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대 영화
집단과 규율을 강조하는 교육 현실에 대한 우화(寓話)

- 전상국 소설 「우상의 눈물」과 임권택 영화 <우상의 눈물>

  • 원작 대 영화
  • 2024년 봄호 (통권 91호)
집단과 규율을 강조하는 교육 현실에 대한 우화(寓話)

- 전상국 소설 「우상의 눈물」과 임권택 영화 <우상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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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국의 동명의 단편소설을 각색한 임권택 감독의 <우상의 눈물>(Tears of the Idol, 1981)은 하이틴 영화의 외관을 하고 있지만, 실은 1970년대 당시 교육 현실에 대한 일종의 우화(寓話)로 읽힐 수 있는 작품이다. 영화의 내러티브는 학생들의 대학 진학을 최우선시하는 완고한 성격의 담임선생과 학교의 ‘쌈장’으로 늘 말썽만 일삼는 불량 학생 간의 대립과 갈등을 축으로 하고 있다. 3학년 8반 담임으로 부임한 수학선생 권달호(박근형 분)는 자신의 반을 일등으로 만들기 위해 집단(集團)과 규율(規律)을 강조하면서 학생들의 체질 개선을 시도한다. 하지만 제때 졸업하지 못하고 유급을 한 최기표(진유영 분)라는 문제 학생 탓에 반 전체의 단결에 심각한 균열이 발생한다. 사실 기표는 학생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하나의 우상(偶像)이었다. 기표는 자기 학교의 학생이 타 학교 학생에게 구타라도 당하면 홀로 달려가서 즉각 보복을 감행하여 학우들의 우상으로 군림하게 된 것이다.

어쨌든 기표를 비롯하여 그를 우두머리로 떠받드는 일단의 학생들 때문에 학급 전체의 평균성적이 저하되는 것은 물론이고, 게다가 기표가 단체의식을 고양시키는 데 필요한 단체복 착용도 거부함으로써 반의 인화단결(人和團結)마저 해치고 있었던 것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권달호 선생은 친화력이 좋은 형우(이구순)를 반장으로 임명하고 성적이 뒤처지는 기표와 그 일행들을 특별 관리하도록 지시를 한다. 요컨대 권 선생은 기표를 비롯한 문제 학생들을 체벌(體罰)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인내와 끈기로 교정하려고 나선 것이다. 그리하여 권 선생은 기표 일행을 자기의 집에 기숙까지 시키면서 수학과 영어 과목을 따로 가르치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러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학업성적이 오르지 않자 그는 특단의 조치를 강구한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일부러 답안지를 흘려서 열등생들로 하여금 우회적으로 컨닝(부정행위)을 하도록 부추기는 작전을 감행한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기표는 이 같은 시도에 반색하기는커녕 오히려 강력히 반발하면서 부정행위를 주도했던 형우를 시험감독에게 고변하는 일이 발생한다.

게다가 기표와 그 일행은 자신들의 자존심을 건드린 형우를 무지막지하게 린치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형우는 심하게 집단구타를 당했으면서도 자신에게 가해한 학생들을 끝내 발설하지 않음으로써 학교의 새로운 영웅으로 떠오르게 된다. 한편 기표의 개과천선(改過遷善)을 위해 고심하던 권 선생은 가정방문을 통해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는데, 기표가 병마에 시달리는 아버지와 끼니마저 거르기 일쑤인 동생들로 인하여 남모를 고통 속에 빠져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그는 다시 반장인 형우로 하여금 기표를 돕도록 부추기는데, 형우는 학급회의를 통해서 기표의 딱한 사정을 학생들에게 보고하고 성금 모금에 나서게 된다. 그리고 이런 사실은 학교 전체로 퍼지게 되고, 이에 고무된 권 선생은 학생 잡지의 기자들에게까지 이런 사실을 알려서 마침내 전국에서 기표를 돕기 위한 성금이 답지하는 상황이 된다. 잠시나마 감동에 겨워 울컥했던 기표는 급기야 자신이 동물원의 원숭이 신세가 되었음을 깨닫고 학교를 박차고 나가 아예 연락마저 끊어버린다. 음으로 양으로 기표를 도우면서 인생낙오자를 구제했다는 자부심에 빠져있던 권 선생은 기표의 돌발적 행위에 크게 당황하고, 학생을 다루는 자신의 방식에 문제가 있음을 뉘우치고 사직서를 제출한다. 그리고 몇 년 후 기표가 자기 나름의 방식대로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영화는 마무리된다.

영화는 원작 소설과 몇 가지 점에서 결정적인 차이를 보인다. 우선 무엇보다도 담임선생의 존재와 역할이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 소설 속 담임은 김 씨 성을 가진 과학교사인데, 영화에서는 수학선생 권달호로 나온다. 당대 미남스타였던 박근형이 그 역을 맡았는데, 학생들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이 넘치는 이상적인 교육자로 등장한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는 전연 다르게 묘사되고 있다. 학생들을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학생들은 그저 감시(監視)와 처벌(處罰)의 대상일 뿐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선생은 겉으로는 학생들에게 온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처럼 묘사된다. 김 선생은 처음 학급 담임을 맡았을 때도 자율(自律)을 강조하면서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인화, 단결해 줄 것을 요청하는 듯했지만, 속내는 아주 달랐다.

김 선생은 학생 중 하나를 심복으로 삼아서 급우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런 역할을 해줄 학생은 당연히 학급의 반장이었고, 실제로 반장 임형우는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듯 보인다. 물론 이 같은 사실은 소설의 화자인 이유대의 내레이션을 통해서 폭로되고 있다. 따라서 반장 형우도 역시 영화에서와는 달리 겉과 속이 다른 위선적인 인물로 묘사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형우는 책임감 넘치는 반의 리더처럼 여겨지지만 실은 담임의 통제방식에 교묘하게 협조하는 배반자였던 것이다.

소설에서는 형우의 이중성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예컨대 형우는 시험 부정행위 사건으로 기표 일행에게 린치당하여 속으로는 앙심을 품고 있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기표를 돕는 데 큰 역할을 한다. 형우는 기표의 가난한 가정사를 학우들 앞에, 그리고 전 언론에 낱낱이 드러냄으로써 기표에게 온정의 손길이 가도록 돕는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기표에게서 그가 누려왔던 권력을 빼앗는 효과로 작용하면서 결과적으로 기표를 세간의 조롱거리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하여 몰락하는 것은 기표였고, 형우는 새로운 우상으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기표가 학교를 떠나 종적을 감추면서 동생에게 남긴 편지는 그래서 더 큰 여운을 남긴다. “무섭다. 나는 무서워서 살 수가 없다.” 그것으로 소설은 종결된다. 이는 영화의 결말 부분과도 크게 대조를 이루는 부분이다. 영화의 라스트신은 시간이 흐르고 담임이 기표가 일하는 현장을 찾아가 회한이 잠기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 영화는 학생들 위에 독재자처럼 군림하던 쌈장이 담임선생과 반장의 헌신적인 교정 노력을 거부하고 제도권 테두리를 박차고 나간다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박종원 감독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92)에서 거둔 성과를 선취(先取)하고 있다. 게다가 양자 간에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 박종원 감독이 이문열의 동명의 원작(1987년 출간)을 거의 충실하게 영상으로 옮긴 반면, 임권택은 전상국의 단편소설을 영상화하는 과정에서 소설 속 내레이터(narrator)인 이유대의 관찰자 시점을 과감하게 버리고 기표와 형우(즉 권달호의 대리인)의 대립을 전면에 부각시켰다는 점이다. 그럼으로써 극적 긴장감을 극대화하고 있다. 전상국의 소설이 1980년에 출간되었을 때 당시 독자들은 집단(集團)과 규율(規律)을 강조하는 권달호 선생의 교육방식을 박정희 독재권력의 ‘국민교육헌장’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것으로 독해를 했다. 영화에서는 권 선생이 학생들을 조종하여 기표를 도울 때 언론까지 동원하여 생색을 내는 장면을 강조함으로써 유신시대(維新時代) 말기 언론을 통한 우민화(愚民化) 정책을 간접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어쨌든 우리는 이 영화를 보면서 임권택 감독이 한국영화 역사의 가장 암울한 시기였던 1970년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희망을 갖고 1980년대를 맞이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김시무
영화평론가, 부산대학교 아시아영화연구소 연구원, 1961년생
저서 『봉준호를 읽다』 『영국의 영화감독』 『스타 페르소나』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