고, 에어컨은 고장 나 있었다. 흐른 땀을 연신 닦고 있는 와중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031이라는 지역번호가 심상치 않다는 생각을 했다. “문학동네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지금, 이 순간으로 말미암아 내 인생이 두 개로 쪼개지게 될 것이라고. 작가가 되기 전의 삶과, 된 이후의 삶으로. 계단을 올라오는 어머니에게 “문학동네 신인상에 당선됐다”고 외쳤다. 어머니는 그럴 줄 알았다고(뭘 알았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답하며 나를 얼싸안고 연신 비명을 질렀다. 아주 많은 사람이 우리를 쳐다봤다. 곧장 아버지에게 전화해서 당선 사실을 알렸다. 아버지는 축하한다고 말한 뒤 이렇게 덧붙였다.
“동네방네로 등단하는 게 좋은 거냐?”
그 이후로 어느덧 1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6권의 책을 내고 1편의 드라마를 쓰고 나니 곡식 창고가 거덜 난 거 같은 느낌을 자주 느낀다. 집과 작업실을 시계추처럼 오가는 생활이 지겨울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다운 목소리’를 내기 위해 매일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고군분투했던 그때의 나 자신을 떠올리고는 한다. 어쩌면 지금 나는 그토록 바랐던 미래에 당도해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