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의 풍경
근대의 책 읽기

  • 근대의 풍경
  • 2026년 봄호 (통권 99호)
근대의 책 읽기

「메밀꽃 필 무렵」으로 ‘국민 작가’의 반열에 오른 이효석은 문학청년 시대에는 사회주의 운동에 동조적인 ‘동반자 작가’였다. 그런 이효석이 1930년 11월 <조선일보>에 쓴 「경성 쌍곡선 : 서점에 비친 도시의 일면상」이라는 흥미로운 글이 있다. 이 글은 “서울이 가진 유일한 좌익서적 전문”인 계림당서점을 소재로 근대 초기의 독서·서점문화에 대해 잘 말하고 있다. 

‘좌익서적 전문’은 1980~90년대의 인문사회과학 전문서점이나 오늘날의 독립서점 중에서 사회운동과 관련된 책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서점과 비슷한 서점을 떠올리면 되겠는데, 여러 군데 총독부에 의해 검열당한 흔적을 가진 이 글에서 이효석은, 1929년 세계 대공황의 여파로 더욱 강퍅해지고 있는 경성의 세태 속에서 계림당서점과 그 주인이 고투하며 버티고 있다는 점을 우선 이야기했다. 그리고 자신이 서점에 하루 동안 가서 듣고 관찰한 이야기를 썼다. 다음과 같다. 

 

하루 동안 서점에 시좌(試坐)하야 발견한 놀라운 사실은 고객의 종류이니, 그의 대부분은 루바시카 입은 장발 청년(이렇게 유달리 차린 청년이 서울 안에 몇 사람이나 있으랴마는)이나 첨단적 지식분자 연(然)한 양복계급이리라고 예상한 기대를 배반하여 버리고 고객의 대부분이 실로 중등학교 정도의 생도들이라는 것이다. 

- 이효석, 「경성 쌍곡선 : 서점에 비취인 도시의 일면상」, <조선일보> 1930년 11월 4일, 4면

 

       조선일보 1930년 11월 4일, 4면    

루바시카(러시아어: рубашка)는 러시아 민족의상으로 풀오버 타입의 옷인데, 1920년대 조선에 사회주의 사조가 청년들을 사로잡고 러시아풍 문화가 유행하면서 그런 옷을 입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그런 첨단 사상과 유행에 젖은 신세대 청년들과 대학생들이 서점에 드나들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교복 입은 중학생이 이런 서점의 주된 고객이었다는 것이다. 가난하고 교육 불평등이 극심했던 조선에서 당시 중학생은 상위 20% 이상의 고학력자였으며, 지금 같은 어린애가 아니라 청년 구실을 하던 존재였다. 

이효석은 이어서 다른 세상을 꿈꾸고 진지하게 공부하려는 어린 학생들과, 의대와 법대에 진학하거나 고등문관시험(고문) 합격이나 은행 취업을 해서 돈과 출세의 길로 가려는 청년들을 대조시킨다. 그리고 이 서점을 매개로 한 여학생 독서회가 있었다는 사실도 쓴다.

 

돈을 벌려면 의학을 공부해야 하고, 거룩한 지위를 얻으려면 법률을 공부해야 하고 (중략) 고문(高文) 합격을 필사의 목표로 삼 년 동안이나 도서관 책상에 파고 엎드렸던 가련한 친구가 있고, 은행에 취직하여 급료가 풍성풍성하니 만족변절(滿足變節)하야 연구회의 옛 동지들까지 잊어버리는 가엾은 사람이 있는 것을 어찌하랴. (…) 며칠 전에 단정하게 차린 여학생들이 이 서점을 찾아와서 어떤 책부터 읽기 시작하였으면 좋겠느냐고 지도를 빌었다고 한다.

- 이효석, 「경성 쌍곡선 : 서점에 비취인 도시의 일면상」, <조선일보> 1930년 11월 4일, 4면

 

이렇게 이효석은 짧은 글에서 1930년경에 확립돼 가던 조선의 근대적 독서문화와 지식문화의 단면을 잘 드러내 준다. 젊은이들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 독서회를 만들고 서점을 차려 인문 사회과학 서적을 읽고 보급한다. 그 무렵 서울 종로와 그 인근에 동광당서점·신생각서점·민중서원·신흥서점 들이 그런 책을 많이 취급했다. 일제 경찰이 그런 서점을 감시하고 괴롭혔음에도 강릉이나 평양에도 그런 서점이 있었다. 

마치 박정희·전두환 정권 때의 서점문화와 거의 흡사하지 않은가. 뜻있는 청년들의 독서회는 3.1운동 이후부터 새로운 문화와 사상을 공유하고 운동을 퍼뜨리는 주요한 독서공간이었다. 또 다른 젊은이들은 출세와 부를 위해 일제의 사법고시를 치고 은행에 취업하려 한다. 그런데 1931년에 서슬 퍼런 총독부와 경성은행·동일은행 등에서 급사로 일하던 조선인 고등학생과 청년들의 독서회 조직이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충격을 주었다. 조선일보는 1932년 1월 1일자 특집 기사를 통해 “1931년 획시기적 조선의 비밀결사운동”의 하나로 이 ‘급사 독서회’를 꼽았다.1)

‘적우회(赤友會)’라는 이 조직은 선린상업고등학교를 다니던 이형원을 비롯하여 수 명의 청년들이 마르크스주의 책을 읽고 독립운동에 대해 협의했다. 특히 경성제대에 재학 중인 조선인 및 일본인 대학생과도 연계되어 있었다고 한다.2)

이렇게 되기까지 조선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게 책이 싸게 많이 보급됐고, 약 한 세대에 걸친 근대 독서문화의 축적이 있었다. 애당초 조선은 대단히 사상과 출판에 대해 폐쇄적이고 사농공상·남녀유별 ‘차별’을 국가이념으로 한 나라였다. 이씨 왕조는 엄격하게 책의 발간과 유통을 통제했고, 때로는 서쾌(서적상)와 ‘사문난적’을 잔혹하게 단속했다. 

그러나 개화 계몽기가 오면서 조선식 검열 체제가 약해지고 점차 책을 통한 서구적 사상과 지식의 자유시장이 형성되었다. 그 결과 엘리트 계층이 독점했던 문자문화는 본격적으로 인민대중 모두의 것이 되어갔고, 독서층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문명사의 변화와 근대화는 일본에 의한 국권 침탈, 즉 식민지화와 함께 이루어졌다. 1910년대 이후 조선인은 높은 수준의 문자 생활을 누리기 위해서는 한글·한자·일어를 모두 알아야만 했기에, 또 다른 차별 앞에 내던져졌다. 

 

사랑의 불꽃 표지 Ⓒ 한국현대문학관    

 

『사랑의 불꽃』 내지 Ⓒ 한국근대문학관    

 

그런데 누구나 글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는 보편 문식성(文識性)의 시대는 누구나 글을 쓰고 쓸 수 있는 시대이기도 했다. 글쓰기는 근대 교육 과정에서 ‘필수 교양’이 되었고, 시중에는 다양한 글쓰기 교본이 등장했다. 글쓰기는 사상과 내면성을 표현하는 수단만이 아닌 일상의 도구가 되었는데, 특히 편지글이 그랬다. 편지는 전화나 이메일이 없던 시절 사회적 의사소통의 가장 중대한 매개였고, 무엇보다도 새로 열린 ‘연애의 시대’의 수단이기도 했다. ‘자유연애’는 근대 초기의 젠더·가족 구조를 변화시킨 촉매였다. 1923~1924년에는 『사랑의 불꽃』이나 『사랑의 선물』 같은 연애 편지글 모음집이 베스트셀러였고, 『춘향전』도 계속 큰 인기를 끌었다. 『춘향전』은 18세기에 퍼진 전근대소설이었지만 그 내용과 사회적 기능 면에서 근대적인 요소들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20세기 초의 사회적 맥락에서 민중 의식과 여성 인권 그리고 자유연애에 대한 새로운 의식과 연관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과정과 함께 학교교육·도서관·언론매체 등도 대중을 책 앞으로 이끌었다. 교육을 많이 받은 엘리트적 독자층과 중간 정도의 교육을 받은 대중 독자층이 함께 문학과 지식의 새로운 체제를 이뤄나갔다.    

 

1)  「一九三一年(1931년) 획시기적 조선의 秘宻結社運動(비밀결사운동)」 1932.01.01 조선일보 13면

2) 「給仕讀書會(급사독서회)의 經過(경과)」 1931.11.04 조선일보 2면

천정환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저서 『근대의 책 읽기』 『조선의 사나이거든 풋뽈을 차라』 『대중지성의 시대』 『자살론』 『촛불 이후, K-민주주의와 문화정치』 『숭배 애도 적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