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후기
문체라는 시련

일역 은희경 소설집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 번역후기
  • 2026년 여름호 (통권 100호)
문체라는 시련

일역 은희경 소설집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은희경의 문장을 옮기며 나는 무엇보다도 문체의 결을 어떻게 살리느냐는 문제에 오래 매달렸다. 압축과 응축이 동시에 밀려오는 듯한 밀도 높은 은희경의 문체는 푸른 불꽃 같은 차가운 열기를 담고 있으며 언제나 단단하고 솔리드한(solid) 공기에 감싸여 있다.

일본어는 한국어와 어순이 같은 데다가 동의어로 쓰인 한자어가 많다는 특성상, 이를 일본어로 옮길 때 아무래도 경직된 문장이 나오기 쉽다. 그렇다고 가독성을 우선으로 매끄럽게 번역하면 작가 특유의 문체는 사라져 버린다. 그 사이의 최적한 지점을 찾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과연 어떻게 하면 이 원문의 질감(texture)을 살려서 번역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이 바로 어떻게 하면 원작의 목소리(voice)를 제대로 들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과 같은 뜻이기도 하다. 이번 번역 작업을 통해 나는 시종일관 이 문체 살리기에 집착하고 집중했다.

원문 질감을 파악하려고 할 때 지금까지는 항상 나의 감각에 의존해 왔다. 원문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어느 순간 원문 자체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순간이 있는데 악기를 연주할 때처럼 양쪽 언어의 음정을 ‘튜닝’하면서 번역을 시작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느낌과 감각만으로는 그 튜닝에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불안감이 밀려와 번역 문장을 읽기가 두려웠다. 번역을 거의 완성하고도 꿈 속에서까지 계속 고민했다. 이 지극히 감각적인 과정을 좀 더 구체화할 필요가 있었다. 더 확실한 방법을 찾고 싶었다. 앞서 말한 은희경의 문체가 갖는 응축과 높은 밀도는 답답함이나 갑갑함과는 전혀 다르다. 그 사이사이에 말하지 않은 여백이나 냉정한 시선 속에 숨어 있는 체온, 그리고 문장과 문장 사이에 남은 숨들이 확실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소들을 빠짐없이 가지고 나가야 했다.

이런 눈에 보이지 않는 요소들 즉 원문의 목소리를 제대로 관찰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시도를 해보았다. 우선 화자는 어디에 서 있는지를 확인했다. 화자와 서사 혹은 등장인물과의 거리를 알면 화자의 톤도 자연스레 정해지는 듯했다. 두 번째는 호흡이다. 원문에는 악보처럼 리듬이나 템포가 표시되어 있지 않다. 그렇기에 원문 뜻을 정확히 옮겼다 하더라도 리듬과 템포가 안 맞으면 음악(작품)이 아름다울 수 없다. 이 리듬과 템포를 잡을 수만 있다면 원문의 호흡과 함께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머지는 어휘들의 온도와 농도, 즉 어휘 질감을 인지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어두움을 표현하는데도 습도가 높은 표현인지, 채도가 낮고 옅은 표현인지, 아주 진한 표현인지 등 어휘 질감을 파악하는 것인데, 이 또한 많은 동의어 한자어 속에서 적절한 표현을 찾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렇게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가며 작업은 진행되었다. 과연 원문의 질감을 살리면서 일정한 가독성도 동시에 확보할 수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이 길고 힘든 모든 과정에서 행복하지 않은 순간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번역책이 출간된 후 어떤 일본 독자분이 메시지를 보내줬다. 감명 깊게 읽었다는 어느 한 페이지 사진과 함께. 표제작인 단편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에 나온 것이었는데, 무려 19줄이나 되는 문장이다. 나는 놀라웠다. 개인적으로 나 역시 가장 좋아하는 아름다운 장면인데다, 말 그대로 숨을 참으며 단숨에 번역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 리듬과 템포를 끝까지 찾으면서.

문체의 결이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심오하고도 다층적인 그 무엇이다. 번역가로서 미혹될 수밖에 없는 이 문체와의 조우만큼 행복한 일도 없을 것이다. 

 

일역 『たったひとつの雪のかけら(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는 대산문화재단의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을 받아 필자 번역으로 일본 슈에이사(集英社) 출판사에서 2026년 출판되었다. 

오영아
번역가, 1973년생
역서 『百の影(백의 그림자)』 『大都會の愛し方(대도시의 사랑법)』 『かけがえのない心(단순한 진심)』 『世界の果て、彼女(세계의 끝, 여자친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