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밭단상
②노인과 아이의 아름다운 연대

  • 글밭단상
  • 2022년 여름호 (통권 84호)
②노인과 아이의 아름다운 연대

어느 날 아이들과 함께 길을 걷다가 전동 휠체어를 탄 노인을 보았다.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인 첫째가 무심하게 “우리 할머니도 저거 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아이는 어떻게 그런 생각을 떠올릴 수 있었을까?

나는 비혼으로 두 아이를 입양해서 키우고 있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서 하교시켜 저녁 시간에 돌봐주시던 어머니는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거동이 불편해진 아버지를 보살피게 되어 우리집에 못 오시게 되었다.

어머니는 퇴행성 관절염으로 잘 걷지 못하셨다. 진작부터 인공관절 수술을 받을 생각이셨지만, 수술 전후 한동안 아버지 식사를 챙길 수 없고 집안을 건사할 수 없다는 이유로 내내 수술을 미루셨다. 물론 자식들은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으면 되니 수술을 빨리 받으시라고 권유했지만, 누군가를 고용하거나 집에 낯선 사람이 들어오는 걸 극도로 싫어하시는 어머니는, 결국 작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야 수술을 받으셨다.

우리 아이들은 할머니가 뒤뚱뒤뚱 힘겹게 걷는 모습을 늘 보면서 자랐다. 계단을 오르실 때는 몇 계단 오르고 나면 쉬고, 또 몇 계단 오르고 나면 쉬고……. 그러는 동안 아이들은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내려갔다 반복하며 장난을 쳤다. 눈썰미가 좋은 둘째는 “아이고, 다리야” 그러면서 할머니처럼 주먹으로 무릎을 두드리며 다리가 아픈 척 연기를 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다리가 아파 제대로 걷지 못하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전동 휠체어를 탄 노인을 보자 할머니도 그걸 타면 좋겠다고 저절로 머릿속에 떠올린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벼랑 위의 포뇨>에서 주인공 쇼스케는 노인 요양원과 어린이집이 나란히 붙어 있는 시설에서 생활한다. 요양보호사인 어머니와 함께 출근하고 함께 퇴근하는 쇼스케는 요양원 할머니들과 친하게 지낸다. 우리 아이들은 구립 복지관 부설 어린이집에 다녔으므로 복지관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노인들을 늘 접했다. 명절이면 한복을 입고 노인들께 세배도 하고,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고 민속놀이를 즐겼다.

어머니가 수술을 받고 실내에만 머무는 동안 아이들은 할머니의 말동무, 놀이 친구가 되었다. 함께 음식을 만들거나 고스톱과 윷놀이로 시간을 보냈다. 수술 후 여러 달이 지났고, 어머니는 소일거리로 주변 들판에 나물을 뜯으러 다니신다. 지난 주말에는 어머니가 뜯은 쑥으로 부침개를 부쳐 주셔서 아이들과 나눠 먹었다.

장애가 없는 사람도 독립적으로 살 수 있는 기간은 20대부터 60대까지다. 그 기간에도 여러 번 아프고 여러 번 다른 사람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우리는 모두 돌봄이 필요한 존재다. 자신처럼 약한 사람을 돌보면서 우리 모두 강해진다. 늘 시간에 쫓기는 바쁜 부모보다 한결 여유가 있는 노인들은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 줄 수 있다. 노인과 함께 생활하는 아이는 어리고 힘이 약해도 자신에게 남을 도와줄 능력이 있음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벼랑 위의 포뇨>에서 쓰나미가 삼킨 마을에 잠시 마법의 공간이 열리자 할머니들은 휠체어를 박차고 일어나 아이들처럼 뛰어다니고 소녀들처럼 깔깔거린다. 쓰나미가 물러간 후 물고기였던 포뇨는 다리를 얻고, 마법으로 다리가 튼튼해진 할머니들도 더이상 휠체어가 필요 없다. 우리에게는 마법의 다리처럼 서로를 튼튼하게 해줄 강력한 연대가 필요하다. 노인과 아이의 우정은 세상을 지탱하는, 약자들의 연대의 힘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백지선
도서출판 또다른우주 대표, 1973년생
저서 『비혼이고 아이를 키웁니다』 『경제경영책 만드는 법』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