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펭귄의 발 위에서 시작되는 어른의 자리

  • 기획특집
  • 2025년 겨울호 (통권 98호)
펭귄의 발 위에서 시작되는 어른의 자리

한반도에 봄이 시작되는 4월, 지구 남쪽 끝 남극 대륙에선 해가 짧아지고 바람이 거세지며 혹한이 본격화한다. 사방에서 들리는 소리는 얼음 알갱이가 바람에 날리는 거친 마찰음뿐이다. 하루 종일 어둠이 뒤덮은 얼음의 땅 위에서 황제펭귄은 한데 모여들어 짝을 찾고, 긴 겨울을 함께 건널 준비를 한다. 짝짓기가 끝나는 6월, 암컷은 한 개의 알을 낳아 수컷의 발 위에 조심스럽게 건넨다. 암컷은 바다로 떠나고 수컷은 얼음 위에 남지만, 떠남과 남음은 서로를 완성하는 책임이다. 펭귄 부부가 순서를 지켜 각자의 역할에 충실한 동안, 발 위에 남겨진 알은 하루하루 성장한다. 번식기를 거치면서 바람은 점점 방향을 바꾸고 대기는 온순해진다. 낮이 다시 길어지면서 여름이 찾아올 때쯤이면 새끼들은 부모만큼 커져서 어른이 될 채비를 한다.

황제펭귄의 알은 길이 약 12센티미터, 너비 8센티미터, 무게 450~500그램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 한 생의 시작이 들어있다. 약 1밀리미터 두께의 알껍데기 속 수정란은 어른 펭귄의 품속에서 부지런히 세포 분열을 하며 발달한다. 성장을 위해선 부모의 따뜻한 온기가 끊이지 않고 전해져야 한다. 번식에 서툰 초보 부부는 암컷이 수컷에게 알을 건네주다가 바닥에 떨어뜨리거나 껍데기에 금이 가기도 한다. 잠깐이라도 알이 얼음에 닿으면 그대로 생명은 멈춘다. 그러면 아무리 품어도 알은 부화하지 않기 때문에 그해 번식은 실패로 끝나고 일 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따라서 부부는 마치 의식을 거행하듯 매우 조심스럽게 자세를 낮추고 신중하게 호흡을 맞추며 알을 전달한다. 성공적으로 알이 전달되면 수컷은 발가락을 오므리고 발등을 평평하게 만들어 작은 받침대를 만들고, 배 부분 피부와 깃털로 알을 덮어 온기로 채운다. 그 온기는 단순한 체온으로 채워진 따뜻함이 아니라 알에 대한 정성으로 만들어진 포근함이다. 부부의 세밀한 동작들이 합해졌을 때 비로소 어린 생명이 알을 깨고 나올 때까지 커나갈 수 있다.

수컷은 약 70일 간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알을 품는다. 이 과정에서 매서운 바람과 찬 기온에 몸의 열을 빼앗기고, 체중은 38킬로그램에서 20킬로그램으로 절반 가까이 준다. 조금이라도 따뜻함을 더 유지하기 위해선 무릎 각도를 미세하게 조절하고, 날개를 오므리며 몸이 외부 공기와 닿는 면적을 줄여야 한다. 겉으로 보면 마치 그대로 서 있는 것 같지만 조금씩 끊이지 않고 계속 몸을 움직인다. 이러한 움직임은 바람의 방향에 따라 미세하게 몸의 위치를 조정해 체온을 유지하기 위한 생존의 기술이다. 그 미세한 움직임 덕분에 긴 어둠 속 추위를 버티며 발등 위의 알을 지켜낸다.

그러나 영하 60도에 이르는 남극의 겨울 추위에 맞서기 위해선 한 개체의 노력과 인내만으로는 부족하다. 추위가 이어지면 펭귄들은 수백 마리가 모여 몸을 맞댄다. 허들이라 불리는 이 구조는 집단 보온 체제다. 원형으로 겹겹이 모여 서로 몸을 밀착한 채 천천히 움직이며 구심점을 향해 순환한다. 바람을 그대로 맞는 가장자리 기온이 영하 40도에 이르는 추운 날씨에도 허들 중앙으로 갈수록 따뜻해져서 가장 안쪽은 펭귄의 체온과 비슷한 37도에 달한다. 허들은 바람의 방향과 속도, 개체 간의 간격과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물리학의 합의다. 옆 친구의 체온이 전하는 온도 차이, 바람의 방향이 만드는 추위와 거리를 계산하며 30~60초에 한 걸음씩 움직인다. 밖에서 보면 정지해 있는 원처럼 보이지만 내부에는 천천히 미끄러지는 파동이 흐른다. 안으로 파고드는 개체와 밀려나는 개체가 섞이면서 소용돌이가 일어나며 허들은 동적인 평형에 접어든다. 본능적인 움직임이 만든 이 지속적이고 거대한 생존의 리듬 덕분에 추운 남극의 겨울에도 펭귄들은 체온을 유지하고, 발 위의 알은 영상 38도로 따뜻하다. 펭귄에게 어른다움은 상대와의 거리를 몸으로 기억하고 생존을 위한 열을 유지하는 능력이다.

수컷들이 얼음 위에서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며 알을 품는 동안, 암컷 역시 자신이 맡은 역할에 집중한다. 암컷은 먼 거리까지 이동해 얼음 같은 바다를 끊임없이 헤엄치며 새끼에게 줄 먹이를 잡는다. 겨울 바다엔 펭귄을 노리는 범고래나 표범물범 같은 포식자도 많아서 긴장을 늦추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게다가 먹이 사냥에 열중하다가 조금이라도 시간을 지체하면 알이 부화되는 시기를 놓쳐버릴 수도 있다. 얼음 위에서 기다리는 짝과 알을 떠올리며 먹이를 잡고 때맞춰 정확히 돌아와야 한다. 따라서 바다로 간 암컷은 조급하다. 먹이를 찾는 동안 물의 흐름과 포식자의 동선을 고려해야 하며, 자기의 위치를 인지하고 되돌아오는 경로를 기억해야 한다. 짝이 옆에서 보고 있지 않는다고 마냥 여유를 부리며 쉬지 않는다.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은 상대가 버티는 시간과 일치해야 한다. 그 시간이 어긋나면 이들의 육아는 균형을 잃고 실패한다. 결국 펭귄 부부에게 가장 중요한 건 교대의 규칙이다.

바다는 예측하기 어렵고 얼음 위엔 눈보라가 멈추지 않기 때문에 만약에 대비해야 한다. 새끼가 깨어나도 암컷이 돌아오지 않으면 수컷은 식도에서 단백질과 지방이 섞인 우유 같은 물질을 분비해서 새끼에게 먹인다. 하지만 이것도 불과 며칠만 가능한 임시방편이다. 약속된 시간이 늦어지면 새끼의 체온이 떨어지고 초조함이 밀려온다. 일주일 이상 암컷이 나타나지 않으면 결국 새끼는 추위로 죽게 된다, 냉혹한 일이지만 수컷은 어쩔 수 없이 바다로 떠난다. 그저 무작정 기다릴 순 없다. 이미 몸에 축적했던 지방은 소진했고 절반 이하로 떨어진 체중으로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선 떠날 때를 알아야 한다. 교대의 규칙은 서로 정한 약속이지만, 약속이 깨어지면 각자의 생존을 위해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부화시기에 맞춰 암컷이 제때 돌아오면 곧장 교대가 이뤄진다. 수컷은 곧장 바다로 가서 배를 채우고, 어미는 위에 담긴 먹이를 토해 입을 벌리고 우는 새끼에게 조금씩 넣어준다. 이때부터 새끼는 눈에 띄게 성장한다. 갓 태어난 새끼는 불과 200그램 정도에 불과하고 얇은 솜털만 있을 뿐이지만, 부모가 주는 먹이를 받아먹으며 무게는 하루 19그램씩 증가하고 털도 풍성하게 자라난다. 몸이 커지면서 날개와 다리에는 탄력이 생기면 발 위를 떠나 얼음 위를 걷기 시작한다. 눈보라가 심한 날이면 부모는 새끼를 다시 품속으로 끌어당겨 발 위에 올리지만, 날이 누그러지고 햇살이 온화해질 때면 새끼는 주변을 탐색하며 짧은 거리를 걸으며 보폭을 넓히고, 날개를 앞뒤로 움직이며 근육을 단련한다. 두껍고 길게 자란 솜털이 몸을 따뜻하게 덮어주기 시작하면 이제 부모의 도움 없이 스스로 체온을 조절할 수 있게 된다.

부화 후 약 50일이 지나면 새끼들은 부모의 품을 떠나 새끼끼리 모여 집단을 형성한다. 크레슈(crèche)라 불리는 탁아 집단이 만들어지면 새끼들은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추위에 맞선다. 부모는 새끼에게 먹이를 주고 곧장 바다로 떠나기를 반복하며 효율을 높인다. 새끼들은 하루 몸무게가 74그램씩 증가하며 성장률이 최고조에 이른다. 펭귄 부부가 교대로 바다와 얼음을 오가며 돌봄과 휴식, 공급과 회복을 반복하는 동안 육아라는 하나의 목표가 완성되어 간다.

크레슈 속 수천 마리 새끼들이 한데 모여 있어도 부모는 정확히 자기 새끼를 찾아낸다. 공동의 울타리 내에서 아무에게나 먹이를 나눠 주지 않고 자기 새끼를 구분해 내는 건 이들의 소리 구분 능력 덕분이다. 펭귄은 청각에 의존해 개체를 구별한다. 개체마다 고유의 주파수와 진동이 있어서 어른과 새끼는 음성을 통해 서로를 식별한다. 일종의 음성 서명이 있는 셈이다. 수만 마리가 모여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는 와중에도, 음파의 특정한 패턴을 통해 가족을 찾아내고 확인한다. 익명의 군중 속에서 새끼의 이름을 부르고 기억하는 건 탁아 집단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때로는 눈발이 거세져 시야가 흐려져도, 눈보라를 뚫고 울려 퍼지는 소리는 새끼가 있는 곳을 정확히 가리킨다. 부모 역시 낮고 긴 울음소리를 내며 새끼와의 거리를 좁히고, 마침내 둘은 마주 보고 울며 서로를 확인한다.

새끼를 키우다 보면 늘 예외적인 일이 벌어진다. 갑작스러운 눈과 바람 때문에 제때 바다로 나가지 못하고 먹이 사냥에 실패하거나, 포식자의 기습에 쫓겨 도망치다가 돌아오는 시간이 마냥 늦어지기도 한다. 기다림에 지친 새끼는 초조하게 울음소리를 높여 부모를 찾기도 한다. 그러나 약간의 실패는 다음에 만회하면 된다. 부모는 잠시 굶주린 새끼를 달래고 난 뒤 다음에 더 빨리 돌아와 먹이를 보충해 준다. 남극 날씨는 수시로 바뀌고 바다의 상황도 예상하기 어렵기 때문에 일정한 간격으로 밥을 주지 못해도 탄력적으로 대응하면 된다. 어른다움은 흠이 없고 흔들리지 않는 완벽함이 아니라 예외 상황에 대처하는 방식에서 드러난다. 뒤틀린 하루가 있더라도, 그다음 순서를 회복하는 능력이 새끼를 성장시킨다. 난관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맞춰 유연하게 상황 변화에 적응하는 융통성은 육아에 꼭 필요한 덕목이다.

번식의 막바지인 12월, 새끼들은 솜털을 벗고 방수가 되는 깃털로 갈아입는다. 이 시점부터 부모의 먹이 급여는 급격히 줄고, 어느 순간 조용히 곁을 비운다. 남겨진 새끼들은 서로 모여 첫 바다로 향한다. 누구에게도 배우지 않았지만, 바닷속 생존법을 빠르게 습득한다. 거친 파도, 물 밑의 포식자, 수면 위의 얼음 조각을 뛰어넘으며 바다의 리듬을 익힌다. 부모가 낳아준 곳을 떠나 새로운 서식지를 찾아 헤엄치다 보면 어느새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닿는다. 그리고 남극의 겨울을 두세 번 정도 이겨내고 나면 비로소 성적으로 성숙한 어엿한 펭귄이 되어 부모 펭귄이 그랬던 것처럼 짝을 찾고, 알을 낳으며, 새끼를 키우기 시작한다.

어른 펭귄은 새끼들에게 모든 것을 알려주고 대신 해주지 않는다. 새끼들이 스스로 설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준 채 그들만의 준비 시간을 줄 뿐이다. 그들에게 돌봄의 마지막 동작은 ‘붙잡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설 수 있게 놓아주는 것’이다. 떠남은 끝이 아니라, 돌봄의 또 다른 형태다.

새끼들이 스스로 헤엄을 치는 동안, 어른들은 번식지에서 떨어진 곳으로 이동해 체력을 비축하고 깃갈이에 집중한다. 새로운 깃이 올라오는 동안 해안에 머문다. 이들에게도 잠시 휴식이 필요하다. 짧은 회복 기간이 끝나면 다시 바다로 나가 다음 해에 다가올 번식을 준비하며 헤엄을 친다. 그리고 다시 다가오는 남극의 겨울을 기다리며 삶의 순환 궤적을 따라간다.

펭귄의 한 해는 원을 그리듯 반복된다. 얼음 위에서 짝을 만나, 알을 낳아 품으며 따듯함을 만들고, 새끼를 성장시키는 일. 부부가 힘을 합쳐 바다를 오가며 교대로 키워낸 생명을 다시 바다로 떠나보내며 다음 겨울을 기약한다. 이들의 세계에서 어른은 해마다 반복되는 번식 리듬을 망가뜨리지 않고 주어진 일을 반복한다.

나는 펭귄을 의인화해서 이해하고 싶진 않다. 부모의 사랑과 희생 같은 거창한 단어들로 포장하고 싶지도 않다. 그 대신 그들이 오랫동안 지켜온 부부간의 교대와 개체 식별과 같은 규칙에 대해 생각한다. 그들은 인간에게 어떤 영감을 주거나 교훈을 남기려고 하지 않지만, 그들을 관찰하다 보면 자연스레 그들을 통해서 생물들의 보편적인 삶의 질서와 생존 비결을 느낀다. 펭귄의 삶을 오래 지켜본 끝에 남는 결론은 단순하다. 그들의 사회에서 어른의 역할은 자리를 만들고, 자리를 비우고, 자리를 다시 채우는 일이다. 어른의 세계는 더 강한 마음이 아니라 시간을 알고 순서를 지키는 합의로 유지된다. 그 합의는 강제적인 명령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규칙이다. 규칙 덕분에 지구상에서 가장 차가운 대륙 한가운데서도 온기가 생기며, 그 온기로 인해 작은 알 속에서 커다란 우주가 자란다.

남극의 바람은 늘 방향을 바꾸며 매섭게 몰아치고, 얼음의 결은 바람의 흔적을 따라 옮겨 간다. 다른 어떤 생명체도 버티지 못한 남극의 겨울, 그 위에 서 있는 펭귄은 작은 알을 낳아 발등 위에 올려 품고 미세한 온기로 생명을 지켜낸다. 펭귄 사회의 어른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그냥 세월이 지나 나이가 찬다고 저절로 되는 게 아니다. 발 위의 작은 알을 지키고 성장시키는 과정 속에서 순서와 규칙을 익히면서 탄력적인 온기를 만들 수 있을 때 비로소 어른이 된다.

이원영
동물행동학자, 1982년생
저서 『와일드 : 야외생물학자의 동물 생활 탐구』 『펭귄의 여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