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후기
부조리한 현실을 폭로하는 용기 있는 글쓰기

- 불역 공지영 소설 『도가니』

  • 번역후기
  • 2021년 여름호 (통권 80호)
부조리한 현실을 폭로하는 용기 있는 글쓰기

- 불역 공지영 소설 『도가니』

 

프랑스 필립 피키에 출판사 한국문학 컬렉션 기획가인 필자가 공지영 작가를 처음 발견하게 된 것은 그녀의 작품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통해서였다. 프랑스에 첫 출시된 이 작품이 현지 독자들의 상당한 호응을 얻게 되자 필자는 공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좀 더 쉽게 소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높고 푸른 사다리』와 『봉순이 언니』가 연이어 피키에 출판사를 통해 프랑스에 선보이게 되었다.

한국에서 2009년에 나온 『도가니』는 사실 필자가 2013년에 이미 피키에 출판사에 소개했었는데, 그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라면서 출판사 측에서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2018년 5월 공지영 작가가 파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도시인 옥세르(Auxerre) 국제 도서전에 초청되어 프랑스에 방문하게 된 것이 이 작품에 대해 다시 논의하는 계기가 되었다.

국제 도서전 기간 동안 공 작가는 약 150명을 가득 채운 대강당에서 이미 출간된 그녀의 세 작품을 중심으로 토론자와 대담회를 가졌는데, 토론회가 끝나자 강당을 메운 전원이 일제히 일어나 우레와 같은 기립 박수를 보냈다. 통역자로 참여한 필자마저 몸 둘 바를 몰라 홍당무가 되는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공 작가는 또 그 도시의 고등학교 학생들과도 만남을 가졌는데, 담당 불어 선생님에 따르면, 이 만남을 준비하기 위해 학생들과 6개월간 공 작가의 세 작품을 가지고 공부했다고 했다. 그래서였는지, 학생들의 질문은 하나같이 수준 높은 것이었고 모두가 눈을 빛내며 한국과 한국 문학 작품에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파리로 올라온 공지영 작가는 프랑스의 이름있는 주간 잡지 《La Vie》와 인터뷰를 했고, 파리에 소재하는 주불 문화원에서도 작가이자 문학평론가인 선 로즈 제임스(Sean Rose James) 씨의 진행으로 문학 컨퍼런스를 가졌는데, 이날 저녁 약 200명 가까이 되는 독자들이 참여하여 대성황을 이루었다. 당시 문화원 원장님의 말씀에 따르면, 문화원 역사상 가장 많은 청중과 가장 수준 높은 문학 컨퍼런스를 기록했다고 했다.

컨퍼런스가 끝나고 피키에 출판사 사장이 공지영 작가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는데, 바로 그 시간을 이용해서 필자가 공 작가의 차기작 출간으로 『도가니』를 적극 추천했고, 공 작가에 대한 현지의 뜨거운 반응을 본 피키에 사장은 드디어 흔쾌히 승낙했다.

공지영 작가의 두 작품을 이미 번역한 경험이 있는 필자는 공작가의 문체에 다소 익숙해 있었던 터였고, 특히 이번 소설 『도가니』는 다른 작품에 비해 구조적으로 잘 짜여 있었을 뿐만 아니라 문장도 비교적 명료해서 번역하는 데 특별히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러나 어떤 작품의 번역이든 그 작품에 고유한 크고 작은 어려움은 늘 있기 마련이다. 굳이 지적하자면 두 가지 예가 떠오른다.
  그 하나는 기본 시제를 현재로 하느냐 아니면 단순 과거로 하느냐의 선택 문제였다. 필자의 생각에는 어느 것을 선택해도 무방하게 보여서 망설이다가 결국 현재를 출발점으로 해서 번역을 시작했다. 그런데 번역 샘플을 읽은 대산문화재단의 심사위원이 기본 시제를 단순 과거로 하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제의해 와서 필자는 필자의 조력자와 함께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역시 현재를 기본 시제로 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해 그대로 고수했다. 대개 작품 속 사건 전개가 시간적 순서를 따라 이루어질 경우, 필자는 현재를 기본 시제로 출발하는 것을 선호하는데, 그것은 바로 현재형이 등장인물들의 활동들을 더욱 생생하게 표현한다는 판단에서이다.

또 하나의 어려움을 들자면, 이 소설의 주요 메타포인 “안개” 라는 단어가 작품 속에 아주 자주 등장한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번역가의 난제는 어떻게 하면 이를 같은 단어나 같은 문장 형태의 반복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몰리에르의 언어로 반복을 피하면서 옮기느냐 하는 것이었다. 같은 단락 내에서도 수없이 언급되는 “안개” 라는 말의 반복을 피하기 위해서 필자는 동의어도 물론 사용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어서 여러모로 다른 방식으로 돌려 표현해내야 했는데, 그것은 많은 숙고를 요하는 지난한 작업이었다.

대산문화재단의 지원으로 2020년 9월에 나온 본 작품 『도가니』는 코로나로 인해 여러 가지로 어려운 실정에도 불구하고 현재 현지 독자들의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몇몇 공식 매체의 기사와 특히 많은 문학 블로그들이 잔인하고 부조리한 현실을 문학을 통해 폭로하는 공지영 작가의 용기 있는 글쓰기에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보통 외국 문학작품의 평균 첫 인쇄 부수 2천500부보다 훨씬 높은 4천부를 찍었는데, 현재 거의 3천부가 나간 상황이고 반품 없이 꾸준히 팔리고 있다. 이로써, 공지영 작가는 필자가 기획하는 컬렉션의 한국 작가들 중 가장 잘나가는 작가들 중의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불역 『도가니(LES ENFANTS DU SILENCE)』는 재단의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을 받아 필자와 루시모드의 공역으로 프랑스 필립피키에(Philippe Picquier) 출판사에서 2020년 출간되었다.

임영희
번역가, 프랑스 출판사 필립피키에 한국문학 컬렉션 기획가, 1960년생
저서 『봉주르, 학교에 가요!』 『보나페티, 음식이 달라요!』 『꼬레, 우리는 친구예요!』, 불역서 『방각본 살인사건』 『빛의 제국』 『높고 푸른 사다리』 『고양이 학교』 『도가니』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