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잠을 자고 일어났다. 학교에 가지 않아도 돼서 오랜만에 푹 잤나 보다. 하품하며 창밖을 보았다. 9월 중순인데도 눈이 내리고 있었다.
“몽골 날씨는 한국과 달라. 오후에는 더워!”
아빠가 반팔 티셔츠를 꺼냈다.
식탁에는 김밥과 떡볶이가 있었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 빵집이 많았다.
떡볶이를 먹는 사이 눈이 그치고 눈부신 햇살이 침대 위에 내려앉았다.
“탁오야, 회의가 있어 먼저 나갈게. 대학교 앞에서 만나! 숙소 아줌마가 데려다줄 거야.”
아빠가 가방을 들고 방을 나섰다.
일주일 전이었다. 아빠가 또 몽골로 출장을 가는데, 같이 가자고 했다. 놀라서 잠깐 머뭇거렸다. 아빠와 단둘이 시간을 보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가겠다고 말했다. 학교에 빠질 기회였으니까.
“설렁거스 따오! 센 베노! 설렁거스는 한국, 센 베노는 안녕!”
아줌마가 손을 흔들었다.
“아빠가 대학교로 오래요.”
고개를 숙이고 속삭이듯 말했다. 몽골에서도 내 목소리는 여전히 작았다.
“한국 드라마 재밌다. 출생 비밀, 결혼 반대! 따오, 몽골 좋아?”
아줌마는 쉬지 않고 한국말로 주절거렸다. 말을 처음 배우는 꼬마 같았다.
골목을 빠져나와 큰길로 접어들었다. 아줌마가 살 게 있다며 근처 쇼핑몰로 들어갔다. 밖에서 기다리는데 멀리서 한국 아이돌 그룹의 노래가 들렸다. 몽골에서 한국 음악, 드라마가 인기라고 아빠가 말해줬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라서 소리가 나는 쪽으로 걸어갔다.
맞은편 어디에선가 축제가 열렸다. 길을 건너 골목으로 들어갔다.
공원에는 ‘브라보 코리아’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고 무대 위에서 형, 누나들이 춤을 췄다. 진짜 아이돌 가수들 같아 금세 빠져들었다.
다섯 곡이 끝나고, 몽골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제야 아줌마가 떠올라 주머니를 뒤적거리는데 휴대전화가 없었다. 길에 떨어트린 것일까? 누가 훔쳐 갔나? 가슴이 급하게 뛰고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이 모습을 아빠가 봤다면, 몽골에서도 바보처럼 군다고 잔소리했을 것이다.
어디로 가야 아줌마를 만날 수 있을까? 건물이 모두 비슷했고, 곳곳에 적힌 몽골 글자는 뜻을 알 수 없었다. 도와달라고 외치고 싶지만, 몽골말을 못 하니 입을 열 수도 없었다.
그때, 몸이 뚱뚱한 남자가 다가와 나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씨름 선수 같았다.
“따오? 따라라.”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 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남자가 나를 끌고 가려고 했다.
“도, 도와주세요!”
다급한 상황인데도 목소리가 크지 않았다.
“설렁거스? 한국 따오 맞지?”
남자가 다시 물었다. 설렁거스, 한국이라는 낱말이 반가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남자가 전화했고, 잠시 뒤 아줌마가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다.
“아들, 찾았다!”
아줌마가 내 손을 붙잡았다. 그 남자는 아줌마의 아들이었다.
핸드폰을 잃어버렸다고 말했더니 아줌마가 내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었다. 아무도 받지 않았다. 휴대전화를 잃어버렸다고 하면 아빠가 뭐라고 할까? 아빠의 매서운 눈빛이 떠올랐다.
잠시 뒤 아줌마가 통화를 했다. 누군가 내 전화를 받았나 보다.
“전화기 방 있다. 청소한다.”
아줌마의 얼굴이 밝아졌다. 숙소에 전화기를 두고 오다니! 머리를 쥐어박고 싶었다.
“아들 다우카! 세 살 많아. 다우카 한국말 조금!”
아줌마가 형을 소개했다.
“안녕, 타오! 형 부르다!”
형도 아줌마를 닮아서 낯선 사람에게 편하게 말을 걸었다. 그런 능력을 어떻게 해야 배울 수 있을까?
아줌마가 GS25 편의점에서 사 온 부라보콘을 먹는 사이, 형이 전화기를 가져다주었다.
“진짜 고마워요.”
“고마워? 몽골말 바야를라!”
형이 헉헉거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나는 ‘바야를라’라고 중얼거리며 전화기를 살펴보았다. 아빠가 보낸 메시지가 있었다. 회의가 길어져서 한 시간 뒤에 만나자고 했다. 차라리 잘 됐다. 아빠와 같이 있으면 할 말이 없으니까.
“형도 아이스크림 먹어요!”
형이 손을 내저었다. 살이 너무 쪄서 다이어트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형은 중학생인데 왜 학교에 가지 않았을까?
대학교로 들어갔다. 몽골의 학교가 궁금해 두리번거리는데, 어느 교실에서 한국어가 들려왔다.
“사과를 샀어요.” “사과 맛있어요?” “얼마예요?” “오백 원입니다.”
대학생들이 그림책을 열심히 따라 읽었다.
형이 익숙한 듯 뒤에 있는 빈자리에 앉았다. 아마 그곳에서 한국어를 배운 듯했다.
눈치를 보며 나도 그 옆에 앉아 책을 넘겼다.
유치원에 다닐 때 읽은 그림책이었다. 갑자기 한숨이 나왔다. 그때는 책도 잘 읽고 친구도 많았다. 어쩌다가 지금은 아이들의 놀림감이 됐을까. 공부도 못하고, 운동도 못하고 발표할 때도 벌벌 떠는 내가 싫다. 나는 왜 잘하는 게 하나도 없을까?
형이 나를 바라보며 선생님과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한국에서 왔구나! 크게 읽어볼래?”
선생님은 한국 사람이었다.
대학생들이 나를 보았다. 얼굴이 뜨거워졌다. 몽골 사람들은 내가 버벅거려도 눈치채지 못할 것 같았다. 나는 배에 힘을 주고 또박또박 그림책을 읽었다. 다들 감탄하는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형이 나를 보며 양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런 반응은 처음이라서 몸에 전기가 통한 것처럼 떨렸다.
아빠는 새벽부터 일어나 서류를 살펴보았다. 출장을 가면 여행하는 것처럼 쉬다 오는 줄 알았다. 회사에서 일을 잘해 빨리 승진한 아빠는 나만 보면 야무지지 못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빠가 집에 있으면 나는 방에서 나가지 않았다.
창문으로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경쾌했다. 한국에 있었다면 학교에 가기 싫어 한숨을 내쉴 시간이었다. 아프다고 핑계를 대고 결석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다우카가 많이 도와줬다며? 어떻게 보답하지?”
아줌마가 아빠한테 어제 있었던 일을 전했나 보다. 나는 버릇처럼 아빠의 눈치를 살폈다. 몽골에 와서도 어리바리하다고 야단을 칠까 걱정이 됐으니까. 하지만 아빠는 별말이 없었다.
“다우카는 아빠가 한국에서 일하고 있어서 오랫동안 보지 못했어. 그런데 아빠가 많이 다쳐서 서울 병원에 입원했어. 다우카한테는 절대로 말하지 마라.”
아빠는 서류를 챙겨 회의하러 나갔다.
버스정류장에서 다우카 형을 만났다. 비는 그치고, 뜨거운 햇살에 목덜미가 따가웠다. 잠시 뒤, 버스에 올랐다. 서울 337번 버스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서울에서 쓰던 낡은 버스를 수입해서 쓰나 봐요.”
“수입? 날근?”
형은 수첩을 꺼내 ‘날근’이라고 적었다. 나는 ‘낡은’이라고 고쳐줬다. 수첩에는 몽골어와 한국어가 가득 적혀 있었다.
“넌 한국말 쌤! 다우카 아빠 서울!”
수첩에 아빠의 주소가 적혀 있었다. 우리 집과 멀지 않았다.
형은 아빠 이야기를 하며 환하게 웃었다. 안타까운 소식을 알면 얼마나 충격을 받을까?
그 사이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했다.
울란바토르 시내는 공기가 탁해 기침이 나오고 눈이 아팠다. 그래도 한국보다 몽골이 좋았다.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고, 편하게 만날 수 있는 형이 있으니까.
박물관, 백화점을 구경하고 나왔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식사 시간이 한참 지나 작은 식당에 들어갔다. 형이 호쇼류를 주문했다. 얇게 썬 양고기에 밀가루옷을 입혀서 튀긴, 군만두였다. 고소하고 바삭거렸다.
형은 채소만 먹었다. 그런데 어떻게 살이 쪘을까? 궁금했지만 다른 사람이 듣기 싫어하는 것은 묻지 않는다. 나도 답하기 싫은 질문은 자주 듣기 때문이다. 친구들하고 왜
놀지 않아? 왜 공부를 못해? 왜 노력을 안 해? 등등 귀가 따갑게 들은 질문들.
“한국말 대회. 상 받는다. 한국 간다!”
형이 주머니에서 안내장을 꺼냈다.
한국 대사관에서 몽골 청소년을 대상으로 말하기 대회를 연다고 적혀 있었다. 우리나라 전래동화를 읽고 독후감을 써서 발표하면 된다. 다섯 명을 뽑아서 한국 여행도 보내준다.
“꼭 한국 간다. 타오, 책 읽기 가르치다! 타오 박시!”
형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박시는 몽골어로 선생님이라고 했다.
나는 박시를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그럴수록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숙소 카페에서 글쓰기 준비를 했다. 아줌마가 노트북을 빌려줬다.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놀부 동생 불쌍하다. 토끼와 거북이, 토끼는 잠잔다. 토끼는 깡충깡충, 거북이는 느릿느릿!”
형은 『흥부전』과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를 꺼냈다.
『토끼와 거북이』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동화다. 아빠가 『토끼와 거북이』를 같이 읽으면서 노력하면 누구나 잘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내가 게을러서 공부를 못한다고 잔소리했다.
그 이후 우연히 동물 백과를 보았는데, 토끼는 원래 잘 뛰고, 거북이는 느린 동물이라고 했다. 그런데 어떻게 경주를 할 수 있을까? 그것부터 말이 안 된다. 그 이야기를 독후감에 담으면 좋을 것 같다.
“토끼와 거북이로 하세요.”
노트북으로 인터넷에 접속해 몽골어 번역기를 찾았다. 몽골에 오기 전에 엄마가 번역기 사용하는 방법을 말해줬다.
형이 『토끼와 거북이』를 읽고 어떤 느낌이었는지 몽골어로 빠르게 입력했다.
그러고는 번역하기 단추를 눌렀다. 바로 한국어로 바뀌었다. 그 글에는 선의, 핵심, 곤혹스럽다, 본심, 나태와 같이 어려운 말이 너무 많았다. 형한테 무슨 뜻인지 말해줄 수 없었다.
“타오, 모른다. 공부 못한다! 바보!”
형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 모습이 우리 반 아이들이 나를 놀리는 얼굴, 말투랑 똑같았다. 특히 바보라는 말에 숨이 거칠어졌다. 입을 꾹 다물고 노트북을 거칠게 닫는데, 형의 뱃살이 눈에 들어왔다. 공책에 뚱보, 얼꽝이라고 쓰고 아름다워, 예쁘다는 뜻이라고 말해줬다.
형이 수첩에 그 낱말들을 삐뚤빼뚤하게 적으며 중얼거렸다.
아침에 내리던 눈이 그치고 쌀쌀한 바람이 불었다. 가을이 오고 있었다.
“오늘도 다우카랑 놀 거야?”
아빠가 서류 뭉치를 챙겼다. 밤을 새워서 일하느라 피곤한 얼굴이었다.
“아니요. 말이 안 통해요.”
“쉬고 있어. 혼자 밖으로 나가지 말고. 점심시간에 올게.”
아빠가 숙소를 나갔다. 출장을 와서도 일하느라 바쁜데, 왜 나를 데리고 왔을까?
침대에 누웠는지 잠이 오지 않아 무작정 숙소 밖으로 나갔다.
“이탁오! 나 좀 보자.”
대학교의 한국어 선생님이 다가왔다. 나를 만나러 온 것 같았다.
“무슨 일이세요?”
“다우카가 어른들한테 뚱보, 얼꽝 이렇게 말했어. 네가 가르쳐 준 거라며? 그 말이 다우카한테 얼마나 큰 상처인 줄 알아?”
형은 조금만 먹어도 살찌는, 고치기 어려운 병에 걸려서 학교를 쉬고 있다고 했다.
형의 아빠는 치료비를 벌려고 한국에서 열심히 일하다가 다친 것이었다.
아이스크림, 호쇼류 대신 채소만 먹던 형이 떠올랐다. 사과하려고 스마트폰으로 미안하다는 뜻의 몽골어를 찾았다. 오칠라래였다.
마침 형이 대학교 쪽으로 걸어가고 있어서 서둘러 달려갔다.
“따오, 거짓말! 한국말 무섭다!”
형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오칠라래! 미안해요.”
거짓말을 한 이유를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형이 한국어 공부를 접을 것 같았다.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번역기에 접속해 ‘공부를 못해서 아이들한테 놀림을 받고 있어요!’라고 썼다. 그러고는 몽골어 바꾸기 단추를 눌러서 형에게 보여줬다.
“다우카 똑같다. 몸 아프다. 학교 싫다. 타오, 오칠라래.”
형의 눈가가 붉어졌다. 뚱뚱하다고 놀림을 받는 우리 반 녀석이 떠올랐다.
“아빠 아프다. 많이. 보고 싶다. 상 받는다. 한국 간다.”
형은 아빠가 편찮으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일부러 티를 내지 않고 밝은 척했나 보다. 내가 학교에서 아이들한테 괴롭힘을 당해도 집에 가서 말하지 않는 것처럼.
“상 받도록 열심히 도울게요.”
“바야를라! 타오 좋다. 엄마 아빠랑 산다.”
형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아빠랑 살아서 좋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숙소 카페에서 형과 글쓰기를 시작했다. 아빠가 두고 간 노트북을 썼다.
형과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노트북 화면에 알림이 떴다. 아빠네 회사에서 쓰는 메신저로 쪽지가 왔던 것이다.
<이 부장, 몽골에 아들을 데리고 갔다며? 그렇게 한가해? 몽골 쪽과 계약에 성공하지 못하면 회사를 관둬야 해! 지난번 독일 계약도 실패했잖아. 그리고 몽골 노동자의 병원비를 도와주자고 회사 복지 재단에 말했다며? 다른 사람을 챙길 때가 아니야.>
마우스를 쥔 손이 떨렸다. 형이 메시지를 보기 전에 노트북을 덮었다.
이번 출장이 아빠한테 엄청 중요한데, 왜 나를 데리고 왔을까?
글쓰기에 집중할 수 없어 밖으로 나가는데, 휴대전화 메시지가 와 있었다. 나한테 연락할 사람은 엄마밖에 없었다. 그런데 선생님이 보낸 메시지였다.
<탁오야, 여행은 어때? 아이들이 심하게 놀렸는데 미처 몰랐네. 앞으로 신경 쓸게. 미안해.>
메시지에는 내가 모르는 것이 많이 적혀 있었다.
일주일 전, 아빠가 가게에서 햄버거를 먹는데, 옆에 있던 우리 반 아이들이 나를 괴롭힐 궁리를 하며 떠들었나 보다. 아빠는 곧장 선생님을 만났고, 그 녀석들 부모에게 사과받았다고 한다. 녀석들도 나한테 사과 편지를 쓸 거라고 했다.
마침 아빠가 숙소로 걸어왔다. 어깨가 축 처지고 얼굴도 까칠해 보였다. 아빠한테 고맙다고 말하려다가 작게 바야를라라고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