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경복

  • 단편소설
  • 2026년 봄호 (통권 99호)
경복

인영은 골목 입구에 차를 세우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해가 완전히 떠오르지 않아서 사방이 어둡고 흐릿했다. 추운 날이기도 했다. 나는 조수석에 앉아 양손을 마주 비볐다. 인영은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가죽 커버로 싸인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차는 언제 샀어?”

“산 건 아니고, 아빠가 새 차 뽑으면서 전에 쓰던 차를 내가 모는 거야.”

“금수저가 좋네. 제네시스를 그냥 받고.”

나는 인영의 아버지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예전에도 인영의 아버지는 꽤 좋은 차를 끌고 다녔다. 검은색 보닛 위로 반짝거리는 은색 엠블럼이 달려 있던 고급 세단이라고 기억했다. 뒷좌석에는 강아지 발바닥 무늬 담요가 있어서, 인영의 아버지가 나를 집에 데려다줄 때면 나와 인영은 그걸 나누어 덮었었다. 인영은 뒷좌석에 실린 노란색 덫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게 그때 말한 그 덫이야. 노랑통덫. 어제 내가 혼자서 한번 해봤는데 잘 되더라고.”

나는 노랑이 노랑통덫으로 잡히는 것이 좀 웃기다는 생각에 피식 웃었다. 노랑은 인영이 일하고 있는 건설 현장에 들락거리는 길고양이들 중 하나였다. 인부들이 츄르나 참치 캔 같은 걸 줬더니 언젠가부터는 노랑을 비롯한 몇 마리가 건설 현장에 거의 살다시피 한다고 들었다. 인영도 영주에 머무는 내내 그들의 밥을 챙겼다. 그러다 며칠 전에는 아무래도 그중 하나를 입양해야 할 것 같다고 내게 카톡을 했다. 치즈태비 한 마리가 구내염이 있는 데다 덩치가 작아 다른 고양이들에게 너무 치인다는 이유에서였다. 문제는 노랑이 전혀 손을 타지 않는다는 거였다. 츄르를 줘도 다른 고양이들처럼 다가와서 받아먹지 않는다고 인영은 전했다. 

- 그럼 어떻게 데려가려고?

- 고양이를 잡는 덫이 있어. 

인영은 그렇게 말하고는 노란색 콘테나 박스를 개조한 덫의 이미지를 보내주었다. 

덫까지 놓겠다니 조금 과하지 않나, 하고 내가 생각하는 사이 인영은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 그날 같이 좀 가줄 수 있을까? 혼자 하려니까 긴장되서. 

나는 그러자고 했다. 인영을 돕고 싶었다기보다는 인영과 단둘이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나는 인영에게 듣고 싶은 말이 있었다. 어쩌면 오지 않는 고양이를 기다리면서 인영은 그 말을 들려줄지도 몰랐다. 

 

건설 현장은 파란색 망을 씌운 펜스로 둘러져 있었다. 길고양이 대여섯 마리가 들락거린다는 인영의 말과 달리 고양이라곤 그림자도 볼 수 없었다. 그 대신 어디에 쓰이는지 알 수 없는 나무판과 부목, 구겨진 비닐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인영은 폐공장 안쪽에 지지대를 덧대서 건물을 보강하는 작업을 먼저 진행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건물 귀퉁이에 스테인리스 그릇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는데, 인영은 거기가 고양이들 밥자리라며 그 옆에 노랑통덫을 내려놓았다. 덫의 설치는 간단했다. 입구를 철실로 반고정해두고 안쪽에 즉석밥 용기에 담은 습식 사료를 놓아두면 됐다. 인영과 나는 덫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캠핑용 의자를 펼쳐두고 앉았다. 기대와 달리 무슨 이야기를 나눌 만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폐공장은 문이 떨어져 나가 있어 무척 추웠다. 인영은 혹시라도 노랑이 아닌 다른 고양이가 덫에 먼저 들어갈까 봐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노랑이가 워낙 다른 애들한테 밀리거든.” 

인영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노랑의 사진을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업로드하기 시작했다. 설치된 덫 사진 위로 ‘노랑아 춥다 집에 가자’, ‘#길냥이구조’ 하는 텍스트가 떠올라 있었다. 그 뒤로는 노랑의 사진들이 몇 장 더 있었는데, 대부분 전에 인영이 보여줬던 사진들이었다. 노랑은 눈매와 얼굴형이 동그랗고 전신이 노르스름한 와중에 입매와 발끝만 우유를 찍어 먹은 듯 하얀, 누가 봐도 귀여운 고양이였다. 

 

인영과 다시 연락이 닿은 것은 한 달 전의 일이었다. 인영이 가게로 전화를 걸어왔고, 나는 얼떨떨한 심정으로 엄마에게서 전화를 넘겨받았다. 설마 그 홍인영이냐고 내가 묻자 수화기 너머로 짧고 높은 웃음소리가 넘어왔다. 

“응, 혹시 너희 어머님이 아직 경복에서 일하시나 하고 전화해봤어.” 인영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전화 걸어서 ‘진아 있어요’ 하니까 진짜 어렸을 때 같더라.”

인영은 일 때문에 한동안 영주의 큰이모 댁에 머물게 됐다면서, 얼굴이나 한번 보자고 덧붙였다.

“가게로 한번 놀러 와.”

나는 그렇게 말했는데, 정말 그러자고 한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며칠 뒤에 인영은 정말 가게로 찾아왔고 테이블을 정리하던 엄마와 먼저 인사를 나눴다. 엄마는 조금 민망할 정도로 인영을 반겨주었다. 어쩌면 그렇게 해서 내가 오랫동안 누구도 만나지 않고 지냈다는 것을 은근슬쩍 드러내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엄마는 친구를 챙기라며 내게서 앞치마를 빼앗아 인영의 자리에 앉혔고, 인영과 나는 복국을 한 그릇씩 먹으며 소주 한 병을 나눠 마셨다. 그러고는 근처의 실내포차로 자리를 옮겨 맥주를 더 마셨다. 인영은 그간의 안부를 전해주었는데, 대학과 대학원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지금은 건축 사무소에서 일하고 있으며, 지금은 영주의 구도심 재생 사업에 참여 중이라고 말했다. 나는 열세 살의 인영과 눈앞의 인영을 제대로 연결 짓지 못한 채로 중얼거렸다. 

“너 그래서 영주에 돌아왔구나.”

“응, 내가 영주랑 인연이 있나 봐.”

구도심 재생 사업이라면 몇 년 전부터 영주에서 자주 회자되던 프로젝트였다. 구도심에 흩어져 있던 몇몇 가게들이 연합하여 법인을 설립하고는 복합 상업 시설을 지으려고 한다는 소문을 나도 엄마에게서 들은 적이 있었다. 인영은 더 자세한 사정을 알고 있었다. 일곱 개 가게가 자금을 모아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공장 건물을 매입하고는, 상업 시설로 리모델링 및 재건축 하는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 중이라고 했다. 인영은 핸드폰을 꺼내 건축이 끝났을 때의 풍경을 구현한 스케치도 몇 장 보여주었다. 공장 건물들 안에 서점과 카페가 들어서고, 공장 부지에 새로이 지어진 건물에는 이탈리안 식당과 수제 막걸리 바가 오픈할 예정이었다. 부지 내 공터에는 테이블이 놓여서, 사람들은 거기서 커피와 막걸리를 마시고 책을 읽을 거라고, 작은 전시회가 열릴지도 모른다고 인영은 조금 들떠서 얘기했다. 

“대만에 있는 송산문화창조기지랑, 성수동 에스팩토리가 우선은 제일 가까운 모델이야. 둘 다 안 쓰는 공장 건물을 다른 용도로 활용한 곳이거든. 헐고 다시 짓는 게 아니라 버려진 공간의 이야기를 이어가는 게 핵심이야.”

나는 모두 처음 듣는 이름들이었지만 언젠가 들어본 적이 있다고 적당히 추임새를 넣었다. 인영은 이 프로젝트의 설계자 중 하나로 지금은 설계감리를 보느라 현장에 출근 도장을 찍고 있다고 했다. 

“그럼 새로 지을 건물 도면을 네가 그린 거야?”

“응, 맞아. 그렇다고 나 혼자 다 한 건 아니고. 우리 팀이 했지.”

인영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는 사는 동안 틈틈이 원망하고 결코 잘되지 않기를 바랐던 인영이 이런 식으로 눈앞에 나타난 상황이 조금 끔찍하게 느껴졌다. 

 

 

*계간 <대산문화> 2026 봄호(통권 99호)에 전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서장원
소설가, 1990년생
소설집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