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밭단상
반복과 꿀

  • 글밭단상
  • 2024년 봄호 (통권 91호)
반복과 꿀

나는 반복의 힘을 생각한다. 몇 해 전, 식목일에 키우기 시작한 사과나무를 보고 있다. 식물농장에서 산 사과나무 두 그루는 처음에 꼬챙이 모종에 불과했다. 나는 사과나무 둘에게 ‘만수’, ‘무강’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이후 ‘무강’은 병이 들어 죽었다. 형인 ‘만수’만 겨우 살아났다. 만수는 사람이 사는 집에서 살기 힘들었다. 시들해지고 벌레가 꼬였다. 죽기 직전에 식물 병원에 데리고 갔다. 의사는 빠른 시일 내에 나무를 땅에 묻어야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열매를 맺는 나무 입장에서는 사람 사는 집이 재난의 폭풍이라고. 정신없는 일상이 흘렀지만 어쩐지 헤어지기가 힘들었다. 게으른 탓에 해줄 수 있는 것은, 볕을 주고, 바람을 통하게 해주고, 물을 주는 것, 그리곤 죽지 마, 너는 할 수 있어, 라는 기도의 말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라는 마법이 흘렀다. 만수는 잎을 피우고 키가 자랐다. 내 말벗이 되었다. 회복과 극복에는 어떤 반복이 필요했을 테지만.

인간의 삶에서는 그와 반대로 지독한 ‘반복’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하기 싫은 일을 계속해야 하는 것, 힘든 일을 반복하는 것, 맞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싸워야 하는 것, 밉고 시기하고 질투해야 하는 경쟁. 나 자신의 초라함을 알면서도 거기서 벗어나야 하는 억압. 그것들은 보이지 않는 가능성의 존재를 믿으며, 멈추지 말아야 하는 열차들의 정면과 같다. 두렵고 아프다.

나는 엄마가 되어서도 온전히 아기를 사랑하지 못했으며, 나는 시인이 되어서도 온전히 시를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 진흙탕 같은 삶에서 원망하고 화내고 분노하는 것을 반복했다. 좋아하는 것들을 버리면서, 가령 나를 평화롭게 만드는 음악이나 미술 작품을 보지 않으면서, 좋아하는 시인이나 우상을 버려가면서, 잘하고 싶은 문학의 형상화와 구체화와 감동을 버리면서, 나는 조금씩 내 뿌리를 잘라내고, 괴인이 되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멀리하고, 좋아하는 취향을 모른 척하며, 바라보고 믿는 구석들을 덮어가며, 나는 사실, 변화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무수한 반복을 함께하며 그 반복들을 보살피고 분석하고 있었던 것이다. 밥을 먹으면서도, 사람들과 술을 마시면서도, 경제적으로 만나는 숫자들을 정리하면서, 사회에서 인정받기를 원하는 나를 인정하고 한심해하면서, 나는 나를 한껏 잊고 싶었다. 시를 쓸 때 자신의 존재를 제대로 알게 있었다는 어느 작가의 말을 의심했다. 보들레르를 지나, 장 콕토를 지나, 타르코프스키를 지나, 이상이나 김수영을 지나, 나는 그 모든 절대성과 미학을 벗어나고 싶었을까. 지극히 이 반복적인 고통과 아우라와 비굴함을 깨고 싶었다. 세상이라는 새장 안에서 그르렁거리는 새의 목소리를 믿지 않았다. 나는 시의 궁극으로 나아가고 싶다. 나는 나를 없애고 싶었다.

그토록 ‘나’에 대해 천착했던 칸트의 방식은 반복이었다. 오랫동안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고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고 정해진 시간에 연구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시간과 연결된 외부를 인간 사회의 현상으로 보았다. 그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주체를 탐색할지도 모른다. 지극히 나도 몰랐던 방식으로 나는 내 새장을 스스로 설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현대인을 억압하고 있는, 아니, 앞으로도 계속 우리를 훈련시킬 그 모든 모순과 모략을 짐작한다. 반복은 더 세분화되고 노련해질 것이다. 반복이 지능화된다면, 인간은 더 나약해질 것이다. 하지만 반복을 가능화한다면, 인간은 더 도약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반복이 좋다. 나는 나를 계속 미워하고, 나는 싫어하는 것들과 더 자주 만나고, 나를 쓰러트리는 많은 장면의 슬픈 삶들과 살아갈 것이다. 몇 만 개의 봄은 계속 이어질 것이고, 우리는 새장의 열쇠를 움켜쥔 채 날갯짓도 잊을 테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이 반복이 쌓여 무언가를 열 수 있다는 것을. 새장을 벗어나는 것이 해결책이 아니라, 새장 안에 있으면서도, 불가능한 곳에 가 볼 수 있는 힘이라는 것을. 아마도 그곳은 ‘새로운 반복’의 세계일 것이다. 겨울비가 또 내린다. ‘만수’를 베란다에 잠시 올려준다. 식물에겐 이 비가 꿀이고 호흡이고 노래일 것이다. 끈적거리고 달콤하고 텁텁할 생의 반복들. 그러나 인간은 반복을 변화시킨다.

이지아
시인, 1976년생
시집 『오트 쿠튀르』 『이렇게나 뽀송해』 『아기늑대와 걸어가기』, 이론서 『한국 시극 작품에 나타난 공간성』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