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용한 아이였다. 철들기 전에도 철든 이후에도 그러했다. 심지어 아기를 낳은 후, 아이와 씨름하던 시절에도. 내 일상은 고요하고 잔잔했고 그즈음 나는 소설과 역사책을 읽고 눈이 아려오도록 재봉 일에 몰두하면서 이처럼 평범하고 평범한 일생을 살겠구나,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어느 가을 저녁, 전화벨이 울리고 한 여자가 어떤 이름을 말하며 자신은 그의 아내라고 말했다. 긴장한 음성이었고 뜻밖의 이름이었다. 그 여자의 이야기는 이랬다. 며칠간 집을 비웠는데 어이없게도 집에 여자가 다녀간 흔적이 있었다. 모르쇠로 일관하는 남편에게는 더 이상 확인이 가능하지 않고, 내가 아는 결혼 전 여자는 너뿐이다. 너인가?
이상하게도 나는 놀랍거나 불쾌하지 않았다. 나는 그 여자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당신의 직감이 맞더라도 집에 들였다면 오히려 별일 아닐 것이다. 특별한 사이의 여자를 아내가 없는 집에 들이는 남자, 그런 건 ‘사랑과 전쟁’에나 있는 일이다. 게다가 나는 ‘결혼 전 여자’라고 불릴만한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무리 속에서 만났고 기억 속의 그는 언제나 취해있었다. 물론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그 여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통화는 제법 길었고 그 밤 나는 오래 뒤척였다. 누군가에게 남편의 연인으로, 아내가 출타한 집을 찾은 대담하고 어리석은 여자로 인식되었다는 사실이 우스웠지만 어쩌면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 는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며칠 후 나는 아파트 상가에서 그 여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여자가 원했나? 내가 그러자 했나? 검은 베레모를 맵시 있게 쓴 여자가 옆구리에 끼고 온 스케치북을 다탁에 내려놓던 장면.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지금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다. 고요하던 오후의 찻집. 다소 무거운 슈베르트가 흐르고 있었던 것도. 통화에서 말했던 ‘흔적’과 의구심 갖게 하는 남편의 행동들. 여자의 이야기를 나는 사려 깊은 언니처럼 들었다. 두어 시간 남짓, 피곤함이 밀려올 즈음 그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행히 유치원생 아이가 돌아올 시간이었다. 아파트 입구를 돌아나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알 수 없는 기시감, 혹은 너무나 낯선 느낌에 사로잡혔다. 여자로서는 내가 문제의 여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 걸음이었을 테지만 나는 왜 여기 서 있나…… 특별했다 할 수 없는 사이의 그 남자, 불쑥 나타난 이름조차 알지 못하던 여자, 그렇게 그 여자는 모호함을 가르치고 떠났고 그날 밤, 나는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비슷한 상황의 소설의 주인공은 단호하게 부인하지만 소설에는 어떤 물증이 존재한다. 그 남자의 아내가 ‘이상한 건 말이죠, 반지, 그러니까 늘 끼던 건데 그날따라 빼놓고 나간 반지가 없어졌다는 거예요,’라고 말한 그 반지가 주인공의 화장대 바닥, 먼지 낀 틈 사이에서 발견되는 엔딩. 자로 잰 듯한 일상의 균열. 제목은 ‘그림자 외출’로 정했다.
내친김에 나는 「그림자 당신」, 「그림자 거리」까지 두 편의 소설을 추가해서 《현대문학》에 보냈고 당선 통지를 받았다. 주변 사람들은 축하하면서도 의아해했다. 소설을 썼었어? 언제? 고맙게도 왜? 라고는 묻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나는 소싯적 다녔던 백일장, 장원, 차상, 뭐 그런 일을 말하지 않는다. 내 이야기가 너무나 지리멸렬해서 소설 쓰기를 포기했던 일과 그럼에도 ‘쓰게’ 된 까닭을. 소설을 쓰지 못한 지 십 년이 겨워 여전히 내 속에 갇혀있는 그림자와 일어나지 않은 일이 일어난 일을 지배한다는 나의 믿음에 대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