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순례
사상가와 소설가 사이에서

샤를 루이 드 스콩다·라 브레드와 몽테스키외 남작 서간체 소설 『어느 페르시아인의 편지』

  • 명작순례
  • 2026년 여름호 (통권 100호)
사상가와 소설가 사이에서

샤를 루이 드 스콩다·라 브레드와 몽테스키외 남작 서간체 소설 『어느 페르시아인의 편지』

 

몽테스키외라는 이름은 이미 한국인들에게도 친숙한 이름이다.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법조인이자 정치 사상가, 철학자. 그러나 사실 그는 법조인이자 사상가이기 이전에 재기 발랄한 문체와 날카로운 풍자를 구사하는 문인으로서 먼저 이름을 알렸다. 그가 당대 프랑스 문학계를 뒤흔들어놓으며 문인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해 준 작품이 바로 『어느 페르시아인의 편지』이다.

『어느 페르시아인의 편지』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루이 14세가 사망할 당시 몽테스키외(Montesquieu, 1689~1755)는 26세 젊은 남작 귀족이었다. 평화롭고 상업이 번창한 부르주아 도시, 보르도에 정착했던 그는 부유한 칼뱅파 가문의 사위로서, 아버지와 숙부의 뒤를 이어 브레드와 몽테스키외의 수장이자 보르도 고등법원 수석 판사직의 주인으로서 충분히 자신의 최고 지위를 뽐내며 그렇게 다른 유사 계층 사람들처럼 명예와 부 속에서 평온한 삶을 살아갔을 만도 했다. 그런 그가 당대의 프랑스 왕권과 종교를 비롯하여 프랑스 사회 전체를 신랄하게 비난하고 있는 『어느 페르시아인의 편지』 집필에 착수하게 된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것은 바로 그가 그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진정한 이야기꾼이었기 때문일 것이며, 무엇보다도 자신의 새로운 철학 사상을 전하는 데 재미있고 흥미 넘치는 소설만큼 대중에게 효과적이고 영향력 있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가상의 페르시아인 여행자들 시선을 통해 프랑스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한 『어느 페르시아인의 편지』는 출판과 동시에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 인기만큼이나 당대 사회에 커다란 논란과 비난을 불러일으킨 화제작이기도 했다. 몽테스키외를 풍자와 비판의 대가로 만들어 준 이 작품은 1721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익명으로 출판되었다. 그는 본 작품과 관련해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기를 원했다. 루이 14세의 절대 권력과 그에 못지않은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던 종교의 공존이라는 당시의 삼엄했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이러한 신중함은 지극히 당연하고도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본 작품의 출간을 계획하고 이를 끝까지 실행에 옮긴 몽테스키외의 열정과 용기야말로 진정 높이 사지 않을 수 없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제 겨우 서른을 바라보던 나이였던 몽테스키외의 총명함과 박식함이 이 소설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는 사실이다. 독자들에게 절로 경이감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이 작품은 매우 논리적이며 풍부한 학문적 깊이를 담아내고 있다. 훗날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법의 정신』의 토대가 된 이 작품은 ‘『법의 정신』의 재치 있고 과감한 서문’이라는 별칭에 걸맞게 정치·경제·철학·종교·사회 등 다양한 분야의 문제들을 매우 분석적이고 풍자적으로 다루고 있다. 바로 이러한 작품 성격이 아직도 많은 학자를 ‘『어느 페르시아인의 편지』는 과연 소설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망설이게 하며, 몽테스키외를 철학자들에게는 문인으로 문인들에게는 철학자로 보이게 한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어느 페르시아인의 편지』는 엄연한 소설이며, 또한 진정한 풍자소설이자 혁명 소설 그리고 계몽주의 소설임이 틀림없다.

작품 속 인물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모두가 다 허영에 차 있고 탐욕스러우며, 무엇이든 쉽게 믿어버리는 어리석기 그지없는 인물들이다. 온갖 부류의 위선자들, ‘사이비’ 고해 신부들, 조그마한 양심의 가책조차 없는 몰인정한 징세 청부인들, 나이를 숨기느라 급급한 부인네들, 심지어 막강한 절대 권력의 국왕과 그 비열하고 교활한 추종자들, 나아가 교황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온갖 유형의 인물을 향한 작가의 신랄한 풍자와 언어유희, 대조법 등은 분명 독자들이 작품 곳곳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요소들이다.

이 작품은 당시 프랑스를 넘어 유럽 문학계에 서간체 소설의 유행을 불러오며 동양을 무대로 한 여러 서간체 소설의 모델이 되었다. 당대의 수많은 작가에게 편지 형식의 소설을 쓰는 법을 가르쳐 주며 서간체 소설 도입을 가져온 이 소설은 그 저술 기법에 있어 분명 하나의 혁명 소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 우스벡과 리카는 실험과 관찰을 통해 서양 사회를 탐색해 가는 인물들로 진정한 계몽주의 시대정신을 대변한다. 실험적 방법론, 과학의 찬양, 합리주의, 상대주의, 결정론, 비평 정신, 관용과 자유 정신, 법과 정의의 엄격함, 범세계주의, 사교성, 행복에 관한 관심, 합리적 정치와 종교관 등 그야말로 몽테스키외의 철학 사상이 작품 곳곳에 배어 있는 이 작품이야말로 부인할 수 없는 프랑스 초기 계몽주의의 제일가는 걸작임이 틀림없다.

박식함과 총명함에 있어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었던 프랑스 계몽주의 시대 대표 사상가, 몽테스키외는 이렇게 소설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자신의 철학 사상을 소개하는 데 성공했던 최초 철학자이다. 비록 위대한 사상가나 철학자라는 이름에 가려 소설가로서 그 가치가 충분히 조명되지는 못했을지라도, 그는 이성적인 분석력과 예술적인 표현력을 결합해 딱딱한 정치철학을 문학이라는 그릇에 담아 대중에게 전달한 선구적인 문인이었다. 이것이야말로 3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그가 여전히 후대의 독자들을 매료시키고 있는 진정한 비결이다.

『어느 페르시아인의 편지』는 사상가로서의 예리한 통찰력과 소설가로서의 문학적 역량을 한데 아우른 몽테스키외의 진면목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어느 페르시아인의 편지』는 대산문화재단의 외국문학 번역지원을 받아 필자의 번역으로 문학과지성사에서 대산세계문학총서 181번으로 출간되었다.

이자호
번역가, 1976년생
역서 『어느 페르시아인의 편지』 『거짓말 학교』 「도시는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