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식탁
조기인지 굴비인지 황석어인지 모를

  • 인생식탁
  • 2026년 여름호 (통권 100호)
조기인지 굴비인지 황석어인지 모를

아버지 생전에 내게 한 마지막 부탁은 틀니를 빼서 닦아달라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언제부터 틀니를 끼기 시작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환하고 고른 치열을 손가락으로 두들기며 다시 고기를 뜯어 먹을 수 있어 좋구나! 하던 장면만은 선명하게 기억난다. 진짜 고기 맛은 씹는 맛. 아버지의 틀니는 식탐과 동의어였다.

그런데 틀니는 어떻게 빼는 건가? 잡아빼야 하나 들어올려야 하나 밀어야 하나 당겨야 하나. 어디부터가 가짜이고 어디까지가 진짜인가. 어찌어찌 틀니를 빼내는 데 성공하기는 했는데, 손에 쥔 틀니의 물성과 여전히 남아 있는 체온의 따스함이 무척이나 낯설고 기이했다.

어머니를 대신해 간병인 역할을 하겠다고 자처했지만, 환자 보호자로서 어떤 일들을 해야 하는지 아는 바가 없었다. 나는 면회 시간이나 잠깐씩 들르는 방문자에 불과했다. 우리가 다정한 부녀 사이였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사이가 좋지 않은 편에 속했다. 그런 내가 아버지와 단둘이 있겠다는 것은 몇 날 며칠 간이침대에서 쪽잠을 잤던 엄마를 잠시라도 집에 보내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왜 계속해서 틀니를 끼고 있었던 걸까? 먹기를 거부했으면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온갖 기계장치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아버지는 음식 섭취를 거부했다. 먹지 않는 것 말고는 본인이 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지 않으냐 했다. 어르고 달래고 윽박지르고 매달려도 고집을 꺾지 않았다. 기를 쓰고 입술을 앙다문 채 고개를 가로저었다.

 

잘 구운 생선을 볼 때면 저절로 아버지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잘 발라 입에 넣어주면 얼마나 좋을까.그야말로 죽은 엄마 젖 빨기, 죽은 아버지 밥 먹이기이다.    

 

마침, 저녁 배식 시간이 왔다. 병실에 음식 냄새가 돌고 달그락달그락 식기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식판을 보니 추석이라고 나름 명절 음식 구색을 갖추려 애쓴 흔적이 보였다. 냉동 제품인 것이 분명한 동그랑땡과, 흉내만 겨우 낸 허여멀건한 잡채와 숙주나물 겉절이가 나왔다. 그리고 손가락 두 개 정도 크기의, 조기 혹은 굴비, 어쩌면 황석어일지도 모를 생선구이.

그렇지 추석 차례상에는 굴비가 올라야지. 아버지는 굴비를 좋아했다. 굴비보다는 생조기. 얼리거나 말리지 않는 조기라면 사족을 못 썼다. 젓가락을 대면 그대로 후루룩 풀어져 버리는 야들야들함을 사랑했다. 굽는 것보다는 훌렁하게 매운탕으로 끓여 숟가락을 퍼먹었다. 손가락만 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버지가 최고로 좋아하는 조기. 한번 권해나 보자, 싶었다. 음식을 거부해 오던 아버지가 먹겠다 할 리는 없지만, 그래도 조기라면.

아버지 추석이라 조기가 나왔네? 조기 살만 살살 발라줘 볼까? 작아도 아주 맛나게 생겼어. 추석이잖아, 응? 조기야, 조기. 일단 요거 한 입만 먹어보면 어때? 

일단 조기 살을 발라 아버지 입에 갖다 댔다. 틀니도 없이 오므라든 입술에 살포시. 고개를 저을 줄 알았는데 웬걸, 혓바닥이 마중을 나왔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조기 살을 덥석 받아 삼켰다. 쩝쩝 입맛을 다시기까지 했다. 맛있지? 끄덕끄덕. 다시 살을 발라 한 젓가락, 또 한 젓가락. 아이 예쁘다, 아이 잘 먹는다. 아이 맛있다. 한 입만 더. 아버지는 어린 새처럼 입을 쫙 벌려 잘도 받아먹었다. 그렇게 한 젓가락 또 한 젓가락. 마침내 실오라기만 한 조기 살까지 남김없이 발라 더 이상 줄 것이 없을 때까지 아버지는 틀니 없는 잇몸과 혀로 조기 살을 탐했다. 할 수만 있다면 옆 환자에게 조기 한 마리만 빌려주면 안 되겠냐, 사정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오랜만에 맛본, 아는 맛 좋아하는 맛의 정점. 가난했던 시절 황석어 대가리만 씹어도 좋았다던, 그래서 배때기가 노란 참조기만 보면 너도 먹어봐라, 할 겨를도 없이 그저 제 입으로 넣기 바빴던 바로 그 맛. 틀니가 없어도 입에 넣는 순간 그대로 녹아버리는 조기 살의 맛.

식사를 마치고 난 후 우리는 손을 잡은 채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기 맛을 봐서 기운이 돌았는지, 아니면 평소 살갑기는커녕 가까이 가려고도 않던 딸이 예쁘다 착하다 좋다 밥을 먹여줘서 좋았던 것인지, 말씀이 꽤나 많으셨다. 아버지는 장례 절차나 당부의 말 같은 죽음 이후의 일들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런 얘기 뭣하러 하느냐 타박하지 않았다. 그래도 죽음은 아직 먼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이 들으면 좋아할 만한 조카들 근황이나 자랑거리를 들려주었다.

틀니를 깨끗이 씻어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잠들어 있었다. 잠든 아버지의 귀에 대고 내일은 당신 좋아하는 동그랑땡을 해 올 테니 틀니 끼고 먹자 말했다. 하지만 틀니는 다시 제 위치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날의 추석 특식은 아버지 생애 마지막 식사였다. 아버지는 그러고 나서 사흘 후 돌아가셨다.

나는 그날의 식사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틀니도 없이 넙죽넙죽 받아 드시던 조기 새끼에 대해. 그것은 아버지의 마지막 배려였던 것 같다. 나는 왜 좀 더 다정하지 못했을까. 소설 쓴다는 사람이 왜 유독 그의 삶에 관해서라면 이해하려 하지 않았을까. 엄마 표현대로라면 ‘죽은 자식 불알 잡기’이고 ‘죽은 엄마 젖 빨기’인 뒤늦은 후회를 덜어주려는 아버지 배려. 그래도 마지막 식사는 네가 챙겨주지 않았느냐, 등을 쓰다듬는 듯했다. 그런 느낌이 들면 괜히 시린 눈을 흘겨보는 것이다. 이왕 추석 특식이라면 좀 큼지막한 걸로 주지. 조기 새끼인지 황석어인지 모를 것을 누구 입에 붙이라고. 또 잘 구운 생선을 볼 때면 저절로 아버지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잘 발라 입에 넣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야말로 죽은 아빠 밥 먹이기이다. 

 

천운영
소설가
소설집 『바늘』 『명랑』 『그녀의 눈물 사용법』 『엄마도 아시다시피』 『반에 반의 반』, 장편소설 『잘 가라 서커스』 『생강』, 산문집 『돈키호테의 식탁』 『쓰고 달콤한 직업』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