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의 문학
진격의 시인선(詩人選) : 시집이 ‘잘 팔리는’ 현상에 관한 소고(小考)

  • 이 계절의 문학
  • 2026년 봄호 (통권 99호)
진격의 시인선(詩人選) : 시집이 ‘잘 팔리는’ 현상에 관한 소고(小考)

시집(詩集)이 진격하고 있다. 전통의 강호(强豪)들이 주름잡고 있는 영역으로 여겨졌던 시인선의 세계에 도전장을 내미는 출판사가 속속 생겨나고 있다. 이는 시(詩)라는 장르가, 시집이라는 상품이 시장에서 ‘팔리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실 이보다 앞서 “문학이 과연 ‘팔리는 것’이 돼야 할까?”에 관한 성찰이 제기돼야 하지만, 그럴 겨를은 없어 보인다. 인공지능(AI)과 온갖 쇼츠의 공습 가운데 책을 거래의 대상으로 삼는 문학·출판 시장 자체가 존속할 수 있을지 미지수. 독서라는 행위의 개념을 다시 정의하기를 요구하는 시대, 존(存)과 폐(閉)의 갈림길에 서 있는 각 출판사는 독자의 작은 움직임에도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최근 시인선이 범람하게 된 데에는 지난 몇 년간 문단 안팎에서 그 의미가 다방면으로 조명된 ‘텍스트힙’ 열풍이 결정적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아직 이 현상의 정의는 명확하게 합의되지 않았다. 말의 뜻만 가지고 풀이해 보면 ‘텍스트’, 즉 문학이 ‘힙’(hip)한 상품으로 소비되고 있는 것을 가리킨다. 양상은 무척 다채롭지만, 분명한 건 이 현상을 이끄는 장르가 소설이 아니라 시라는 사실이다. “여전히 시보다 소설이 많이 팔리는데 무슨 소리냐?”라는 혹자의 반박이 제기될 수 있겠다. 실제 그렇다. 소설과 시를 합산해서 순위를 나열하면 시집은 20위권에 가서야 겨우 한두 개 정도 이름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시가 텍스트힙의 주역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독자의 ‘시심’(詩心)은 각 대형서점에서 집계하는 베스트셀러 통계 바깥에 있다. 무슨 말일까?

우선, 시와 소설이 문학이라는 한 범주에 있더라도 서로 다른 독자와 시장을 가지고 있는 별개의 장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소설을 사랑하는 독자가 시도 좋아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2000년대 이른바 ‘미래파’라고 명명된 시인들의 등장은 한국 시의 스타일을 그 이전과 이후로 나누는 경계가 됐다. 다채로운 동시대 사상의 세례를 받은 이들의 시가 한국 시의 언어적·미학적 혁신을 이끌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는 ‘전문적인’ 독자 사이에서 이뤄지는 평가에 그친다. 상당히 난해한 편에 속하는 이들의 문장이 시를 ‘직업적으로’ 음미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일반적인’ 독자에게 가닿기는 난망하다. 그렇게 시는 대중과 멀어지기 시작했다. 시의 시장에는 소수의 애호가나 평론가, 연구자 그리고 시인만이 있었다. ‘그들만의 리그’가 된 것이다.

 

‘느좋’의 시대…난해함? “오히려 좋아”

달라진 건 시인이 아니라 독자였다. 사전에 따르면 앞서 언급했던 단어 ‘시심’은 ‘시흥(詩興)이 생기는 마음’을 의미한다. 시를 짓고 싶어 하는 그 욕구. 이것을 시인이 아니라 독자에게 가져다 대 ‘독자의 시심’이라고 적은 것은 실수가 아니라 의도다. 시인의 시심에서 비롯하여 지어진 시가 독자에게 일방적으로 가닿는 구조는 깨진 지 오래다. 시와 시집은 오히려 독자의 시심을 위해 복무한다. 시의 문장은 독자에 의해 재단(裁斷)된다. 여기서 재단은 단순히 재해석된다는 말의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다. 말 그대로 잘리고 재조합된다. 그렇게 새로이 직조된 문장은 더는 시인 소유가 아니다. 독자 편에 서서 독자 이익을 위해 일한다. ‘이익을 위해 일한다’라는 표현이 다소 어색하다면 이렇게 바꿔볼 수 있을 것이다. ‘꾸며준다’고. 그리고 그 문장들은 대개 인스타그램을 위시한 이미지 중심의 소셜미디어에서 유통된다.

시인의 문장에 칼을 가져다 대는 독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느좋’이다. ‘느낌이 좋다’는 말을 기괴하게 줄인 이 정체불명의 단어는 요즘 독자가 어떻게 문학을 소비하고 있는지 바로 보여준다. 그렇다. 오직 느낌. 그것도 독자의 느낌. 독자를 중심으로 한 세계에서 그 시의 문장이 어떻게 기능하고 있는가. 그 세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 중요한 건 오직 이것이다. 하나의 시집 안에서 작품이 어떻게 배치되어 있고 어떻게 묶여 있는지 등은 독자의 관심사가 아니다. 시집의 처음에서 끝까지, 하다못해 작품의 시작에서 끝까지 읽어내고 시인의 의도를 음미하는 것에 요즘 독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완독(完讀)의 신화’는 깨졌다. 시가 난해하다고? 오히려 좋다. 그만큼 내 세계가 신비롭다는 걸 보여줄 수 있을 테니까. 내 세계가 이만큼이나 심오하단 걸 내보일 수 있을 것이니까. 조금 더 오늘날의 감성에 밀착해서 문장을 다시 써 볼까. 그만큼 내가 힙스터라는 걸 어필할 수 있을 테니까.

역설적으로 시집에 중요한 건 시가 아니다. 예쁜 디자인의 표지, 도도한 느낌을 자아내는 제목, 휴대하기 좋은 귀여운 크기의 판형. 이런 것이다. 그러니까 시집은 어떠한 상징 자본을 획득하기 좋은 수단이 됐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그 상징 자본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독자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확실한 건 강조점이 ‘전시’(展示)에 있다는 점이다. 시를 읽고 그것이 내 안에서 어떤 변화를 일으킬 것인지 기대하는 것은 요즘 독자의 태도가 아니다. ‘안’이 아니라 ‘밖’이다. 독자는 시를 통해 나의 바깥에 있는 세상과 만나고자 한다.

 

시인선, 시집에 이야기를 입히는 일

     광화문 교보문고 매대의 시인선    

그러나 무턱대고 시집을 찍는다고 독자가 찾아 읽어줄 리는 만무하다. 반복하지만, 시는 상징 자본을 획득하는 수단이다. 이 말에는 어느 수준의 문화적 맥락이 반드시 담겨야만 시집이 팔린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감각 있는 출판사들이 너도나도 시인선에 출사표를 내는 이유다.

역사를 지닌 출판사들은 이 싸움에서 유리하다. 명실공히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선이 된 ‘문지 시인선’을 운용하는 문학과지성사, 그리고 여기와 쌍벽을 이루는 창비의 ‘창비시선’이 대표적이다. 양대 산맥의 구도를 깨고 시인선의 바람을 일으킨 건 문학동네의 ‘문학동네 시인선’이다. 분명 후발주자로 시작했음에도 요즘 독자들과 가장 가까이 맞닿아 있는 게 ‘문학동네 시인선’이라는 사실은 문학·출판계 종사자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민음사의 ‘민음의 시’도 선호도 측면에서 꾸준히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요즘 돋보이는 곳은 2018년 이후 이어져 오고 있는 아침달의 ‘아침달 시집’이다.

여기서 그친다면 구문(舊聞)에 그칠 것이다. 이들은 이미 ‘텍스트힙’ 열풍 이전에도, 독자가 시를 외면하는 시대에도 시집을 뚝심 있게 내왔던 곳이다. 이들이 단단히 다져놓은 구도에 균열을 일으키는 출판사들을 봐야 한다. 지난해 9월 시작한 난다의 ‘난다 시인선’은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앞선 시인선들의 영역에 바짝 다가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문학동네 시인선’이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시인이자 편집자 김민정 난다 대표의 감각과 함께 김혜순·황유원 등 문학성이 이미 검증된 시인들을 시인선 초반부에 배치할 수 있는 섭외력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디자인에 큰 공을 들인 교유당의 ‘교유서가 시집’도 향후 시집이 쌓이면 폭발력이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올해는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이다. 소설이나 세계문학을 위주로 출간했던 문학 전문 출판사들이 속속 시인선에 뛰어들 예정이라서다. 자음과모음, 은행나무가 대표적이다. SF 문학 전문 출판사인 동아시아의 허블도 시인선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허블은 지난해 『뭐 사랑도 있겠고, 인간 고유의 특성』이라는 제목으로 여러 시인이 SF적 상상력을 발휘해 쓴 시를 모은 ‘SF 시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이 중에서 누가 웃을지 예측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다만 AI가 초래한 문명사적 위기 가운데 문학이 나름대로 작은 해법을 찾은 것에 안도감이 들 뿐이다. 물론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독자는 금방 변화할 것이다. 짧고 가벼운 시조차도 지루해할지 모른다. 그때 문학은 독자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오경진
서울신문 문화체육부 기자,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