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에세이 - 길을 묻다
사회문화적 선진국으로 가는 길

  • 인문에세이 - 길을 묻다
  • 2024년 봄호 (통권 91호)
사회문화적 선진국으로 가는 길

대학에 들어간 후 사회학을 배우고 직업으로 삼아 왔다. 사회학은 서양에서 시작하고 발전한 학문이니 평생 서양의 정신과 가치를 공부해온 셈이다. 우리 역사와 학문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30대 후반부터였다. 전문가의 식견은 당연히 아니었고 아마추어적 흥미에 따른 거였다. 사회학과 병행하여 우리 역사 및 사상에 관한 글과 책을 꾸준히 읽었다. 한문 원본을 읽을 능력이 없었지만 한글 번역본을 찾아 선조들의 목소리에 직접 귀 기울였다.

그 결과로 2012년에 내놓은 책이 『시대정신과 지식인』이었다. 삼국과 통일신라 시대의 원효와 최치원부터 현대의 황순원과 리영희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를 대표하는 지식인들의 삶과 사상을 다룬 거였다. 그들 가운데 특히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켰던 이들은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전반에 활동했던 지식인들이었다. 유학자 이건창과 독립운동가 서재필, 사상가이자 종교인인 최제우와 승려 경허, 역사학자 신채호와 소설가 이광수가 그들이었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전반은 전통과 근대가 격렬하게 충돌하던 시기였다. 당시 근대로 향하는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거역할 순 없었다. 전통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갈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시대교체를 바라보는 나의 생각과 마음은 양가적이었다. 이성의 시각에서 전통에서 근대로 가는 도정은 합리성과 계몽주의를 구현하는 길이었다. 하지만 정서의 시각에서 그 도정은 ‘서양적인 것’이 ‘한국적인 것’을 압도하는 과정이었다. 질문이 떠올랐다. 한국적 전통은 정말 ‘낡은 것’, ‘버려야 할 것’, ‘사라져야 할 것’이었을까. 이러한 나의 문제의식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일찍이 시인 김수영은 「거대한 뿌리」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한 바 있다.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 (…) 인환(寅煥)네 / 처갓집 옆의 지금은 매립한 개울에서 아낙네들이 / 양잿물 솥에 불을 지피며 빨래하던 시절을 생각하고 / 이 우울한 시대를 파라다이스처럼 생각한다 (…)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 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 / 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김수영이 1960년대 중반 왜 이런 노래를 불렀는지는 정서의 관점에서 작지 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우리 인간에게는 추억, 다시 말하면 기억이 중요하다. 기억이란 지나간 시간 속에 놓인 체험을 간직하고 생각해내는 거다. 이 기억에 대한 기록이 바로 역사다. 기억이 누적되면 그것은 역사로 전화(轉化)되는 것이다. 기억이 중요한 까닭은 김수영이 노래했듯 그 힘에 있다. 과거에 대한 기억은 현재에 대한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그 판단은 미래의 방향을 결정한다.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앞서 언급한 한 지식인 때문이다. 그는 수운 최제우다. 최제우는 1824년 12월 18일 경주에서 태어났다. 2024년 올해는 탄생 200주년이 된다. 최제우는 같은 시대를 살았던 이건창, 서재필, 경허와 다른 길을 걸었다. 이건창이 양명학을 바탕으로 자주적 발전을 꿈꿨다면, 서재필은 독립협회를 중심으로 자주·민권·자강운동을 추구했다. 경허는 조선 시대 선불교를 중흥시켜 근대 불교를 열었다. 그리고 최제우는 동학을 창도해 새로운 사상과 종교를 선보였다.

최제우의 삶은 다음과 같다. 앞서 말했듯 순조 24년인 1824년 경주에서 태어났다. 스무 살 즈음 세상을 구할 도를 찾아 나섰고, 서른 살 이후 종교 체험을 하며 수행을 연마했고, 이어 저술과 종교 활동을 벌였다. 그가 창도한 동학은 농민들로부터 상당한 지지를 얻었다. 하지만 조정으로부터 탄압을 받기 시작했고, 결국 1864년 대구에서 참형을 당해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는 마흔 살이었다. 이후 동학은 해월 최시형에 의해 계승됐고, 의암 손병희에 의해 천도교로 자리 잡았다.

최제우가 활동했던 19세기 중반과 후반은 ‘서세동점’의 문명사적 대전환기였다. 과학기술과 제국주의를 앞세운 서양 세력은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를 넘어 머나먼 동쪽 나라들까지 몰려왔다. 두 차례의 아편전쟁, 청·일본·조선의 개항은 이 대전환기를 상징하는 역사적 사건들이었다. 서양 세력은 힘을 앞세워 동아시아 세력을 굴복시켰고, 동아시아 나라들은 전통에서 근대로 가는 시대교체의 황혼 속에 놓여 있었다.

최제우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살아갔다. 최제우가 크게 주목 받은 것은 그가 체계화한 사상이자 창도한 종교인 동학이 동학농민혁명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세도정치가 절정에 달한 19세기 전반 조선사회에서는 지배층의 폭정에 맞서는 농민운동이 계속 이어졌다. 1894년에 일어난 동학농민혁명은 그 절정을 이뤘다. 어떤 사회운동이더라도 운동을 이끌어가는 이념적 토대와 조직적 기반이 요구된다. 동학농민혁명의 이념적 기초가 사상이자 종교인 동학의 철학에 있었다면, 그 조직적 기반은 동학의 교단이었다.

사상가로서 최제우는 당대 지식인들과 다른 방향을 모색했다. 그는 그 시절 지식사회의 유력했던 두 흐름인 위정척사파와 개화파와는 다른 제3의 사상적 거점을 세우려고 했다. ‘시천주(侍天主)’는 그 거점의 핵심을 이뤘다. 시천주는 내 마음속 천주, 즉 한울님을 모시고 섬긴다는 의미다. 이 시천주는 사람 섬기기를 하늘처럼 하라는 최시형의 ‘사인여천(事人如天)’과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손병희의 ‘인내천(人乃天)’ 사상으로 발전했다.

그동안 최제우 사상에 대한 연구는 활발히 이뤄져 왔다. 한편에서는 유교·불교·선교 사상과 토착 사상을 통합하고 있다는 견해가, 다른 한편에서는 통합을 넘어선 독창적 사상이라는 견해가 제시됐다. 동학에는 사상의 논리와 종교적 믿음이 공존해 있다. 분명한 것은 당대의 엘리트 사상과 새로운 민중 사상을 융합함으로써 위기에 빠진 세계를 구원하려고 한 통섭의 사상을 추구했다는 점이다.

사회학적 관점에서 보면 최제우 사상에는 민족주의·인간주의·해방주의가 숨 쉬고 있었다. 동학은 서양의 물질적·정신적 팽창에 맞서려는 민족주의 성향을 담고 있었다. 또 인간 존엄과 평등에의 열망을 품고 있었다. 최제우가 여자 노비 두 명을 각각 며느리와 수양딸로 삼은 일화는 그의 사유와 실천을 증거했다. 나아가 혼란의 ‘선천’이 끝나고 희망의 ‘후천’이 열린다는 최제우의 ‘후천개벽(後天開闢)’ 사상은 새로운 해방주의를 지향하고 있었다.

내가 동학사상을 주목하는 까닭은 전통에 대한 생각에 있다. 전통이란 앞선 시대로부터 계승되는 사상·관습·행동을 말한다. 사회학적 시각에서 전통은 근대와 맞서는 개념이다. 이 전통에서 근대로 진행되는 일련의 사회 변동을 근대화라고 지칭한다.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전통을 대표하는 문화는 유교 사상, 불교 사상, 그리고 토착 사상에 기반한 것이었다. 동학의 정체성은 바로 이러한 전통 사상을 바탕으로 하되, 민중의 주체성과 민중에 대한 사랑을 결합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재의 시각에서 동학은 두 가지 측면에서 숙고할 아이디어를 선사한다. 첫째는 동학의 역사성이다. 19세기 중후반 서양을 대표했던 사상가가 존 스튜어트 밀과 카를 마르크스였다면, 우리에게는 서재필과 최제우가 있었다. 21세기의 시점에서 밀과 마르크스 사상에 성취와 한계가 존재하듯, 최제우 사상에도 낡음과 새로움이 함께 깃들어 있다. 최제우가 열망했던 인간주의·평등주의·공동체주의는 우리 인류의 ‘오래된 미래’라 할 수 있다.

둘째는 동학의 현재성이다. 2024년 현재 우리 사회에는 선진국의 문턱에 올라섰다는 자부심과 지금이 ‘피크 코리아’일 것이라는 우려가 공존한다. 지속가능한 선진국을 일궈가기 위해선 정치와 경제의 제도개혁이 중요하다. 더하여 의식과 가치와 문화의 선진화가 요구된다. 진정한 선진국이라면 생각부터 선진국다워야 한다. 생명을, 자신을, 타자를 존중하는 생명주의·인본주의·이타주의의 씨앗을 최제우 사상에서 찾을 수 있다.

이쯤에서 내가 동학에 관한 생각을 다소 길게 꺼낸 까닭을 이야기해 보고 싶다. 그 이유는 21세기 세계사회와 우리 사회가 선 자리와 갈 길에 대한 탐구에 있다. 지난 20여 년간 세계사회와 우리 사회는 거대한 변동의 한가운데 놓여 있었다. 사회적 시간의 관점에서 20세기가 종막을 고하고 21세기가 본격화돼 왔다.

먼저 세계적 차원에서는 새로운 사회 현상들이 21세기의 개막을 알렸다. 경기 침체와 뉴 노멀(New Normal)의 시작, 제4차 산업혁명과 플랫폼 비즈니스의 약진, 중국의 부상과 미·중 경제전쟁의 개막, 포퓰리즘의 발흥과 민주주의의 위기, 불평등의 강화와 사회 갈등의 증대, 정보사회의 진전과 탈진실 시대의 도래, 브렉시트와 민족주의의 분출, 개인주의와 부족주의의 동시 심화, 바이러스 폭풍과 코로나19 팬데믹의 등장, 그리고 우크라이나전쟁의 발발과 신냉전으로의 전환이 그것들이다.

이 모든 현상을 관통하는 세 개의 키워드는 ‘뉴노멀’, ‘불안’, ‘글로벌 위험’이다. 비정상적인 것의 정상적인 것으로의 변화가 뉴노멀이었다면, 이러한 변화를 겪는 마음의 상태는 불안이었다. 이 와중에 2020년 우리 인류는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글로벌 위험과 마주했다. 이제 변화의 방향은 예측하기 어려워졌고, 거기에 속도까지 더해져 인류는 낯선 풍경의 세계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지구적 차원에서 2008년 대침체 이후 암중모색의 한 측면은 독일 사회학자 볼프강 슈트렉이 제안한 ‘거대한 후퇴’로 명명할 수 있다. 거대한 후퇴란 세계 질서가 걸음을 멈추고 뒤로 물러서는 형국을 의미한다. 동요하는 세계화와 불평등의 강화, 포퓰리즘의 발흥과 민주주의의 퇴조, 연대와 통합의 시민문화 고갈은 거대한 후퇴의 구체적인 증거들이었다.

암중모색기의 다른 하나의 측면은 ‘끝없는 변화’였다. 미국 경제학자 앤드루 맥아피와 에릭 브린욜프슨은 ‘트리플 혁명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트리플 혁명이란 머신, 플랫폼, 크라우드(군중)가 이끄는 혁명이다. 인공지능(AI)으로 상징되는 머신 능력의 혁신, 구글로 대표되는 플랫폼 기업의 부상, 정보사회의 진전에 따른 집단 지성인 크라우드의 등장은 경제와 산업과 기업의 ‘혼동 속 성장’을 가져왔다. 요컨대 끝없는 성장은 거대한 후퇴와 함께 21세기의 첫 사반세기의 명암을 이루고 있다.

한편 우리 사회에서는 21세기에 들어와 ‘성공의 대한민국’과 ‘위기의 대한민국’을 동시에 관찰할 수 있다. 성공의 대한민국의 측면에서 우리 사회는 산업화 시대와 민주화 시대가 결실을 맺어 왔다. 우리나라 위상이 20세기와 확연히 다르다는 점은 그 결실의 구체적 징표이자 국가적 자부심을 이뤘다.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권에 진입했고, 절차적 민주주의도 어느 정도 안정됐다. 그 결과 비서구 사회에서 선진국 대열에 올라선 이례적인 나라로 인정되고 있다. 최근에는 K-문화가 지구적으로 큰 환영을 받아 김구 선생이 소망했던 ‘문화국가’의 실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위기의 대한민국의 측면에서 우리 사회는 산업화 시대와 민주화 시대의 그늘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경제 양극화와 정치 양극화, 그리고 불안사회는 그 대표적인 그늘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러한 두 겹의 양극화와 불안사회의 사회문화적 측면이다. 압축 성장의 대가로 우리 사회에서는 물질만능주의, 경쟁지상주의, 자기중심주의가 뿌리 내려왔고, 이는 국민 다수의 삶을 ‘만인 대 만인의 투쟁’ 상태로 몰아넣어 왔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 사회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방향은 분명하다. 정치경제적 선진국이자 사회문화적 선진국이 그것이다. 먼저 정치경제적 선진국을 이루기 위해서는 일련의 제도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가속하는 인공지능 시대의 일자리 창출, 세습자본주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계급 불평등의 완화, 국가 소멸을 우려하게 하는 저출생의 대처, 가시화된 신냉전 질서에서의 국익 우선 외교 추진은 그 제도개혁의 구체적인 목록이다.

한편 사회문화적 선진국은 정치경제적 선진국에 걸맞은 시민사회를 일궈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 핵심적인 과제는 물질만능주의, 경쟁지상주의, 자기중심주의를 극복할 시민문화를 뿌리내리는 데 있다. 이 새로운 시민문화는 그렇다면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응답하기 위해서는 서구 문화와 동아시아 문화, 전통문화와 현대 문화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돌아보면 ‘동도서기(東道西器)냐 서도서기(西道西器)냐’는 동아시아 근대화 200년의 화두였다. 서양의 기술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 기술과 조화로울 수 있는 의식·가치·문화의 토대가 동도인가, 서도인가, 동도와 서도의 융합인가는 지난 동아시아 200년의 정신적 과제였다. 이와 연관해 나는 두 가지를 강조하고 싶다.

첫째, 서구 문화와 동아시아 문화에 대한 균형적인 시각이 요구된다. 서구 문화의 미덕을 이루는 개인주의·자유주의·공화주의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더하여 ‘아시아적 가치’라는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부정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동시에 서구사회의 한계이자 한국사회의 그늘이라 할 수 있는 약육강식·적자생존·각자도생 문화를 이대로 놓아둘 수 없음을 직시해야 한다. 양도할 수 없는 개인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동시에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적 연대를 발휘할 새로운 시민문화를 일구고 뿌리내려야 한다.

둘째, 전통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요구된다. 전통문화는 하나로 이뤄져 있지 않다. 과거에 존재했던 ‘지나간 전통문화’와 현재의 삶과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살아 있는 전통문화’는 다른 것이다. 연고주의·가부장주의·권위주의의 지나간 전통문화는 거부하되, 인간주의·생명주의·공동체주의라는 살아 있는 전통문화를 재발견하고, 이를 개인주의·자유주의·민주주의라는 인류 보편 가치와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하며 융합하는 것이 선진국 대한민국의 사회문화적 과제다. “나 또한 동쪽 나라 조선에서 태어나 동쪽에서 도를 받았으니 도는 비록 하늘의 도라 할 수 있지만 학문으로 말하면 동학이라 해야 하느니라.” 최제우의 『동경대전』 ‘논학문’에 나오는 구절이다. 진정한 선진국의 길은 자율로서의 개인의 활력과 공동체로서의 사회의 역동성이 공존하고 융합하는 시민문화를 일구고 성숙시켜 가는 과정일 것이다. 바로 이 과정에서 최제우 사상을 위시한 전통문화는 새롭게 숙고할 충분한 가치를 가진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회문화적 선진국의 길을 묻고 찾는 데 지식사회가 의미 있는 역할을 맡아주길 나는 소망한다.

김호기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1960년생
저서 『세상을 뒤흔든 사상』 『현대 한국 지성의 모험』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