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밀한 시선으로 기억의 지층을 파고드는 예니 에르펜베크 작가와의 대담
- 정밀한 시선으로 기억의 지층을 파고드는 예니 에르펜베크 작가와의 대담
편집자 주 ㅣ 제24회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자들은 지난 2월 6일부터 13일까지 독일 문학기행을 다녀왔다. 이들은 프랑크푸르트와 드레스덴, 베를린의 주요 명소를 탐방하였다. 이어 소설가이자 오페라 감독인 예니 에르펜베크 작가와의 대담을 진행하였고, 김리윤·하미나·한국화 작가의 낭독회와 아티스트 토크에 참여하였다. 예니 에르펜베크 작가와의 대담 전문 및 수상자들의 독일 기행문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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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니 에르펜베크(Jenny Erpenbeck) 독일 작가, 오페라 연출가, 1967년생 2015년 영국 인디펜던트 외국소설상, 2024년 부커상 인터내셔널상 등 수상 소설집 『늙은 아이 이야기』 『아트로파 벨라돈나』 『카이로스』, 장편소설 『사전』 『가다, 갔다, 가버렸다』 『모든 저녁이 저물 때』, 희곡 「고양이는 목숨이 일곱 개」 등 |
예니 에르펜베크는 동독 출신 작가로 시대의 격변 속에서 유실된 것들을 집요하게 응시하는 작가이다. 우리는 베를린의 어느 식당에서 그를 만났다. 이국적인 풍경을 가진 도시에서 만난 그는 직접 준비한 자신의 책을 선물하며 미소로 우리를 환영했다. 낯섦도 잠시, 편안하게 눈을 맞춰오는 그와 설레는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카이로스』 한국판에서 한국 독자들을 위한 글을 써주셨는데요. 거기에 몇 년 전 경주에서 하이킹 중 스님을 만나셨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연히 만난 그분이 독일 튀빙겐에서 문학 공부를 한 분이셨는데요. 그때 이야기를 좀 더 자세하게 해주실 수 있을까요?
![]() 작가가 직접 고른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수상자들과 예니 에르펜베크 |
예니 에르펜베크 경주에서 아주 재미있는 일이 있었습니다. 혼자 자전거를 빌려서 산으로 갔거든요. 자전거를 세워두고 하이킹을 시작했는데 우연히 만난 스님과 즐겁게 대화를 나눴습니다. 처음에는 영어를 잘 못하셨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독일어로 말을 하기 시작하셨죠. ‘나 튀빙겐인가 어디서 1년 동안 공부했었어요’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더니 ‘혹시 클라이스트(Heinrich von Kleist)를 아시나요?’라고 물어보셨습니다. 마치 저에게 1777년에 태어난 클라이스트를 만나본 적 있냐고 묻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아주 작은 사찰이었는데 그런 곳에서 스님을 만난 게 정말 신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그분이 독일어를 그렇게 잘하시고 클라이스트를 알다니요. 즐거웠습니다.
문학이 친숙한 작가 집안에서 태어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작가님께 글쓰기는 무엇이었나요?
글쓰기란 저에게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책을 좋아한다는 건 어떤 문학적인 배경이 있냐 없냐에 좌우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저희 집 같은 경우에는 마치 도서관처럼 책이 있는 환경이었고, 어릴 때는 동화와 소설을 구분하지 않고 읽었습니다. 가족들이 모두 문학과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릴 때는 ‘나만의 것을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학에 갈 때쯤에는 연극학, 연극, 연출을 전공했고 음악극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죠. 가족들이 하는 것과는 거리를 두고 싶었습니다. 조금 웃길 수 있는 데 가족 간 경쟁이 있었어요. 하지만 결국 글을 쓰는 것에는 경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희 가족만 하더라도 모두가 서로 다른 주제를 가지고 글을 썼습니다. 문학에는 모두를 위한 자리가 있어요. 이건 스포츠 경쟁처럼 누가 더 멀리가고, 높게 뛰는지를 경쟁하는 게 아닙니다. 모든 책에는 그 책만의 자리가 있습니다.
작가이자 오페라 연출가라는 약력이 눈에 띄었습니다. 소설을 쓰는 것과 오페라를 연출하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 또 각각의 창작이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 궁금합니다.
연극과 오페라를 다루면서 제가 중요하게 배운 점은 ‘필요 없는 것은 전부 버린다’라는 것입니다. 서사를 완성하는 데 기여하지 않는 요소들은 모두 버립니다. 특히 연극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텍스트와 서브 텍스트입니다. 주인공의 대사 속 그 이면에 무엇이 있는가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습니다. 또 음악이 좋은 점은 음악에는 속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말하는 것에도 빠르게 말하기와 느리게 말하는 것들이 있죠. 그 말 안에는 의미뿐만 아니라 소리라는 요소도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언어가 가진 멜로디에 더 집중을 하게 되었죠.
작가님에게 베를린이란 어떤 도시인가요?
저는 베를린에서 태어나고 평생 베를린에서 계속 살아왔습니다. 동독 시절에는 동베를린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어린 시절과 청년기 모두 다 지냈으니 동베를린은 아주 익숙한 공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23살 때 통일이 되면서 아주 낯선 서베를린이란 도시가 저에게도 생기게 되었죠. 비슷하지만 낯선 것들이 공존하는 상황에서 계속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분단국가로서 갖는 공통점이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장벽 붕괴 이후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이 작품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제가 살던 국가가 종료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6개월 정도 되는 기간에 걸쳐서 제가 살았던 동독이라는 국가가 사라졌죠. 동독에서 있었던 사회, 규범, 문학, 교육 등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붕괴되었고 변화했습니다. 예를 들어 마트에서 내가 살 수 있는 물건들, 감상할 수 있는 연극들이 전부 달라진 겁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어요. 이제까지 해왔던 공부나 연구가 무의미해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고 사유재산도 상실하게 되었죠. 서독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자기 땅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전환과 격변의 경험들 때문에 작가로서 사람들이 시간이라는 개념을 정치적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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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정치적으로 바라본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저의 스승인 하이너 뮐러(Heiner Müller) 선생에 대해 얘기하고 싶습니다. 하나 짚고 넘어가자면 『카이로스』에서 등장하는 한스는 하이너 뮐러가 아닙니다. 독일에서 그런 주장을 펼치는 기자가 있어서 짚고 넘어가고 싶었습니다. 다시 질문에 대한 답으로 돌아가서 하이너 뮐러는 ‘동독의 시간은 얼려져 있는 시간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장벽이 붕괴되고 통일이 되자 이 시간들이 녹게 되고 동독의 사람들은 현재에 던져지게 된 것이죠. 동독에서 시간의 의미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사회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시간이란 계속 가고 있고, 진행 과정 속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는 언제나 개선될 여지가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곧 동독에서의 시간 개념이었습니다. 그런데 통일은 마치 최종적으로 도달한 사회처럼 보였고 우리가 시간을 그렇게 받아들이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시간에 대한 이해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역사를 다루실 때 특별히 주의하는 점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제가 통일 이후의 전환기에 대해서 말할 때 어렵다고 생각했던 점은 당시 정상적으로 여겨지는 서술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서독이 동독을 자유롭게 만들어줬고 해방시켜주었으니 동독은 다행인 일이라는 서술이죠. 제가 느끼기에 동독은 스스로 해방시키고 사회를 변화 시키고 싶었던 열망이 그 안에 있었기 때문에 민주주의로 가는 길을 걸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주제에 대해 글을 쓰는 데 오래 걸렸어요. 저는 아주 오랫동안 이 주제에 대해 감정적이었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연구나 사료를 들여다보면서 침착하게 이것을 재료로 글을 쓰는 데까지 많은 시간이 소모됐습니다.
(역사를 다룰 때에는) 구체적인 사실을 최대한 수집하고 자세하게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저널리즘의 경우 단순화하려는 시도가 많기 때문에 더 주의해서 봐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에 집중하고 그것을 꼭 규명하기 보다는 독자들과 나눌 수 있게 서술하려 합니다.
오랜 시간 글을 써오신 작가님께, 이제 막 글쓰기를 시작하는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기술이나 방법론 이전에, 글을 쓰는 사람이 오랫동안 붙들고 있어야 할 태도나 감각이 있다면 어떤 것일지도 함께 듣고 싶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요. 저의 경우에는 우선 자신의 주제를 찾는 것과 정직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만약 솔직하게 쓰는 것이 두려우면 차라리 필명을 써서라도 진실을 쓰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가족이나 친구가 상처 받을까봐 진실을 쓰지 못하는 것보다는요. 그리고 돈을 많이 벌겠다는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병행해야 할 수도 있겠죠. 학생들을 가르칠 때 보니 문학만 공부하다가 졸업 후 막막해하는 경우가 있더군요. 따라서 글쓰기 그 자체를 즐겨야 합니다. 무언가에 대해 명확해지기 위해, 그리고 스스로 답할 수 없는 질문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글을 써야합니다. 소설은 내용뿐만 아니라 ‘어떻게 전달하느냐’ 하는 형식도 중요합니다. 형식을 마음껏 실험해보기도 하세요. 마지막으로는 독서를 사랑해야 합니다.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읽으며 배우는 것이 많으니까요. 하지만 결국에는 자신만의 언어를 찾아야 합니다.
언어를 찾는 중요성을 말씀하셔서 AI에 대해서도 여쭤보고자 해요. 창작, 번역 분야에서 AI가 빠르게 영역을 잠식해나가고 있는데요, 작가님께서는 개인적으로 AI에 대한 어떤 견해를 갖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다음 소설은 AI에게 맡겨볼까 봐요. 농담입니다. 저는 AI를 쓰지 않습니다. 제가 느낀 바로는 현재 시점에서는 주어진 재료로 훈련을 해서 글을 쓰는데 아직까지는 그게 잘 작동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AI에게 ‘예니 에르펜베크 스타일로 글을 써봐’라고 한 번 시켜봤어요. 결과가 유치하고 별로였습니다. 그래도 AI가 나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게 있긴 했습니다. 제가 호숫가에 있는 집과 고향에 대해 쓴 적이 있다는 사실을 종합해서 무언가를 만들어내긴 했죠. 인간이 이야기를 쓸 때는 흥미롭게 생각하는 주제와 그 주제를 둘러싼 이야기가 형성이 되는데 AI는 흥미라는 지점을 가지고 있지 않죠. 집중하고 싶은 주제가 없기 때문에 콜라주를 만들어내도 핵심이 없습니다. 우리는 경험을 나누고 싶어서 이야기를 씁니다. 진정한 독자라면 재미만이 아니라 작가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하니까요. AI로는 인간의 경험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기술이 더 발전하여 혹시 그럴 수 있더라도 인간의 영혼은 대체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 작가의 서재와 작업공간 |
식당에서 진행한 인터뷰는 테이블 위의 접시가 치워지고 디저트가 나오는 긴 시간 동안 이어졌다. 그의 대답은 때로는 감정이 엿보이는 눈빛, 차마 말을 잇지 못해 찾아왔던 사이(Pause)와 함께였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은 마음에 아쉬워하던 찰나 그가 선뜻 우리를 본인의 집으로 초대했다. 식당을 나서자 회색빛 하늘이 어느새 파랗게 개어 있었다. 들뜬 마음을 품고 그를 따라 함께 집으로 향했다.
우리는 그가 소개하는 동네 곳곳을 구경했고 그의 집에 당도하여 남은 인터뷰를 이어갔다. 그는 책들과 앨범들이 빼곡하게 들어찬 서재, 가보로 생각하는 가족들의 소중한 물건들도 소개해 주었다. 눈이 닿는 모든 것에 그의 시간이 묻어 있었다. 서로의 삶이 교차되는 꿈같은 순간이었다. 일시적인 환영이 지속되는 환대로 전환되는 시간. 우리는 돌아오는 길 내내 베를린을 다시 찾더라도 오늘 같은 경험은 할 수 없을 것 같다며 들뜬 마음을 가라앉혀 보았다. 그가 안고 사는 많은 기억들처럼 우리도 낯선 도시에서 만난 그의 따듯한 환대를 오래도록 품고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