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텍스트힙으로 드러난 출판의 변화

  • 기획특집
  • 2026년 봄호 (통권 99호)
텍스트힙으로 드러난 출판의 변화

우리가 모르는 베스트셀러 

문학 분야의 베스트셀러를 둘러싸고 감지되는 변화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 보려 한다. 베스트셀러에 관한 얘기는 사후적인 분석에 머무르기 쉽고, 문학의 본질을 직접적으로 관통하는 주제는 아닐 수도 있다. 다만 문학책을 기획하고 만드는 편집자이자 작품을 해석하고 평가하는 비평가이면서, 무엇보다 독자의 입장이라는 세 가지 정체성이 겹치는 지점에서 최근 몇 년간 반복적으로 체감한 변화를 개인적인 인상이나 유행의 언어가 아니라 베스트셀러가 작동하는 방식의 변화, 독자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변화, 나아가 (문학)출판 시장의 변화라는 관점에서 구조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참여해 만들고 있는 문학잡지 《릿터》에서 ‘당신이 모르는 베스트셀러’라는 주제를 다룬 적이 있다. 2024년 2/3월호였다. 최진영 소설 『구의 증명』이 계기였다. 끊임없이 신간이 쏟아지는 시장에서 2017년에 출간된 소설이 2023년 베스트셀러 목록에 등장하는 게 흔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보통 이런 현상에는 드라마화가 됐다거나 어느 인플루언서가 추천했다거나 하는 식의 가시적인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 과정이 오리무중이었다. 베스트셀러는 베스트셀러인데, 잘 모르는 베스트셀러라니. 아이러니한 상황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그 책만이 아니었다. 당시 민음사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재발견된 시집이 있으니 박은정 시집 『여름 상설 공연』이다. 그 무렵 편집회의에서 가장 많이 주고받은 질문 또한 “갑자기 왜?”였다. 이런 현상이 반복되며 단순한 우연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어쩌면 변화의 일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최근 3년 동안 다룬 커버스토리 중에서 이 호가 가장 많이 기사화가 된 것도 의미심장했다.

최근까지도 양귀자의 소설 『모순』이 출간 27년 만에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 화제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세상이 떠들썩하던 2024년 10월에도 심상치 않은 ‘역주행’이 있었다. 민음사에서 발간된 정대건 『급류』다. 앞 사례들보다 뚜렷한 판매 동기가 있기는 하지만, 신간이 아니라 구간이 된 상황에서 독자들이 생성한 콘텐츠, 소위 ‘밈’에 의해 베스트셀러가 됐다는 사실은 이 책 역시 앞선 사례들과 같은 구조 속에서 바라보게 된다. 이런 현상을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모종의 변화에 따르는 징후로 본다는 게 과장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그 변화는 뭘까. 

 

베스트셀러의 의미 변화 

지난해 가을부터 국회방송의 새로운 책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그 프로그램의 구성 중에는 ‘그때 그 책’이라는 코너가 있다. 과거 특정 시기의 베스트셀러를 통해 그 책이 읽히던 당시의 시대적 감각을 함께 들여다보자는 취지로 구성된 코너다. 실제로 1970년대, 1980년대, 혹은 1990년대의 베스트셀러들을 다시 펼쳐 보면 그 책들이 어떤 시대적 불안과 욕망, 질문들을 대변하고 있었는지가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난다. 산업화의 속도, 민주화의 열망, 중산층의 형성, 혹은 개인주의의 부상 같은 변화들이 텍스트의 주제와 서사 안에 자연스럽게 스며 있다. 베스트셀러는 그 자체로 한 시대의 공기와 맞닿아 있고 우리는 비교적 수월하게 그 책을 둘러싼 시대의 콘텍스트, 즉 이 책이 왜 읽혔는가, 나아가 그 시대는 어떤 시대였나를 설명할 수 있다.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의 기준은 출간 직후의 판매 성과, 특정 시점에 집중된 소비의 결과, 초판 부수, 출간 직후 판매량, 주간·월간 베스트셀러 리스트 같은 지표들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베스트셀러란 본질적으로 ‘지금’의 산물이고, 시간이 지나면 효력을 잃는 하나의 사건에 가까웠다. 그런데 최근의 문학 베스트셀러를 떠올리면 이러한 방식의 설명이 점점 더 작동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분명 많이 읽히고 있는데, 그것이 특정 사회적 국면이나 동시대적 사건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오히려 요즘의 베스트셀러들은 하나의 시대를 대표하기보다 각기 다른 독자들의 개인적인 시간과 만나는 방식으로 읽히는 경우가 많아 보인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베스트셀러는 더 이상 시대를 대표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베스트셀러의 시간을 이해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져야 하는 것일까? 과거 베스트셀러가 비교적 동질적인 사회적 시간 속에서 읽히며 하나의 시대감각을 집약했다면 오늘날 베스트셀러는 훨씬 더 파편화된 독자들의 시간 속에서 비동시적으로 읽히고 있다. 최근 문학 베스트셀러들은 특정 시대를 대표하기보다 각기 다른 개인의 삶의 국면 속에서 현재형으로 반복 호출되며 축적되는 방식으로 형성된다. 마치 우리가 SNS 안에서 각자의 시간 선을 따라 살아가듯이 말이다. 

문학 작품을 기획하고 평가하는 현장에서 체감하는 변화는 이 지점에서 좀 더 분명해진다. 최근 독자들이 만들어내는 베스트셀러 가운데 상당수는 더 이상 출간 직후라는 단일한 시간 위에서 탄생하지 않는다. 이미 출간된 텍스트들이 각기 다른 독자들의 삶의 국면과 만나면서 서로 다른 ‘현재’ 속에 반복적으로 호출되는 과정에서 베스트셀러가 형성된다. 이때 베스트셀러는 하나의 사건이라기보다 시간 속에서 계속해서 재등장하는 현상에 가깝다. 출간이라는 출발점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더 이상 결정적인 기준은 아니다. 텍스트는 독자의 삶과 만나는 순간마다 새롭게 현재화된다.

이러한 변화는 소위 ‘텍스트힙’이라는 이름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텍스트힙은 종종 “요즘은 책 읽기가 유행이다”라는 식으로 단순화되어 이야기되지만 내가 느끼는 결은 조금 다른데, 이 경향이 가리키는 핵심은 독서의 양적 증가나 일시적인 문화적 트렌드가 아니라 독자가 텍스트를 선택하고 관계 맺는 방식의 변화라고 해야 할 것이다. 텍스트힙적 독서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 지금 가장 많이 팔리는 책인가가 아니라 이 텍스트가 나의 현재와 어떤 방식으로 접속하는가이기 때문이다. 

 

텍스트힙의 의미  

내가 경험하는 독자들의 뚜렷한 특징은 출판 시장이 제시하는 신간 중심의 시간표에만 따라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알고리즘 추천, 타인의 독서 경험, SNS를 통한 간접적 만남,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삶의 조건과 감정 상태를 거쳐 텍스트를 주체적으로 호출한다. 이때 독서는 비단 소비가 아니라 선택이고, 동조가 아니라 관계 맺기 성격을 더 강하게 띤다. 독자들에게는 더 이상 ‘이번 달에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나 ‘요즘 다들 읽는 책’이라는 외부 기준에만 의존하지 않는 경향이 강해진다. 오히려 지금의 나에게 이 책이 필요한지, 지금의 감정과 상황에 이 문장이 닿는지를 훨씬 더 중요하게 고려한다.

이때 독서의 동기는 정보 습득이나 교양 축적의 성격에서 자신의 삶을 해석하고 감각을 정렬하기 위한 시도로 이동한다. 이러한 변화는 독서 후기와 추천 방식에서 특히 분명하게 드러난다. 과거의 추천이 작품 완성도나 주제 의식, 사회적 의미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면 독자들 추천은 훨씬 더 사적일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시간 감각을 동반한다. 독자들은 “이 책이 왜 좋은가”를 설명하는 것보다 “내가 언제 이 책을 읽었는가”, “어떤 상태에서 이 문장을 만났는가”를 먼저 이야기한다. 책은 하나의 객관적 대상이 아니라 특정한 삶의 국면과 결합한 기억의 형태로 서술된다. 이런 추천은 필연적으로 비동시적이되, 비동시성이 또 다른 독자의 현재와 연결될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식이다. 

이 지점에서 텍스트힙이라는 경향을 다시 이해할 수 있다. 텍스트힙은 읽기의 유행이나 문화적 트렌드 자체가 아니라 독자가 자신의 시간과 감각을 기준으로 텍스트를 선택하고 재배치하는 태도의 집합이다. 독자들은 더 이상 신간과 구간을 엄격히 구분하지 않는다. 오래된 책과 신간, 문학과 비문학, 고전과 에세이를 넘나들며 각자의 독서 지도를 구성할 뿐이다. 그렇다면 왜, 지금, ‘텍스트힙’이라는 말이 생겼을까. 문학 출판 시장의 언어로 보자면 텍스트힙은 무엇보다 10·20대 독자의 가시화를 의미한다. 대량 독자는 아니지만 뚜렷한 취향과 강한 자기표현 욕구를 가진 독자층. 이들은 단순히 책을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나는 이런 텍스트를 읽는 사람이다”라는 정체성을 드러내고 싶어 한다. 

여기에 읽기 방식의 변화가 겹친다. 완독 중심에서 발췌·인용·캡처·공유로, 서사 중심에서 문장·감각·태도 중심으로의 변화, 그리고 독서의 퍼포먼스화가 더해진다. 이러한 변화를 출판계가 뒤늦게 포착했고, 그것을 하나의 이름으로 묶은 것이 ‘텍스트힙’ 아닐까. 텍스트힙은 10·20대 독자가 새롭게 생겨났다는 뜻이라기보다 늘 존재해 왔던 10·20대 독자가 문학을 통해 형성해 온 감각을 취향과 정체성의 언어로 드러내기 시작한 순간을 출판 시장이 뒤늦게 포착한 이름이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변화에 대한 반응

요즘의 읽기는 빠른 동시에 느리다. 정보는 빠르게 소비되지만, 어떤 문장은 오랫동안 붙잡힌다. 독자들은 책을 완독하지 않더라도 특정 문장이나 장면을 오래 기억하고 반복적으로 떠올린다. 그 과정에 ‘밈’화된 콘텐츠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편집자의 역할 역시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독자들이 체감하는 변화된 시간성 위에서 작동하는 베스트셀러는 기획 단계에서 완결되지 않는다. 그것은 출간 이후에도 독자와 텍스트 사이에서 계속해서 생성되는 과정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편집자의 일은 더 이상 출간 시점의 화제성을 극대화하는 데에만 집중하는 존재가 아니라 텍스트가 다양한 시간 속에서 다시 호출될 수 있도록 조건을 감지하고 반응하고 기획하는 역할을 요구받는다. 다시 읽힐 수 있는 언어를 만들고, 사라지지 않는 질문을 남기고,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준비된 텍스트’ 상태를 만들어야 한다. 

오늘날의 베스트셀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판매 데이터나 순위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독자들이 어떤 시간 감각으로 책을 읽고 있는지, 어떤 순간에 어떤 텍스트를 호출하는지를 함께 살펴봐야만 한다. 베스트셀러란 단지 많이 팔린 책이 아니라 여러 삶의 국면들 속에서 반복적으로 선택된 책이며, 그 선택의 누적이 만들어낸 시간적 현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출판은 더 이상 즉각적인 반응만을 요구하는 산업이 아니라 독자의 시간을 신뢰하고 기다리는 문화적인 실천에 더 가까워지고 있는 측면도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은 문학의 희망일까, 위기일까. 텍스트힙에는 분명 ‘문학을 읽는 사람은 소수’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다수의 행위는 ‘힙’과 배치되니까. 그러나 이는 문학이 여전히 10·20대의 감각을 열어젖히는 장르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세상이 바뀌었지만, 여전한 것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고, 그 세대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장 안으로 진입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한 것이다. 다만 출판 기획자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변화는 불안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예측할 수 있는 판매 곡선이 사라지고 출간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난 책이 갑작스럽게 다시 주목받는 현상이 반복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이 역시, 텍스트의 수명이 연장되고 출판의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할 것이다. 베스트셀러가 단기간의 성과로 소진되지 않고 여러 번의 ‘현재’를 통과하며 살아남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기획자이자 비평가이면서 무엇보다 독자인 내게 중요한 건 희망도 위기도 섞여 있는 현상에서 희망의 속성을 더 믿고 싶은 마음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런 내 인식이 너무 낭만적인 태도인지 아닌지는 시간이 판단해 줄 것이다.  

박혜진
평론가, 편집자
평론집 『언더스토리』, 소설 해설집 『퍼니 사이코 픽션』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