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③집을 쫓는 모험

  • 기획특집
  • 2021년 봄호 (통권 79호)
③집을 쫓는 모험

때로 돈을 쫓아, 때로 낭만을 쫓아 계속 이사를 다녔다. 그 길 위에서 두 채의 아파트와 한옥, 그리고 빌라를 경험했다. 그리고 그 여정의 끝은 서촌에 3층짜리 협소주택을 짓는 걸로 일단락됐다. 왠지 모험이 계속될 것 같다는 분이 많은데 내 생각 역시 그렇다. 내게 꼭 맞는 집을 찾고, 쫓는 모험이야말로 진정 즐겁고 유익한 일이라는 걸 일단 몸이 기억하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이사를 다니며 아파트, 빌라, 한옥, 협소주택에 살아본 경험을 밑천 삼아 『집을 쫓는 모험』이란 책을 낸 나를 보고 친구들은 “이놈은 다 계획이 있었다”고 하지만 아니다. 처음 아파트를 사서 입주한 때가 15년 전인데 어떻게 그때부터 ‘그림’을 그릴 수 있단 말인가.
집을 쫓는 모험을 하게 된 계기는 역시 돈이었다. 결혼을 하면서 아버지가 마련해 준 돈 1억 원에 1억 500만 원을 대출받아 길음뉴타운에 있는 23평 아파트를 2억 500만 원에 샀다. ‘새가슴’인 내가 어떻게 그리 큰 금액을 대출받을 수 있었는지 의아한데 “무조건 오른다”, “한국에서 돈 벌려면 무조건 아파트를 사야 한다”, “나도 회사 다니다가 때려치우고 부동산을 하는데 친척 분까지 부동산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한 부동산 사장님의 영향이 컸다. “자, 내 차 타고 가시죠”, 하면서 그가 끌고 온 자동차가 검은색 그랜저였다는 것도. 그렇게 무리해서 아파트를 샀는데 3년 만에 1억 원이 올랐다. 1년 만에 4억~5억 원이 오르는 지금 상황과 비교하면 시시하기까지 하지만 그때 내게는 놀라운 일이었다.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1년 수익이 약 3천500만 원, 매월 291만 6천666원을 번 셈이었다.
환희에 휩싸인 나는 본격적으로 ‘돈을 쫓는 모험’을 시작할 채비를 마쳤다. 그 아파트를 팔고 저 밑에 지어지고 있던, 더 탄탄한 브랜드의 아파트 분양권을 산 것이다. 분양권이 3억 6천만 원이었지만 또 대출을 받으면 될 일이었다. 아파트가 지어지는 동안 우리 식구는 엄마 집으로 들어갔다. 갓 태어난 첫째 유이도 함께. 고부갈등이 힘들다지만 1년 8개월만 버티면 되고, 그 기간은 군대 복역 기간 정도이니 금세 지나가지 않을까 싶었다. 착각이었다.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을 잃은 아내는 생각보다 더 힘들어했다. 집에 있는 것이 답답하다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유이를 들쳐 업고 밖으로 나갔다. 엄마 끼니 챙기는 것도 마음 편히 제쳐 버렸으면 좀 나았을 텐데 그럴 만큼 배포가 있는 것은 아니어서 꼬박꼬박 저녁 식사를 챙겼다. 그러는 사이 부부 관계는 서서히 식어갔다. 이게 뭐야, 돈을 쫓는 대가가 생각보다 크잖아, 싶으면서도 새로 산 아파트는 또 가격이 얼마나 오르려나 생각하면 금세 마음 한구석이 달큼해졌다.
그렇게 1년 8개월간의 ‘사랑과 전쟁’같은 시간을 보내고 마침내 새 아파트에 들어갔다. 그런데 아파트값이 전혀 오르지 않는 거다. 2010년 얘기다. 뭐야, 왜 이래, 어떻게 이러지? 하는 당황은 곧 체념으로 바뀌었다. 그 후로도 몇 년간 하락장이 계속돼 도무지 가격이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격이 안 오르니 아파트에도 정이 떨어졌다. 도무지 예쁜 구석이 없었다. 거실도 좁아 보였고 퇴근 후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면서는 저 많은 구멍 중 하나로 들어가야 하는구나 하는 답답함이 밀려왔다.

함께 놀고 구르고 자고 쉬던 집
집에서 행복하지 않았던 우리는 서촌에 있는 50평대 한옥으로 전셋집을 얻어 이사를 갔다. 아,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집의 맛’을 제대로 경험했다. 신경 써야 할 것도 많고, 겨울에는 아무리 보일러를 열심히 틀어도 17도를 못 넘길 정도로 추웠지만 그래서 더 살아있는 것 같았다. 마당에서 주말마다 삼겹살을 굽고 퇴근 후에는 유이와 춤대결을 벌였다. 날이 좋은 날에는 마당에 벌렁 누워 천천히 흘러가는 구름을 올려다보았다. 겨울에는 난로를 집 안에 들여 보리차를 끓이고 가래떡을 구웠다. 비가 오는 날은 또 어찌나 좋던지. 이불을 덮고 함석판으로 만든 빗물받이에 토도독 비 오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기분 좋게 서늘한 동굴 초입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마당이 주는 행복이 이렇게 크구나, 다소 불편한 집이 좋은 집일 수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함께 구르고, 얼싸안고, 놀고, 쉬면서 집에 깊은 정이 들었고 함께 겨울을 나고 나면 ‘전우애’ 같은 것이 생겼다.
그 행복은 딱 3년이었다. 젊은 사람들이 한옥에 들어와 사니 참 좋다며, 여기서 평생 살라던 주인
할머니 할아버지는 집을 내놔야 할 것 같다며 방을 빼 달라고 했다. 이제 우리는 판단을 해야 했다. 길음뉴타운으로 돌아갈 것인가? 서촌에 있는 다른 집을 찾을 것인가? 답은 명확했다. 서촌! 아파트는 우리와 맞지 않는 형태의 집이었고 한옥에서 너무나 행복했기 때문이다. 미련 없이 아파트를 팔았고 우리는 서촌에 있는 작은 빌라를 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3억 5천만 원에 판 아파트값이 치솟기 시작하더니 4억 원을 넘어 5억 원을 패싱하고 6억 원을 찍은 후 7억 원이 됐다. 지금 그 아파트는 11억 원 가까이 된다. 한동안 얼굴에 열꽃이 피어 잠도 제대로 못 잤다.
그 사이 우리는 빌라로 이사를 갔다가 한옥에서의 시간을 못 잊어 다른 한옥에서 2년 전세를 살고, 이번에도 쫓겨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에 있는 돈 없는 돈을 끌어모아 서촌에 3층짜리 협소주택을 지었다. 집을 짓는 일은 그야말로 얼떨결에 이뤄졌다. 어느 날 부동산에 다녀온 아내가 “땅을 한 곳 보고 왔는데 잘 하면 집을 지을 수도 있겠다”며 상기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 아닌가. 아파트를 잘못 팔고 ‘루저’가 된 듯한 기분이었던 나는 “아이고 이 사람아, 우리가 돈이 어딨냐. 집 짓는 데 한두 푼이 드는 것도 아니고. 정신 차려!” 하고 핀잔을 주었다. 그런데 그녀는 끝내 포기를 하지 않았고 대출금까지 끌어모아 끝내 부동산매매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집을 짓는 것은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었다
집을 짓는 데는 생각보다 큰돈이 들지 않았다. 18평짜리 작은 땅. 옆집과 지붕이 맞붙어 있어 새로 집을 지으려면 지붕을 잘라야 하는데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라 덤비는 사람이 없었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땅값이 뚝뚝 떨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계산을 해보니 평당 1천800만 원, 땅값으로 3억 2천500만 원이 들었다. 공사비로 1억 500만 원, 설계비로 1천100만 원을 지출했다. 기존 주택 철거비와 이런저런 대금을 포함해 총 6억 원이 들었다. 각 층의 면적은 6~8평. 3개 층을 다 합하면 22평 정도인 아담한 집이다.
집을 짓는 과정도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정화조를 잘못 묻어 완공 후 다시 땅을 파고 자리를 옮겨 매립을 할 때는 뒷목을 잡고 넘어갈 뻔했지만 돌아보니 그렇게 대단한 불운도 아니었다. 추가로 비용은 좀 들었지만 해결은 됐으니까. 이 일을 겪으며 장모님이 하셨던 말씀이 한 번씩 생각난다. “정 서방, 그래도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니 얼마나 다행인가. 돈으로도 해결 못하는 일이 진짜 무서운 거야.” 이래서 나는 ‘어른’과 ‘어른의 말’이 좋다.
이 집에서 우리는 행복하다. 살다 보니 금세 적응이 돼 불편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한 번씩 큰 집에 다녀오면 “그분들이 우리 집에 오면 진짜 좁다고 하겠다. 답답하다면서 쓰러질지도 몰라”하고 농담을 하며 웃기도 한다. 집이 작게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창을 많이 냈기 때문이다. 특히 3층에서는 저 멀리 인왕산과 청와대까지 보여 공간이 쭉 확장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주변으로 서촌의 한옥 풍경이 정겹게 펼쳐지는 것도 좋다. 단독주택에 산다는 건 단독의 풍경을 갖게 되고, 남과 비교하는 습관에서도 조금씩 벗어나, 나의 시간과 일상을 차분히 꾸려가는 것과 같은 의미가 아닐는지.
무엇보다 좋다고 생각되는 점은 또 다른 ‘집’을 꿈꾸게 됐다는 것이다. 이건 지금의 행복과 별개의 문제다. 지금도 충분히 만족스럽지만 마디마디 더 내게 맞고, 아쉬운 지점도 하나씩 개선이 된, 또 다른 측면에서 행복한 집을 만나고 싶은 것이다. 지금은 공간이 비좁아 소파와 침대를 못 놓고 있는데 한 번씩 널찍한 소파에 벌러덩 누워 편하게 TV를 보던 시간이 그립다. 한 뼘 정원이라 부르는, 아주 작은 정원도 계절마다 충만한 즐거움을 주는데 로즈메리 몇 뿌리만 더 심을 공간이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간간이 한다.
돌아보니 2년에 한 번씩 이삿짐을 쌌다. 아파트-엄마집-아파트-한옥-빌라-한옥을 차례로 경험한 끝에 종국에는 작은 집까지 지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고생길로만 비치겠지만 내겐 무척 의미 있고 집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다채로운 여정이었다. 『집을 쫓는 모험』은 그 과정에서 알게 된 각기 다른 형태의 집의 기쁨과 슬픔, 웃음과 눈물, 행복과 좌절, 자연스럽게 쌓인 수많은 에피소드와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친구들에게는 농담 삼아 취재 기간만 15년, 취재비로 6억(아파트를 잘못 팔아 못 번 돈)을 쏟아 부은 책이라고 말한다.
아파트로 큰돈을 벌 기회를 놓쳤지만 덕분에 얻은 것도 있다. 책을 내고 사람들과 집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나는 ‘부자’에 속했다. 집에 관한 흥미진진하고 드라마틱한 추억이 많은 것이다. 운 좋게 여러 집을 경험했고 그 과정에서 내게 꼭 맞는 형태의 집도 알게 됐다. 집을 쫓는 모험은 나를 찾는 모험이기도 했다. 아파트를 잘못 팔았다고 끝없이 되새김질을 하며 괴로워했는데 긴 시간이 흐르고, 다양한 집을 순례하듯 거치고, 그 과정에서 비로소 집의 맛을 알게 되고, 그 경험을 매개 삼아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있으니 그때 내가 잃은 것이 실은 얻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인생에 똑떨어지는 손익계산서라는 게 있을까 싶기도 하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고 때론 잃음으로써 더 좋은 일상을 선물 받기도 하는 것이 인생인 것이다.
집을 짓고 나면 마침내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찾고 모험도 끝이 날 줄 알았는데 비로소 진정 새로운 챕터가 시작되는 기분이다. 만약 지금 집에서 행복하지 않다면, 뭔가 무력하고 밋밋하게 시간이 흘러간다면 새로운 집을 찾아 기꺼이 모험을 감행하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에게 집만큼 중요한 것은 없으니까.
정성갑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 1976년생
저서 『집을 쫓는 모험』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