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꽃게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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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년 봄호 (통권 91호)
꽃게산

나루는 식탁에 앉아 있었어. 반대편엔 가족들이 앉아 있었지.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 점심을 먹기엔 늦고 저녁을 먹기엔 이른 시간이었어. 그렇다고 식탁 위에 과일이나 음료 같은 간식이 놓여 있다거나, 보드게임이 펼쳐져 있지도 않았지. 나루와 가족들 사이는 텅 비어있던 거야.

가족들은 팔짱을 끼고 나루를 노려보고 있었어. 저런 모습일 때는 무슨 말을 해도 안 통해. 귀를 막은 것처럼 어떤 이야기도 듣고 싶지 않다는 뜻이니까. 나루는 쉽게 입을 뗄 수 없었어. 이미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나루를 노려보고 있잖아. 나루가 무슨 말을 하든 툭툭 끊어대겠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또 변명하지!”

역시. 이럴 줄 알았어. 가족들은 그저 사과만 기다리며 이 식탁에 앉아 있는 거야. 대화하자고 해놓고선 말이야. 무슨 말을 하든 결국엔 나루 잘못이 될 테지. 반성하라고 이야기할 게 뻔했어.

나루는 화가 나서 참을 수 없었어. 누가 꼬집는 것처럼 가슴 속이 따끔거렸어. 좁고 어두운 방에 갇힌 것처럼 답답해서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지. 밥그릇을 집어 던지고 숟가락을 동강내고 싶었어. 온 힘을 다해 소리 지르고 싶었어. 결국 나루는 쾅쾅 식탁이 부서져라 주먹으로 내려쳤어.

“나루! 뭐 하는 짓이야?”

“화가 나서 참을 수 없잖아요!”

“그러다 누굴 다치게 하면 어쩌려고 그러니?”

“전 화가 났을 뿐이라고요!”

“잠시 혼자 있는 게 좋겠다. 차분히 대화할 수 있겠다 싶으면 우리를 불러.”

가족들은 식탁을 떠났어. 나루는 식탁에 혼자 남겨졌어. 빈 거실은 허전했지. 하지만 아직도 나루 속에는 화가 가득했어. 숨이 차서 어깨가 들썩였어. 온몸에서 열이 올랐어. 나루는 다시 주먹을 불끈 쥐었어. 주먹을 높이 들었어.

그때, 열린 창틈으로 바람이 불어왔어. 쉬이익. 어제 온 비 냄새일까, 동네 강변 냄새일까. 비린내 나는 바람이었지. 나루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보았어. 뒷산이 보였어. 나루는 잠깐 산책 나가도 좋겠다 싶었어. 이곳에 더 있다간 자신이 무슨 짓을 할지 나루도 무서웠거든. 가족들 말대로 누군가를 다치게 할까 무서웠던 거야.

아무도 없는 식탁에 앉아 있고 싶지도 않았어. 가족들은 나루가 잘못했습니다, 화를 내지 않겠습니다, 다 이해했습니다, 말해줘야 나타날 거야.

나루는 방문을 두드렸어.

“차분해졌니?”

“나갔다 올게요.”

“그래, 좋은 생각이다. 걸으면서 마음을 정리하고 와.”

나루는 멀리 보이는 뒷산을 향해 걸었어. 사실은 발길 닿는 대로 길을 걸었지. 땅만 보고 걸었기 때문이야. 아는 사람을 마주치기도 싫었고 어디로 가야 할지 생각하기도 싫었어. 일단 집에서 아주 멀리멀리 가고 싶었어. 잘 아는 길보단 모르는 길로 가고 싶었지. 자주 가는 마트를 지나고, 문방구를 지나고, 학교를 지났어. 시장과 놀이터를 지나, 작은 강에 놓인 징검다리를 건넜어.

고개를 들었을 때, 멀리서 보기만 했던 뒷산이 눈앞으로 성큼 다가와 있었어. 깔끔하게 정리된 산책로는 없었어. 수풀이 가득 우거져 있었지. 산을 오르는 건 포기할까 싶었어.

열이 올랐어. 온몸이 축축했어. 옷이 맨살에 달라붙었어. 땀이 났어. 꿉꿉한 냄새도 나는 것 같았어. 화는 내지 못하고 참고 참아 축축하게 젖어버린 마음이 걸어 다닌다면, 꼭 나루의 모습 같았을 거야.

그때 바람이 불어왔어. 창문에서 맡았던 비린내 나는 바람이었지. 수풀이 갈라지며 아주 작은 길이 났어. 토끼나 멧돼지 같은 동물이 오가는 길 같았어. 나루는 좁은 길을 따라 뒷산을 오르기 시작했어. 생각보다 가팔라서 숨이 찼어. 오르면 오를수록 비린내는 더 심해졌지. 나루는 코를 막았어. 산을 오르기 더 힘들어졌지. 그렇게 얼마간 올랐을까? 이만 내려갈까 하는데 나루 앞에 넓은 들이 펼쳐졌어.

쏴아. 파도 소리를 내며 바람이 몰아쳤지. 나루는 흩날리는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앞을 보았어. 들에는 발목까지 오는 초록 풀이 잔디처럼 솟아 있었어. 모두 높이가 비슷해서 꼭 초록 풀의 바다에 온 것 같았지. 바람이 불 때마다 하나처럼 움직이는 모습이 파도 같았거든.

가까이서 보니 풀의 모양은 제각각이었어. 일자로 뻗은 풀도 있고, 갈고리처럼 굽은 풀도 있었어. 정말 진한 초록색인 풀도 있었고 신호등 불빛처럼 환한 초록빛의 풀도 있었지. 나루는 조심조심 풀밭으로 들어갔어. 그렇게 한참을 앞으로, 앞으로 걷던 나루는 드디어 걸음을 멈췄어.

작은 구멍 앞이었어. 솟아 있는 흙더미 끝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지. 나루의 눈동자보단 컸고, 머리통보단 작았고, 주먹보단 커다란 구멍이었어.

나루는 주변을 살폈어. 누군가 보물을 숨겨두고 표시를 해둔 건 아닐까. 여기로 오는 길에 발자국 하나 보이지 않았어. 나루는 구멍으로 슬금슬금 다가갔어.

가만히 눈을 맞추었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 냄새를 맡아 보았어. 비린내가 왈칵 밀려왔어. 이번엔 귀를 대었어. 바람 소리가 들려왔어. 간지러운 느낌에 재빨리 귀를 떼었지.

이 구멍은 도대체 뭘까? 작은 구멍에선 오래된 빗물 냄새가 나고, 개미나 공벌레 같은 작은 것들이 기어 다닐 거야. 평범한 작은 구멍이겠지? 구멍 속에는 어둠 속에서 자라는 이름 모를 풀과 누군가 잃어버린 작고 소중한 동전 같은 물건뿐일 거야.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어. 주변을 둘러보았어. 숲이었지. 나뭇가지가 바닥에 널려 있었어. 나루는 나뭇가지를 집었어. 잔가지를 쳐냈어.

구멍 속으로 나뭇가지를 조심히 넣어 보았어. 나뭇가지가 반쯤 들어가자, 무언가에 턱 걸려 버렸어. 나루는 두 손으로 나뭇가지를 잡고 힘껏 눌렀어. 어둠 속을 헤집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어. 그러면 그럴수록 답답하던 마음이 풀리는 것 같았어. 그때였어.

푸욱! 쏴아아.

커다란 소리와 함께 물줄기가 솟아올랐어. 나루는 밀려나면서도 나뭇가지를 꼭 쥐었어. 땅이 흔들렸어. 방방을 탄 것처럼 나루 주변 흙이 꿈틀댔어. 나루는 이리저리 튀어 올랐지. 물줄기가 점점 세차지고 나루는 결국 발라당 넘어져 버렸지.

차가운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어. 나루는 눈을 떴어. 물줄기는 잦아들어 있었지. 물방울은 나뭇가지 끝에서 떨어진 거였어. 나뭇가지 끝에 꽂게 한 마리가 빨래처럼 걸려 있었어. 아니, 정확히는 꽂게 한 마리가 커다란 집게로 나루의 나뭇가지를 잡고 있었지.

“따-듯-하-다.”

들려오는 목소리는 바람 소리 같았어. 파도 소리 같기도 했어. 꽃게가 눈을 감고 나른하게 말하고 있던 거야. 일광욕을 즐기는 관광객처럼.

“누구세요?”

나루는 조심스럽게 물었어.

“보-면-몰-라? 꽂-게-잖-아.”

나뭇가지 끝에 걸려 있던 꽂게는 그렇게 말하곤 다시 눈을 감았어. 나루는 조심스럽게 나뭇가지를 내려놓으려 했어. “이게 얼마만의 햇볕인데. 조금만 더 높이 들어 줄래?”

꽂게는 집게발로 나뭇가지를 꽉 쥐고 있었어. 커다란 눈을 반짝이며 부탁했지.

“알겠어요.”

“고-마-워.”

나루는 결국 발라당 누워서 햇볕을 즐겼지. 꽃게처럼 말이야.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꽃게가 나뭇가지를 내려왔어. 그리고 나루에게 말을 걸어왔지.

“기분 좋지?”

“네.”

꽂게는 다른 집게로 구멍을 가리켰어.

“다른 친구들도 구해줄래?”

나루는 꽃게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어. 나루는 나뭇가지를 들고 구멍 앞에 섰어. 어느새 물줄기는 잦아들어 있었지. 나루는 두 손을 높이 들었어. 온 힘을 다해 구멍으로 찔러 넣었지. 어두운 구멍 속에서 다시 물줄기가 터져 나왔어.

나뭇가지 끝으로 꽃게들이 줄줄이 걸려 나왔지.

“아휴, 이제야 숨 좀 쉬겠네.”

“햇볕이다! 햇볕이야!”

꽃게들은 끝도 없이 이어졌어. 줄줄이 어둠 속에서 빠져나오는 거야.

“이제 더는 못 버티겠어요.”

“아직 한참 남았는데!”

부르르르.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땅속 꽃게들이 소리쳤어. 그 커다란 소리에 땅이 흔들렸어. 물줄기도 세차졌어. 나루는 버티지 못하고 그만 데굴데굴 굴러떨어졌어.

나루는 눈을 떴어. 다행히 우거진 풀숲 덕분에 다친 곳은 없었어. 고개를 들어 뒷산을 보았지. 지난 일이 꿈만 같았어. 우리 동네 뒷산에 꽃게가 살고 있고, 꽃게가 나에게 말을 걸어오다니. 나루는 자기 손에 들려 있는 나뭇가지를 발견했어. 나뭇가지 끝에는 여러 색깔의 비닐봉지가 꼬여 있었어.

 

 

나루는 집으로 돌아갔어. 집으로 돌아가자, 가족들이 팔짱을 낀 채 식탁에 앉아 나루를 기다리고 있었어.

“손에 든 건 뭐니?”

가족들의 걱정스런 물음에 나루는 빙긋 웃으며 말했어.

“산에서 쓰레기를 좀 주워봤어요.”

“화가 나면, 산에서 쓰레기를 줍는다라. 좋은 방법인데?”

나루도 팔짱을 끼고 가족들을 노려봤어.

“화가 풀린 건 아닌데요?”

“응?”

나루는 가족들 앞에 앉았어. 나루는 소리치지 않았어.

“팔짱 풀고 내 이야기 들어주면 안 돼요?”

나루의 말에 가족들은 멋쩍어하며 팔짱을 풀었어. 팔짱을 끼고 있었단 사실도 모르고 있었나 봐. 가족들 표정이 조금은 부드러워졌어.

“그리고 제가 다 이야기할 때까지 기다려주세요.”

이번엔 가족들의 눈을 보고 차분히 이야기했어. 검고 깊은 구멍 속으로 나루의 목소리가 닿았어.

그렇게 대화가 시작되었어. 하지만 대화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지. 가족들은 단번에 나루를 이해해 주지 않았어. 가족들은 나루의 이야기를 들으며 속상해하기도 했고, 짜증을 내기도 했으며, 나루의 말이 옳다거나, 틀렸다고 답하기도 했어. 하지만 나루는 멈추지 않았어. 나루가 숨을 쉬기 위해서는 가족들의 마음을 헤집어야 했지.

이야기를 마친 나루는 자리에서 일어났어.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고개를 푹 숙이며 인사했지. 가족들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봤지.

“엄마, 아빠 더 하고 싶은 말 있어요?”


침대에 누운 나루는 나뭇가지를 들었어. 휙휙 나뭇가지를 휘둘러보았어. 뒷산의 꽃게들과 보낸 오후를 생각했지.

똑. 똑.

누군가 나루의 방문을 두드렸어.

나루는 나뭇가지를 침대 옆에 가지런히 두고 심호흡을 한 번 했어.

“들어오세요.”

가족들은 바위틈으로 기어 나온 꽃게처럼 문틈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어.

“나루야, 우리 좀 더 이야기할까?”

가족들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루는 고개를 홱 돌리거나, 딴소리하거나, 엉덩이를 쭉 빼거나 하지 않았어. 끼어들어 말을 끊거나 팔짱을 낄 정신도 없었지. 나루는 집중했어. 가족들 마음 속에도 분명 무언가 갇혀 있을 테니까. 그게 뭘지, 그걸 어떻게 풀어줄지 고민하느라 가족들 눈을 빤히 바라봤어.

성욱현
동화작가, 시인, 책방 ‘악어새’ 대표, 1994년생
동화 「채정 하나, 채정 둘」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