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초대석
작가는 역사적 존재여야 한다

- 소설가 문순태 선생과의 대화

  • 대산초대석
  • 2024년 봄호 (통권 91호)
작가는 역사적 존재여야 한다

- 소설가 문순태 선생과의 대화

 

김현주
소설가, 1961년생
장편소설 『붉은 모란 주머니』, 소설집 『물속의 정원사』, 산문집 『네 번째 우려낸 찻물』 등

문순태
소설가, 1941년생
장편소설 『타오르는 강』 『걸어서 하늘까지』 『소쇄원에서 꿈을 꾸다』, 소설집 『생오지 뜸부기』 『징소리』 『철쭉제』 『고향으로 가는 바람』, 시집 『홍어』 『생오지 생각』, 산문집 『밥 한 사발 눈물 한 대접』 등

_문학은 ‘역사의 칼’이며 작가는 ‘역사적 존재’여야 한다. 이는 문순태 소설가가 평생 가슴에 품어온 작가정신이다. 1974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이후, 민중의 저항의식을 주제로 근·현대사의 굵직한 서사를 풀어나가는 리얼리즘을 추구했다. 「징소리」, 「철쭉제」 등 비중 있는 작품을 발표하면서 창작집 11권을 출간했고, 『알 수 없는 내일』(전2권) 등 다수의 장편소설을 썼다. 팔십 평생을 전라도에 머물며 영산강 기층민의 뿌리깊은 한을 다룬 『타오르는 강』(전 9권)을 출간했다. 이제, 3월 매화꽃이 만개할 즈음이면 나주 영산포에 ‘타오르는 강 문학관’ 개관식이 열린다. 한국 문단의 원로이자 스승이신 노작가, ‘오래된 소설가의 향기’를 강추위 속에서 만났다.

김현주(이하 김) 선생님께서는 시로 처음 등단하셨는데, 소설로 다시 등단하시면서 소설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선생님 문학의 시작과 원천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시로 처음 등단하셨는데, 소설로 다시 등단하시면서 소설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선생님 문학의 시작과 원천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문순태(이하 문) 1957년에 광주고등학교에 입학했는데 정말 좋은 선택이었어요. 동기인 이성부 시인과 박봉우 선배 시인과 함께 김현승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나는 조용하면서도 단정한 그분의 인품에 감동받았죠. 선생님이 조선대를 떠나 숭실대로 가셨는데, 나도 전남대 철학과에 다니다가 선생님을 따라 숭실대로 옮겼습니다. 정말, 시를 열심히 썼어요. 그렇게 해서 《현대문학》으로 등단해서 시인이 되었습니다.
소설가가 된 것은 6·25 때문입니다. 우리 마을이 무등산과 백아산 사이에 있었는데 공비토벌작전 소개지역이 되어 70여 호가 전부 불태워졌습니다. 사방에 시체가 잔뜩 널려있었어요. 산에도 시체, 텃밭에도 시체. 우리 마을 사람들의 수많은 죽음이 매일 꿈에 나타났습니다. 악몽에 시달리면서 삶이 고통스러웠죠. 나는 이념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억울하게 죽어간 내 고향 사람들의 영혼 앞에 진혼곡을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아마 소설을 쓰지 않았더라면 박수무당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고향은 인간 존재의 양식으로 풀어야 한다’라고 하이데거가 말했는데, 내게 고향은 그리움과 공포가 공존한 내 존재의 공간이었어요. 나는 소설을 통해 6·25로 인해 우리 세대에까지 덧씌워진 이념의 굴레를 풀고 싶었어요.
1972년 김동리 선생님을 만나게 된 후, 많은 영향을 받아 본격적으로 소설쓰기를 시작했어요. 나는 6.25의 아픔과 억울하게 죽어간 고향 사람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1972년에 유신정권이 들어섰는데, 참으로 엄혹한 시기였어요. 1974년에 「백제의 미소」로 등단한 이후, 소설은 운명이고 명령 같은 것이 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광주대학교에서 오랫동안 후학을 양성하셨고, 담양 ‘생오지 문학의 집’에서 수십 명의 작가들을 키워내셨습니다. 또, 이 시대의 현실을 소설로 비판하려는 작가들은 선생님의 작품세계를 등불로 삼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으신 말씀은 어떤 것인지요.

 문  우리 세대는 현대사의 가장 많은 소용돌이를 거쳐 왔어요. 비민주화와 군사독재를 겪었을 때, 그땐 글을 제대로 쓸 수 없는 시대였어요. 나는 작가의 역할과 작가정신에 대해 깊이 고민했습니다. 작가는 시대정신을 꿰뚫어 보는 존재이고 ‘문학은 역사의 칼’이어야 하기 때문이죠. 당대의 모순을 응시하면서 부조리한 사회현상을 소설로 써야 합니다.

 선생님의 소설, 특히 고향을 주제로 한 작품에는 빨려들 듯한 속도감과 이야기의 힘, 더불어 해학의 여유가 있습니다. 자연·사물의 묘사와 인물 개개인의 디테일한 표현에 놀라곤 합니다. 그 문장의 맛과 비밀은 어디에서 왔는지 궁금합니다.

 

문순태 소설가(오른쪽)와 김현주 소설가    

 

 문  김현승 선생님께 소설을 써야겠다고 말씀드렸어요. “소설 좋지. 소설을 쓰되, 시처럼 쓰시게.”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소설은 서정성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소설을 쓸 때 감성적이고 시처럼 아름다운 문장을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김동리 선생님은 동대문 운동장 근처에 사셨어요. 어느 날, 소설을 써서 가져갔는데, 대뜸 호통을 치셨어요. “‘이름 모를 잡초들이 우거졌다!’ 이게 무슨 소설 문장이야? 쑥이면 쑥, 망초도 망초라고 정확한 식물 이름을 쓰고, 구체적으로 묘사해라. 어떤 골짜기이며, 어디 나무에서, 어떤 새가 어떻게 울었다. 이게 리얼리티 아닌가. 작가는 담배 이야기를 해도, 무슨 담배이며 값은 얼마인지, 말해야 한다. 그래야만 시대상이 드러난다. 그건 작가의 사회학적 사명이다.” 이 말씀에 크게 깨달았습니다. 나는 그 후로 모든 문장을 시(詩)적·구체적 표현으로 수없이 쓰고, 또 고치면서 끝까지 다듬었습니다. 특히 문장의 리얼리티와 밀도에 신경을 썼습니다. 그것이 소설가의 습관이어야 합니다.

 대하소설 『타오르는 강』은 37여 년이 걸려 완간이 되었는데 참으로 지난한 작업이셨습니다. 이 소설은 근대·일제강점기의 궁삼면 농민운동, 동학농민혁명, 의병, 3.1운동 그리고 광주학생독립운동까지 장대한 서사의 물줄기를 형성합니다. 호남의 강 중에서 유독, 영산강을 거대서사의 공간으로 선택하신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문  강은 생명의 젖줄이면서 민중의 삶과 문화가 탄생한 곳입니다. 특히 영산강은 고대 마한의 중심으로 전라도 역사가 시작된 공간이면서 일제강점기에는 개화의 통로이면서 수탈의 통로가 되었죠. 60년대 초 내가 신문사 기자로 있을 때, 나주 종갓집 취재를 했는데, 어느 할머니께서 노비문서를 보여주었습니다. 나주 지역은 고려시대부터 토호들의 고장인데, 1886년에 노비세습제가 폐지되었어요. 그때 어떤 노비들은 종문서는 필요없다, 하면서 끝까지 안 나갔다고 했답니다. 양반들 집에서 타의적인 삶을 살아왔던 그들은 자신들 힘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두려웠겠죠. 불시에 날벼락처럼 다가온 자유였습니다. 비록 자유를 얻었으나 자기

땅이 없는, 배고프고 서러운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을까. 나는 그때 처음으로 노비들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해방을 맞은 노비들은 오갈 데 없어 영산강 인근에서 집단을 이루었고, 새로운 삶을 개척했습니다. 강변의 버려진 곳을 일구어 장마철마다 수마(水魔)와 싸우며 새로운 땅을 개척했어요. 그 땅은 구한말 가뭄으로 3년 동안 밀린 조세 때문에 경선궁(慶善宮)의 궁토(宮土)로 바뀝니다. 이후 그들은 일본인 지주들의 소작인이 되는 한편, 동양척식회사에 의해 강제적으로 땅을 몰수당하게 되죠. 참으로 기막힌 일이었습니다. 노비였던 그들은 부당한 현실에 직접 부딪치면서 세상의 불의에 눈을 뜨게 됩니다. 영산강은 민중의식이 태동한 역사적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중들의 한(恨)이 흩어지면 힘이 없지만, 모이면 거대한 힘이 되지요. 그 힘은 권력에 맞서는 저항정신이 되었습니다. 주체적으로 동학농민혁명에 가담하고 의병 활동을 하면서 우리 역사를 바꾸었어요. ‘타오르는 강’ 영산강은 전라도 민중의 정신이 살아 흐르는 거대한 생명체입니다.

 『타오르는 강』을 읽는 내내 인물들에 몰입되어 뜨겁게 아팠습니다. 한국 근대사의 격랑을 헤쳐 온 수많은 민초들이었습니다. 9권을 마칠 때까지도 역사 속 실제 인물과 창조해내신 인물들이 각기 개성을 잃지 않아 생동감이 있는데요.

 문  이 서사를 이끌어가는 인물은 영웅도 아니고, 잘 알려진 역사 인물도 아닙니다. 소설에는 인물들이 200여 명이 나와요. 이들 하나하나가 다 주인공인데, 그들이 모두 자기 역사, 각자 자기들 이야기를 하고 죽어갑니다. 이 많은 인물의 자료를 위해 발로 뛰었어요. 역사서에 나오지 않은 자료가 많죠. 예를 들어 ‘모두먹기떼’. 흉년이 들었을 때 몇백 명이 부잣집을 목표로 몰려다니면서 닥치는 대로 먹어 치웠습니다. 얼마나 굶주렸으면 떼를 지어 먹을 것을 찾아다녔겠습니까. 또, 세곡을 걷어 쌓아놓은 후, 빼돌리고는 세곡선을 몽땅 불태워버린 후에 다시 징수하는 부정부패와 횡령 등 기록되지 않은 역사를 찾아내려고 애썼습니다. 소 거간꾼들, 마을의 노인들, 장터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 녹음기를 들고 장터마다 돌아다녔어요. 빼앗긴 땅을 되찾기 위해 억울하게 죽어간 수많은 민초들을 살려내기 위해 소설에 혼신의 힘을 다했습니다. 의병들과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인물들. 그들과 문학적 생명을 함께하면서 집필을 했습니다.

 이 소설의 생명성은 웅보, 대불이, 쌀분이, 막음네 등 영산강 사람들의 구수하고 투박한 전라도 토박이말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제10권 완결판에 소설 속에 쓰인 전라도 말 4천여 개를 정리하셨습니다.

 문  작가는 언어의 채굴자입니다. 작가는 사장되어 버린 토박이말들을 찾아내어 활용도를 높여 생명을 다시 불어넣어야 합니다. 지역의 언어에 그 지역의 정신이 담겨있지요. 나는 담양이 고향인데 우리 어머니의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초등학교도 못 나오신 어머니는 농사꾼을 최고로 존경하셨지요. 『타오르는 강』의 문장은 투박한 뚝배기 맛이에요. 전라도 말의 여유와 해학으로 인물(노비)들의 삶을 써 내려갔습니다. 우리말 쓰임을 살려, 묻혀버린 토박이말을 잘 활용한 예가 되었죠. 내 소설 속 문장들은 『표준국어대사전』에 ‘문순태 작품 용례’로 나와 있습니다.

 이제 나주에 ‘타오르는 강 문학관’이 설립되어 곧 개관한다고 하는데요. 참으로 기쁜 소식입니다.

 문  2년 전부터 ‘나주학회’에서 『타오르는 강』 독서클럽을 만들었대요. 그 후로 두 번에 걸쳐 『타오르는 강』 학술대회를 열었습니다. 또한 ‘영산포발전협의회’에서는 영산강 이야기는 우리들 이야기이며 우리 지역의 이야기다. 이 대하소설에 우리 지역의 생활사와 풍속사 등 많은 콘텐츠가 담겨있다고, 나주시민들의 서명날인을 받아 나주시에 요청하기에 이르렀고 마침내 나주시에서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창작집 『시간의 샘물』에서 선생님은 “소설 쓰기가 마치 끝없는 절망과 싸우는 것처럼 힘들어진다. 이제는 전통적 소설쓰기로는 살아남기조차 어려울 것 같은 위기감마저 느낀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역사 특히 현대사를 소설로 쓰고 싶은 작가들의 고민이 더욱 깊어지는데요.

 문  지금은 영상시대입니다. 전통적 리얼리즘은 이미 낡았고 독자들의 취향은 나날이 변하고 있습니다. 이 급변하는 시대에 소설 형식은 방법적으로 다양해져야 합니다. 한 예로, 남미 작가들의 마술적 리얼리즘이 좋은 본보기입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아스투리아스(과테말라)’의 『대통령 각하』는 마야인들의 전통적 신비주의와 함께 군부독재에 피 흘리며 맞선 저항정신이 잘 결합되어 있습니다. 나는 지난해 광주에서 열린 ‘펜대회’에서 ‘내일의 5·18소설의 전망’에 대해 강의했어요. ‘한강’ 소설가 이후로 5·18에 관한 좋은 작품을 보지 못했습니다. 작가들은 리얼리즘 소설의 이야기성과 역사적 주제에 대해 더욱 절망하면서 작품을 써야 합니다.

 고령화 사회에 들어서면서부터 돌봄과 간병이 사회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작가들의 최근작에서 그런 소재들이 늘어났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작품 중 「늙으신 어머니의 향기」와 「자전거 타기」를 좋아하는데요. 그중 “내 잘못은 자전거를 나 혼자만 탈라고 한 것이었다. (…) 좋아하는 사람하고 함께 타야 해. 그것이 인생이여.” 여전히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문장입니다. 하지만 가족은 해체되어 가고,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계층 갈등이 심해지는 이 시대, 좋은 소설이란 무엇인지 아주 궁금합니다.

 문  지금 우리 사회에는 사각지대가 너무 많습니다. 비민주성, 폭력, 인권, 소외, 가난 등의 사각지대 즉 낮은 곳에 시선을 들이대는 작품을 써야 합니다. 일상의 편린과 인간관계의 소통도 중요하지만,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의 문제와 사회의 어두운 면을 계속 써내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좋은 소설에는 시대를 꿰뚫어 보는 안목, 예언자적 감각이 있습니다. 작가는 미래를 볼 줄 알아야 하고 시대의 변화를 예측해야 합니다. 그리고 총체적인 시각도 필요하지요. 소나무가 초록색이라고 하지만, 실은 빨강·노랑·주황 등 여러 색의 집합체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를 총체적인 눈으로 보아내는 작업, 좋은 소설의 방법론입니다.

 이번에 출간하신 시집 『홍어』를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세 번째 시집인데요. 소설과는 달리 생을 관조하는 시에서 저절로 여유를 찾았고 홍어 같은 인생의 맛과 해학, 예리한 통찰이 참으로 편안하게 다가왔습니다. 가장 궁금한 것은, 지금에도 여전히 책과 펜을 놓지 않는 선생님의 꾸준한 열정은 과연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올해, 혹시 어떤 작품을 계획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문  작가는 작품을 쓸 때만이 작가입니다. 꾸준히 쓰는 일만이 내 삶의 이유랄까. 열정이라고 해야 할까. 문학은 내가 살아있는 증거이며, 삶의 원동력입니다. 창작집 『생오지 눈사람』을 2017년에 냈는데 그 후로 소설을 쓰지 못하고 시집만 3권 냈습니다. 소설가가 소설이 아닌 시를 쓴다는 게 슬픈 일이지요. 지난 3년 동안 코로나 때문에 ‘홍어’ 시를 쓰기 시작했어요. 홍어는 바로 납작 엎드려 사는 전라도 사람들의 정서와 상통하지요. 또한 어두운 항아리 속에서 오랜 시간 발효(고통과 서러움의 과정)를 거쳐야만 더욱 웅숭깊은 맛과 향이 우러나듯 사람도 고통을 겪은 다음에야 날카로운 저항의 힘을 품게 되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내 인생의 커피 이야기」를 지방 모 잡지에 연재하고 있어요. 내가 평생 마셔온 커피인데, ‘커피 칸타타’라고 해야 할까요. 나는 정신의 깨어있음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커피 농장의 집단 학살 이야기며, 커피가 우리의 삶을 각성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등 써야 할 이야기가 많아요. 올해의 목표는 커피에 관한 장편소설을 출간하는 것이죠. 시도 넣고, 에세이도 들어가고. 그 소설은 경계 없는, 장르의 자유로운 넘나들기가 될 것 같습니다.

_과테말라 커피를 ‘검은 눈물’로 생각하면서 마신다는 원로 소설가. 등단작 「백제의 미소」로부터 시집 『홍어』에 이르기까지 평생 변하지 않았다. 그의 작품세계는 징소리처럼 크고 아득하면서도 울림이 깊은, 따뜻함이 있다. 특히 『타오르는 강』에서는 이 세상에서 가장 서럽고 낮은 자들에게 삶의 주체성을 부여했다. 영산강 민초들의 저항은 현재 우리 삶에 끈질기게 살아있어야 할 민중의식이다.

김현주
소설가, 1961년생
장편소설 『붉은 모란 주머니』, 소설집 『물속의 정원사』, 산문집 『네 번째 우려낸 찻물』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