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밭단상
옛글의 나무 찾기의 어려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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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년 봄호 (통권 91호)
옛글의 나무 찾기의 어려움에 대하여

지난 2023년은 나에게 특별한 해였다. 몇 해 전부터 나는 “한자로 표현된 식물이 우리가 생활하면서 만나는 구체적인 나무나 꽃, 풀임을 알게 되면 고전의 내용이 더 생생해진다”라는 취지로 옛글의 식물명을 탐구하며 글을 쓰고 있다. 이 글이 제10회 브런치북 특별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었고, 이유출판을 통해 『옛글의 나무를 찾아서』라는 책으로 8월 말에 출간되었던 것이다. 이 책에는 ‘좋은 정치를 상징하는 나무 감당(甘棠)’부터 ‘정원수로 사랑받으며 향으로 쓰인 향나무, 회(檜)’까지 33편의 글이 실려 있다. 덕분에 나는 시인도 소설가도 수필가도 아니면서 지인들로부터 작가님으로 불리는 영광을 누렸고, 생애 첫 출간을 기념하며 연말에는 가족과 함께 도쿄를 여행했다.

식물 애호가로서 일본의 나무를 보러 동경대 부속 식물원을 어렵게 찾아갔으나 문이 닫혀 있었다. 일본에서는 12월 29일부터 다음해 1월 3일까지 거의 모든 공공기관이 연말연시 휴가로 문을 닫는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아쉬움을 달래며 출입이 허용된 공원과 정원, 거리를 거닐며 꽃과 나무를 구경했다. 한겨울이었지만 낮에는 10~12℃까지 오르고 밤에도 영하로 내려가지 않은 기후 때문인지, 도쿄는 아름드리 녹나무 등 상록수들로 푸름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직 노란 잎을 달고 있는 은행나무도 제법 보였고, 화단에는 수선화도 활짝 피어 있었다.

시내와 공원 곳곳에 동백꽃이 만발해 있어서 남국의 정취가 느껴졌다. 대부분 붉은색 겹꽃이 피는 원예종 동백나무였는데, 일본인들이 얼마나 동백나무를 좋아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시부야 거리의 한 꽃집에서는 꽃망울을 매달고 있는 동백나무 다발도 만났다. 1,000엔 가격표와 함께 포장종이에 춘(椿)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어서 내 눈길을 끌었다. 일본에서는 동백나무를 ‘쓰바키’라고 부르고, 한자로는 춘(椿)으로 쓴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현지에서 직접 용례를 확인한 것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나무 목(木) 변에 봄 춘(春)을 쓰는 춘(椿)이라는 글자는 일본에서는 고대부터 동백나무를 뜻했지만, 한자의 본고장인 중국에서는 참죽나무를 뜻했다. 『장자』 소요유 편에서는 “아주 옛날에 큰 춘(椿)은 8,000년을 살아도 봄 한철, 가을 한철 지낸 것에 불과했다”라고 하여 장수의 상징으로 쓰였고, 우리나라 문헌에서도 참죽나무를 뜻했다. 같은 한자문화권이라도 나라에 따라 춘(椿)이 뜻하는 나무가 달랐던 것이다. 고전의 한자 식물명을 탐구하면서 알게 된 것이지만, 같은 글자로 다른 나무를 가리키는 경우는 이 외에도 삼(杉), 풍(楓), 단(檀) 등 많다.

 

서두가 길어졌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내가 『옛글의 나무를 찾아서』를 쓰는 과정에서 느꼈던 고충을 살짝 토로하고자 한다. 『논어』에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송백(松柏)이 뒤늦게 시듦을 알 수 있다”라는 구절이 있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의 모티프가 된 유명한 글귀다. 여기에서 백(柏)이라는 글자는 중국에서 측백나무를 뜻하고, 『논어』는 중국 고전이니 세한도의 백(柏)도 측백나무이다. 그런데 이 백(柏)이라는 글자는 『두시언해』에서 ‘잣나무’로 번역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잣나무를 뜻하기도 했다. 정약용 선생은 『아언각비』에서 “백(柏)은 측백나무인데 민간에서 잣나무라고 부르고 어린이를 가르칠 때에도 잣나무라고 하니 어찌 잘못이 아니겠는가?”라고 개탄했지만, 일제강점기 아동학습서인 『계몽편언해』에서도 ‘잣나무’로 가르치고 있다. 그 결과 거의 대부분의 『논어』 번역서들은 송백(松柏)을 ‘소나무와 잣나무’로 번역했다. 다행히 현재 과천시 추사박물관이나 제주 추사관에서는 측백나무로 설명하고 있기는 하다.

 

그런데 내 의문은, ‘과연 추사 선생이 세한도에서 측백나무와 잣나무 중 어떤 나무를 생각하면서 그렸을까?’ 이다. 세한도에 그려진 나무 모습으로는 확실히 알 수가 없다. 『개자원화보』의 측백나무 그림과 비교해 봐도 모르겠다. 추사 선생의 글을 포함하여 조선 후기 학자들의 글에서 백(柏)의 용례를 조사하면 실마리가 풀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글에서 백(柏)을 만나도 특별한 정황 정보가 없으면 무슨 나무인지 특정할 수가 없다는 점이 문제다.


얼마 전 겨우 백(柏)이 측백나무를 뜻하는 용례 하나를 이건창의 고조부 이충익(1744~1816)의 시에서 보았다. 강화도에 있는 이건창 생가에는 350여년 된 측백나무 고목이 자라고 있다. 그런데 이충익이 고향 집을 읊은 시에서 “뜰 가의 백엽(柏葉)은 딸 사람이 없으리니(庭邊柏葉無人採)”라고 했으니 이때 백(柏)은 측백나무가 확실하다. 이런 용례로 보아 추사 선생이 측백나무를 그렸을 가능성이 높지만, 확신할 수는 없다. 추사 선생이 『아언각비』를 열람했다는 기록이 발견되면 아마도 거의 확실해질 것이다.

 

이렇게 옛글의 한자가 뜻하는 식물은 합리적 추정은 가능하지만 정확한 이름을 밝히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최초의 원예서인 『양화소록』에서 강희안(1417~1465)은 “세상 사람들은 꽃 이름과 품종에 대해 익히지 않아서, 산다(山茶)를 동백(冬柏)이라 하고, 자미(紫薇)는 백일홍이라고 한다. … 같고 다름을 구별하지 못하고 참과 거짓이 서로 뒤섞이는 것이 어찌 꽃 이름뿐이겠는가. 세상의 일이 모두 이와 같다”라고 개탄했다. 아마도 잘못된 정보의 유통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옛글의 나무에 대한 올바른 정보가 전파되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나는 글을 쓰고 있다. 쉽지 않지만 즐거운 일이다.

권경인
에릭슨LG CTO, 1966년생
저서 『옛글의 나무를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