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순례
인류애와 용기의 예술가, 행동하는 튀르키예의 대문호 쥴퓌 리바넬리

- 쥴퓌 리바넬리 장편소설 『세레나데』

  • 명작순례
  • 2024년 봄호 (통권 91호)
인류애와 용기의 예술가, 행동하는 튀르키예의 대문호 쥴퓌 리바넬리

- 쥴퓌 리바넬리 장편소설 『세레나데』

 

『세레나데』의 저자 쥴퓌 리바넬리에겐 수많은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세속주의자, 좌파 지식인, 반전 평화주의자, 여성 인권수호자, 환경주의자, 채식주의자 등등. 그 다음으로는 작곡가, 가수, 작가, 시인, 영화감독, 논설위원, 전직 국회의원 등 그가 성공을 거두었던 직업이 뒤를 따른다. 하지만 옮긴이에게 작가 쥴퓌 리바넬리를 한 문장으로 설명하라고 한다면 ‘소외된 약자를 이야기하고 역사적 논란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용기 있는 작가’라고 하고 싶다.

쥴퓌 리바넬리는 유명인이다. 우리에겐 생소한 이름일지 몰라도 음악, 영화, 문학작품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유명 예술인이다. 『세레나데』를 비롯해 백만 부 이상 판매량을 기록한 인기도서들을 집필한 작가다. 1982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욜(Yol)>의 음악감독이었으며, 산레모(San Remo) 국제가요제에서 최우수 작곡가상을 받기도 한 작곡가이자 가수이기도 하다. 그렇다 보니 새 작품이 출간되면 인기만큼이나 진보와 보수, 세속주의 지지자와 이슬람주의자들 간 작품을 두고 벌어지는 사실 논란의 중심에 늘 서곤 한다. 쥴퓌 리바넬리가 사료 수집과 고증에 공을 들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레나데』를 집필하는 동안 그는 두 명의 저명한 역사학 교수를 포함해 모두 열 명이나 되는 역사연구가들의 도움을 받았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거나 국가권력에 의해 감춰져 왔던 역사적 사실을 작품 소재로 다루기를 멈추지 않는 건 그의 다른 작품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쥴퓌 리바넬리의 문학작품, 음악, 영화의 밑바탕에는 1971년 군사반란 직후 세 차례 구속, 1년여 간 투옥, 11년간 망명 생활의 경험들이 자리하고 있다. 장애인, 여성, 소수민족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민, 이민자 문제, 환경 문제 등이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한다. 그리고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거나 국가권력에 의해 감춰져 왔던 역사적 사실 또한 작품의 소재로 자주 등장한다. 1942년 침몰했던 ‘스트루마호’가 2000년 7월 16일 흑해 해저에서 발견될 때까지 튀르키예, 영국, 러시아 등 관련 국가 모두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는 걸 원치 않았다. 리바넬리는 묻혀있던 이 사건을 파헤쳤고 『세레나데』라는 작품으로 세상에 알렸다. 비단 ‘스트루마호’뿐만 아니라 『세레나데』는 국가의 버림을 받아 몰살당한 ‘푸른 여단’, ‘아르메니아인 학살사건’ 등 감춰진 사건의 진실을 알리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리바넬리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이라면 서술에 중심을 둔다는 점이다. 상징, 묘사, 은유, 비유보다는 형상화를 통한 서술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문체는 간단명료하다. 화려한 미사여구보다는 구체적인 서술을 선호한다. 리바넬리는 개인적인 고민과 갈등보다는 사회적 문제와 대립에 중점을 둔다. 개인의 갈등은 결국 역사적, 사회적 문제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결론으로 귀결시킨다. 세레나데를 비롯한 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시간적, 공간적 방대함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세레나데』는 1940년대 전쟁의 광기에 빠져 있던 독일, 1차대전 패전 이후 신생 공화국을 지탱하기 위해 발버둥 치던 과거의 튀르키예, 그리고 세속주의를 선포한 지 몇 세대가 지났음에도 여전히 보수적인 이슬람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한 현재 튀르키예를 오가는 한 편의 팩션(faction)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역사적 사건들은 모두 실제며 등장인물들도 실존 인물들이다.

2017년부터 『세레나데』를 영화화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여러 난관에 봉착했다. 튀르키예-미국-독일 합작으로 영화제작에 합의했지만, 코로나로 인해 이마저 무산되었다. 결국, 지난해 ‘넷플릭스 오리지널’과 판권계약을 체결했고 현재 제작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쥴퓌 리바넬리의 대표작을 머지않아 영상을 통해 만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리바넬리는 2011년 『세레나데』 이후로도 매년 한 편 이상의 작품을 써왔다. 78세의 고령임에도 문학에 대한 그의 열정은 앞으로도 식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리바넬리는 한 인터뷰에서 “작가는 관에 들어갈 때조차도 구상 중인 작품 몇 편 정도는 머릿속에 있다”고 했다. 앞으로 더 많은 리바넬리의 작품을 만날 수 있겠다는 기대를 품게 하는 말이다.

※ 『세레나데』는 재단의 외국문학 번역지원을 받아 필자의 번역으로 문학과지성사에서 대산세계문학총서 185권으로 출간되었다.

오진혁
통역가·번역가, 1970년생
역서 『어부와 아들』 『마지막 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