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기압 배치 유형 연구

  • 단편소설
  • 2024년 봄호 (통권 91호)
기압 배치 유형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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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의 첫 번째 수요일 아침, 정한솔은 아버지가 되었다.

딸 쌍둥이를 임신한 아내의 출산 예정일은 열흘 뒤였다. 쌍둥이 출산이 흔히 그렇듯 제왕절개수술을 하기로 하고, 병원에서 일러준 대로 예정일에 맞춰 수술 전날 입원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어젯밤 자정이 가까워 아내에게 산기가 찾아왔다. 실제 출산이 예정일 전후로 꽤나 유동적일 수 있다는 것을 한솔도 아내도 모르지 않았다. 알고 있었음에도 막상 닥치니 역시 당혹스러웠다. 숫자를 세는 호흡법이 짐짓 어림없이 느껴졌고, 급히 물컵을 가져오다 바닥에 물을 쏟았고, 아내의 부은 맨발이 미어지게 들어차는 천 슬리퍼 한 짝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아내는 두 달 전 임산부 프로필 사진을 찍을 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부풀어 오른 배를 힘겨워하며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한솔은 아내를 마저 일으켜 세워야 좋을지, 다시 눕혀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자연 분만은, 안 되겠지?”

무심코 튀어나온 말이 제가 생각해도 엉뚱하기만 했다.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이제 와서, 무섭게……”

통증으로 일그러진 아내의 얼굴에 짜증이 더해졌다.

“전화 갖다 줘, 엄마한테 전화하게. 오빠는 진통 시간 좀 확인해.”

“지금 12시 넘었어.”

“아, 누가 시간 물어봤어? 진통 간격 체크하라고.”

자정이 넘어 장인 장모가 취침 중일 거라는 언질은 하등 쓸모없는 것이었고, 자기 몸으로 직접 느낄 수 없는 분만통의 간격을 확인하는 것은 출산 임박 매뉴얼의 첫 번째 지침이었다.

얼마간 우왕좌왕한 끝에 새벽 1시를 넘기지 않고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가까이 사는 장인 장모도 바로 도착했다. 장모는 아내가 임신한 후 거의 매일 집을 찾았다. 현관문 도어락의 비밀번호는 결혼 직후부터 알고 있었다. 그 번호가 한솔과 아내가 처음 만난 날짜의 조합이란 것도 알고 있었다. 전세보증금의 절반 이상이 처가의 돈이었으므로, 한솔은 딱히 불만을 갖지 않았다. 아내가 쌍둥이를 임신했다는 걸 알고 장인은 SUV가 필요하겠다며 지프 체로키로 차를 바꿔주었다. 중고였지만 최근 연식에 풀옵션이었다.

병원에서 만나자마자 아내와 장모는 실랑이를 벌였다. 장모는 수술과 입원을 앞두고 며칠 전부터 미리 출산 가방을 싸놓자 했었고, 아내는 예정일이 열흘 넘게 남은 데다 해외직구로 주문한 출산용품 중 아직 택배가 도착하지 않은 것이 있다며 늑장을 부렸다. 아내가 급히 불러주는 대로 한솔이 어설프게 챙겨 온 캐리어를 열어 본 장모는 혀를 찼다.

“아니, 복대랑 거즈 세트 지퍼백에 담아둔 거 어쨌어? 옷방 서랍장 위에 내가 올려뒀잖아.”

교무실로 불려 온 학생 같은 얼굴로 아내도 캐리어 안을 들여다보았다.

“얘네가 진짜 앞으로 무슨 정신에 쌍둥이를 키우려고……”

아내는 제 엄마에게 해야 할 듯한 얘기를 한솔을 바라보며 우물거렸다.

“나 압박스타킹 깜빡했어. 보조 배터리도…… 따로 챙겨 놨었는데, 오빠가 집에 좀 다시 갔다 와.”

장모가 목소리를 높였다.

“의사 곧 내려온다며? 바로 수술 들어갈지도 모르는데 애 아빠가 어딜 가.”

잠자코 있던 장인이 나섰다.

“거참, 우리가 잠깐 갔다 오는 걸로 해.”

한솔은 난처한 얼굴로 둘을 바라보았다.

“근데, 저희 둘만 있으면……”

“그럼 그냥 당신 혼자 갔다 와, 엄마 빨리 어플로 택시 불러줘라.”

“그러게 진즉에 짐을 제대로 싸놨어야 된다니까.”

장모는 캐리어를 끌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종종걸음을 쳤다.

새벽 시간인 탓에 아내의 담당 의사 대신 당직 의사가 와서 바로 진행해야 하는 몇 가지 검사에 대해 설명했다. 예정일보다 시기가 빠른 만큼 산모와 쌍둥이 태아가 수술이 가능한 상태인지 확인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한솔은 간호사가 건넨 서류 몇 장에 보호자 동의 서명을 했다. 의사는 드물지 않은 일이라 했지만, 한솔은 하릴없이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아빠, 나 무서워.”

장인의 손을 잡고 잠시 울먹이던 아내가 한솔에게 말했다.

“오빠, 엄마한테 전화해서 산후조리원 예약 변경 어떻게 할지 물어봐 줘.”

아내는 외동딸이었다. 1987년생인 한솔보다 세 살 아래로, 서른셋 여름 곧 엄마가 될 참이었다. 결혼식은 3년 전 여름 코로나 팬데믹 2년 차에 올렸다. 확진자 수가 하향세가 되기를 기다려 날을 잡았어도 참석한 하객 모두 마스크를 쓰고 사진 촬영을 해야 했다. 장년층 세대들이 흔히 그렇듯 20대에 결혼해 20대에 부모가 된 장인은 바로 아이를 낳는 게 좋겠다고 했고, 장모는 몇 년쯤 지나 천천히 낳는 게 좋겠다고 했다. 한솔과 아내는 오락가락했다. 아이를 원하는 것도 아니었고, 원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번번이 최저 출산율이 경신되며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일반화된 분위기에 ‘키우기도 힘들고 돈도 많이 들고’라는 말을 자연스레 입에 올리기도 했고, 잠들기 전 어두운 침실에서 ‘그래도 하나님이 선물로 주시면 예쁘게 잘 키워야겠지’라고 소곤거리기도 했다. 철저하게 피임을 한 시기가 있었는가 하면, 배란일에 맞춰 의식적으로 관계를 갖고 초조하게 테스트기를 확인하기도 했다. 이도 저도 시들해져 무신경한 날들이 반복되기도 했다. 문득 두 번째 결혼기념일이 지나도록 계획으로도 우연으로도 아기가 생기지 않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서로에게 말은 하지 않은 채 자신이나 상대에게 원천적으로 불임의 가능성이 있는 게 아닐까 의심하던 차에, 임신이 되었다. 주변에 쌍둥이 임신 소식을 전하자 난임시술이나 인공수정을 했냐고 물어오는 지인들이 있었다. 저출산의 심각성이 흔한 뉴스가 된 만큼 불임부부에 대한 이슈도 예전보다 익숙한 것이 되었고, 인공수정이 늘면서 유독 쌍둥이 출산이 증가했다는 통계도 사람들이 제법 아는 얘기가 되었다. 그러나 결국은 ‘한꺼번에 둘이나!’ 하는 농담조의 애국자 타령이 빠지지 않았다.

한솔도 아내도 임신보다 ‘쌍둥이’에 놀란 게 사실이었다. 친가인 한솔 쪽 가계에도 외가인 아내 쪽 가계에도 쌍둥이는 없었다. 인공수정이 꼭 쌍둥이 임신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 것처럼, 쌍둥이 임신이 꼭 유전적인 요인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럼에도 한솔과 아내는 온전히 놀랐다. 인스타그램에 초음파사진과 함께 해시태그를 붙여 ‘#우리가_쌍둥이_엄마_아빠가_된다니! #태명은_꼬물이와_쪼물이_ㅋㅋㅋㅋ’라 올렸다. 귀엽고 장난스러운 이모티콘도 잔뜩 사용했지만, 삶이 순식간에 다른 차원으로 진입해 버리는 얼떨떨한 생경함을 상쇄하지는 못했다. 계획이나 우연 같은 단어는 이미 현실감이 없었고, ‘키우기도 힘들고 돈도 많이 들고’의 의미와 형태는 가늠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쌍둥이 임신과 출산에 대한 경험과 정보를 나누는 인터넷 카페에 가입해 이런저런 게시글을 살펴보았지만, ‘육아 강도 2배ㅠㅠ; 행복 강도 2배^o^;’라는 표현이 와 닿는 것은 아니었다. 쌍둥이 육아 채널에서 젊은 부부가 두 아기를 목욕시키는 동영상을 보던 한솔은 지금껏 자신이 쌍둥이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학교, 군대, 직장 어디서도 쌍둥이와의 인연은 없었다. 흔히 그렇듯 미디어에서 늘 비슷한 방식으로 묘사되는 쌍둥이의 이미지를 인지하고 있는 정도였다.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표정을 짓는 똑같은 외모의 쌍둥이. 똑같지만 다른 사람, 왜 똑같은지, 왜 같은 사람이 아닌지. 한솔은 왠지 모를 두려움에 사로잡혀 동영상을 껐다. 쌍둥이의 아빠인 자신이 그 둘을 구분하지 못할까, 똑같지만 다른 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할까, 번번이 이름을 잘못 부를까, 한솔은 두려웠다. 그 기이한 두려움을 누구에게도 말하기가 어려웠다.

“오빠 양팔에 애 하나씩 안고 스쿼트 하면 되겠네.”

아내는 웃었고, 한솔도 따라 웃었다. 차츰 배가 불러오자 아내는 임산부 프로필 사진을 찍고 싶어 했다. 한솔은 아내가 건넨 태블릿PC를 받아 들었다. 속이 비치는 크림색 쉬폰 드레스를 입은 만삭의 임산부는 여왕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고, 공처럼 부푼 배를 하고도 날씬하고 유연한 팔다리로 필라테스 동작을 취한 임산부도 있었고, 젖가슴을 두 팔로 감싸듯 가리고 크고 둥근 배를 누드로 드러낸 임산부를 역시 상의를 입지 않은 근육질의 남편이 백 허그한 흑백사진도 있었다.

“완전 멋지지? 나중에 애 낳고 다 같이 찍는 출산 사진은 조리원에서 스튜디오 연계해 준대. 만삭 사진도 업체가 따로 있긴 한데, 우리 웨딩 화보 찍어준 유 실장님한테 연락해볼까? 근데 쌍둥이 임산부는 만삭이 되기 전에 촬영해야 된다네. 진짜 만삭 때는 배가 너무 불러서……”

아내는 결혼 전 사촌언니가 운영하는 온라인 패션몰에서 일했다. 중국산 저가 원단으로 자체 디자인 제품을 다종 소량 생산하는 영세 브랜드였다. 2년제 산업디자인과를 나온 아내는 쇼핑몰의 홈페이지 개설 작업을 도왔다. 지지부진 운영되던 쇼핑몰은 코로나 팬데믹과 함께 호황을 맞는 듯했다. “사람들이 집에 틀어박혀 있으니 다 온라인으로만 옷을 사!” 아내는 주문 제품 포장이나 택배 송장 업무도 거들게 되었다. 155센티미터의 신장 때문에 원하는 대로 피팅 모델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상반신 부분 컷 위주로 촬영을 했고, 전문 피팅 모델이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아담한 소녀풍의 옷을 입고 카메라 앞에 섰다. 얼마 못 가 사촌언니의 쇼핑몰은 폐업했다. “사람들이 집안에 틀어박혀 있으니 입고 나갈 데가 없어 옷을 안 사!”

아내는 만삭 드레스를 검색하다 텐셀 소재의 오프숄더 블랙 롱드레스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바로 결제를 하는 대신 증권사 어플을 화면에 띄웠다.

한솔은 서울에 본교를 둔 4년제 지방 분교의 체대를 졸업했다. 입학할 때 학과명은 사회체육학과였지만, 군대를 다녀온 후 복학하니 생활체육학과로 이름이 바뀌어 있었다. 한솔은 재수생 시절 체대 입시를 시작했다. 어려서 잠시 태권도를 배운 적이 있지만, 특정 종목 운동선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어쨌든 ‘사회’나 ‘생활’이란 단어를 구색에 맞춰 이리저리 써먹을 수 있는 체육학과에 입학했고, 재수하며 다녔던 체대 입시학원에서 합격생 프리미엄을 받고 보조강사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167센티미터의 장인은 한솔의 키가 181센티미터라는 것과 한솔이 논산훈련소에서 조교로 복무했다는 점을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들어 했다. 흔히 그렇듯 신병 교육 때 ‘180 이상 손 들어!’, ‘체대 손 들어!’로 조교병이 되었을 뿐이었다. 헌병으로 차출되거나 최전방 부대에 배치되지 않은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한솔은 구기 종목에 유난히 소질이 없어 군대에서조차 축구와 족구 실력이 딱히 늘지 않았다. 제일 좋아하는 동시에 제법 잘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수영과 스키였다. 복학 후 수영장과 스키장에서 줄곧 아르바이트를 하며 관련 강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경제적으로나 오락적으로나 20대를 제법 잘 즐길 수 있는 조건이 갖춰졌고, 한솔은 그렇게 했다.

30대가 되자 사정이 달라졌다. 결혼을 염두에 두면 더욱 그러했다. 아르바이트나 단기 계약직이 아닌 강사 자리를 찾기가 힘들었다. 해당 종목의 선수 출신 강사와의 경쟁에서는 밀릴 수밖에 없었다. 여성 수강생이 대다수인 수영장과 스키장에서 시즌마다 계속 연락이 왔지만, 번번이 새로운 얼굴의 20대 남자 강사들과 마주해야 했다. 버는 만큼 쓰는 걸로 굳어진 소비 습관은 좀처럼 고쳐지지 않았다. ‘몸짱 열풍’ 속에 학과 선후배나 동기 대부분 직접 피트니스 센터를 차리거나 전문 헬스 트레이너로의 변신을 꾀했다. 한솔도 마지못해 벌크업 식단을 하며 본격적으로 기구 운동을 시작했지만, 수영이나 스키와 달리 극기 훈련으로만 여겨졌다. 그러나 피트니스 센터도, 수영이나 스키도, 생활체육이라 불리는 모든 것이 코로나 팬데믹으로 잠정 중단되었다.

 

* 계간 <대산문화> 2024 봄호(통권 91호)에 전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신조
소설가, 한양여자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1974년생
장편소설 『기대어 앉은 오후』 『가상도시백서』 『29세 라운지』 『우선권은 밤에게』 『크리에이터』, 소설집 『나의 검정그물스타킹』 『새로운 천사』 『감각의 시절』 『다른 소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