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년 삶의 인간적 따뜻함
백 년 삶의 인간적 따뜻함
![]() |
이 소설은 4대의 삶, 즉 ‘증조모-할머니-어머니-나’를 포함한 100년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왠지 그 내용과 이야기는 몽골의 삶과 너무 비슷해서 정서적 동질감을 느끼게 했다. 특히 증조모와 할머니 이야기들은 몽골 할머니들이 들려주었던 그들의 생활 모습과 다름없어서 어떤 몽골인이 읽어도 친근감을 느낄 수 있었고, 읽을 때마다 그 행위, 사건 자체가 머리에 떠올라 아주 재미있게 번역했다.
문학 번역을 하는 데 항상 어려움을 느끼고, 어떻게 번역하면 독자들이 쉽게 이해하고 읽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데 그것이 바로 문화 관련 어휘이다.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그 나라에 들어와 정착된 어휘들이 있는가 하면 명시적 의미(denotation) 즉 그 어휘와 표현이 지칭하는 실제 사물·개념·상태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어휘들이 있기 마련이다. 이때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고민하게 된다.
예컨대, 몽골은 대륙 국가라서 바다가 없다. 바다와 관련한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때가 가장 많이 긴장된다. 특히 이 소설에는 이전에 번역했던 문학 작품들과 달리 해조류, 어패류가 적지 않게 등장해서 이를 번역하기 위해 용어 사전, 이미지 사전 등을 활용해 보고, 평상시 사람들이 그 어휘를 어떻게 몽골어로 표현하는지 등을 알아본 후 번역 작업에 들어갔다. 문어(наймаалж), 오징어(арваалж) 등은 그런대로 영어 사전이나 생물학 용어 사전에서 이미 몽골어로 번역된 어휘들이지만 전복이나 홍합 같은 어휘는 몽골에서 조개로밖에 해석이 안 되고 구분도 못 한다. 따라서 소설에 나오는 전복죽, 말린 홍합 같은 어휘들은 ‘хясааны зутан шөл(조개 죽)’, ‘хатаасан хясаа(말린 조개)’로 번역했다. 마찬가지로 대하도 새웃과의 하나이므로 대하는 ‘сам хорхой(새우)’로 번역했다. 전문적인 용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나 해석이 아닐 경우, 번역에서는 문맥에 맞게 대분류로 가볍게 짚어갈 수 있다는 원칙을 활용한 것이다.
바다 식물인 미역과 김도 몽골어에서는 같은 어휘로 ‘далайн байцаа(직역 의미: 바다의 배추)’ 번역하는 경우가 많은데 미역의 모양이나 생김새 또한 영어 번역 등을 고려하여 김은 그대로 ‘далайн байцаа’, 미역은 ‘далайн замаг(바다 수초)’으로 번역했다.
이 소설에는 한국 음식 이외에 멕시코 음식 이름도 등장한다. 음식 이름의 경우, 김치 발음 그대로 비슷하게 표기되어 쓰이고 있지만, 독자들에게 낯설고 생활 속에 정착되지 않은 음식 이름은 그 성분이나 비슷한 몽골 음식과 대체하여 번역하기도 했다. 과카몰레는 주성분 아보카도로 만든 소스로 독자들에게 이해하기 편하게 읽히도록 ‘авакода соус(아보카도 소스)’로 번역했고, 한국 수제비의 경우에는 몽골에도 밀가루를 반죽해서 손으로 떼어서 끓이는 음식이 있어 그 음식인 ‘тасдсан гурилтай шөл’로 대체하였다. 팥 도넛, 꽈배기도 마찬가지로 성분, 모양과 생김새 등을 고려하여 몽골에서 밀가루로 만들지만 비슷한 과자인 ‘боорцог’로 대체하여 팥 도넛은 ‘улаан вандуйны дугуй боорцог’, 꽈배기는 ‘сүлжмэл урт боорцог’로 번역했고 떡과 인절미도 구분 없이 ‘찹쌀로 만든 과자’란 의미로 통일해서 ‘тутарганы жигнэмэг’로 번역했다.
주거 관련 어휘 중에도 마찬가지로 ‘어떻게 잘 번역할까?’ 고심하는 것들이 있었다.
소설 11쪽 문장 중 한 표현이 그랬다.
‘이십 년 전에 준공된 두 동짜리 복도식 아파트로 신혼부부나 혼자 사는 노인들이 많다고 했다.’
복도식 아파트 형태는 몽골에 없다. 따라서 그 의미를 쉽게 이해하도록 여러 세대가 긴 공용 복도를 공유한다는 뜻으로 번역에서 늘 활용하는 설명식 방법을 활용하여 아래와 같이 번역했다.
‘20 жилийн өмнө ашиглалтад орсон, хоёр хос байр, давхартаа олон айлтай нарийхан коридортой бөгөөд шинэхэн хосууд болон хөгшчүүд их амьдардаг аж.’
소설을 번역하는 중 재미있는 표현도 나왔다. 소설 182쪽 ‘명숙 할머니는 할머니 가족이 군식구여서 차갑게 대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Мёнсүг эмээ манайхныг хоолны савнуудюм болохоор хүйтэн хандсан юм биш байлаа.’로 번역했다.
‘군식구’ 의 사전적 의미는 원래 식구 외에 덧붙어서 얻어먹고 있는 식구로 해석되는데 몽골어에서는 얹혀사는 것을 좋게 여기지 않으므로 이러한 사람을 ‘хоолны сав(밥통)’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요즘 남한테 얹혀사는 것이 거의 없어져서 이러한 단어들이 거의 안 쓰이고 있고, 써도 신중히 써야 하는 말이다.
소설을 번역한 역자로서 이 소설을 통해 몽골 독자들이 바쁜 생활 속에서 없어져 가고 있는 사람 사이의 인간적 따뜻함을 느끼면서 몽골과 한국의 문화적 동질감도 다시 한번 공유하는 즐거움을 만끽하시길 바란다. 다행히 현재 이 작품이 출판된 후 몽골 독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는 이야기를 소욤보 출판사(Soyombo Publishing) 측으로부터 전해 들어 번역자로서 마음이 뿌듯하다.
몽골어역 『밝은 밤(Сартай шөнө)』은 대산문화재단의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을 받아 필자의 번역으로 몽골 소욤보 출판사(Soyombo Publishing)에서 2026년 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