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화제작
‘손석희’가 정답은 아니지만……

- 손석희의 저널리즘 에세이 『장면들』

  • 오늘의 화제작
  • 2022년 봄호 (통권 83호)
‘손석희’가 정답은 아니지만……

- 손석희의 저널리즘 에세이 『장면들』

 

그렇지 않은 시절이 없었다. 해방 이후 고속 질주 및 압축 성장의 길은 여러 모순이 부딪치는 대립과 충돌의 시간이었다. 최근 10년 역시 격동의 시기였다.

흠결에 대한 손가락질을 버텨내기엔 양심도, 도덕도, 자존감도 허락하지 않았던 전직 대통령의 비극적 최후가 있었고, 304명의 애꿎은 생명이 차가운 바다의 포말로 사라져버리며 전국민을 처연하게 만들었고, 모래성처럼 쌓아 올려진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드러냈다. 세상을 딱 두 쪽으로 갈라놓게 만든 일도 있었다. 유력 대선후보, 광역단체장, 검찰 등 권력의 이름으로 또다른 성을 차별하고 폭력을 행사한 데 대한 ‘미투’는 피해자는 물론, 관련된 모든 이에게 크고 작은 상처를 남겼다.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일단락이 된 듯하지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검찰개혁 또한 기득권 질서의 근간을 뒤흔드는 이슈였다. 절반 이상의 이들에게 정치와 경제, 사회 모든 부문 속 근접불가의 검찰 권력이 존재해왔음을 온몸으로 체감케 했다.

이 격동의 시기 벌어진 여러 사건·사고들은 고스란히 언론이 국민들과 얼마나 유리됐는지 확인하게 만든 일이기도 했다. ‘기레기’와 같은 기자에 대한 멸칭이 본격 등장한 것도 이때부터다.

 

자초한 측면이 크다. 언론은 논쟁적 사안에서 노골적으로 한쪽에 유리한 의제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거나 아니면 ‘객관적 중립의 함정’에 빠져 궁극적으로는 주류의 기득권을 공고히 하는 역할에 머물기 일쑤였다. 또한 ‘이슈 중심’의 보도 관행, 먹잇감 중심의 하이에나식 보도를 반복해왔다. 실체적 진실은 그만큼 멀어져갔고, 대중들의 신뢰 또한 진실과 거리만큼 멀어져갔다. 기자들의 자괴감 역시 그 아득한 거리만큼 깊어갔을 테다.
따져보면 언론의 객관적 지표는 암담하다. 언론자유지수는 아시아 1위로 높은 평가가 나온 반면, 언론신뢰도는 하위권을 맴돈다. 멸칭의 근거이거나 언론 비판의 단골 메뉴 중 하나가 됐다.

 

어려움 속에서도 특정한 언론인 한 명에 대한 의존도가 꽤 높았다. 물론 그 한 사람이 아무리 사회적 영향력이 크다 한들 혼자서 한국 언론을 좌지우지할 수는 없는 노릇일 테다. 뭔가가 있는 것이다. 그래도 그는 언론이 저널리즘으로서 제 역할을 해야만 하는 그 순간 늘 존재했다. 그래서 멸칭이 멸칭으로 남지 않도록 하는 방부제 역할이 됐는지 모른다. MBC 아나운서, 성신여대 교수, JTBC 보도담당 사장 등을 거친 손석희 순회특파원(이하 호칭 생략)이다.
손석희가 쓴 『장면들』(창비)은 부제 그대로 저널리즘 에세이다. 그 스스로 정립한 ‘사실, 공정, 균형, 품격’이라는 원칙과 잣대, 그리고 ‘어젠다 세팅’을 뛰어넘는 ‘어젠다 키핑’이라는 과제가 어떻게 구현됐는지 덤덤히 풀어낸다. 앞서 언급한 세월호 참사, 촛불 집회, 대통령 탄핵, 미투, ‘조국사태’와 검찰개혁 등 숨가빴던 현실 속 이 원칙과 과제가 어떻게 접점을 이루며 부딪쳤는지 보여주고 있다. 양은 냄비처럼 들끓다가 시간이 지나면 다른 이슈를 쫓아 또 열 올려대는, 그러면서 계속 잊혀지는 현상을 반복하면서 진실도, 정의도 멀어지게 만드는 것이 언론이 그간 보여온 현상이었다. 범죄를 또다른 범죄로 덮고, 망언과 추문을 또 다른 망언으로 덮는 정치인들이 승승장구할 수 있는 현실에 대한 책임의 상당 부분은 언론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손석희가 정답은 아니다. 하지만 언론의 권한과 책임의 경계 속에서 이토록 끊임없이 고뇌하는 이라면 그는 정답을 지향하는 이다. 함께할 만한 사람이다.

 

한국 언론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면 확증 편향으로 두 쪽이 난 유튜브 등 SNS 바다 속에서만 헤맬 일이 아니다. 손석희의 고뇌가 깊은 만큼 젊고 건강한 언론인들의 고뇌 또한 깊어짐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언론이 절로 바뀔 가능성은 심히 낮다. 언론의 수용자, 대중들이 좀 더 치열하게 기성의 방송과 신문을 비판해야 한다. 객관과 중립을 가장한 그들의 허위 의식과, 결과적으로 기득권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주류 의식,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이해관계에 매몰된 비대중성을 꼼꼼히 지적하는 것이 또 다른 과제다.

『장면들』은 저널리즘의 원칙을 중심에 놓고 지나온 기억을 더듬는 내용이지만, 결국 언론 콘텐츠의 생산자와 이용자에게 모두 각성을 요구하고 있다.

 

덧글. 본인은 『풀종다리의 노래』 이후 28년 만의 책이라고 하지만, 그 사이 공저자로 펴낸 책이 두 권 더 있다. 『세상은 꿈꾸는 자의 것이다』(1996), 『가슴 속에 묻어둔 이야기』(2000)다. 나름 내밀한 얘기를 공개적으로 풀어냈다. 『풀종다리의…』를 중심으로 함께 보충해 읽다보면 늘 세상에 회의하고, 고정되지 않은 진실을 갈구하는 인간 손석희에 대한 이해를 갖기에 부족하지 않다. 『장면들』 속 구체적인 이슈를 대하는 손석희의 원형 정서를 접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는 머물지 않는 인간이다. 즉, 노마드적 인간형에 가깝다. 가난을 이웃 삼아 30번 가까이 이사 다녔다는 유소년기의 손석희는 실존적 노마드다. 이후 20대의 손석희와 공영방송 및 언론노동운동 이후의 손석희, 언론학 교수이자 연구자로서 손석희, 그리고 JTBC 손석희는 가치와 지향의 노마드에 가깝다. 그를 알기는커녕 얼굴 한 번 본 적도 없지만, 그와 주변 인물을 둘러싼 어떤 풍문이 들려와도 별로 개의치 않을 만큼의 신뢰를 갖는다. 앞서 언급한 세 권 모두 절판된 책들이지만 많은 이들에게 일독의 기회가 오기를 고대한다.

박록삼
서울신문 논설위원, 1971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