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UAP : 위를 보는 이야기의 그다음

  • 기획특집
  • 2024년 봄호 (통권 91호)
UAP : 위를 보는 이야기의 그다음

한국 설화 문학에서 중요한 책으로 손꼽히는 『삼국유사』에는 이런 이상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서기 661년 여름, 신라의 밤하늘에 이상한 물체가 나타났다. 마침 661년은 지금의 서울 광진구 일대로 추정되는 신라의 요새를 고구려의 장군 뇌음신이 공격한 큰 전투가 일어난 시기였다. 백제가 멸망한 후였기 때문에, 홀로 남은 고구려는 신라를 저지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므로 고구려의 신라 공격은 상당히 매서웠던 것 같다. 『삼국사기』 등 다른 역사 기록을 보면, 고구려는 거대한 돌을 던져 성을 공격하는 투석 장치를 대량으로 투입하여 정신 없이 신라를 공격했다고 한다. 신라 입장에서는 중대한 위기였고, 그런 뒤숭숭한 분위기였으니 밤하늘에 나타난 이상한 물체는 더욱더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을 것이다.

이야기 속의 묘사에서 그 이상한 물체는 마치 유성이나 혜성처럼 날아간 듯이 표현되어 있다. 그 형상을 비유한 표현이 지금 보면 재미있는데, 『삼국유사』에는 그 모습이 마치 커다란 장독과 같았다고 되어 있다. 1950년 전후로 미국에서 외계인의 비행 물체가 하늘에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유행했을 때, 미국 사람들 사이에는 그것이 접시 모양의 물체가 하늘을 날아다닌다고 해서 ‘Flying Saucer’, 즉 ‘비행접시’라고 부르는 표현이 널리 퍼졌던 적이 있다. 문화가 다르다 보니, 1950년대 미국인들이 접시 같다고 본 것을 660년대 신라 사람들은 장독 같다고 말한 것 아닐까? 만약 신라에 할리우드가 있어서 목격담을 블록버스터 오락 영화로 만들어 전 세계에 퍼뜨렸다면, 세계에서는 비행접시 대신에 ‘비행장독’이라는 말을 썼을지도 모른다.

그냥 이상한 모습으로 날아가다가 슬쩍 사라지고 마는 대부분의 비행접시에 비해, 661년 신라의 비행장독은 지상 사람들에게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쳤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이 알 수 없는 비행 물체는 고구려군을 공격했다고 한다. 정확히 말해 장독 형태의 별 같은 것이 하늘에서 고구려 땅으로 떨어지자, 고구려군은 견디지 못하고 물러났다고 되어 있다. 이런 설명은 그냥 어떤 커다란 물체가 고구려군 진영에 떨어진 이야기를 말한 것일 수도 있을 것이고 좀 더 상상력을 보태 보자면 그 물체가 저공비행을 하면서 어떤 방법으로 고구려군의 장비를 파괴한 것이라는 말일 수도 있지 않을까?

정확한 진상은 알 수 없지만, 이런 놀라운 이야기의 바탕이 된 어떤 사건이 실제로 일어나기는 일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비슷한 사건이 『삼국유사』뿐만 아니라 『삼국사기』에도 기록되어 있거니와, 『삼국유사』에는 이 사건이 일어났던 날짜까지 661년 음력 6월 22일이라고 꽤 정확하게 나와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삼국유사』에서는 이 모든 것이 사실은 신라의 영웅인 김유신 장군의 신통력 덕택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고구려군의 침공으로 신라군이 위기에 처하자 김유신은 제단을 만들고 별을 향해 기도를 했는데 그러자 하늘에서 이상한 물체가 나와서 고구려군을 물리쳐 주었다는 것이다. 만약 기술이 발달한 외계인이 비행접시를 타고 우주에서 지구를 찾아왔다는 요즘 이야기와 연결해 본다면 이 설화는 더욱더 SF 소설처럼 변한다. 이야기를 만들어 보자면, 김유신은 외계인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위기에 처했을 때, 우주 저편에 사는 외계인에게 도와 달라고 요청했더니 우주선이 나타나서 고구려군을 공격해 준 사연이라고 어렵잖게 연결해 볼 수 있다.

더 재미난 것은 김유신이 태어날 때부터 우주와 관련이 있는 인물이라는 다른 전설도 『삼국사기』 등의 문헌에 남아있다는 점이다. 김유신의 아버지는 화성과 토성이 자기에게 내려오는 이상한 꿈을 꾼 적이 있는데 바로 그 꿈이 김유신의 탄생을 예고하는 태몽이었다고 한다. 만약 이 이야기가 고대의 영웅을 찬양하는 설화 문학이 아니라 현대의 SF였다면 어땠을까? SF 작가 입장에서 김유신의 태몽은 화성이나 토성의 외계인이 찾아와 김유신이라는 사람은 자신들의 관점에서 아주 특별한 사람이니 한평생 자기들이 도와주겠다고 예고하는 장면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661년 음력 6월 22일 고구려를 공격한 비행 물체가 화성인이나 토성인이 지구에 보낸 전투 우주선이라는 상상을 해 볼 수도 있다.

 

정말로 661년에 일어난 일의 진상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고구려 군사들의 눈에 좀 이상하게 보인 유성이나 혜성 같은 무엇인가가 나타나기는 나타났던 것 같다. 그런데 심리전에 능한 신라 군사들이 이것이 고구려군이 패배할 징조라는 소문을 냈고, 누군가 한술 더 떠서 백전백승으로 명망 높은 김유신 장군이 신기한 작전을 쓰고 있으니 고구려군은 곧 끝장이라고 이야기를 지어내 겁을 주었던 것 아닐까? 그 바람에 신라 군사들은 사기가 올라 좀 더 버텼고, 고구려군은 사기가 떨어져 후퇴한 것이 가장 진실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영웅 서사시와 같은 이야기 속에서 이 사건은 하늘에서 나타난 신비한 누구인가가 지상의 선택된 인물과 소통을 하고 그 뜻에 따라 마법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는 내용으로 과장되고 변화했을 것이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삼국유사』나 『삼국사기』의 내용을 보면 지금에 와서는 너무 정형화된 소재다 싶은 영웅담들도 잔뜩 나타난다. 예를 들어, 김유신은 깊은 산 속에 사는 신비로운 인물, 난승에게 놀라운 검법을 배웠다고 되어 있다. 이런 내용은 20세기 무협지에서 정말 흔히 볼 수 있는 장면 그대로다. 그렇게 보면 내력이 복잡한 노인이 주인공에게 특별한 무공을 전수해 주고, 주인공은 그 신비로운 비법으로 보통 사람을 완전히 초월하는 활약을 하며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공을 세운다는 줄거리는 1500년 전, 전쟁터의 영웅담에도 오늘 스마트폰 게임 줄거리에 등장하는 모험 이야기 속에도 공통으로 등장하는 소재다.

 

그런데 흔한 이야기라는 점을 일단 인정하고 조금 더 냉정하게 661년 신라의 비행 물체 사건을 살펴보면 조금 다른 각도에서 신기한 점이 눈에 뜨인다. 중요한 인물이 신비한 힘을 발휘했다는 줄거리는 흔하다고 치자. 그런데 그 힘을 발휘하는 방법의 세부 사항이 왜 이렇게 외계인과 비행접시 이야기와 닮아 보이는 것일까? 예를 들면, 왜 하필 하늘에서 나타난 물체가 도움을 주는가? 왜 하필 김유신은 그 물체가 밤하늘의 별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기도를 했을까? 비행접시에서 내린 외계인과 만난 적이 있다는 요즘 이야기와 너무 비슷한 느낌 아닌가? 나는 이 모든 것의 바탕에는 하늘에 대해 사람이 품고 있는 동경과 오랜 세월 그 동경에 대해 노래해 온 문학적 전통이 깔려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먼 옛날부터 사람들은 나라와 민족을 막론하고 대개 하늘에서 뭔가가 내려오면 그게 더 멋지고 신비하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뜻이다.

하늘을 신성하고 경이로운 곳으로 여기는 이야기는 세계의 많은 문화권에 공통적으로 퍼져 있었던 것 같다. 한국어 관용구에서도 “하늘을 나는 기분”이라고 하면 평범한 수준으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기분이 좋다는 뜻이고,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라고 말할 때 하늘은 세상을 돌보는 성스러운 섭리를 의미한다. 다른 여러 나라의 신화와 전설 속에서도 하늘 위 높은 곳의 세상, 천상 세계는 보통 사람들의 세상과는 격이 다른 장소로 묘사되곤 한다. 그런 만큼 이런 이야기는 우리 사고방식 속에 아주 널리, 또 깊이 새겨진 것 같다. 그래서 하늘에서 나타나는 신비가 더 쉽게 공감을 얻는 것 아닐까? 옛날 일본 사람들 사이에는 깊은 땅속이나 바다 속에 거대한 메기가 있어서 그것이 꿈틀거리면 지진이나 쓰나미가 생긴다는 전설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지금 지진이 일어났을 때 땅속의 커다란 메기를 찾아야겠다고 하면 다들 유치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하늘에서 신비의 무엇인가가 내려왔다고 하는 이야기는 자주 관심을 끈다.

 

왜 하늘에 대한 신비는 이렇게 굳게 자리 잡을 수 있었을까? 그 까닭은 어쩌면 지구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종족의 특징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구는 비교적 중력이 강한 행성이고 사람은 그 중력이 주는 무게를 곧이곧대로 느끼며 땅 위에서 산다. 그렇기 때문에 높은 곳을 올라가는 일은 힘이 들고, 높은 곳에서 떨어지기는 쉬우며 그 결과 몸이 땅에 부딪히면 아프다. 사람은 그런 사실을 아주 예전부터 항상 느끼며 살아온 종족이다. 그렇다 보니, 자연히 높은 곳, 땅에 서서는 닿기 힘든 하늘을 알기 어렵고 놀라운 공간이라고 느낀 것 아닐까?

원숭이들을 보면 맹수를 피하기 위해 높은 나뭇가지 위로 재빨리 기어 올라가려고 애쓰는 습성을 갖고 있다. 나는 원숭이와 뿌리가 같은 영장류 동물의 원초적인 습성이 하늘을 우러러보는 사람의 마음을 만들어 내고 있는지 모른다는 상상을 할 때가 있다. 만약 사람이 하마와 비슷한 조상을 갖고 있어서 습지에서 어슬렁거리면서 살다가 가끔 속 편하게 물에서 수영하는 것을 즐기는 동물의 후손이었다면, 어쩌면 하늘 대신에 강물을 훨씬 더 신비롭게 여기는 문화가 퍼져 있지 않을까? 이미 약 30년 전인 1990년대 중반에 한국 SF의 거장인 듀나 작가는 우주 저편, 지구와는 전혀 다른 뿌리를 가진 종족이 하늘보다 땅을 신성하게 여겨서 땅에 깊은 구덩이 파는 것을 중시했다는 내용의 소설을 쓴 적이 있다. 높다란 탑을 지어 그곳을 중요한 장소로 삼곤 하는 지구인의 문화와는 반대다.

그런 상상 때문에 나는, 하늘의 비행접시를 목격했다는 이야기 속에는 종종 내가 선택받은 특별한 사람임을 느끼고 싶다는 마음이 서려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시점에서 자신의 시간을 보내며 자신의 인생을 산다. 그러므로 누구나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을 본다. 이런 세상에서는 내가 어떤 식으로든 특별한 사람일 거라는 생각은 빠져들기 쉬운 관점일 수밖에 없다. 만약 내가 엄청난 부자나 굉장한 권력을 누리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서 특별하지 않다면, 하다못해 비행접시를 본 적이 있다는 이야기로도 특별함을 느껴 보려 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내가 외계인의 우주선을 보았다는 이야기는 하늘에서 내려온 대단히 신비롭고 이상한 것이 바로 나와 관련이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보면 외계인의 우주선 이야기는 예로부터 이어진 꾸준한 이야기들의 일종이다. 고대 영웅 서사시의 주인공인 김유신이 비행 장독을 불렀다는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현대 문학이 개척한 새로운 이야기의 영역은 현실 그대로의 인물과 실제 사회상을 그대로 보는 시선에 있다고 생각한다. 현대 문학은 굳이 천상 세계의 놀라운 신비나 위대한 영웅의 이야기를 다루지 않더라도 우리 주변의 모습과 평범한 사람의 생활에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빚어낸다. 그리고 바로 그 덕택에 현대 문학은 더 생생하며 더 다채롭고 더 재미있을 수 있다. 다시 말해, 꼭 선택된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삶과 그 삶의 이야기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점을 보여 주는 것이 지금 우리의 문학이다.

현대의 우리는 지금 기도로 별을 불러서 적군을 물리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 시대의 문학이 가리키는 방향은 막연히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 것 같은 하늘에 무엇인가가 나타날지를 보는 쪽이 아니라, 우리 곁, 우리 옆에서, 서로 다른 여러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좀 더 가까이 보는 방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결국 지금 우리에게는 비행접시 이야기든, 비행 장독 이야기든 장엄한 예언이라기보다는, 대중이 즐길 수 있는 오락의 소재 정도로 간주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

곽재식
소설가, 과학자, 1982년생
장편소설 『사기꾼의 심장은 천천히 뛴다』, 소설집 『토끼의 아리아』 『행성 대관람차』 『가장 무서운 이야기 사건』, 저서 『괴물 과학 안내서』 『한국 괴물 백과』 『로봇공화국에서 살아남는 법』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