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이야기는 대개 두렵고 징그러운 내용이다. 그런데 요즘 괴물 이야기 중에는 정반대로 매력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괴물도 보인다. 바로 뱀파이어, 그러니까 흡혈귀다. 영화·소설·만화 등에 나오는 요새 흡혈귀는 공포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름답고 고결하고 강인한 등장인물로 나오기도 한다. <트와일라잇> 시리즈 같은 영화에 나오는 흡혈귀가 대표적이다. 이런 영화에서 아름답고 인기 있는 배우가 매력을 발산하기 위해 흡혈귀 역을 맡는 사례는 흔하다. 한국에서도 오랫동안 변함이 없이 미모를 유지하는 연예인이나 유난히 젊어 보이는 동안의 사람에게 칭찬의 뜻으로 ‘뱀파이어 외모’라고 하는 언론 기사 또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흡혈귀 이야기의 뿌리를 찾아보면 본래 흡혈귀는 딱히 아름답고 고귀함이 강조된 괴물은 아니었다. 오래된 흡혈귀 이야기로 1725년에 세르비아에서 있었던 실제 사건이라고 하는 페타르 블라고예비치(Petar Blagojević) 이야기가 흔히 소개된다. 이 이야기 속에서 블라고예비치는 며칠 만에 무덤에서 되살아나서 밤거리를 돌아다니며 사람을 헤치는 시신으로 묘사된다. 남아 있는 기록에 따르면 블라고예비치는 집안사람을 비롯한 동네 주민 여럿의 목숨을 빼앗았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인 18세기 동유럽 각지에서는 이와 비슷한 흡혈귀 이야기들은 꽤 많다. 추측해 보자면 아마도 이 무렵인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의 통치 시기 전후에 오스트리아와 독일인 세력들이 동유럽으로 많이 뻗어 나갔고, 그들을 통해 동유럽의 이국적이고 특이한 문화가 독일과 서유럽 사람들에게 많이 소개되면서 이런 전설이 유행하지 않았을까 싶다. 서유럽 사람들이 동유럽 문화를 기이하게 받아들였을 것이기에 “동유럽에는 흡혈귀도 있다더라”라는 소문이 더 잘 퍼져 나갔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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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옛 흡혈귀 이야기의 핵심은 시신이 움직이며 악한 일을 한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원래 흡혈귀 이야기는 어찌 보면 요즘의 좀비 이야기와 더 닮았다. 매력적인 모습이 아니라 축축한 무덤 속에서 기어 나온 볼썽사나운 시체와 더 가까운 인상이다. 한자어로 흡혈귀라고 번역하다 보니 피를 빨아 먹는다는 점이 돋보일 뿐으로, 본래 ‘뱀파이어’라는 뜻으로 쓰이던 세르비아어 ‘뱀피르(vampir)’에는 딱히 피를 나타내는 어원이 뚜렷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어떻게 되살아난 시체 괴물이 ‘매력의 상징’으로 탈바꿈했을까? 역사상 가장 중요한 흡혈귀 소설인 영국 작가 브램 스토커의 소설 『드라큘라』가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스토커는 동유럽의 흡혈귀 전설을 가공해 소설로 쓰면서 지금의 루마니아 일대인 왈라키아를 다스린 역사 속의 실제 인물인 드라큘라, 그러니까 블라드 드라큘레아(Vlad Drăculea)라는 사람에 관한 몇 가지 전설을 끌어왔다. 그리고 당시 여러 가지 흡혈귀 이야기들과 적절히 섞었다.
역사 속 인물 드라큘라는 옛 왈라키아의 왕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었는데 스토커는 그보다는 좀 더 공포 소설의 등장인물에 적합하도록 드라큘라 백작이라는 칭호를 썼다. 어찌 보면 실제보다 지위를 낮추어 등장시킨 셈인데, 동유럽 귀족의 느낌을 잘 불어넣어서 아주 독특한 인물을 만들어 냈다.
다른 면에서 보자면, 오스트리아 사람들이 동유럽에 건너갈 무렵인 18세기 흡혈귀 소문들이 유행했듯이 영국이 세계 곳곳과 가장 활발히 교류하던 19세기가 되자 낯선 외국인 중에 무섭고 이상한 사람들이 있다는 소설이 인기를 끌기 쉬웠던 것 같기도 하다. 소설 『드라큘라』를 보면 세계를 돌아다녔던 영국인 주인공들이 “예전에 ‘조선’에서 있었던 일”을 잠시 언급하는 대목이 보인다. 소설에는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하지만 영국에서 까마득히 멀리 떨어진 조선을 괜히 언급할 정도로 낯선 나라에 관한 이야기들이 그 시대 영국에서 인기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나는 『드라큘라』 영화의 새로운 판을 만든다면 이 구절을 근거로 주인공 중 한 사람을 슬쩍 한국인으로 밀어 넣어도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
미국의 유니버설 영화사에서 1930년대 독특한 매력의 남자 배우 벨라 루고시를 주인공으로 제작한 <드라큘라> 영화가 인기를 얻고, 다시 영국의 해머 영화사가 1950년대와 1960년대에 크리스토퍼 리를 내세워 만든 <드라큘라> 영화 시리즈들이 더욱더 큰 흥행에 성공하면서 무서우면서도 멋진 귀족 느낌이 나는 흡혈귀 이미지는 완전히 대중문화 속에 자리 잡았다. 이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원래의 공포스러운 느낌은 사라지고 오히려 매력이 더 강조된 괴물이 바로 요즘 <트와일라잇> 시대의 흡혈귀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도 흡혈귀 같은 괴물이 있었을까? 흡혈귀 이야기에서 강조되는 피를 빨아 먹는다는 특징에 초점을 맞춘다면 하나 언급해 보고 싶은 괴물이 있다. 바로 ‘노채충(勞瘵蟲)’이라는 벌레 형태의 괴물이다.
이 벌레에 관해 가장 상세한 설명을 담고 있는 책은 2015년 국보로 지정된 국가유산 『동의보감』이다. 『동의보감』 내경편 3권에서는 ‘노채충’이라는 항목을 두고 이 벌레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이런 내용이 『동의보감』에 실려 있는 이유는 옛사람들이 ‘노채(勞瘵)’라는 대단히 무서운 병의 원인을 노채충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동의보감』은 여러 옛 중국 의학 책에서 ‘노채’라는 병에 관해 설명한 내용을 정리했는데, 노채충은 사람의 정혈(精血), 즉 정기와 피를 빨아 먹고 노채를 일으킨다. 또 노채라는 병이 생기면 대부분 사람은 목숨을 잃는다.
재미난 것은 『동의보감』에 인용된 중국 책에서도 노채충을 시체와 연결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체로부터 문제가 시작되는 유럽의 흡혈귀 전설과도 통하는 대목이다. 『동의보감』에는 노채를 ‘전시(傳尸)’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시체에서 병이 사람에게 전해질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또 『동의보감』에서는 『득효방』이라고 하는 몽골제국 시대의 책을 인용해, 병의 증상으로 꿈속에서 저승에 있는 사람을 만난다거나 귀신을 만나 욕망을 품게 된다는 등의 이야기도 다룬다. 이 또한 흡혈귀와 비슷한 점이다. 특히 음식을 많이 먹을 수 없게 되고, 몸이 마르며, 입술이 붉게 변한다는 묘사도 있다. 이 역시 창백하면서도 입가에 피를 묻힌 유럽의 흡혈귀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차이점이 있다면 유럽의 흡혈귀 이야기에서는 그렇게 변한 사람이 직접 다른 사람을 공격하지만, 여기서는 노채충이라는 벌레가 사람을 공격하고, 공격당한 사람의 행색이 그렇게 변한다는 점 정도다.
![]() 동의보감 내경편 노채충 Ⓒ 국립중앙도서관 |
노채충 이야기가 책에만 적혀 있던 것은 아니다. 조선 사람들은 현실 세계에서도 널리 노채충이 사람의 목숨까지 빼앗는 무서운 벌레 괴물이라고 믿었던 모양이다. 『조선왕조실록』 1645년 음력 6월 11일 기록을 보면, 채득기라는 사람이 자기 고향에서 노채를 앓는 사람을 뜸을 떠서 치료하는 것을 보았는데 “벌레가 왼쪽 귀에서 나왔다”라고 이야기하는 내용이 있다. 조선 시대 사람들은 노채충이 귀로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벌레라고 생각했다는 뜻이다.
구체적인 모습으로 호랑나비와 비슷하다는 소문이 어느 정도 퍼져 있었던 듯하다. 원래 『동의보감』에 실린 『득효방』에서는 노채충의 모습을 처음에서 말똥구리 같은 벌레와 비슷하다고 설명하면서도 두꺼비나 고슴도치 같기도 하고, 문드러진 면발처럼도 보이며, 붉은 실로 만든 말총과 같다는 등 여러 모습으로 묘사한다. 또 노채충이 사람이나 귀신의 형체가 되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18세기 조선의 함경도에서 발행된 의학 서적인 『광제비급』에서는 평안도의 삼등이라는 곳에서 이 씨라는 사람이 노채충을 목격한 이야기를 다룬다. 이에 따르면 옛 무덤 속 관 안에 호랑나비(虎蝶)가 잔뜩 있었고, 그 나비 모습 벌레를 본 후 이 씨의 여러 가족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18세기는 마침 유럽에서 흡혈귀 전설이 서유럽으로 퍼져 나가던 것과 비슷한 시대다. 그런데 하필 그 무렵에 꽤 많은 조선 시대 사람들도 나비를 닮은 작은 벌레 같은 괴물, 노채충이 사람, 두꺼비, 고슴도치, 귀신 따위와 같은 징그러운 모습을 한 채로 사람 피를 빨아먹고 다닌다고 믿었던 것이다. 『광제비급』은 풍수지리 이론에 따라 집과 무덤 자리를 잘못 잡으면 노채라는 병이 생긴다는 속설과 조상 중에 너무 문란하게 살았던 사람이 있으면 후손이 이런 병을 겪는다는 속설 두 가지를 같이 전한다. 이 역시 무덤에서 돌아온 시신과 도덕적인 타락을 괴물과 연결 짓는다는 측면에서 역시 흡혈귀 전설과 통하는 데가 있다.
과연 조선 시대 사람들은 무엇을 보고 노채충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저 막연히 지어내서 퍼트린 헛소문이라면 이렇게 널리 퍼져서 여러 의학 서적에 충실한 기록으로 남기 어려웠을 것이다. 분명 어떤 뿌리가 되는 실제 사건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요즘 과학자들은 『동의보감』에서 ‘노채’라고 설명한 병을 현대의 결핵이라고 보고 있다. 결핵은 결핵균에 감염되어 걸리는 전염병이지만, 병세가 금방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많고 전염되는 속도가 아주 빠른 편이 아니다. 그러므로 옛사람들은 결핵이 전염병의 특징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알아차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결핵이 분명 가까운 사람 사이에 퍼질 수 있는 전염병인 것은 맞다. 또 예전에는 결핵을 위험한 불치병이라고 생각했다. 누가 폐병에 걸려 매일 기침을 하다 목숨을 잃으면 흔히 결핵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옛사람들은 집안사람들 혹은 주변 마을 사람들이 줄줄이 결핵에 전염되어 목숨을 잃으면 “노채충이 돌아다니면서 여러 사람을 연속으로 괴롭혀 몰살시켰다”라고 믿을 만도 했다. 소문에 따라서는 “어떤 사람의 무덤을 잘못 만들었더니 그 때문에 그 자손들이 다들 노채충의 공격을 받았다”라고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현대 의학으로 보자면 집안사람들 사이에 결핵이 퍼진 진짜 이유는 한 집안에서 가까이 생활하는 동안 결핵균이 이리저리 건너다녔기 때문일 테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결핵균이라는 미생물을 알지 못했던 옛사람들은 노채충이 조상의 후손들을 몰래 찾아다니며 피를 빨았다고 여겼을 것이다.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흡혈귀 이야기를 결핵과 연관해 풀이하는 현대의 연구 논문들이 있다는 점이다. 마이클 벨(Michael Bell)의 2006년 논문을 비롯해 근래 미국 역사에 관한 몇몇 연구들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에 걸쳐 미국의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유행했던 흡혈귀 소동이 결핵 유행과 관련 있을 거라고 보고 있다. 결핵의 가장 특징적인 증상은 잦은 기침을 하다가 종종 피를 토하는 현상인데, 입 주위에 피가 묻거나 피를 뱉는 이런 모습을 보고는 옛 미국 사람들은 “사람이 흡혈귀로 변했다”라고 믿기 좋았을 것이다. 또 결핵에 걸리면 체중이 줄고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병약하고 어두운 외모로 변하는데, 이것을 흡혈귀 같은 모습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다.
그 와중에 주변 사람들이 전염으로 여럿 사망하는 일이 벌어지면 조선의 노채충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흡혈귀 때문이라고 주변 소문이 돌지 않았을까? 이 모든 이야기를 종합하면, 어쩌면 18세기 이후 유럽·조선·미국 등 전 세계에 걸쳐 일종의 결핵이 유행하면서 흡혈귀 이야기가 널리 퍼지지 않았을까 상상해 보게 된다.
21세기인 지금 흡혈귀라고 하면 다들 현실적 공포 대신 영화 소재를 먼저 떠올린다. 결핵을 물리치는 방법도 마늘 같은 것으로 흡혈귀를 몰아내는 주술적인 방법이 아니라 BCG 예방접종과 항생제를 이용한 치료로 바뀌었다. 덕택에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결핵을 불치병으로 보지도 않는다.
단, 조선의 노채충은 아직도 끈질기게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한국에서 결핵 발생률이 아직도 이상할 정도로 높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결핵 발생률은 2023년 기준 OECD 회원국 38개국 가운데 콜롬비아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1996년에 OECD에 가입한 이래 2021년까지 줄곧 1위였다가 2020년 콜롬비아가 OECD에 가입하면서 겨우 2위로 떨어졌다. 결핵 발생률이 인구 10만 명당 38명으로 OECD 평균 9.8명보다 4배나 높다.
모든 면에서 빠르게 발전해 온 한국의 여건을 생각해 보면, 결핵이 여태 이렇게나 심각하다는 건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할 공중보건의 고민거리다. 앞으로 위생 관리를 좀 더 강화하고 결핵 검진과 치료를 신속히 하기 위해 다 같이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흡혈귀든, 노채충이든 그저 전설 속의 이야기로 영영 묻어 버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