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울음소리, 인형 눈 공포증

  • 2026년 여름호 (통권 100호)
이웃집 울음소리, 인형 눈 공포증

이웃집 울음소리

 

그 아이가 슬픈 노래 부르면

눈이 작아지고

눈길이 아래를 향하고

어디에선가 금이 그어지는 소리

 

거기 금과 금 사이에 흰색이 칠해지고

공기에도 칠해지고

급기야 아이 얼굴에도 아이 몸에도

이제 아이가 벽인지 아이가 문인지

아이가 건물에 달라붙은 흰 페인트인지

알아보는 사람 없고

아이가 입을 벌려도 모르고

아이가 발을 들어도 모르고

 

그러니 길 가시다가

누가 벽 속에서 소리를 지르나

궁금해 보시든지

 

그 아이가 슬픈 노래 부르면

옷을 벗어버리고 싶고

모자를 벗어버리고 싶고

 

눈썹이 파르르 떨리고

양손마저 바닥에 떨어뜨리고 싶고

어디에선가 금이 그어지는 소리

 

거기 금과 금 사이 금을 넘어

이번에 파란색이 칠해지고

급기야 그 색이 아이 피부에 칠해지고

그 색이 피부 아래로 스며들고

칠하는 손길은 안 보이지만

아이는 파란색에 잠겨가고

이제 아이가 파란 입술인지 바다인지 기선인지

아무도 몰라보고

 

그러니 해변을 걷다가

누가 물속에서 소리를 지르나

궁금해 보시든지

 

 

 

인형 눈 공포증

 

여름에서 겨울로 전 세계를 건너다니는 철새의 시점으로

이 시를 쓰기로 해

 

시인 한 명이 광대한 얼음장 밑에서 물고기같이

툭 불거진 눈으로 두리번거리고 있어

 

느닷없이 덤프트럭이 언 강물 한가운데

 

루비를 쏟고 있어

화석화된 혈액들이 쏟아지고 있어

 

노을의 피를 머금고 응결한 것, 참담한 광채, 저녁 루비, 빨간 슬픔

 

미얀마 양곤의 거리에서 남루한 남자가 손바닥을 펴고 보여준 것

무거운 바위 속에서 눈을 뜬 채 몇 천만 년 기다린 것

 

선인장처럼 따가운 시인의 가슴에서 제자리 뛰던 루비

나는 내 몸을 이 빨간 슬픔에 내주기로 했다

 

피눈물이 응고해서 만든 것 중에 가장 단단한 것

머리가 없는 부처의 정수리에 지금 박혀 있는 것

 

물고기 아빠를 품에 안은 채 샤갈이 벨라의 장례식에 갈 때

두 날개로 두 눈을 가린 채 타원형으로 빙빙 도는 흰 닭의 붉은 눈

 

아이의 집 침대 위에는 두 손으로 두 눈을 가린 곰 인형의 충혈된 눈동자

저 슬픈 곰 인형의 신체화 증후를 어떡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휘장 같은 저 옷들 속을 돌아다니며

뼈를 부러뜨리는 저 빨간 루비를 어떡해

 

죽은 아이들이 죽은 게 아닌 것 같은 날

연약하고 작은 것들은 죽음을 통과해 계속 나아갈 수 있습니다

 

나는 피로 젖은 신발을 안고 떠나가는 아이의 손바닥 위에

물고기의 빨간 심장 같은 이 시의 정수가 있다면 그것을 루비처럼 올려 주고 싶습니다

김혜순
시인
시집 『당신의 첫』 『슬픔치약 거울크림』 『죽음의 자서전』 『날개환상통』 『싱크로나이즈드 바다 아네모네』, 산문집 『않아는 이렇게 말했다』, 시론집 『공중의 복화술』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