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 위 패스포트
경계의 글쓰기

  • 노트 위 패스포트
  • 2025년 겨울호 (통권 98호)
경계의 글쓰기

카구라자카 언덕에서 필자

 

가로 네 걸음, 세로 네 걸음. 내가 머문 공간은 육첩 다다미방이었다. 윤동주의 시 「쉽게 씌어진 시」에 등장하는 그 크기와 정확히 겹치는 방. 나는 그곳에 ‘스페이스 다다(Space-Dada)’라는 이름을 붙였다. ‘DADA’는 다다이즘에서 가져왔다. 합리와 규범에 균열을 내는 다다의 정신을 입힌 이름이랄까. 그 방에서 나는 내 글의 경계를 다시 점검했다. 시와 그림, 에세이와 소설 사이에 선 글. 이른바 ‘순수 문학’이 그어온 선이 누구를 배제해 왔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싶었다. 문학 안팎의 경계에서, 나는 내 문장이 서야 할 자리를 살펴봐야 했다.

두 달간의 체류 동안 나는 출판사 쿠온의 연재 「note」에 ‘신미나와 싱고의 교차일기’를 썼다. 신미나는 시인의 자아이고, 싱고는 그림을 그릴 때 등장하는 또 하나의 캐릭터다. 교차일기의 형식은 일기지만 내용은 메타 에세이에 가까웠다. 외부 일정이 없는 날에는 거의 다다미방의 좌식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썼다. 기억의 파편을 영수증처럼 모아 문장으로 정리하면서 언어와 이미지, 시와 에세이 사이에서 어떤 균형이 가능한지 조용히 돌아보았다. 그리고 이전과는 다른 글쓰기를 하고 싶다는 욕망이 들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파고들다 보면 금세 창밖으로 노을이 지고, 일본 방위성 전파 탑의 불빛이 깜빡였다. 그 시각의 스페이스 다다는 안도 밖도 아닌 시간의 틈에 떠 있는 듯했다. 경계는 늘 한 사람을 두 조각으로 나누어 놓는다. 안과 밖, 이방인과 현지인 사이에서 비로소 나는 나를 들여다본다. 그 사이의 불안이 언어를 태어나게 하고, 그 불안을 글 쓰는 동력으로 삼고 싶었다.

나는 그곳에서 자발적인 ‘이방인’이 되었다. 언어의 기표 속을 헤집고 다니는 기분이었다. 사방에서 일본어가 들려왔다. “아노(あの)”, “쿠라이(くらい)”, “소우소우소우(そうそうそう)” 불쑥 귀에 박히는 단어를 들으며, 나는 두 살배기 아기가 된 듯 순한 리듬으로 귀를 열어두었다. 아는 단어가 들릴 때도 있었고, 문맥 속에서 자연스럽게 익힌 단어도 있었다. 일본어는 문장이 되기 전의 말의 파편에 가까웠다. 그래서 언어를 향해 나를 활짝 열어둘 수 있었다. 글자를 배우는 아이가 간판을 소리 내어 읽듯이. 말이 문장이 되기 이전의 상태를 몸으로 다시 배우는 느낌이었다. 그 감각은 불편이라기보다는 호기심에 가까웠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편이라 보이지 않는 일정표에 맞춰 몸이 자연스레 움직였다. 생활의 리듬도그에 따라 잡혔다. 조용한 카구라자카의 아침은 맞은편 경비원의 비질 소리로 시작됐다. 아침 여덟 시쯤 일어나 커피를 내렸다. 한 손으로 양치질하면서 다른 한 손은 옆구리에 대고 창밖의 단풍나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허브 화분에 분무기로 물을 주었다. 한번은 짧게 칙, 또 한 번은 뿌리 쪽에 치익.

이따금 나의 감각은 현재와 과거 사이에서 부유하는 듯했다. 저녁 무렵이면 이다바시역에서 이치가야역까지 이어지는 길을 걸어갔다가 돌아오곤 했다. 주오선이 지나가는 호세이대학 옆길을 특히 좋아했다. 샌드위치를 사서 벤치에 앉아 먹기도 하고, 호세이대학 휴게실에 가서 학생인 척 앉아 있기도 했다. 이따금 들려오는 한국어에 자연스레 귀를 기울이면서. 그 소리는 어릴 적 먹던 별사탕을 떠올리게 했다. 과자 속 별모양 설탕 알갱이를 골라내듯, 혀 위에서 반짝이며 깨지던 반가운 단어들.

에도성 외곽 해자를 보며 일제강점기를 살다 간 예술가들의 초상을 그려보기도 했다. 추운 다다미방에서 새우잠을 자는 시인 동주, 조금 굽은 등으로 목로주점을 향해 걸어가는 모던보이 박태원, 센슈대학 근처 흔적도 없이 사라진 시인 이상의 자취방, 문화학교에서 만났을 이중섭과 마사코의 발자취도 상상했다. 그럴 때면 투명한 과거의 발걸음 위에 현재의 내 발을 포개며 걷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걷다 보면 질문이 생겼다. 나는 그들을 애수로 소비하거나, 비극이나 영광으로 환원하려는 것은 아닐까. 삶이라는 피사체에만 초점을 맞추는 대신 흐릿하게 보이는 배경이 진실에 더 가까울 때가 있다. 나는 그것을 현실의 ‘보케 효과’라 부른다. 선명하지 않아도 존재를 느끼는 방식이다. 나의 글쓰기도 그렇게 초점에서 밀려난 것들을 다시 화면으로 데려왔다. 한국에서 교육받은 역사관이나 익숙한 정치적 맥락이 아니라, 나의 시선으로 일본이라는 나라를 보고 싶었다. 똑바로 보기 위해 서둘러 결론을 내리지 말고, 거리를 두려고 했다.

과거와 현재의 층위가 해자 벽의 이끼처럼 두껍게 겹쳐 보였다. 그들의 발자국이 내 발 아래서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그 침묵의 철로를 따라 걸을 때, 그들은 과거가 아니라 지금 내 곁을 함께 걷는 존재가 되었다.

 

카구라자카의 땅콩가게 

 

필자가 머물던 육첩 다다미방

 

하루는 요초마치 공원을 찾았다.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 이봉창 의사의 마지막 숨이 머물렀던 곳이다. 지금은 조용한 놀이터지만 한때 교수대가 놓였던 자리다. 그곳에 세운 위령비는 독립운동가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형무소 형사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향 하나 꽂히지 않은 초라한 위령비 앞에서 ‘없어진다’라는 두려움이 얼마나 현실적인 감각인지 실감했다.

녹슨 그네에 앉아 생각했다. 변절자로 쉽게 규정할 수 없는 삶이 있다는 것. 영웅과 비겁자는 종종 같은 얼굴을 한다는 것. 문학은 누군가를 구원하지 못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구원의 불가능성을 잊지 않게 한다는 사실을. 흔들림을 지우지 않고 기록해야만 하는 윤리를 나는 그곳에서 확인했다.

그 기억에서 미끄러지듯, 도쿄에 온 뒤 처음 찾았던 장소인 야스쿠니신사가 떠올랐다. 와세다 거리를 걷다가, 무슨 마음에선지 홀린 듯 그곳을 향했다. 비가 많이 내리던 날이었다. 무엇이 나를 그 길로 이끌었을까. 대단한 애국자도 아니면서. 설명하기 어려운 마음으로 그곳을 찾았다. 이유를 찾지 못했다는 사실이 계속 나를 불편하게 했다. 그 감정 속에 수치심이 숨어 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야스쿠니는 나의 언어적 죄의식이 반사된 장소였다. 나는 늘 경계에 있다고 생각했고, 무소속의 자리에 서 있고 싶었으니까.

그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야스쿠니 제단에 놓인 꽃꽂이와 비에 젖어 반들거리는 돌바닥, 전시장 유리 너머의 제복을 바라보는 일뿐이었다. 이 역사적 죄책감은 머리로 배운 것이 아니었다. 몸으로 느낀 것이었다. 바지는 이미 흠뻑 젖었고, 운동화 속 빗물이 스며들어 질척거렸다.

부끄러움은 세계의 다른 측면을 이해하려는 감정이다. 분노는 자신에게 관대해지고, 용서는 너무 쉽게 자신을 정당화한다. 그곳에서 내가 느낀 감정은 부끄러움이었다. 그 둘 사이에서 흔들렸던 이유를 이제야 글로 적는다. 전시품은 과거에 머물러 있어도, 감각은 미래로 뻗어가야 한다. 나는 다만, 과거를 기념관 유물로 박제하고 싶지 않았다. 과거는 두려움을 느끼는 현재의 방식으로 살아남아야 한다. 기억이 살아 있다면 그다음 문장을 쓸 책임도 살아남는다.

나는 ‘죄’라는 말의 깊이에 닿고 싶었다. 거창한 국가적 윤리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내 감각과 책임을 먼저 쓰고 싶었다. 누구나 전쟁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전쟁이 일어난다. 누군가에게는 깊은 전쟁의 상처가, 잔잔한 엽서 속 풍경으로 바뀌어 남을 수도 있다. 서로 다른 감정의 시차 속에서 나는 ‘인간’이라는 부끄러움을 본다. 그러니까 반성의 언어도, 용서의 언어도 다시 써야 했다.

스페이스 다다에서 보낸 시간은 내 문장을 재편하는 과정과 같았다. 의미보다 감각이 먼저 오고, 확신보다 윤리가 더디게 오는 과정. 책임이란 피사체를 선명하게 비추면서도 배경의 흔들림까지 함께 감각하는 일이다. 멈칫거림 속에서 태어나는 문장. 확신이라는 폭력을 경계하는 일.

이런 종류의 부끄러움은 문장을 어렵게 만든다. 나는 그 어려움의 편에 서서 ‘어렵게’ 쓰고 싶다. 너무 빨리 이해하는 폭력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서다. 세계를 사랑하는 방식이 때로는 의심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경계는 불안한 자리다. 그러나 불안은 무언가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의 또 다른 이름일지 모른다. 나는 그 사이에서 쓰고 싶다. 부끄러움을 손에 쥔 채.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 저녁 어스름의 카구라자카 언덕으로 향한다. 이따금 기모노를 곱게 차려입은 이들이 게다 소리를 내며 좁은 보폭으로 걸어가는 길. 갓 튀긴 전갱이 튀김의 고소한 기름 냄새와 따뜻한 김이 손등에 번져오던 시간. 회식을 마친 회사원들이 “오츠카레사마데시다(お疲れ様でした, 수고하셨습니다)!”를 외치며 지나가던 그 언덕.

 

필자가 산책하던 호세이대학 옆길    

 

이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여전히 따뜻한 비닐봉지를 쥐고 카구라자카 언덕을 오르는 것만 같다. 세계는 잔인하게 아름답고, 아름답게 잔인하다. 나는 그 두 얼굴을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동시에 감각했다. 그 사이에서만 보이는 것들을 본다.

신미나
시인, 1978년생
시집 『당신은 나의 높이를 가지세요』 『싱고,라고 불렀다』,
시툰 『詩누이』 『안녕, 해태』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