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인생식당이라고 하면 아마 최고의 맛집이라 여기는 식당이거나 자신의 소위 소울푸드가 있는 식당 또는 잊지 못할 어떤 사연이 얽혀있는 식당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런데 나의 경우엔 이 세 가지 중 어떤 하나라도 충족할 만한 그런 식당이 없다.
나도 맛집 찾아다니는 것을 꽤 좋아하는 편이라 내 휴대전화 번호부엔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의 맛집들이 분류되어 저장되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음식 맛을 기준으로 특정한 식당을 인생식당이라고 섣불리 이름을 붙이는 일은 망설여진다. 식당마다 다루는 재료가 다르고 그 맛을 내는 방법들이 다른데 이들을 함께 놓고 비교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고의 맛집이라는 의미에서 어떤 식당을 인생식당이라고 부르는 일은 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나에겐 소울푸드라고 부를 만한 음식이 사실 없다. 그리고 아무리 좋아하는 음식, 맛있는 음식이라도 소주 한 잔 곁들이지 않으면 음식 맛은 반감되기 때문에 어떤 면에선 오히려 소주가 나의 소울푸드인 셈이다. 그러니 소울푸드를 기준으로 인생식당을 특정하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결국 살아오면서 나와 이야기가 얽힌 식당을 인생식당이라 불러야 할 터인데 내 인생에 깊이 각인될 만큼 이야기가 담겨 있는 그런 식당도 없어 그 또한 난감하다.
그렇다고 해서 나에게 인생식당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세 가지 기준과는 다른 나의 인생식당들이 있다. 나는 30년이 넘게 대학에만 있었다. 그래서 30년 넘게 점심은 말할 것도 없지만, 저녁도 학교 앞에서 먹었던 때가 많았다. 수업이 있는 날이건 없는 날이건 난 늘 학교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정년퇴직을 한 지금과는 달리 그땐 혼자 밥을 먹는 일은 없었다. 학부생, 대학원생 그리고 가끔 동료 교수들과 함께 밥을 먹었다. 그러나 학교 앞에 그 많은 식당이 산재해 있었지만 내가 가는 식당은 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었다. 물론 식당의 선정 기준은 당연히 음식 맛이었다. 그런데 훌륭한 맛이란 단순히 주인의 손맛이 좋거나 간을 잘 맞추는 입맛을 가져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릇에 반찬 한 가지를 담더라도 정성껏 담고 밥그릇에 밥을 풀 때도 정성껏 푸고, 손님들을 늘 반가운 얼굴로 맞이하는 주인의 그 태도에서 음식 맛이 나온다고 나는 믿는다. 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을 때면 그 주인이 어떤 분이라는 걸 대강 미뤄 짐작하는 것은, 삶의 태도와 음식 맛은 깊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음식 맛은 음식을 만든 사람의 인생과 닮았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 나는, 내가 자주 다니던 학교 앞 식당 주인들과 참 친했다. 국물이 시원했던 동태탕집, 깍두기 넣어 먹으면 더 맛있던 순댓국집, 내용물이 푸짐했던 부대찌개집, 다양한 메뉴가 있지만 특히 청국장을 맛있게 끓이던 평범한 한식당, 냉모밀이 깔끔했던 조그만 일식당, 치밥을 좋아하는 나에게 밥과 김치를 함께 내주던 치킨집, 돈 많이 들지 않고 푸짐하게 고기를 먹던 삼겹살집, 맛이 전국 제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들깨칼국수집 등등. 물론 몸이 좋지 않아 중간에 그만두거나 다른 곳으로 이사 가는 바람에 더이상 밥을 먹을 수 없는 식당들도 꽤 있었지만……. 그래서 난 정년퇴직을 하게 된 그해 2월 학교를 떠나기 전, 조그만 선물들을 마련하여 내가 좋아하던 식당에 일일이 찾아가 떠난다는 인사를 했다. 선물을 건네며 인사를 하는 나를 보며 몇 명의 식당 주인들은 눈물을 글썽이고 또 몇 명은 “또 오시겠죠 뭐”라며 웃었지만 나는 지금도 그분들께 입은 은혜를 기억하며 산다.
|
|
나는 이 인생식당들을 기억할 때면 주인도 떠오르지만, 함께 밥을 먹던 제자들도 떠오른다. 물론 많은 경우에는 그저 여럿 모여 한판 웃고 떠들며 함께 술잔을 기울였지만 때로 소수가 모였을 땐 깊은 얘기도 참 많이 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눈빛이 흐려지던 친구, 친구와의 갈등 때문에 괴롭다며 술을 연거푸 마시던 녀석,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조차 모르겠다며 한숨짓던 친구, 부모님 이혼 얘기를 하며 눈물 글썽이던 친구, 헤어진 남친 얘기를 하며 쿨하게 웃던 녀석, 조심스레 결혼 얘기를 꺼내며 주례를 부탁하던 졸업생, 자기는 술 잘 마신다며 많이 마시곤 취해서 해롱대던 녀석 등 주로 하는 얘기나 술자리의 분위기는 비슷했지만 그래도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많이도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나의 전화번호부엔 많은 식당 이름도 있지만 그 몇 배 되는 제자들의 이름도 저장되어 있다.
어쩌면 이들 모두는 내가 차려놓은 나의 인생이라는 식당에 찾아와 준 손님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식당의 음식 맛에는 주인의 음식과 손님을 대하는 태도나 정성이 녹아있는 것이기에 나도 나의 인생이라는 식당에서 만난 그들에게 정성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했지만 찾아왔던 손님들도 그 식당 주인을 그렇게 기억할지는 모르겠다.
정년퇴직을 하면서 내 식당을 다른 곳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단골손님들이 잊지 않고 가끔 찾아준다. 그러나 아무래도 손님이 없을 땐 그 식당 한구석에서 혼자 밥을 먹는 때가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혼자 밥을 먹으면서도 잔을 권할 사람은 없지만 끊임없이 혼자 술잔은 든다. 손님이 점점 뜸해지는 걸 보면 이제 내가 차려놓은 인생이라는 이 식당도 어느덧 문을 닫아야 할 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