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간의 탈주극 끝에, 무사히 집으로 돌아간 늑대 ‘늑구’는 ‘스타’가 됐다. 도심에 맹수가 출현했다는 소식에 불안해하던 것도 잠시, 늑구가 대전 오월드에 머무르던 당시 모습이 공유되며 불안감은 응원으로 바뀌었다.
늑구가 무사히 복귀한 이후 늑구 구조를 함께한 진세림 수의사는 tvN 예능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섭외됐으며, 대전의 한 빵집은 늑구의 무사 귀환을 기념하는 ‘늑구빵’을 출시해 판매했다.
그러나 늑구 이야기를 담은 책이 발 빠르게 등장하자, 분위기는 싸늘해졌다. 어린 늑대가 울타리 바깥에서 겪는 여정을 담은 동화 『늑구의 꿈』과 『아기 늑대 늑구의 이야기』, e북 『늑구의 여행』까지. 무려 3권의 책이 탈출 사건 3주 안에 출간된 것에 대해 ‘과도한 숟가락 얹기’라는 비난이 이어진 것이다. 이례적인 제작 속도에, 인공지능(AI) 및 생성형 AI를 활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 어린 시선도 쏟아졌다. 실제로 『늑구의 여행』에는 ‘AI 활용 제작도서’라는 문구가 소개에 포함됐다.
짧은 해당 문구만으로는 AI가 어떤 방식으로, 또 얼마나 활용됐는지 그 사정을 모두 파악할 수는 없다. 다만 출판 시장을 향한 독자들의 낮아진 신뢰만큼은 분명하게 실감할 수 있었다.
이미 지난해 AI의 침투가 출판 시장을 어떻게 위협할 수 있는지 입증된 바 있다. 개별 사례를 넘어, 한 출판사가 AI의 도움을 받아 1년 동안 수천 권의 책을 쏟아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구조적 남용에 대한 우려가 나온 것이다. 출판사 루미너리북스가 자체 개발한 AI 기술을 활용해 경제·패션 등 여러 분야의 도서를, 1년 동안 약 9천 권 출간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이 과정에서 납본 보상금이 화두로 떠올랐다. 현행 도서관법에 따르면 도서 출간 시, 법정 기관(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의무적으로 일정 부수를 제출해야 하며, 국가는 이에 대해 보상금을 지급하고 있다. 이때 AI로 대량 생산한 도서까지 그 대상에 포함될 경우, 국가 재원이 낭비될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루미너리북스는 “당사는 국립중앙도서관을 통해 납본 제도를 통한 보상금을 받은 바 없다”라고 해명했으나, 해당 제도의 ‘구멍’을 메우기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출판인들도 적극적으로 대응 중이다. 지난달 한국출판인회의는 서울 마포중앙도서관에서 ‘AI 시대의 출판 생태계, 기회와 위기 사이에서 길을 찾다’를 주제로 긴급 포럼을 열었다. AI 대응책을 고민하기 위해 출판사와 작가, 서점, 도서관 관계자들이 대거 참여했다.
이 자리에서 납본 보상금 제도의 개선에 대한 지적과 함께, AI가 활용된 도서에 표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류영호 교보문고 부장은 패널 토론에서 “규제의 양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원칙과 구조로 시장의 신뢰를 유지할 것인가를 설계하는 것이 필요하다”라면서 AI 콘텐츠 표기와 AI가 어느 단계에서, 어떤 방식으로 개입했는지 구체적으로 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정인 덕성여대 에이아이 다이나인포(AI DynaInfo) 연구소 교수 역시 “출판 분야에서는 AI 활용 출판물 표시제를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의견을 냈다. ‘사람이 책임 편집한 책’과 ‘AI가 전부 만든 책’이 공존할 수도 있는 상황 속, ‘투명한’ 정보 공개가 신뢰를 보장하는 길이 될 수도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창작자들은 AI가 문학의 가치를 위협할 수 없다는 믿음을 드러냈다. 근미래를 배경으로, 개개인의 비서 역할을 하며 사람들 일상에 깊게 침투한 AI 비서 이야기 『포나』를 쓴 정은우 작가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AI를 자기 생각에 관해 이상한 점을 발견하는 수단으로는 쓸 수는 있을지 모르겠다. 다만 문장 자체를 AI가 써버리는 건 안 된다. 글을 쓰다 보면 막히는 경우가 있다. 그만큼 중요하거나 쓰는 이의 '무언가'를 건드리는 부분일 확률이 높다. 그때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하지?’, ‘이 문장 뒤 이 문장이 나와도 되나?’ 이런 고민을 하게 되는데, 이때 그걸 어떻게 돌파하고, 또 변주를 주는지가 쓰는 이의 몫이다. 결국은 선택인데, 그 선택들이 모여 그 작가의 작품이 탄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번역대학원대학교 설립을 추진 중인 한국문학번역원 역시 AI 시대, 여전히 번역가를 양성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를 짚으며 “AI는 사람만큼 문학적 소양을 갖출 수 없다”라고 전망했다. 윤선미 아카데미 지도교수는 번역 분야에서의 AI 역할에 대해 “효율적이기 때문에 빠른 번역은 가능하다. 그런데 작가가 작품을 쓰는 것처럼, 번역도 오랜 시간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맥락을 모두 이해해야 좋은 번역이 나온다.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말했다. 도종환 위원 역시 “(번역은) 기계적인 언어의 전환이 아니라, 맥락을 이해하고 정서적 소통을 끌어내는 작업이다. 원어민 독자와의 깊은 공감대를 위해선 언어의 정확성은 물론, 감수성과 표현 체계를 섬세하게 번역해야 한다”라고 언급했다.
이들의 표현대로 ‘숨겨진 의도’, ‘정서적 소통’ 등 문학을 즐기는 독자들 역시 AI의 ‘효율성’과 ‘기계적 완성도’만으론 느끼기 힘든 가치를 찾고 있다. 결국 제도적 뒷받침을 고민하는 과정이 곧 문학 가치에 대한 신뢰를 지키는 일이 된 셈이다. AI의 침투가 이미 현실이 된 지금, 적절한 제도를 서둘러 마련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