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현장
낯선 기차에 올라타기

- 끊임없이 여행하는 글쓰기, 작가 다와다 요코와의 대화

  • 문학현장
  • 2024년 봄호 (통권 91호)
낯선 기차에 올라타기

- 끊임없이 여행하는 글쓰기, 작가 다와다 요코와의 대화

정리) 김수려
극작가, 한국예술종합학교 극작과 4학년, 제22회 대산대학문학상 희곡 부문 수상자, 1999년생
희곡 「질주」 등

다와다 요코(Tawada Yoko)
일본 출생의 독일 작가, 1960년생
장편소설 『눈 속의 에튀드』 『여행하는 말들』 『용의자의 야간열차』 『영혼 없는 작가』 『목욕탕』 『경계에서 춤추다』 『지구에 아로새겨진』 『별에 어른거리는』, 소설집 『세 사람의 관계』 『개 신랑 들이기』 『고트하르트 철도』 『데이지꽃 차의 경우』 『구형 시간』, 시집 『아직 미래』 등

 

다와다 요코는 베를린에서 독일어와 일본어로 글쓰기를 지속하는 대표적인 이중언어 작가이다. 와세다 대학에서 러시아 문학을 전공한 후 독일로 이주하여 함부르크 대학에서 독문학 석사, 스위스 취리히 대학에서 독문학 박사 과정을 공부하였다. 1987년 독일에서 첫 책 『네가 있는 곳에만 아무도 없다』를 출간한 이후 시와 산문, 소설, 희곡, 에세이, 강연집 등 50여권의 책을 출판하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모어의 안전함 바깥에서 날카로운 지성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그의 문학은 30개 이상의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며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우리는 다양한 문학행사가 열리는 베를린의 문화공간 Literaturhaus에서 다와다 요코를 만났다. 그는 우리의 자기소개를 노트에 받아 적으며 계속해서 우리에 대해 궁금해했고, 긴장은 곧 설렘으로 바뀌며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일본에서 독일로 향한 선택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왜 독일이었나요?

_일단 유럽에 대한 흥미가 있었습니다. 특히 러시아 문학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죠. 하지만 당시 소련이나 폴란드는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유학을 갈 수 없었고 대안으로 독일을 선택한 것도 있습니다. 또한 아버지께서 함부르크에 있는 회사와 사업적인 관계가 있었기에 그곳에서 인턴십을 할 수 있었어요. 일단은 함부르크에서 유럽을 관찰해보자는 마음으로 독일에 오게 되었습니다.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자들과 다와다 요코     

 

작가님의 작품 세계를 이야기할 때 이동성, 탈경계, 정체성, 언어와 존재 같은 키워드는 빠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 주제들에 관심을 가지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_사실 일본에 살 때는 이동하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여행도 안 좋아했고 항상 방이나 도서관에 있었지요. 그런데 독일에 오고 난 후 여행이 굉장히 편리하고 쉬워졌어요. 유럽에서 국경이란 개념이 점차 흐려지는 시기였습니다. 물론 동유럽과 서유럽의 경계는 여전히 강했지만요. 제가 독일에 왔던 1982년에는 아직 독일 내에도 국경이 있었고요. 동독과 서독은 분단되어 있었고 넘어설 수 없는 경계가 있었죠. 지금은 통일이 되었지만 사실 당시로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한국에서 남한과 북한의 경계가 사라진다고 했을 때 바로 상상하기 쉽지 않은 것처럼요. 그런 주변의 상황 속에서 경계라는 주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경계를 넘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제게는 굉장히 중요하게 다가왔고, 이때 경계를 꼭 국경에 국한시키지 않았습니다. 죽은 자와 산 자, 사람과 동물 사이의 경계에 대해서도 생각을 많이 했어요. 또한 한 언어와 다른 언어 사이의 경계, 그 사이 번역의 문제에도 관심이 생겼지요.


소설 『별에 어른거리는』에서 “여행이란 평소 나답다고 굳게 믿었던 것을 버리는 것"이란 표현을 쓰셨는데요, 여기서 ‘여행'이란 단어를 ‘언어’로 바꿔 생각해 보아도 좋겠습니다. 이국의 언어를 도구로 글을 쓰는 과정이 매일 특별한 여행이지 않을까 싶은데, 독일에서의 생활이 작가님의 작품에 끼치는 영향이 궁금합니다.

_대학생 때도 글을 계속 썼지만 독일에 오고 나서 완전히 달라진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어떤 단절이 생겨났다고 할까요? 그 당시에는 인터넷도 없었고 항상 전화를 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기 때문에 일본어와 저 사이에 단절이 생겨났습니다. 제 주변 누구도 일본어를 하지 못했고 어떤 의미에서는 일본어와 작별을 하게 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물론 저는 여전히 일본어를 할 수 있지만, 그 언어를 ‘정말 이상하게 생긴 글자네’, ‘소리가 이상하게 들리네’ 이런 식으로 외부적인 시선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독일에서 첫 책을 출판하고 가진 낭독회에서 한 참여자의 요청으로 일본어로 쓴 시를 낭독한 일이 기억에 남는데요, 제가 일본어를 읽는 소리가 마치 음악처럼 인지되었고, 소리가 어떻게 들리는지에만 집중하여 낭독했던 경험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렇게 언어를 낯설게 느끼는 감각을 글쓰기에도 적용해서 언어를 굉장히 의식하며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작가님의 작품에는 여정을 떠나는 인물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용의자의 야간열차』 같은 소설은 이미 그 자체로 이동의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고요. 작가님에게 이동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_『용의자의 야간열차』에서 모든 사건은 야간열차 안에서만 일어나는데 그곳은 굉장히 어둡고, 풍경도 없고, 모두가 잠들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곳입니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주목한 것은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을 할 때 중간에 생겨나는 바로 그 공간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 내면적으로 굉장히 많은 사건이 발생하죠. 1990년대에는 아직 유럽 내에서 비행이 굉장히 비쌌기 때문에 야간열차를 타고 많은 여행을 했는데 그런 제 경험이 반영되어 있기도 합니다.

글쓰기 역시 정신적으로 하나의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문장을 쓸 때 이 문장은 어느 한 곳에 머무르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이 문장이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르고, 모르기 때문에 결국 어디론가 가게 됩니다. 실제로 제가 모르는 건지 의식을 못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비유를 하자면 목적지가 어디인지 모르는 기차에 그냥 올라타는 느낌입니다. 사실 내 일부는 목적지를 알고 있을 테지만요.

쓰는 행위 자체가 어디에 도착할지 모를 기차에 올라타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작가는 계속해서 여행과 정착 사이를 이동해야 하는 직업 같습니다. 계속해서 떠나야 한다는 데에서 오는 외로움이나 감정적인 힘듦은 없으신지요.
_사실 장점이 먼저 생각납니다. 어딘가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 예를 들어 집에 앉아서 글을 쓰면서도 - 여행하는 사람처럼 느낄 수도 있고, 또 계속 움직이고 있는 상황일지라도 글을 쓰는 행위 자체에서 안정감과 소속감을 찾을 수 있죠.

반면 저는 다른 측면에서 어려움을 느낄 때가 있는데요, 희곡을 쓰고 또 극단과 함께 일하는 것이 사실 좀 어렵게 느껴진 적은 있습니다. 혼자 쓰는 시와 소설과 달리 배우들과 함께 하다 보면 ‘이걸 조금 바꿔서 이렇게 하고 싶다’ 혹은 ‘이런 건 어떠냐’하는 식으로 계속 개입이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밤낮, 일요일이며 월요일 할 것 없이 연락이 오기도 하죠. 사실 글을 쓸 때 어렵다고 느꼈던 부분은 오히려 그런 부분인 것 같습니다.

소설과 희곡을 모두 많이 쓰셨는데요, 무대라는 장소가 작품의 내용에 미치는 영향이 있을까요?
_희곡이 무대 위에서 상연되는 모습은 항상 제 상상을 뛰어넘기 때문에 ‘무대 위니까 이렇게 써야 한다’는 식의 고려는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희곡의 문학적 형태가 굉장히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들 각자가 자신의 말을 계속하며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풍경 묘사가 별로 없죠. 소설 『지구에 아로새겨진』에서는 이러한 희곡의 형태를 차용하기도 했습니다.

『목욕탕』, 『용의자의 야간열차』 등 많은 작품에서 자신의 몸을 독특하게 감각하고 스스로를 ‘당신'이라고 부르는 화자들이 등장을 하는데요. 이렇게 ‘나’를 낯설게 바라보는 감각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_이 주제는 정체성과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확정된 정체성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매일 거울을 보며 그 거울에 비친 상이 ‘나'라고 생각하고, ‘나'가 학교 혹은 직장에 간다고 생각하지만 사람은 매일 조금씩 달라집니다. 또한 일본어에서는 1인칭 시점을 사용했을 때 언어상의 문제 때문에 1인칭 ‘나'가 여성인지 남성인지 또 어떤 맥락에서의 ‘나'인지 규정이 되어버립니다. 독일어에서는 ‘나'는 ‘Ich’로 통일이 되어있어서 그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데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저는 2인칭이 주는 자유로움과 개방성을 굉장히 좋아하게 된 것 같습니다.

작가님에게 ‘몸'이란 무엇인가요?
_재밌는 질문이네요. 제가 독일에서 처음으로 발간한 책 『네가 있는 곳에만 아무것도 없다(Nur da wo du bist da ist nichts)』에서 썼던 내용이 생각납니다. 몸을 뜻하는 일본어 ‘体[체]’가 무엇을 뜻하냐고 했을 때 결국 사람(人) 과 책(本)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몸은 사람과 책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몸이란 ‘人’으로 표상이 되는 생물적인 부분과 ‘本’으로 표상이 되는 사상으로 이루어져 있고, 우리의 생각으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스스로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냐에 따라 구성된다고 생각합니다.


경계에 대한 문학적 상상력은 각국의 분쟁 상황과 난민 문제, 더 나아가서는 오늘날의 포스트휴먼 담론과도 연결되는 지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지점에서 시의적인 작품을 써야 한다는 부담은 없으신지 그리고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묻고 싶습니다.
_일단 저널리즘에 비해서는 문학의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동시대 문제에 관한 에세이를 자주 쓰지만, 소설에서 어떤 동시대 문제를 다루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전쟁이나 이스라엘 문제에 대해 소설을 쓰는 것은, 우선 그렇게 빠른 속도로 진행되지 못할 것입니다. 소설이 지금 일어나는 일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이 되기는 어렵지요. 문학은 다층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굉장히 느리게 진행이 됩니다. 지금까지도 2차 세계대전에 대한 작품이 쓰이곤 하죠. 하지만 소설이 아주 오래전에 일어난 일들과 맞닿는 지점이 있듯, 지금 당장 일어나고 있는 일과 미래에 대해서도 연결되는 지점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매일의 루틴이 있으신가요? 꾸준히 창조해 내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_저는 매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바로 쓰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제 루틴이지요. 글쓰기 자체가 제게는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글을 쓰기 위한 힘을 어디서 얻는다기보다는 글을 씀으로써 힘을 얻는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와다 요코는 우리의 모든 질문을 다정한 눈빛으로 듣고 차분히 대답해 주었다. 지면 상에는 담지 못하였지만 우리의 질문 못지않게 그의 질문 역시 이어졌고 이제 막 첫걸음을 뗀 우리는 더욱 신이 나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의 언어를 연구하는 그는 무엇보다 글쓰기에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차분한 목소리로 전하는 단단한 답변을 통해 그의 에너지를 나눠 받을 수 있어서 기쁘고 벅찬 시간이었다. 훗날 글쓰기가 막막해진다면 이날의 대화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면 다시금 책상에 앉아 낯선 열차에 올라타기를 시도할 수 있지 않을까.

편집자 주 : 제22회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자들이 지난 1월 독일로 떠난 해외문학기행에서 다와다 요코 작가를 만났다. 그들이 나눈 인터뷰의 내용을 싣는다.

김수려
극작가, 한국예술종합학교 극작과 4학년, 제22회 대산대학문학상 희곡 부문 수상자, 1999년생
희곡 「질주」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