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마음의 당신

  • 기획특집
  • 2026년 여름호 (통권 100호)
마음의 당신

   김병운, 한용운의 시 「당신의 마음」을 담아

 

 

당신의 마음

 

나는 당신의 눈썹이 검ㅅ고 귀가 갸름한 것도 보앗슴니다

그러나 당신의 마음을 보지 못하얏슴니다

당신이 사과를 따서 나를 주랴고 크고 붉은 사과를 따로 쌀 때에 당신의 마음이 그 사과 속으로 드러가는 것을 분명히 보앗슴니다

 

나는 당신의 둥근 배와 잔나비 가튼 허리와를 보앗슴니다

그러나 당신의 마음을 보지 못하얏슴니다.

당신이 나의 사진과 엇든 여자의 사진을 가티 들고 볼 때에 당신의 마음이 두 사진의 새이에서 초록빗이 되는 것을 분명히 보앗슴니다

 

나는 당신의 발톱이 희고 발꿈치가 둥근 것도 보앗슴니다

그러나 당신의 마음을 보지 못하얏습니다

당신이 떠나시랴고 나의 큰 보석 반지를 주머니에 너실 때에 당신의 마음이 보석 반지 넘어로 얼골을 가리고 숨는 것을 분명히 보앗슴니다

 

 

 

마음의 당신

 

떠나는 당신에게 밥다운 밥을 해주고 싶었는데 잘 안됐습니다. 어젯밤 잠들기 전에 떠올린 메뉴는 언젠가 당신이 이건 나중에 장사를 해도 되겠다며 한껏 치켜세워준 적이 있었던 고추장찌개였는데, 아침에 일어나 냉장고를 확인해 보니 돼지고기도 애호박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없이 가볼까, 돼지고기도 애호박도 없는 고추장찌개에 한 번 도전해 볼까 싶었지만, 너무 핵심적인 재료들인데다 실험을 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한 듯하여 그냥 포기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지금 있는 걸로 뭘 할 수 있으려나 고심하다 떠올린 건 잉글리시 브랙퍼스트. 큼직하게 썬 양송이를 다진 마늘과 버터에 볶자 금세 맛있는 냄새가 올라왔고, 역시 실패할 수가 없는 조합이지 생각하며 센불로 버섯에서 새어 나온 물을 완전히 졸였습니다. 그다음에는 베이컨과 식빵을 차례로 구웠고요. 도중에 팬을 닦지 않은 탓에 스크램블드에그를 할 때쯤엔 베이컨과 식빵 찌꺼기가 그을음처럼 묻어나기도 했는데… 그래도 만든 것들을 두 접시에 나누어 담자, 그럭저럭 구색은 갖춰진 것 같았습니다.

커피를 내리기 시작할 때쯤 씻고 나갈 준비까지 모두 마친 당신이 다가와 상 차리는 걸 도와주었습니다. 물기를 제대로 말리지 않아 샴푸 향이 진했고, 이어서 당신의 손끝이 내 허리께에 닿았습니다.

진수성찬이네.

최선은 아니야. 더 잘할 수 있는데.

알지, 그럼.

당신이 식탁으로 접시를 가져가며 먼저 앉았고, 나도 커피를 내려놓으며 마주 앉았습니다. 가만히 보니 내 몫의 접시에 담긴 버섯이 훨씬 많은 듯해 당신에게 덜어주었는데, 당신은 처음에는 사양하는 듯하더니 이내 내 눈치를 살피고는 잠자코 있었죠. 찰나였지만 내 기분을 읽어보려는 당신의 눈빛에서 당신도 나처럼 아침부터 드리운 복잡한 생각과 싸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고요.

그리워지겠지?

잠시 후 내가 대뜸 물었고,

뭐가?

당신이 되물었습니다.

이렇게 같이 아침 먹는 거 말이야. 앞으로는 어려울 테니까.

어렵기는 왜 어렵냐고, 이건 마지막도 뭣도 아닌데 왜 청승이냐고, 나는 당신이 내게 퉁을 주기를 내심 기다렸지만, 당신은 먹는 데만 집중하는 척 음식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더는 말을 잇지 않았습니다.

당신과 나는 이미 여러 번 헤어진 적이 있습니다. 내 기억이 맞다면 당신이 먼저 포기한 건 한 번, 내가 먼저 포기한 건 두 번입니다. 아니, 당신이 두 번이고 내가 한 번이려나요. 글쎄요, 중요한 건 아닙니다. 누가 먼저였고 누가 몇 번이었는지, 매번 누구에게 더 큰 잘못이 있었고 누구에게 더 큰 상처가 남았는지는 이제는 별 의미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니까요. 벌써 희미해지거나 무뎌진 건 아닙니다만, 더는 그 세부에 연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중요할까요. 흩어지고 부유하는 의미들 속에서 무엇을 남기고 또 무엇을 움켜쥐어야 이 관계의 당위성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중요한 건 그럼에도 우리가 다시 만났다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단념하는 데 거듭 실패하며 서로에게 돌아오는 동안 어느덧 십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는 그 자명한 사실에 마음을 정박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실망했다가도 미안해하고, 분노했다가도 애틋해하고, 억울해했다가도 가여워하며 어떻게든 이어져 왔던 그 십 년이요.

하지만 요즘 나는 아득하기만 합니다. 우리가 그려온 궤적이 과연 우리를 어떤 결말 앞에 세워둘 것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아서요. 당신이 결국 이 도시를 떠나게 되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당신 마음이 더는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것만 같아서일까요. 여기까지가 우리의 최선이자 최대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쫓아낼 수가 없습니다. 이번에는 당신도 나도 더는 안 되겠다는 말이나 못하겠다는 말 같은 건 일절 하지 않았는데도 어째서인지 당신이 집을 나서면 모든 게 달라질 것만 같습니다.

그러니까 당신이 원래 나고 자란 그 도시로, 당신의 여자가 살고 있는 그 집으로 돌아가고 나면요.

아닐까요. 당신은 우리를 과거로 만들지 않을 수 있을까요. 우리를 한 시절 추억이나 일탈로 여기며 서서히 잊지 않을 수 있을까요. 당신 말마따나 당신 몸은 거기에 두고 마음은 여기에 둘 수 있는 걸까요. 당신의 몸과 마음이라는 것은 그렇게 쉽게 뜻대로 나뉠 수 있는 걸까요.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당신의 물음에 나는 다시 식탁으로 돌아왔습니다.

다 식겠다. 얼른 먹어.

응, 먹고 있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포크를 집어 들었지만, 빵 위에 버섯을 조금 올렸다가 내리고 다시 그 위에 달걀을 조금 올렸다가 내리며 먹는 시늉만 하고 말았습니다. 당장은 커피 말고는 뭐가 넘어갈 것 같지가 않았으니까요. 반면에 당신은 부지런히 씹고 삼켰습니다. 내게 잘 먹는 걸 보여주려는 것처럼, 그게 내 기분을 낫게 해주리라 믿는 것처럼 이따금 아주 맛있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면서요. 어느새 당신의 접시는 반이나 비었고, 이대로 잠자코 있으면 금세 식사를 마칠 것 같았습니다.

그 순간 나는 가지 말라고 당신을 붙잡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습니다. 오늘 말고 내일 가면 안 되느냐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하룻밤만 더 있으면 안 되느냐고 투정을 부리며 당신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입을 떼었을 때는 마음과는 다른 말들이 흘러나왔습니다. 심상하고 공허한 말들, 먼 훗날 이 순간을 다시 돌아봤을 때 왜 그런 시답지 않은 얘기로 시간을 낭비하고 말았는지 후회하게 될지도 모를 그런 말들이.

나 궁금한 게 있는데.

뭐?

별 건 아니고…

당신의 두 눈이 다시 내게로 모였고, 나는 그 순간을 길게 늘리려는 것처럼 일부러 뜸을 들였습니다.

어묵을 생으로 먹어도 되나?

어묵? 무슨 어묵?

마트에서 파는 거 말이야. 봉지에 든 거, 사각 어묵.

떡볶이 할 때 쓰는 거?

어, 맞아. 그런 거.

그걸 왜 생으로 먹느냐고 되묻는 듯한 당신의 의아한 표정에 나는 며칠 전 산책 중에 마주하게 되었던 장면을 떠올렸습니다. 위에는 패딩이었으나 아래는 무릎이 다 드러난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이었던 노년의 남자를, 갑자기 어디선가 튀어나온 것처럼 나타나 내 쪽으로 다가오던 그 어르신을 생각했습니다.

어떤 분이 어묵을 무슨 쫀드기처럼 찢어서 드시더라고. 봉지째 뭘 드시길래 당연히 과자겠거니 했는데, 스치는 순간 보니 어묵인 거지.

길에서?

어, 길에서.

나는 어묵을 조리하지 않고 먹기도 하는구나 싶어서 어쩐지 신선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특별한 일도 아닌 것 같은데, 입으로 들어간 게 돌이나 흙도 아니고 고작 어묵일 뿐인데, 순간적으로 내가 헛것을 본 게 아닐까 싶을 만큼 그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배가 많이 고프셨나 보네.

아마도? 아니면 그렇게 먹는 걸 더 좋아하는 걸지도 모르고.

생으로?

응, 그게 더 맛있을 수도 있지.

우리도 한번 먹어볼까?

그때 당신이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미간을 살짝 구겼다 폈습니다. 내 말이 진지한 건지 확인해 보려는 듯한 눈빛과 헛웃음이 장시간 이어졌고요. 이윽고 당신이 말했습니다.

쉽게 살아.

…응?

어렵게 살려고 하지 말고 쉽게.

나는 당신의 그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거기엔 아무런 의중도 함의도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그렇게 들리지 않았으니까요. 내가 잘못 살고 있다는 비난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당신은 나와는 퍽 다르게 살고 있다는 선 긋기처럼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기분이 상했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아서, 아니, 어쩌면 들키고 싶어서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고는 천천히 집안을 둘러봤습니다. 구석에 물이 샌 흔적이 희미한 지도처럼 남아 있는 천장과 군데군데 들뜨고 색이 바랜 장미 문양 실크 벽지, 그리고 정동향이어서 유독 오전에만 해가 쏟아질 듯 밀려드는 창문으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당신이 제집처럼 생각했지만 당신 집은 아니었고, 우리가 같이 살다시피 했지만 진짜로 같이 살았던 건 아니었던 집. 함께 있으면 공기 중에 떠도는 모든 조짐이 때로는 환희로, 때로는 슬픔으로 다가왔던 집.

고개를 돌려보니 당신은 이미 포크를 내려놓고는 휴대 전화를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얼른 더 먹으라며 내 것을 건네려 하자 충분하다며 몸을 뒤로 젖혔고, 이내 입을 닦으며 시간을 한 번 더 확인했습니다.

몇 시 기차라고 했지?

10시 12분.

그럼… 늦은 거 아냐?

이제 가면 돼.

아직 십 분 정도 여유가 있다고 당신은 말했지만, 말만 그렇게 할 뿐 곧장 일어날 채비를 했습니다. 의자를 반쯤 뒤로 빼며 고쳐 앉는가 싶더니 빈 접시를 개수대로 가져갔고, 앱을 열어 택시를 호출하는가 싶더니 바로 잡혔다며 남은 커피를 단숨에 들이켰습니다.

급히 가방을 챙기고 신발을 꿰어신는 당신을 보고 있자니 내가 당신을 붙잡고 있었다는 뒤늦은 자각과 함께 미안함이 엄습했습니다. 괜히 뭐라도 먹여 보내겠다며 고집을 부렸던 나도 참 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내 기분을 맞춰준답시고 여태 시치미를 뚝 떼고 뭉개고 있었던 당신도 참 당신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착하면 연락할게.

당신이 현관을 열며 말했고,

도착 안 해도 연락해.

내가 열린 문을 붙잡으며 말했습니다.

헤어지는 마당에 짧게 포옹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지만 어째서인지 당신도 나도 머뭇거리기만 할 뿐 서로에게 먼저 다가서질 않았습니다.

얼른 가, 늦겠어.

그래, 간다.

당신이 집을 나선 뒤 나는 거실 창가로 자리를 옮겨 당신을 내려다봤습니다. 나를 올려다볼 생각은 전혀 없다는 듯 휴대 전화만 들여다보는 당신도 눈에 담았고, 발끝으로 땅을 툭툭 차다가 이윽고 도착한 택시에 올라타는 당신도 눈에 담았습니다. 당신을 태운 택시가 좁은 골목을 빠져나가며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환하게 비쳐 드는 햇살이 눈꺼풀에 닿아 당신 자취를 일그러뜨릴 때까지 그 자리에서 당신을 배웅했습니다.

얼마쯤 지났을까요. 당신이 떠났다는 실감이 내 안을 수직으로 통과해 발밑까지 내려갔을 때, 나 말고는 누구도 당신이 여기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 주지 못하리라는 당연한 사실이 새삼스레 내 목을 콱 움켜쥐고는 놓아주지 않았을 때, 나는 앞으로 펼쳐질 당신의 기나긴 하루를 상상하기 시작했습니다. 택시에서 내려 기차에 오르고 다시 기차에서 내려 택시에 오르는 당신 모습을 생각하고, 밥 짓는 냄새와 환한 불빛, 안온한 온기로 가득한 집으로, 들어가는 당신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당신이 내게서 빼앗아간 당신 몸이 웃고, 떠들고, 먹고, 마시고,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저절로 눈앞에 그려졌습니다.

그리고,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두고 간 마음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내게 분명히 주었다고 말했던 그 마음을 나는 왜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걸까요. 조금 전까지 마주 앉아 있었던 식탁에 있는 걸까요. 아니면 어젯밤 함께 덮었던 이불에 있는 걸까요. 그것도 아니면 언젠가 우리가 나누어 끼웠던 반지에, 어쩌면 지금쯤 당신이 주머니 속에서 빼고 숨겼을 그 반지에 있는 걸까요.

아니,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당신 마음이기는 한 걸까요. 인제 와 마음이 아니라 몸이라고 번복한다면, 마음 따위는 잘 모르겠고, 당신의 짙은 눈썹과 자그마한 귀, 커다란 배와 기다란 허리, 뭉툭한 발톱과 까끌까끌한 발꿈치를 내게 돌려달라고 애원한다면 당신은 돌아오기는 할까요. 모르겠습니다. 정말이지 모르겠습니다. 

김병운
소설가, 1986년생
소설집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 『거의 사랑하는 거 말고』, 장편소설 『아는 사람만 아는 배우 공상표의 필모그래피』, 산문집 『아무튼, 방콕』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