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내 안의 자아가 어른이 되기까지

  • 기획특집
  • 2025년 겨울호 (통권 98호)
내 안의 자아가 어른이 되기까지

동화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핵심 열쇠는 ‘자아’다. 자아는 돌부터 형성되기 시작한다. 자아는 뇌의 성장과 함께 성숙한다. 뇌는 신체를 통해 들어오는 다양한 감각들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체계화한다. 뇌는 컨트롤타워로서 타고난 기질과 환경적 특성을 바탕으로 개인마다 다르게 자라난다. 뇌는 여기서 다른 사람과 자신을 구별하는 ‘나’라는 자아를 최초로 인식한다. 이제 막 돌이 지난 아기도 이따금 고집을 부리며 요란한 옹알이로 욕구를 표현한다. 아마도 “내가 할 거야”라는 뜻의 말일 것이다.

성장기 자아의 내면은 자기중심적 상상력으로 가득하다. 아이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 장난감이 아닌 것도 장난감이 된다. 엉뚱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자기 주도성을 키워나간다. 이를테면 옷장 안에 동물 친구들이 살고 있는데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다른 동물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문을 계속 여닫으며 원숭이도 만나고 캥거루도 만난다. 그러다 곰과 마주치면 놀라서 문을 쾅 닫기도 한다.

성장기 자아는 외부 세계를 스펀지처럼 흡수한다. 대상을 어떠한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마주한다. 그래서 어른의 세계와 달리 기본적으로 다양성을 존중하는 특징이 있다. 선악 구별이 없고 체면을 차리지도 않는다. 어른 눈에는 위험하고 무지한 것으로 보일 수 있으나 동화의 세계에서는 아이들이 행복한 결말로 나아가도록 방향을 잡아준다.

옛날에 아이들을 잡아먹는 거인 마을이 있었다. 이때 요리를 아주 잘하는 소녀가 나타난다. 거인들은 요리할 줄 몰랐다. 소녀는 아이들보다 더 맛있는 요리로 거인들의 입맛을 바꾼다. 이후 아이들은 더 이상 잡아먹히지 않게 되고 마을은 평화를 찾는다. 소녀는 요리사로 성공하고 나중에는 거인과 결혼하여 자식까지 낳고 행복한 삶을 맞는다. 어른의 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동화의 세계에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한편, 성장기 자아의 무의식에서는 모방 욕망이 형성된다. 아이는 어른이 하는 모든 것을 따라 하고 싶어 한다. 말, 행동, 표정, 생활 습관 등 모든 것을 관찰하고 그대로 따라 한다. 특히 아이는 자신의 첫 번째 어른인 부모 혹은 그 양육자를 그대로 모방하고 자란다. 모방 과정에서 아이는 자연스럽게 사회성을 터득하고, 성 역할을 인식하며, 도덕적 금기를 받아들이게 된다. 

동화는 이와 같은 성장기 자아의 특징을 고려하여 쓰인다. 그래서 동화의 세계에서는 물질보다 자아가 더 우위에 있다. 자아는 얼마든지 실제 세계의 법칙을 바꿀 수 있다. 무엇이든 마음대로 상상할 수 있고, 무엇을 하든 그 책임이 용인된다. 동물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은 기본이고,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을 따다 먹을 수도 있고, 커다란 수박에 들어가 마음껏 수영할 수도 있다. 동화는 자아가 즐겁고 편안하게 놀다 갈 수 있는 안전한 놀이공간이다.

동화의 세계와 정반대에 놓인 것이 어른의 세계이다. 어른의 세계에서는 자아보다 물질이 우위에 있다. 무엇이든 규칙이 정해져 있고 무엇을 하던 그 책임을 져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라면 돈과 같은 자원을 두고 경쟁한다. 선악이 분명하고 법에 어긋나는 행동은 처벌받는다. 엉뚱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별종으로 낙인찍히고, 사회가 제시하는 어른상에 맞춰 살아가야 한다.

특히 온갖 체면을 차려야 하는 한국 사회의 어른상을 모방해 나가는 것은 더욱 어렵다. 대학, 취업, 결혼, 출산으로 이어지는 어른의 과정이 존재하고, 관문마다 사회적 등급과 평가가 매겨진다. 명문대학에 진학하고 대기업에 취직하여 신축 아파트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하는 모습이 보편적이고 모범적인 어른상으로 그려진다. AI가 생성한 이미지와 같이 매끈하고 완벽하게 말이다.

아이들은 어른의 과정 첫 번째 관문인 대학에 가기 위해 일찍이 학업 스트레스에 내몰린다. 자아를 통해 스스로 세상을 보고 느끼고 탐구하기도 전에 공부 잘하는 아이, 못 하는 아이가 되어버린다. 아이들의 자아는 자라나지 못하고 수많은 시험과 숙제를 쫓아가기에 바쁘다. 그렇게 아이들은 주어진 과업만 해치우다 대학을 잘 간 아이와 못 간 아이, 취업을 잘한 아이와 못 한 아이, 결혼을 잘한 아이와 못 한 아이가 되어간다.

시간이 흘러 아이들은 모두 어른의 몸을 갖게 된다. 어떤 아이는 자아를 잃고 공허한 눈으로 그저 눈앞의 일만 좇고 있다. 어떤 아이는 어른의 몸과 아이로 머물러있는 자아 사이에서 인지부조화를 겪는다. 여전히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하고 나를 책임지지 못한다. 어떤 아이는 어른의 몸에 아이의 병이 깃든다. 

 

어른과 아이의 관계에서 아이들은 대체로 약자에 해당한다. 어른들은 강자의 위치에서 아이들에게 지시하고 명령한다. 『이상한 나라에 간 파울라』에서 파울라는 뾰족한 것을 가질 수 없는 동글나라와 둥근 것을 가질 수 없는 뾰족나라, 빨간색만 허용되는 빨강나라, 박쥐처럼 거꾸로 매달려야만 하는 거꾸리나라를 방문한다. 어디를 가든 파울라는 꼼짝없이 붙잡혀 그 나라의 규칙을 강제로 배우게 된다.

『난 곰인 채로 있고 싶은데』에서 곰이 겨울잠을 자고 일어난다. 곰이 자는 동안 공장이 세워지고 공장 사람들은 깨어난 곰에게 일을 시킨다. 곰은 자신이 곰이라는 것을 이야기하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곰으로 살아가려면 동물원이나 서커스단에 들어가야 했다. 곰은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되지만 자꾸만 조는 탓에 해고되고 만다. 곰은 도로 위를 헤매다 한 모텔에 들르게 된다. 직원은 곰에게는 방을 내줄 수 없다며 내쫓고 비로소 곰은 자신이 곰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게 된다. 

어른의 세계에서 파울라와 곰은 있는 그대로 존중받지 못한다. 약자로 내몰린 파울라와 곰이 할 수 있는 선택은 어른의 세계를 도망쳐 그들만의 침대와 동굴로 돌아가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도망칠 수는 없다. 어떤 아이든 결국은 어른의 세계로 나아가야만 한다. 

동화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어른은 부모다. 강자의 위치에 선 부모는 아이를 더욱 나약하게 만든다. 아이들은 부모가 휘두르는 힘에 쉽게 휘둘린다. 『검은 새』에서 아이는 부모가 싸우는 것을 지켜본다. 부모는 아이에게 말을 걸어주지도 시선을 주지도 않는다. 아이는 집 밖에서 커다란 검은 새와 마주한다. 새와 함께 구름을 뚫고 날아오른다. 들판과 바다도 여행한다. 하늘에서 집은 조그만 점으로 보인다. 검은새는 아이만의 비밀이 된다. 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조금 달라져 있다. 아이를 짓누르던 어둠이 조금은 덜어져 있다.

『우리 집 생쥐네 집』에서 남매 아이가 자신들의 집에 생쥐네 가족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남자아이가 생쥐가 있다는 것을 부모에게 알렸는데 부모는 곧장 방역 업체를 불러버렸다. 남매는 생쥐네 가족이 도망칠 수 있도록 쪽지를 전달하고 쥐들이 마당에서 놀 수 있도록 작은 놀이터를 만들어준다. 시간이 흘러 아이들은 자라면서 쥐의 존재를 잊게 된다. 어느 날, 남자아이가 예전처럼 쥐를 발견하지만, 이번에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약자이기에 부모라는 세계를 마음대로 휘두를 힘이 없다. 다만 그 안에서도 아이들은 저마다의 길을 찾아 나아간다.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모험하며 자신만의 비밀을 만들어 간다. 바로 이 비밀이 ‘내 안의 아이’가 아닐까 한다. 아이들은 이렇게 비밀스럽게 조금씩 어른의 세계를 헤쳐 나갈 힘을 얻는다.

『미오, 우리 미오』에서도 실종된 아홉 살 보 빌헬름의 비밀 이야기가 펼쳐진다. 억압적인 입양 부모 아래서 살던 빌헬름은 종종 자신의 진짜 아빠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엄마는 자신을 낳다가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누구인지 모른다고 했다. 양부모는 아버지가 건달일 것이라고 말했으나 사실 그의 아버지는 머나먼 나라의 임금이었다. 임금은 아들을 찾고 있었고, 빌헬름은 우주 너머 머나먼 나라에 가게 된다. 빌헬름의 진짜 이름은 미오였다. 양부모는 빌헬름이 너무 시끄럽고 지저분하며 비실비실한 책벌레라고 구박하곤 했다. 반면 아버지는 항상 “미오, 우리 미오”하고 다정하게 불러주며 미오의 큰 웃음소리도 좋아해 주었다. 

 

 

 

 

 

미오는 사랑하는 아버지를 만나 행복한 나날을 보내게 된다. 소중한 친구도 사귀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한층 성장해 나간다. 그러던 중 나라의 아이들을 잡아간 악당 기사 카토와 그가 다스리는 바깥 나라에 대해 알게 되고, 그와 맞서 싸우기 위한 여정에 오른다. 미오는 용감한 아이였지만, 사실 계속 두려워했다. 아버지가 자기를 지켜주기를 바라기도 했다. 미오의 아버지는 미오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 않는다. 그저 미오가 어떤 선택을 하든 지지해 주며 언제든 미오가 돌아오면 다정히 안아준다. 미오는 시련 앞에서 무너질 때마다 자신을 격려하고 있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어렴풋이 듣는다. 아버지의 격려를 마음속 깊이 새기며 미오는 점차 어른이 되어간다.

『크릭터』에서 아이는 흉물스러운 뱀으로 나온다. 할머니는 조금 놀라긴 했지만 사람들의 시선에 굴하지 않고 뱀을 정성껏 키운다. 크릭터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그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뱀이라는 특성에 맞는 양육 환경을 제공해 준다. 조금 커서는 학교에도 보내준다. 크릭터는 뱀이라는 신체적 장점을 활용해 종종 반 친구들을 돕게 된다. 크릭터는 그렇게 타인을 돕는 존재로 성장해 마을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훗날 크릭터를 기리는 동상과 공원까지 만들어진다.

미오 아버지와 크릭터 할머니의 공통점은 나를 있는 그대로 보아주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점이다. 나를 온전히 사랑해 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아주 강한 존재가 된다. 내가 어떤 모습이라도 당당할 수 있고, 조금 나약해졌을지라도 포근하게 안겨 다시금 회복하면 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 공통점은 평범한 일상에서 항상 격려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별것 아닌 하루하루가 아이들에게는 어른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작은 모험이다. 일상에서의 작은 성공 경험이 훗날을 도모하는 원동력이 된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직접적인 도움이 아니다. 약간의 힌트만 제공하면 된다. 아이가 길을 잃고 헤맬지라도 다시 찾아올 수 있게 이정표 몇 개만 알려준다면 충분하다. 아이는 언젠가 길을 외울 것이고, 이정표가 사라지게 될지라도 스스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저마다 마음속 한편에 ‘내 안의 아이’가 있다. 내 안의 아이는 어른의 세계를 헤매다가 어디쯤에서길을 잃었거나 어른의 세계가 무서워 어디론가 숨었을지 모른다. 혹은 비뚤어진 형태로 자신을 다치게 하며 자라고 있을 수 있다. 어른들에게도 ‘내 안의 아이’에게 읽혀 줄 동화가 필요하다. 내 안의 아이가 다시 자유롭게 상상하고 세상을 다양하게 경험하며 사회가 제시하는 어른상이 아닌 나만의 어른상을 그려나 갈 수 있는 힌트를 얻도록 말이다.

동화 작가는 아이, 어른 혹은 그 중간 어디쯤인 사람 모두를 독자로 삼는다. 독자들은 지식의 수준 과 상상력의 정도가 다르고 바라보는 관점도 다르다. 동화는 독자마다 다르게 읽힌다. 누군가에게는 신나는 모험 서사가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다루는 아픈 이야기로 읽힌다. 누군가는 나쁜 악당을 무찌르는 과정을 통쾌히 여기지만, 누군가는 악당의 내면을 이해하고 그를 존중한다. 이런 지점에서 동화는 더욱 조심히 쓰인다. 동화는 천진난만한 어릿광대이면서 동시에 누구보다 성숙한 현자의 모습을 감추고 있다. 어른 독자에게는 아이들의 동화 속에 감춰진 어른들의 이야기를 찾아내는 즐거움이 있다. 

김아정
동화작가, 소설가, 1993년생
저서 『첫 읽기 연습책』 시리즈, 앤솔로지 소설집 『다행히 졸업』 『미니어처 하우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