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맡 그림책 한 권
출렁다리의 춤

하인츠 야니쉬(글) 헬가 반쉬(그림) 동화 『다리』

  • 머리맡 그림책 한 권
  • 2026년 여름호 (통권 100호)
출렁다리의 춤

하인츠 야니쉬(글) 헬가 반쉬(그림) 동화 『다리』

『다리』의 뒤표지(왼쪽)와 앞표지    

 

그림책을 처음 접하는 독자 중에는 그림책을 잘 읽는 방법이 따로 있는지 궁금해하는 경우가 있다. 그림책은 글 분량이 적고 그림이 서사를 주도한다. 간혹 글이 아예 없이 그림만으로 구성된 책도 있다. 글을 중심으로 책을 읽어온 독자라면 어느 곳에 먼저 눈을 두어야 할지 당연히 고민이 된다. 문장이 없으니까, 그림을 한참 바라보다가 언제쯤 책장을 넘겨야 할지 망설여진다. 마음대로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 책 같지만, 그래서 독해가 막막하기도 한 것이 그림책 읽기다.

이렇게 난처함을 호소하는 독자를 만나면 “먼저 표지를 살펴볼까요?”라고 제안한다. 표지를 넓게 펼쳐서 앞표지와 뒤표지를 함께 보는 것이 첫 순서다. 앞과 뒤가 분리된 표지가 있는가 하면 종종 하나의 그림으로 연결되는 표지도 있다. 표지는 책 얼굴인데, 작가가 펼친 면의 큰 그림을 그려두었다면 거기서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이다. 그림책 그림들은 글에 쓰여 있지 않은 정보를 말할 수 있으므로 구석구석 꼼꼼히 보아야 한다. 시처럼 낭독을 고려하여 쓴 문장들은 기왕이면 소리 내 읽는 것이 좋다. 어린이들은 대개 입술을 열어 책을 읽기 때문이다. 그림책은 독자의 나이에 제한을 두지 않으나, 책에 대한 첫사랑이 그림책인 사람들은 어린이가 많다.

하인츠 야니쉬가 글을 쓰고 헬가 반쉬가 그림을 그린 『다리』는 우리나라에서 2011년에 출간되어 2024년에 6쇄를 찍은 조용한 스테디셀러다. 이 책 표지도 펼치면 하나로 연결된 그림이다. 깊은 강을 사이에 두고 두 봉우리가 마주 보는 가운데 양쪽을 연결하는, 가늘고 긴 출렁다리가 있다. 그림 왼쪽에는 날개가 부서진 풍차 한 채가 있고, 오른쪽에는 누군가 망을 보는 듯 열기구가 떠 있다. 그 아래 커다란 검은 새 한 마리가 물끄러미 출렁다리를 바라본다. 연필 선을 자세히 보면 검은 새가 다리를 유심히 관찰한 흔적이 있다. 책은 “흐르는 강물은 알고 있는 이야기가 많아요. 커다란 다리에 대한 이야기도 안답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검은 새도, 흐르는 강물도 목격자인 것 같다. 그 다리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책의 제목처럼, 갈등은 다리 때문이다. 곰 한 마리가 왼쪽에서, 한 사람의 거인이 오른쪽에서 출발해 다리를 건너가려 한다. 다리는 외나무다리처럼 너무 좁아서 둘이 교차할 수 없다. 다리 아래에는 크고 작은 둥근 산들이 있다. 콜라주 기법으로, 오스트리아 지도, 중국어와 크메르어가 적힌 종이를 아무렇게나 오려서 붙인 것이다. 그런데 그 종이에 적힌 말들을 읽어 보면 서사의 단서가 숨어 있다. 중국어가 적힌 종이에는 “정확히 무엇이 분쟁의 원인이었습니까?”라는 문장과 만리장성의 경계선에 대한 논란이 나온다. 크메르어가 적힌 종이에는 “이런 것이 아내를 화나게 만듭니다. 할 말을 신중하게 고르세요!”라는 내용이 들어있다. 서사는 아직 평온하지만 그림은 곰과 거인 사이에 다툼이 벌어질 것을 예고한다.

짐작처럼 곰과 거인은 서로 다리를 건너겠다고 양보 없이 맞선다. 둘이 노려보고 으름장을 놓고 버티는 사이에 다리는 점점 더 불안하게 흔들린다. 강물 속 물고기들도 파국을 걱정한다. 그때 협상의 묘안이 나온다. “나는 널 붙잡고, 너도 날 꼭 붙드는 거야. 그러면 둘 다 안 떨어질 수 있어. 그런 다음 함께 몸을 돌리는 거지.” 둘은 부둥켜안은 채 좁은 다리 위에서 원을 그리며 돌기로 한 것이다.

이 그림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 여기다. 곰과 거인이 출렁다리에서 꼭 안고 빙그르르 도는 모습이 네 개의 연속된 장면으로 그려져 있다. 부서질 것 같은 다리 위에서 공동 운명체가 된 곰과 거인의 움직임이 마치 왈츠 같다. 이 위험한 동작을 해내고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만다. 팽팽하던 다리의 긴장은 이렇게 풀리고 흐르는 강물에도 평화가 찾아온다. 여기도 콜라주를 한 종이가 등장하는데 중국어 부분에는 “협상의 여지가 있다”라는 문장이, 크메르어 부분에는 “작별 인사를 나누다”라는 문장이 들어 있다.

『다리』를 읽으면서 우리는 전쟁과 춤은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갈등은 언제 어디서 찾아올지 알 수 없다. 그리고 그 갈등이 전쟁으로 이어질지, 춤으로 이어질지 모르는 일촉즉발 상황에서도 춤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곰과 거인이 그러했듯이 서로 협상하고 부둥켜안고 왈츠에 도전해야 한다. 출렁다리 위에서 상대방과 나는 하나의 운명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춤이 우리를 살릴 거라 믿고 용기를 내야 한다. 

이 책을 쓴 하인츠 야니쉬는 독일청소년문학상, 볼로냐 라가치상 등을 수상하며 오스트리아를 대표해 온 작가로 2024년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받으며 세계적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그의 다른 작품 『할아버지의 붉은 뺨』에서는 전쟁에 나갔다가 싸움의 무의미함을 깨닫고 전투기에서 뛰어내려 집으로 귀환해 버린 할아버지가 등장한다. 『전쟁의 이유』에서는 긴 행군으로 지친 군인들이 군복은 물론 군화와 양말까지 벗어버리고 “배가 고파!”라고 외치며 소시지 굽는 냄새를 향해 달려가는 장면도 나온다.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간절함 앞에서는 적도 아군도 없으며 소시지 냄새로 상징되는 평화를 그리워하는 그들 마음이 전쟁을 멈춘다는 이야기다. 반전 메시지를 담은 여러 걸작 중에서도 『다리』는 하인츠 야니쉬 서사의 정수가 담긴 책으로 그를 처음 읽는 이들에게 권하는 작품이다.

얼마 전 하인츠 야니쉬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해외 작가 레지던스에 초청되어 우리나라를 찾았다. 예술가의 집에서 열린 북토크에서 그는 독일어의 “시(Gedicht)”라는 낱말 안에는 “나(ich)”와 “당신(dich)”이 모두 들어있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시를 쓰는 일은 “나와 당신”이 언어를 통해 만나고, 둘 사이의 거리가 좁혀지는 일, 그를 통해 “우리”가 되어가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의 시론을 『다리』에서 곰과 거인의 만남에 견주어보면 시를 쓰는 일은 춤을 추는 일이기도 하다. 시 정신을 회복한다면 왈츠처럼 부드럽게 평화의 길이 열릴 수도 있다. 나와 당신이 서로 안아줄 결심을 한다면, 평화가 아주 멀리 있는 것만은 아니다.

김지은
아동청소년문학 평론가, 서울예술대학교 문예학부 교수, 1972년생
에세이 『어린이는 멀리 간다』, 평론집 『거짓말하는 어른』 『어린이, 세 번째 사람』,
역서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당신의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