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문학의 공간
랩소디 인 베를린의 바이마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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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년 봄호 (통권 91호)
랩소디 인 베를린의 바이마르

바이마르에 있는 실러의 집    

 

2009년, 독일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곧장 인터넷 매체에 소설 연재를 시작했다. 이듬해 480페이지의 제법 두꺼운 책으로 출간된 것이 나의 열아홉 번째 장편소설 『랩소디 인 베를린』이다.

제목만 보면 베를린 이야기 같지만 실은 베를린과 바이마르 이야기다. 베를린은 현재축 시간 배경에 해당하는 공간이고, 바이마르는 과거축 시간 배경에 해당하는 공간이다. 과거란 이른바 바로크 시대. 역시 제목으로도 알 수 있듯이 이 소설은 음악 이야기인 것이다.

하지만 실은 코리안 디아스포라 이야기다. 바로크 시대 바이마르를 떠돌던 조선인 음악가. 그로부터 220년 뒤 베를린을 떠돌던 현대 한국인 음악가 이야기.

바로크 시대의 조선계 음악가 요한 힌터마이어는 독일인 스승인 안드레아스 아이블링거와의 갈등 끝에 조상의 땅이 있다는 동방으로 가기 위해 바이마르를 영영 떠난다. 교회 파이프오르간에 바람 넣는 풀무꾼에 불과했던 힌터마이어를 발탁해 음악가로 성장시킨 아이블링거였지만 제자가 경쟁관계를 넘어 연적의 자리까지 이르게 되자 힌터마이어를 용납하지 못한다.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의 수많은 예능장인들 중 일부는 나가사키에서 포르투갈 노예상인들에 의해 유럽으로 팔려 가게 되었는데 힌터마이어의 조상도 그중 한 악공이었다.

힌터마이어의 기록과 악보가 평양에 소장돼 있다는 사실을 접한 독일 체류 한국인 현대 음악가가 동베를린 주재 북한대사관을 통해 입북했다가 한국 정보기관에 의해 한국으로 유인 납치되어 구금된다. 결국 영구 추방 형식으로 석방된 한국인 음악가는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가 평생 고국 땅을 밟지 못한 채 타국의 공원묘지에 쓸쓸히 묻힌다.

과거축 시간 배경에 해당하는 공간을 바이마르로 정한 까닭은 줄곧 바흐를 상상하며 아이블링거를 묘사했고 멘델스존을 떠올리며 힌터마이어를 그렸기 때문이었다. 물론 바흐의 임종과 멘델스존 탄생 사이에는 59년이라는 간격이 존재하지만, 바흐도 소설 속 아이블링거도 바이마르 궁정 예배당의 오르가니스트를 역임한다. 그리고 멘델스존은 바흐가 만년까지 봉직하고 묻힌 토마스 교회가 위치한, 바이마르 인근 라이프치히의 음악가일뿐더러, 그가 열정적으로 복원하고 연주한 <마태수난곡>이 오늘의 바흐를 있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음악적 성향의 차이에서도 아이블링거와 힌터마이어는 바흐와 멘델스존과 비슷했거니와 인연이랄까 관계의 의미에 있어서도 유사한 데가 있다.

 

라이프치히 토마스 교회의 파이프오르간   

 

괴테와 실러의 동상  

 

그리고 힌터마이어가 기숙하던 아이블링거의 집은 바이마르의 ‘실러의 집’이 모델이다. 규모나 분위기가 소설의 무대로 삼기에 딱 맞는 집이었고 살림 집기며 주방기구들이 온전히 보존되어 있어 바로크 시대의 생활양식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게다가 실러의 집에서 100미터 떨어진 곳에 ‘괴테의 집’이 있다. 아이블링거와 힌터마이어의 성향과 관계를 음악적으로는 바흐와 멘델스존에 견줄 수 있겠지만 문학적으로라면 괴테와 실러로 비교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도 바이마르의 괴테와 실러를 생각하면 두 집 사이에 있는 마을 광장의 즐비한 저녁 맥주 테라스를 잊을 수 없다. 그리고 바이마르 지하 묘역에 너무도 나란히 놓인 두 사람의 목관도.

바이마르는 ‘바흐의 집’이 있는 작은 도시 아이제나흐와 ‘바흐의 무덤’이 있는 멘델스존의 도시 라이프치히의 중간에 위치해 있다. 그곳 바이마르에서 바흐는 18세에 궁정의 악사로 근무했고 29세에는 소설 속 아이블링거처럼 궁정악단의 악장으로 임명되었다. 바이마르는 또한 13세의 멘델스존이 괴테에게 자신의 연주를 선보이기 위해 찾았던 곳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바흐와 멘델스존을 상상하며 그린 『랩소디 인 베를린』의 아이블링거와 힌터마이어라는 인물이 탄생한 곳이 바이마르다. 그들의 거처로 그려진 ‘실러의 집’ 저녁 모퉁이를 돌면 불 밝힌 마을 광장이 나타난다. 중세 특유의 촘촘한 화강암 보도블록을 천천히 딛다 보면 바로크 시대 그 거리를 걷던 조선인 디아스포라의 회한이 알싸한 맥주 향에 묻어올 듯하다.

구효서
소설가, 1957년생
장편소설 『늪을 건너는 법』 『랩소디 인 베를린』 『통영이에요, 지금』, 소설집 『깡통따개가 없는 마을』 『시계가 걸렸던 자리』 『별명의 달인』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