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칼럼
무능력에 대하여

  • 대산칼럼
  • 2024년 봄호 (통권 91호)
무능력에 대하여

작년 말, 경상남도 양산으로 향했다. 그곳의 공단지역 가까이에 위치한 ‘지역아동센터’를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그 센터에는 다문화가정 청소년들이 여럿 다니고 있다. 부모님이 몽골인인 남매, 아빠는 한국인이고 엄마는 베트남인인 남매, 베트남 국적의 중도입국 소년과 소녀…… 국적과 모국어가 다양한 아이들은 방과 후 그곳에 모여 함께 공부하고, 함께 놀고, 함께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 센터에서 베트남 국적의 중도입국청소년과 대화할 기회를 가졌다. 다문화가정청소년과는 조금 의미가 다른 중도입국청소년의 범위는 꽤 넓다. 외국에 살다가 학령기 이후에 한국으로 들어온 청소년뿐 아니라, 이민 배우자가 한국인 배우자와 재혼하면서 데려온 전 배우자의 자녀, 외국인 근로자가 한국에 입국해 살면서 중간에 데려온 자녀, 제3국에서 출생하고 자란 북한이탈청소년 등도 중도입국청소년에 포함한다.

당시 열두 살이던 베트남 소년은 외국인 근로자의 신분으로 한국에 들어와 살고 있는 부모와 살기 위해 ‘중간에’ 한국으로 들어왔다. 소년이 태어난 곳은 베트남 하노이에서 남동쪽으로 90킬로미터 떨어진 남딘이란 곳. 소년의 아빠는 소년이 태어나기도 전인 14년 전에 근로자 비자로 한국에 들어왔다. 소년이 남딘에서 태어날 때 아빠는 한국에 체류하고 있었다. 그리고 소년의 엄마는 소년이 두 살 되던 해 시부모님께 아들을 맡기고 역시 외국인 근로자 신분으로 한국으로 건너왔다.

중도입국청소년들이 한국에 와 ‘이주’라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도 전에 1차적으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언어다. 한없이 낯선 한국어는 그들이 학교에서 아이들과 어울리는 데, 학업을 따라가는 데, 자아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큰 장애물로 작용한다.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정착하기 위해 애쓰는 그들에 대한 몰이해와 혐오는 그들이 건강하게 자립하고 성장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되고 있으며,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결국 우리 사회의 문제로, 우리의 문제로 되돌아온다.

한국에 들어온 지 다섯 달 남짓 된 베트남 소년과의 대화는 스마트폰 번역기를 통해 이루어졌다. 쉽지 않으리라는 내 예상과 달리 그 대화는 내가 열 손가락 안에 꼽는 ‘아름다운 대화’로 남았다. 소년은 ‘별’이라는 한국어를 몰랐다. 그러나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은 알았다. 밤하늘의 별을 소년과 함께 바라보며, 소년에게 ‘별’이라는 한국어 단어를 알려주며, 나는 ‘별’을 그 어느 때보다 온전히 느끼고 감상한 것 같은 묘한 경험을 했다. 그리고 그 후로 문득 별을 볼 때면 그 소년이 저절로 떠오른다.

열두 살이 돼서야 마침내 부모님과 함께 살게 된 베트남 소년이 가장 바라는 것은 ‘함께’ 사는 것이었다.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잠을 자고, 함께 놀고…… 소년의 아버지가 가장 바라는 것도 ‘아들이 좋은 사람, 도와주는 사람’으로 성장해 아들이 한국에서, 한국인들과 조화롭게 어우러져 사는 것이다.

베트남 소년을 생각하면 내게 떠오르는 오래된 질문이 있다.

무능력은 무엇일까?

한나 아렌트는 어떤 인터뷰에서 말했다. “칸트가 한 말을 그대로 인용해도 된다면요, ‘다른 모든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지 못하는 이 무능력 (……) 그래요, 그런 무능력…… 이런 종류의 멍청함……”

내가 생각하는 무능력은 ‘사랑 없음, 연민 없음’이다. 그런데 연민은 참으로 조심스런 것이다. 그것은 영감 없이는, 창조적인 상상력 없이는, 긴 인내심 불가능한 것이다.

“연민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그중 하나인 나약하고 감상적인 연민은 그저 남의 불행에서 느끼는 충격과 부끄러움으로부터 가능한 빨리 벗어나고 싶어 하는 초조한 마음에 불과하며, 함께 고통을 나누는 대신 남의 고통으로부터 본능적으로 자신의 영혼을 방어한다. 진정한 연민이란 감상적이지 않은 창조적인 연민으로, 이것은 무엇을 원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힘이 닿는 한 그리고 그 이상으로 인내심을 가지고 함께 견디며 모든 것을 극복하게 하는 의지를 가진 연민을 말한다.”(슈테판 츠바이크의『초조한 마음』중에서)

내가 생각하는 연민은 직선으로 흐르지 않는다.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도 않는다. 그것은 직선을 긋듯 밖으로 흐르다, 정화와 성찰의 과정을 거친 뒤,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되돌아와 내 안으로 흐른다. 베트남 소년과 대화를 나누며 나는 그러한 경험을 했다.

김숨
소설가, 계간 《대산문화》 편집자문위원, 1974년생
장편소설 『잃어버린 사람』 『떠도는 땅』 『제비심장』 『L의 운동화』 『한 명』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 『노란 개를 버리러』 『흐르는 편지』, 중편소설 『듣기 시간』, 소설집 『침대』 『간과 쓸개』 『국수』 『당신의 신』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