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영화 속 U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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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년 봄호 (통권 91호)
영화 속 UAP

나이 이야기는 하고 싶지는 않은데, 그래도 이 원고에서는 필요할 것 같다. UFO(Unidentified Flying Object, 미확인 비행물체) 또는 UAP(Unidentified Aerial Phenomenon, 미확인 공중현상)라고 불리는 것에 대한 내 경험은 1970년대와 80년대 어린이 잡지에서 시작되었다. 이런 잡지를 읽는 사람들이 가장 기다렸고 가장 게걸스럽게 섭취했던 건 UFO, 버뮤다 삼각지대, 설인이나 네시와 같은 은서동물(隱棲動物) 이야기였다. 세상이 보이는 것보다 훨씬 이상한 곳이고 우리가 사는 세상의 지루함은 껍질에 불과하다는 속삭임. 어떻게 이게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을까. 특히 70,80년대의 대한민국에서 사는 아이들에겐 더욱 그랬다. 당시 이 나라는 아이들에게 더럽게 따분한 곳이었기 때문에.

당시 어린이 문화환경이 일본 대중문화의 선동과 날조에 기인한다고 설명하는 사람들이 있긴 한데, 100퍼센트 사실은 아니다. 물론 많은 것들은 일본을 통해 들어왔다. 그 사이에 추가된 날조도 많이 섞였을 것이다. 하지만 20세기 중후반의 유사과학과 초자연현상에 대한 열광은 전세계적이었다. 그것들 상당수가 선동과 날조에 기인한 건 맞는데 일본만 그랬던 건 아니다.

그 흔적은 주류 영화에도 남아 있다. 왜 70년대 사람들은 윌리엄 프리드킨의 <엑소시스트>를 그렇게 무섭게 보았을까? 훌륭한 영화라서? 그렇기도 하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당시 관객들이 그 이야기를 지금 관객들보다 훨씬 진지하게 믿었기 때문이다. 그건 얼마 전에 나온 <엑소시스트 : 믿는 자>가 왜 흥행에서 실패했는지를 설명해준다. <믿는 자>는 원작을 속편으로 이어가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일부로 생각했는데, 그럴싸함이 중요했던 영화의 속편이 이렇게 소재의 허구스러움을 드러내 보이면 맥이 풀릴 수밖에 없다.

 

UFO 영화로 돌아가 보자. 세계 최초의 UFO 영화는 무엇일까? 장편 극영화로 제한한다면 미켈 콘래드가 감독하고 주연한 1950년 저예산 영화 <비행접시(The Flying Saucer)>다. 이 영화에서 비행접시는 미국의 천재 과학자가 만든 발명품이고 소련 스파이들이 이걸 노리고 있다. 별로 인기 있는 영화는 아닌데, 아무래도 비행접시 영화에 외계인이 안 나오면 흥이 떨어진다.

할리우드 영화업자들은 즉시 이 결함을 수정한다. 이제 영화 속 비행접시들은 모두 외계인의 탈것이 되었다. 1947년 케네스 아놀드의 UFO 목격, 같은 해에 발생한 로스웰 비행접시 추락 음모설은 모두 그쪽에 더 잘 맞았다. 그리고 그 뒤로 비행접시를 타고 온 외계인을 목격했고 심지어 대화까지 나누었다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에서 나온다. 그중 가장 유명한 건 역시 조지 아담스키가 아닌가 싶다. 지금 아담스키의 말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래도 이 남자가 찍은 UFO 영상과 사진은 여전히 매혹적이다. 이런 건 간단한 특수효과로 충분히 만들 수 있다고 하던데, 그래도 효과가 더 중요한 게 아니겠는가.

지금의 관객들은 종종 1950년대 사람들이 UFO에 대해서 얼마나 진지했는지에 대해 잊을 때가 많다. 그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 사람들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선정적인 소재를 갖고 적은 돈으로 한몫을 챙기려고 했다. 하지만 그와 별도로 그 영화를 만든 많은 사람들은 실제로 원반 모양의 탈것을 타고 외계에서 온 인간 비슷하게 생긴 존재에 대해 진지했다. 존 켐벨 주니어의 소설 「거기 누구야」를 각색한 크리스찬 니비의 1951년 영화 <괴물(The Thing from Another World)>은 외계에서 온 낯설고 위험한 존재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공포를 보여준다. 영화의 마지막 대사인 “하늘을 봐, 어디든! 계속해서 찾아봐. 계속 하늘을 지켜봐!(Watch the skies, everywhere! Keep looking. Keep watching the skies!)”는 냉전시대 소련첩보세력에 대한 경고로 읽을 수도 있지만 정말 말 그대로의 뜻이기도 했다. 하늘을 보고 외계인의 우주선일 수도 있는 뭔가를 찾아내는 건 그렇게 중요했다.

당시 UFO 영화의 진지함을 보여주는 건 바로 외계인 우주선의 디자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SF 영화에도 외계인과 외계인의 우주선은 나왔다. 대표적인 예가 1930년대 영화 시리즈 <플래시 고든(Flash Gordon)>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지구 우주선이나 외계인 우주선이나 모두 로켓과 잠수함을 섞은 것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당시 할리우드 디자이너들에겐 접시 모양의 우주선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하지만 1947년, 비행접시라는 개념이 만들어지자 외계 우주선 대부분은 접시 모양을 취하게 된다. 당시 사람들은 이 디자인에 얼마나 진지했는가? 1956년 영화 <금지된 행성 (Forbidden Planet)>에서 지구인들이 타고 온 우주선 C-57D는 전형적인 비행접시 모양을 하고 있다. 왜? 외계인들이 비행접시 모양의 우주선을 만들어 지구로 보냈다면, 그 디자인엔 어떤 과학적 이유가 있겠지. 이 논리는 그 이후에도 꾸준히 이어진다. <스타 트렉>의 USS 엔터프라이즈호는 양쪽에 로켓을 단 비행접시다. <스타워즈>의 밀레니엄 팔콘은 은근슬쩍 햄버거처럼 생긴 비행접시다.

그러는 동안 할리우드 UFO 영화와 UFO 신화는 꾸준히 영향을 주고받는다. 할리우드 사람들은 UFO 목격담에서 스토리와 디자인을 가져왔다. 그리고 UFO 목격담과 음모론은 할리우드 SF 영화에서 영향을 받는다. 자, 고대 외계인 음모론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보자. 이상하게 생긴 조각이나 벽화가 발견된다. 그리고 그건 수상쩍을 정도로 SF 영화에서 본 무언가처럼 생겼다. 그 무언가가 할리우드 디자이너의 작품이라는 건 편리하게 무시된다. 이 상호영향을 보여주는 것으로 여겨지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니와 베티 힐 부부의 피랍사건이다. 미국인 부부가 외계인에게 납치되어 생체실험의 대상이 되었고 나중에 최면치료로 그때 기억이 되살아났다는 내용인, 이 사건의 진상에 대한 의견 같은 건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힐 부부가 목격한 외계인이 피랍 며칠 전에 방영된 SF 시리즈 <아우터 리미츠(Outer Limits)>에 나온 외계인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는 건 밝힐 필요가 있다. 그리고 힐 부부가 목격했다는 우주 지도에서 외계인의 고향이 그물자리 제타라는 음모론이 나오자, 수많은 SF 작품이 그물자리 제타에서 온 외계인을 다루기 시작했다(나도 하나 썼고 거기에 대해 전혀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할리우드 UFO 영화의 정점을 찍은 건 스티븐 스필버그다. <미지와의 조우(Close Encounters Of The Third Kind)>와 를 그냥 SF 영화로 보는 건 지나치게 단순하다. 스필버그는 70년대 많은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UFO가 외계인이 타고 온 우주선이라는 가설에 진지했다. 두 영화에 나오는 사건과 우주선 디자인, 외계인 디자인에는 모두 실제 외계인과 UFO 목격담의 레퍼런스가 반영되어 있다. 여러분이 여기서 종교적 감흥을 느낀다면, 그 영화들이 정말로 종교영화이기 때문이다.
80년대엔 또 다른 작품이 비행접시의 디자인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바로 미니 시리즈 다. 이 시리즈에서 외계인의 모선은 거대한 비행접시다. 하지만 외계인들이 타고 다니는 작은 셔틀선은 그냥 앞뒤가 있는 네모난 우주선 모양이다. 사람들이 슬슬 비행접시 디자인에 싫증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 시리즈는 지구인 가면을 쓰고 있는 파충류 외계인이 등장하는데, 이 작품과 파충류 외계인 음모론의 상호 영향에 대해서는 이미 연구가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인디펜던스데이>도 거대한 비행접시와 보다 SF스러운 전투기를 조합한 영화다.

할리우드 UFO 열풍의 정점은 당연히 <엑스 파일>이다. 이 90년대 시리즈에서 UFO와 관련된 음모론은 거의 완성된 상태로 제시된다. 이 시리즈의 어마어마한 인기는 그 이후 나온 UFO나 외계인 목격담에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 이후로는 모든 게 하강세처럼 보였다. 나는 이것이 서사가 낡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옛날엔 하늘에 접시 모양의 무언가가 떠 있으면 그것이 하늘을 나는 탈것이고 그 안에 탈것을 조종하는 누군가가 있다고 상상하는 건 타당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면 외계인이 굳이 그래야 할 이유가 없다. 그렇게 발달한 존재라면 인공지능을 탑재한 작고 눈에 안 뜨이는 기계로 웬만한 건 다 할 수 있지 않을까? 외계인의 메시지라는 것도 거슬린다. 많은 외계인이 핵무기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타당한 충고고 그 친절에 감사한다. 하지만 그런 충고를 할 거라면 기후위기에 대해서도 걱정해 주어야 하지 않았나? 우리에겐 지금 그게 더 중요한데? 한마디로 UFO 음모론의 외계인들은 우리가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해 거의 말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UFO 영화가 죽은 건 아니다. 조던 필의 신나는 UFO 영화 <놉(NOPE)>을 보라. 이 영화에서는 우주에서 온 외계인의 탈것이 아닌, 새로운 종류의 비행접시를 선보인다. 최초는 아니다. 이미 아서 코난 도일이 이 소재의 단편을 쓴 적 있고, 이런 주장을 하는 UFO 음모론도 있긴 있었다. 하지만 영화에서 이런 종류의 UFO는 처음 보는 거 같다. 작년에 디즈니플러스에 풀린 <아무도 널 지켜주지 않아(No One Will Save You)>는 비행접시를 타고 온 그레이 외계인이라는 고전적인 재료를 뻔뻔스럽게 활용한다. 그레이 외계인의 실존 여부와 상관없이 이들은 자연스럽게 우리 문화의 일부가 된 것이다. <더 배스트 오브 나이트(The Vast of Night)(2019)>처럼 실제 UFO 목격담의 으스스함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하는 영화도 있다. 이런 영화들도 꽤 긴 전통이 있다. 나는 여기서 UFO를 다른 수많은 다큐멘터리와 유사 다큐멘터리를 언급하지 않았다. 사실 UFO는 극영화보다는 이런 영역에서 더 재미있고 무섭다.

하지만 이것들이 꾸준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협조가 필요하다. 한동안 UFO라고 불렸고 지금은 UAP라고 불려야 한다는 존재들이 우리에게 계속 그럴싸하게 보여야 하는 것이다. 최근 인기가 있는 UFO 또는 UAP 중 하나인 틱택형 물체는 그 조건에 충족된다. 누가 봐도 탈것인 아담스키형 UFO와는 달리 이 날아다니는 물체는 그냥 낯설고 이상하다. 이게 한동안 유행에 뒤질 거란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물론 여기엔 또 다른 조건이 붙는다. 그건 이들의 정체가 절대로 밝혀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정말로 외계 문명이 만든 기계라는 것이 밝혀지는 날은 UFO 영화 역사의 종말의 날로 기록될 것이다.

듀나
SF 작가
픽션 『시간을 거슬러 간 나비』 『제저벨』 『그 겨울, 손탁 호텔에서』 『우리 미나리 좀 챙겨주세요』 『평형추』 『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었다』 등, 논픽션 『옛날 영화, 이 좋은 걸 이제 알았다니』 『남자 주인공에겐 없다』 『여자 주인공만 모른다』 『장르 세계를 떠도는 듀나의 탐사기』 『가능한 꿈의 공간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