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구름사냥꾼 & 마트알바생

  • 단편소설
  • 2021년 여름호 (통권 80호)
구름사냥꾼 & 마트알바생

1. 구름 사냥꾼

 

L은 수입이 많지 않았다. 광전자 가습기로 만든 인공 구름 번식이 대중화되면서 자연산 구름을 찾는 사람이 급감해 버렸다. 다만 구름 사냥을 그만두는 이가 그만큼 늘고 자연산이 귀해지면서 전보다 고가로 거래되는 덕분에 가까스로 생계를 이어갈 수는 있었다. 하지만 머잖아 그만둬야 할 터였다. 때문에 사냥에 쓸 그물을 사러 가거나 다만 이발을 하러 동네 미용실에 갈 때조차 자신의 미래를 찾는 마음으로 가게 하나하나를 눈여겨보았다.

빈 가게가 보이면 어떤 가게가 들어서야 장사가 될까 궁리해 보는 한편으로, 치킨집이든 국밥집이든 들어서면 그 수명을 예견해 보았는데, 맞을 때도 있지만, 맞지 않을 때가 더 많았다. 과연 될까 싶던 가게가 흥하고 되겠다 싶은 가게가 망했다. 아무래도 세상이 자신의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돌아가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게다가 잘 된다 싶은 가게 대부분은, 이윤을 모두 서울로 가져간다는 사실 때문에 그가 몹시 싫어하는 체인점들이었다. 그는 어떤 종류의 가게든 지역사회 발전에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체인점만큼은 내지 않을 작정이었다.

L이 사는 도시는 자연산 구름 외에 두어 가지 특산물이 유명했으나, 중국산과의 가격 경쟁에 밀리면서 맥을 추지 못했다. 거기다 초대형 마트가 구역마다 하나씩 들어서면서 구시가지에는 영업을 접은 점포가 많았다. 그런데도 신축 아파트 단지는 계속 늘어만 갔다. 지나치게 높은 분양가의 저 많은 아파트를 대체 누가 사서 들어가 산다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미분양으로 남을 거라 장담했다.

하지만 분양되자마자 매진된 반면, 구시가지 집값은 맥을 추지 못했다. 새 아파트가 들어서 값이 오르는 만큼 구시가지 집값이 떨어질 거라고 불평하던 사람들이 무리를 해서라도 이주한 때문이었다. 그것은 무척 희한한 일이었다. 신시가지 값을 올리고 구시가지 집값을 떨어뜨리는 사람은, 그럴 거라 걱정하여 구시가지에서 신시가지로 이사한 사람들로, 파는 값은 떨어지고 구입한 가격은 오르니 불만스러워해야 하는데, 결국은 기뻐하니 말이다.

구시가지에서 장사하던 사람은 손님도 집값도 반토막 나서 예전보다 갑절로 열심히 살아도 갑절로 가난해져 마침내는 자신보다 더 가난해진 빈곤층 이웃이나 보며 자위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밤낮 술 마시고 연애질을 해댐으로써 적잖은 활기를 불어넣어 주던 지방대 학생 수마저 감축 되거나 폐교된다는 소문이 떠도는 걸로 보아 더욱 희망이 없어 보였다.

지방 소도시에 산다는 건 구름 사냥에 미련을 두는 만큼이나 어리석은 짓이었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라도 그 역시 서울이나 그 주변으로라도 가고 싶지만, 조금이라도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구름을 사냥하려면 조금이라도 더 수도권으로부터 떨어진 높은 산봉우리로 올라가 불순물 적은 천연구름을 사냥해야 하기 때문에 쉬이 떠날 수 없었다. 게다가 그의 마음 한켠에는 언젠가 향유고래 구름이나 티라노사우루스 공룡 구름을 포획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미련이 남아 있었다.

자연산 향유고래나 티라노사우루스 구름은 부르는 게 값이었는데, 그만큼 진귀했다. 세계적으로 매년 한두 마리 겨우 잡혔는데, 그나마 피부가 훼손되거나 발톱이나 부리 부위가 일그러진 모양새였다. 구름사냥협회에서 수년째 보험배상청구를 제기하겠다고 했지만, 이상기온으로 인한 기압과 기류의 변화, 대도시의 대기오염과 미세 알루미늄, 산업공단의 중금속처럼 그 원인들이 너무 많아 피의자를 좁힐 수 없었고, L의 아내만 아이에게 일회용 컵과 플라스틱 빨대는 사용하지 말라고 잔소리했다.

 

구름이 없는 날이면 L은 공사장 인부로 벌이를 충당했다. 아버지를 따라 처음 구름 사냥을 나갔던 열한 살 이후 높은 산봉우리를 학교 계단 못지않게 오르내린 그는, 고층건물 방수공사나 유리닦이 등에 남다른 솜씨를 보였다. 이삼 십 층 계단을 단숨에 오르고, 보호대 없이 옥상 난간을 걷고, 다만 외줄 하나에 매달려 유리를 닦았다. 다른 말은 못 알아듣고 욕을 하면 정확히 알아듣는 외국인 노동자 예닐곱 명 몫의 일을, 그 혼자 해내고, 틈틈이 구름낚시까지 시도할 정도였다.

구름이 있더라도, 대도시 상공을 건너 온 오염된 구름일 뿐인 날은 사냥을 가지 않고 공사장으로 향했다. 사람들은 구름이 많은데도 공사장에 나온 그를 보며 의아해했다. 그러면 마치 그 자리에서 오래 낚시를 해온 사람이 처음 방문한 초짜에게 한마디 하듯, 심상한 어조로 오늘 구름은 모두 극심하게 오염된 구름이라 말해주었다. 사람들은 어떻게 그걸 알 수 있냐고, 자신들이 보는 평소 구름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며, 신기해하는 눈으로 구름과 그를 번갈아 보았다.

자신이 언제부터 어떻게 그걸 분별하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구름을 올려다보고 있기만 해도 그는 구름의 오염 정도를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반려견과 너무 오래 살아 하는 행동만 보고도 컨디션을 알아맞히는 반려인처럼 몸으로 감지되는 통증이었는데, 아침 햇살에 채색된 분홍빛의 채도라든가, 바람 부는 속도에도 불구하고 유지되는 구름의 형태와 밀도라든가, 모양새를 바꿔가는 성장 속도 같은 것들로 미루어 습도와 밀도 및 향후 이동경로는 물론, 구름 안에 내재된 중금속 오염 정도까지 맞힐 수 있었다.

그것은 그만의 재능이라기보다 그의 아버지가 아버지의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아 그에게 내려준, 다리가 골절되고 떨어져 두개골이나 대퇴부가 패이는 중부상을 당하는 시련을 거듭한 끝에 깨친 것들로, 한때는 국가무형문화재인으로 추대되기까지 했다. 그렇게 추대되면 보조금을 받아 생계 걱정을 면할 수 있지만, 그러기까지 제출해야 하는 증빙 서류와 참여 단체 행사 활동이 구름 사냥을 나가는 것보다 번거로워 그만두었고, 지금은 그러한 혜택을 거절하고 순수한 구름 사냥꾼으로 살아가는 청렴한 기인, 이라는 동네 사람 몇의 칭송만 어쩌다 그의 귀에까지 전해지곤 했다.

 

공사장으로 나간 L은 구름에 밧줄을 걸어 공중을 날고, 그물을 걸어 철근을 옮기고, 그나마 깨끗한 구름 귀를 베어 만든 빙수를 인부들에게 나눠주었다. 때문에 별다른 안전장치도 없는 위험 구역에 배치되어 오로지 자신이 죽으면 남겨질 가족 걱정으로 주의하고 또 주의해야 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위험한 작업을 솔선수범하는 그와 함께 일하기를 좋아했다.

먼저 지나가는 구름을 찌푸린 눈살로 가늠했는데, 보통 사람 눈에는 평범한 높새구름이나 뭉게구름으로 보일 뿐이지만, 그는 그 구름이 어느 방향으로 이동하고 어떤 모양으로 변신할지 미리 알아맞히고, 그 구름의 어느 부위를 향해 화살을 쏘아야 모양 그대로 조금도 훼손하지 않고 산 채로 포획할 수 있는지 알았다. 사냥을 평생 해온 사람이더라도 잘못 화살을 놓아, 구름을 흉포한 소나기나 번개를 동반한 폭우로 바꿔놓는 실수를 종종 범하곤 했지만 그는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요지부동한 자세로 구름을 노려보던 그가 마침내 작은 신음을 삼키는 소리로 시위를 당기면, 화살촉은 구름 깊숙이 들어가 박혀 조율이 끝난 현악기의 줄처럼 팽팽한 음을 냈다. 그 음감만으로 그 줄이 견딜 수 있는 무게와 시간뿐 아니라 구름의 건강 상태와 이동 경로를 가늠해 냈다. 그다음은 그의 세상이었다. 줄을 타고 올라가 구름 속으로 들어가 사라지거나 구름 위로 올라가 고개를 내밀고 손을 흔든 다음 다시 사라져,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사람들을, 어디로 다시 나올지 전혀 알 수 없는 오리무중의 궁금증 속으로 빠뜨렸다.

감독 장 씨가 임금과 공기를 조금이라도 단축시키려고 핏대 세워 닦달해 보지만, 그조차 구름 다루는 L의 솜씨에 넋이 빠지곤 했다. 그는 구름의 속성을 활용해 크레인의 도움도 없이 십 층 이십 층 높이의 철골을 세우기도 하고, 필요한 위치로 자제를 이동시키기도 하고, 특정 위치에 빗방울을 떨어트려주는 식으로 공사를 이어갔다. 하지만 어떤 날은 구름 속으로 들어가 구름이 도시 건너편 산자락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돌아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 갑자기 시무룩해져서는 괜한 시비나 행패를 부릴 때도 있었다.

술로 달래며 이어가는 그의 술주정 설명에 따르면, 구름 속에는 말도 못할 만큼의 더러운 폐기물 혹은 중금속으로 오염되어, 건강한 구름이라면 전혀 갖지 말아야 하는 기괴한 형태의 기형적인 물방울이나 비대칭형의 일그러진 눈송이, 그리고 어린아이나 처녀의 비명에 가까운 단말마 천둥소리로 가득한데, 그러한 몰골을 들여다보노라면, 총탄의 의해 참혹하게 죽어간 자기 가족의 사체를 목도하는 것과 같은,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과 분노가 치솟는다는 것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구름은 나무나 동물이나 곤충처럼 살아있는 또 다른 종의 진화적 생명체로, 자기 스스로 가고 싶어 하는 방향과 자유 의지를 지니고 있었다. 한 번은 두레박 크기의 작은 구름 하나를 데려와 그것이 어떻게 살아서 움직이는지 보여주었다. 손을 떼면 이내 흘러가던 방향으로 달아나려 할 뿐 아니라, 손가락을 대면 그 손가락을 삼켜 제 몸뚱이를 그대로 유지하려 했다.

구름은 결코 단순한 물리현상이 아닌 것이다. 인간을 비롯한 동식물 속의 물과 피의 사후 모습으로, 이승을 살면서 바랐던 꿈이, 이미지로 구현되는 또 다른 생명 현상이다. 꿈을 꾸는 생명체 속에 살았던 물방울들은 고래라든가 장군이라든가 소녀라든가 하는, 그 생명체가 꿈 꾼 모양을 구름 형태로 완성해냄으로써, 그에 부합하는 다음 생으로 태어난다는 것이다. 구름이란 지구에 서식하는 동식물 생명체들의 내생이자 못다 이룬 꿈의 현현으로, 우리가 바라볼 때 기분이 좋고 설레는 이유 역시 이러한 인연에 따른 자연스런 울림이자 공감의 결과라는 것이다.


구름이란 사람을 비롯한 동식물이 죽어 다음 생을 결정할 때까지 떠도는 일흔일곱 날의 연옥 세계이자 삶과 죽음의 이완 방식이라는 믿음은, 중앙아시아 고원지대 일부에 샤먼과 모든 구름에게 예배를 드리는 제사 형태로 남아, 서구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몇 차례 다큐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이들은 사주나 별자리 운세를 보지 않고, 오직 구름 모양이나 빛깔만으로 그들이 다음 생에서 태어날 모습을 예견할 수 있으며, 용한 샤먼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일곱 세대까지 그 미래를 알아맞힐 수 있다.

하지만 구름 사냥꾼들은 사냥꾼대로, 자신들이야말로 구름의 실제 의미나 생리를 진실하게 알고 느끼며 증거하는 진정한 구름의 파수병이라는 자부와 긍지가 있었다. 자칭 구름 파수병이라는 인간이 어떻게 구름을 사냥하냐는 현실적 반박과 비아냥을 받기도 하지만,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 온 그가, 정말로 조상의 죽음을 앞세운 사람이나 지을 법한 참혹하게 일그러진 상한 얼굴로, 자신이 목도한 구름의 기형적 장애와 중증 병세를 설명할 때의 모습을 보면, 그보다 더 구름을 아끼는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너무나 아름다운 구름이나 공룡, 혹은 사자나 소녀, 혹은 나뭇잎이나 독수리 모양으로 유유히 푸른 하늘을 흘러가는 그런 구름은 이제 보기 어렵죠. 겉모양이 얼핏 그런 것 같지만, 자세히 보시오. 지느러미가 엉뚱한 곳에 달렸거나 팔 하나가 없거나 눈구멍 부위가 하나 더 생겨난, 기형들뿐이란 말이오. 어쩌다 겉은 멀쩡한 놈들도 안으로 들어가 보면, 그 빗방울 크기나 눈송이 문양이 어떤 줄 알아요? 맑고 동그란 물방울은 눈을 씻고도 찾기 어렵고, 눈송이는 더 이상 아름다운 대칭형이 아니라, 심한 폭행을 당한 어린아이의 그림 낙서처럼 삐쭉빼쭉 날카롭단 말이오.”

L은 참혹한 사고 현장이라도 목격한 사람인 양 몹시 괴로워하는 표정으로 술을 들이켰다. 평소 술을 거의 하지 않고, 성실한 생활을 유지하던 그가 그런 날이면 스스로 가눌 수 없는 상태가 될 때까지 일그러진 표정으로 슬픈 탄식과 분노 섞인 개탄을 쏟아놓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환경오염이 참으로 심각하긴 하나 보구나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와 대작을 하며 그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이들이란 대개 귀가하고 싶은 가족조차 없는 빈곤층 사내들이어서 다만 그러한 하소연을 들어주는 대가로 술을 좀 더 마실 요량이었다.

세상에는 쓰레기 처리 문제나 전기료 문제, 복전철 노선 문제, 설비사 선정 시비, 먹거리 위생 문제, 유기견 문제 등등 풀어야 할 문제가 너무나 많았다. 그에 비하면 한결 덜 급하고 덜 중요해 보이는 구름 문제를 걱정한다는 건, 그만큼 걱정할 일이 없어 보이는 사람의 하릴없어 보이는 짓 같아 보일 뿐이었다. 걱정할 일이 한두 가지여야 말이지!라고 개탄하거나 걱정한다고 걱정이 풀리면 내 걱정을 않겠다!라는 식의 말놀이로 분위기를 바꾸려 했다.

그러면 L은 마치 그렇게 가볍게 말을 받아넘기는 그 사람이, 어쨌거나 마지막까지 남아 그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애쓰는, 자신의 가장 친한 동료인데도 불구하고, 그가 바로 구름 상태를 망친 장본인인 양 노려보며 “구름이 썩으면 썩은 만큼 채소가 썩고 우리가 마시는 물이 썩는 건데, 그게 당신 눈엔 그렇게 태평스런 걱정으로 보인단 말야?”라고 따지거나 한 발 더 나아가 “나 하나 편하면 된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바로 당신 같은 인간들 때문에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인 거야!”라고 시비를 건 끝에 기어코 싸움을 벌여 쥐어박히고 터져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돌아갈 때마다 자기 말에 끝까지 귀를 기울여준 사람에게 괜한 시비와 행패를 부린 자기 행동이 부끄러운 동시에,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애먼 화풀이를 하는 자기 행동이 너무 못나고 경멸스러운 나머지, 아무 데나 머리를 쾅쾅 들이박는다거나, 특히 이해심 부족해 보이는 건장한 젊은이들을 상대로 꼬나보거나 시비를 걸어 작살나게 얻어터지는 식으로, 자신에게 응징을 가해야 마음이 풀렸다. 딴에 열심히 살아왔는데, 모든 일이 잘못되어 가는 것 같으니 어쩌겠는가. 칼을 뽑았으면 무 대가리라도 베듯, 제일 쉽고 만만해 보이는 자기 자신을 응징하는 수밖에.


2. 마트 알바생

그 애는 e-마트를 자주 찾았다. e-마트에는 없는 게 없기 때문에, 딱히 구입하고 싶은 필요한 물건이 없을 때도, 거기 있는 줄 알았더라면 구입하러 왔을 물건이 언제나 하나 이상 진열되어 있었다. 불편한 점이 있다면 e-마트로 가는 길목 쪽에 위치해 있는 문방구 아저씨다. 그 애 아버지가 구름 사냥꾼이며, 몇 학년 몇 반인지까지 알고 있는 아저씨는, 그 애가 지날 때마다 반기며 인사를 건네온다. 한번은 스마트폰을 보며 걷고 있는데, 스마트폰과 얼굴 사이에 손을 넣어 흔들며 아는 체하는 바람에 놀라 자빠질 뻔했다. 그러한 친절과 미소가 손님들 환심을 놓치지 않는 방법이라 여기는 듯했다. 실제로 그 애는 동네마트에도 있는 물건을 e-마트까지 가서 구입해 돌아갈 때마다 아저씨와 마주칠까 봐 약간 돌아가는 골목을 이용했다. 하지만 자신이 미처 꿈꾸지 않던 물건까지 진열해 놓는 대형마트에 비해 때로 필요한 물건조차 구비하지 못한 동네마트란 얼마나 답답한가.

e-마트에는 이런 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게 모두 진열되어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은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고 상상해본 적도 없는 물건들까지 진열되어 있었다. 그중에는 샘플을 만져 보고도, 대체 어디에 쓰는 물건일까 싶은 경우도 적지 않았는데, 상냥하고 친절한 직원 설명을 듣고서야 아, 그래, 이런 물건이 있다면 정말 좋겠다! 하는 감탄을 하게 만드는 물건들이 적지 않았다. 그때마다 그 애는 자신의 아이디어나 상상력이 얼마나 빈약한지를, 세상에는 자기 생각을 한참 더 앞지른 그런 멋진 상상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걸까,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는 그 애는, 엄마 아빠가 e-마트 갈 때면 기쁘게 따라나섰다. 그새 어떤 새 상품이 들어와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갈 때마다 마치 새 마트를 방문하는 듯 설렜다. 그러나 아빠랑 갈 때는 많지 않았다. 아빠는 마트에 가면 최대한 빨리 돌아오려고만 했기 때문에 엄마랑 둘이 갈 때가 더 좋았다. 엄마는 갈 때마다 구입할 목록을 만들어 갔지만 그대로 구입하여 돌아오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가서 보면 구입하려 했던 것보다 더 좋은 상품과, 다른 건 몰라도 이건 꼭 필요한 물건들, 그리고 폭탄세일 품목이 있기 때문에, 미리 무엇을 살까 생각하기보다, 직접 가서 보고 고르는 게 더 효율적이었다. 아무것도 미리 생각하거나 고민할 것 없이 하나하나 직접 살피고 비교한 다음, 가장 나은 선택일 것 같은 국거리, 반찬, 식재료, 생활용품 등을 구입해 오는 게 최선이었다. 자신에게 필요한 게 무언지 물을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것이 결국 마트 직원이 추천한 내용이나 마트 엘리베이터 광고 포스터에 소개된 특별 세일 목록과 같거나 그만 못할 때면, 자기 가족이 무엇을 욕망하고 무엇을 구입해야 할지 모두 예측하고 계산해 놓은 정교한 사육 장치 속에 갇혀 사는 기분이었다.
엄마가 매번 구입 목록을 적어둔 메모장을 가져가는 이유는 다만 아무것도 모르는 아빠가, 엄마에게 반드시 필요한 구입 목록을 적어가야, 함부로 충동구매를 하지 않을 수 있으며, 꼭 필요한 물건만 사 올 수 있다고 잔소리하기 때문이다. 갈 때는 살 생각이 없었지만 엄마가 사 온 새로운 아이디어 상품, 일테면 앉아 있으면 금세 따뜻해지는 방석, 세워만 놓아도 타지 않게 저어주는 자동 주걱, 한번 화장하면 보름 이상 지워지지 않는 마스카라 등을 볼 때마다 아빠는 이런 걸 왜 사 왔냐고 투덜거리거나 나무랐다. 그러면 엄마는 열심히 설명했다. 그게 얼마나 편리한지, 알고 보면 돈이 더 적게 든다며 열심히 변명할 때의 엄마 말솜씨는 마트 직원의 바로 그것이거나 그것만 못했다.

그럼에도 논쟁에서 밀린 아빠는 환경 호르몬을 유발한다거나, 다 팔아 처먹으려는 목적으로 만든 쓸데없는 발명이라고 핀잔하는 식이어서, 엄마는 가급적 숨겨두거나 몰래 사용했다. 처음 구입하려고 했던 물건이 아닌 걸 구입하게 되면, 엄마는 구입하려던 것 중에 급하지 않은 물건을 도로 갖다 놓았는데, 도로 갖다 놓는 심부름이 엄마를 따라 마트에 갔을 때 그 애에게 떨어지는 주요 임무 중에 하나였다.

그 애는 엄마가 구입해도 좋은 물건과 아빠가 화낼 물건을 기가 막히게 구분할 줄 알았다. 아빠는 자신이 마트에 가는 것 못지않게 그 애가 엄마를 따라가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소비 충동을 자극하여 소비 중독에 빠뜨릴 위험이 다분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구름 사냥을 시작할 나이였지만, 구름에 대해서라면 아무 관심도 없는 반면, 마트 상품에 대해서라면 제조사와 종류, 진열된 위치와 가격까지, 아빠가 구름 익히듯 익혔다. 실제로 마트에 도착할 때의 그 애 표정은 산봉우리에 올라 구름 사냥을 시작할 때 L이 짓던 상기된 표정이고, 진열된 상품을 구경할 때는 구름 사냥을 시작하던 그의 눈빛이었다.

자신이 가장 싫어하고 경멸해 마지않는 것들을,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흠모하던 대상을 바라보던 때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아이를 바라보는 L의 마음은 참으로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그런 아이가 열여섯 번째 생일 선물로 바코드 건을 원했다. 다초점 렌즈와 인공지능 기술이 탑재되어 모든 제품 정보를 척척 읽어냈다. 해당 제품의 생산일자나 재료, 사용 방법이나 평가 후기까지 제공하기 때문에 진열대를 찾아다닐 필요도 없이 신속한 쇼핑을 마칠 수 있는데, 10만 원 이상 구매 고객에게 무료 증정한다는 것이다. 아이는 건을 갖기 위해 아직은 필요 없는 물건을 구입하자고 주장했다. “언젠가 필요해질 거니까, 미리 구입한다고 해서 손해는 아니잖아요?” 하지만 당장 필요한 물건도 구입하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무엇보다 필요한 물건조차 구입 못하는 경제적 스트레스, 아이 소원조차 들어주지 못하는 자기 무능에 대한 자조, 나아가 자신이 원하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자라는 아이에 대한 반감 등이 뒤엉켜 L이 언성을 높였다. “시끄러워! 니가 그동안 사달라고 졸라 놓고 사주면 한두 번만 쓰고 버린 물건들이 얼마나 많아? 그거 다 합치면 집 한 채 사고도 남았을 거다!”

“이건 다르단 말이에요!” 아이도 쉬이 물러나지 않았다. “계속에서 업그레이드가 되기 때문에 한번 사면 죽을 때까지 계속 사용할 수가 있다구요!” 광고 문구를 그대로 되뇌는 아이 모습에 L은 짜증을 감추지 않았다. “어떤 미친놈이 한번 구입한 물건이라고 죽을 때까지 업그레이드를 시켜주겠냐? 그게 다 저희 물건 쇼핑하게 하려고 그러는 거지, 우리 좋으라고 그러는 거겠어? 죽을 때까지 그걸로 쇼핑하라는 소린데, 아이구 좋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그걸 넙죽 사려 한단 말이냐?”

L의 아내가 “근데 그게 교육용으로도 참 좋아요”라며 거들었다. “요즘은 모든 게 상품이잖아요. 어디나 바코드가 찍혀 있고, 그래서 그걸 사용하면, 정말 많은 공부가 된대요. 모든 물건의 역사와 정보가 다 제공되니까요.” 그럴수록 L은 완강했다. “그래서 그게 범죄용으로도 쓰인다잖아? 그걸로 다른 사람 소지품 스캔하거나 쓰레기통 물건 스캔해서 사생활 침해한다고 뉴스에서 보도한 거 몰라?”

바코드건 구입은커녕 마트 금족령을 내렸다. “필요한 게 있으면 엄마한테 적어서 부탁하거라.” 아내에게도 일렀다. “당신은 그걸 구입하기 전에 나한테 반드시 검사 맡아!” 만약 자신에게 제공된 목록 외의 물건을 아이가 소지하고 있으면 그날로 마트 출입을 금하겠다고 단언했다. 실망한 표정으로 돌아선 아이가 방문을 너무 세게 닫자, L은 하마터면 쫓아가 화를 낼 뻔했다. 하지만 방문을 세게 닫았다가 귀뺨을 얻어맞은 기억 덕분에 가까스로 참을 수 있었다.
L이 구름 사냥을 따라나서겠다고 하자, 입시공부에 전념하라며 데려가지 않은 날이었다. 서운한 L은 자기 방으로 들어가며 문을 닫았는데, 창문이 열려 있어 자신도 놀랄 만큼 큰 소리로 닫혔다. 그것을 자신에 대한 반항으로 판단한 아버지가 방으로 들어와 그의 귀뺨을 갈겼다. 그러고 나서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한참이나 더 주먹질과 발길질을 가했다. “이놈의 자식이 어디서 이런 못돼 먹은……” 그는 일부러 크게 닫은 게 아니라 창문이 열려 있는 줄 모르고 닫았던 것일 뿐이라고 변명하려 했지만, 그런 변명을 하지 않는 게 아버지를 더 속상하게 만드는 복수 같아 그냥 묵묵히 얻어맞았다.

L은 그때의 자신처럼 아이가 일부러 방문을 세게 닫으려고 닫은 게 아니라, 창문이 열려 있어 세게 닫혔을 거라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다만 내가 문을 세게 닫아 화가 나신 게 아니라, 나를 데려가지 못해 화가 나신 것인지 모른다. 그때 이미 구름사냥은 더는 재미를 보지 못하는 직업이고, 고학력 시대로 진입하던 때여서, 그도 학교보다는 사냥에 데려가고 싶지만, 아이 장래를 위해 데려갈 수 없고, 혹시나 데려가고 싶은 마음이 날까 봐 그렇게 화를 내신 건 아닐까. 마찬가지로 아이도 커서 지금의 자기 나이가 되어, 자신과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부모 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아픈 한숨을 내쉴 거라 생각하니 우울했다.

그럼에도, 그럴수록, L은 화가 났다. 구름이 오염된 이유는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들의 무분별한 신상품 제조 때문이지만 그 어떤 피해도 법원은 인정해 주지 않았다. 증거가 미력하다거나 직접적 피해가 증명되지 않았다거나 역학조사를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는 따위의 온갖 이유로 가진 자의 편을 드는 판결을 내렸다. 어쩌다 보상 판결이 내려진다 해도 구름 국적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행정 절차나 보상은 단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자신의 아이가, 다른 집 아이도 아닌 자기 자식이 이 모든 불행의 원인제공처인 무분별한 기업들의 신상품에 눈이 멀다니.

자신이 보기에 싱싱해 보이는 구름조차 막상 포획하여 들여다보면 상태가 매우 좋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그때마다 인간세상도 더는 버티지 못할 거라 예견은 했지만, 그러나 그 균열이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으로 나타날 줄은, 그 자신도 미처 생각지 못한 거여서 더욱 한숨이 났다. 어찌하여 이 사회는 가진 자들이 저지르는 무책임한 행동의 결과들을 구름이나 서민층 가정 같은, 힘없고 무기력한 생명체들이 떠안고 살아야 하는 걸까.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 걸까.

L에게는 구름사냥만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그는 아내가 정성스레 싸준 도시락을 메고 구름 사냥을 나갔다. 분명 생계를 위한 노동이지만 구름사냥을 나갈 때는 마냥 들뜨고 좋았다. 아마도 깨끗하고 싱싱한 자연산 구름을 포획하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오염이 덜 된 산중 깊숙한 오지 마을 너머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겠지만, 그중에서도 깨끗하고 싱싱한 자연산 구름 자체가 주는 맑은 기운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매우 진귀한 것이어서, 그러한 구름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 주변만큼은 아직은 그만큼 오염이 덜 되어 있고, 그만큼 이 세상이 아직은 정화될 희망이 있다는 반증이었다.

특히나 L이 바라는 향유고래나 티라노사우루스 공룡 구름은 일개 골짜기나 연못만으로는 생겨날 수 없고, 적어도 몇 백 리 몇 천 리에 이르는 산맥과 해류 등을 통해 생성되기 때문에, 그러한 구름이 깨끗하고 싱싱하다는 것은 그만큼 오염되지 않은, 혹은 정화되어 있는 대기가 넓다는 반증이었다. 하지만 그가 잡은 마지막 티라노사우루스는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었다. 최근에 잡은 가장 고가의 구름은 어처구니없게도 폭스바겐 구름이었다. 모양이 일명 방개차라 불리는 폭스바겐 더 비틀과 너무나 흡사했다. 아마 전생에 운전기사를 꿈꾼 가난한 아프리카 3세계 아이의 환생이 아닐까 싶었다.

크기는 실제 자동차보다 절반이나 작았지만, 아마도 구입해 두면 폭스바겐 본사에 적잖은 웃돈을 얹어 팔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 도매상들에 의해 만만찮은 가격으로 팔렸다. 그러나 인간이었던 한 사람의 영혼이 자동차가 되기를 꿈꾸고 자동차 모형의 구름으로 현현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이제 그 영혼은 다음 생에 자동차로 태어나 살 테니 말이다.

오직 다음에 짚거나 디딜 난간이나 바위만 생각해야 하는 천길 벼랑을 오르자, 이런저런 걱정들로 가득 찼던 L의 이마도 차츰 씻겨 나가 한결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그는 자신이 구름 사냥꾼 노릇을 포기하게 되더라도 다만 벼랑에 올라 바람을 맞으며 융단처럼 펼쳐진 산자락들을 내려다보기 위해 다시 이곳을 찾고 싶었다. 사람들은 이제 별로 벌이도 되지 않는 사냥을 위해 벼랑을 오르는 그를 비웃지만, 바로 그러한 판단이야말로 뭔가를 직접 경험해보거나 구경만 하는 경우에 빚어지는 착오다. 사람의 생각이란, 자신이 취하는 자유로운 반응이라기보다, 겪은 만큼 떠오르는 어쩌지 못하는 족쇄에 지나지 않는다.

신상품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사람들은 신상품 개발과 판매가 대단한 것처럼 여기지만, 구름 사냥꾼인 자신에게는 상품 판매를 위해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조장하는 어리석은 환경 파괴범의 한 부류에 지나지 않았다. 반면에 구름사냥은, 천길 벼랑을 오르는 일을 각오해야 하는 위험천만한 직업이 아니라, 천길 벼랑을 오르는 장쾌한 맛이 있기에 하는 즐거운 모험이었다.

L이 두 번째 벼랑으로 몸을 던져 가까스로 암벽 타기를 이어갈 때, 그를 조롱하는 듯 혹은 그를 위무하는 듯 구름 그림자 하나가 땀으로 젖은 그의 등과 머리를 쓸어주며 지나갔다. 생선 모양으로, 크기로 보나 모양의 완성도로 보나 아래 계곡 어디쯤에서 갓 생겨난 구름이었다. 더는 오를 데가 없는 벼랑 꼭대기에 오른 L은 밤을 지새울 채비로 그물침대를 걸었다. 그물침대는 자면서도 바람의 향방을 알 수 있고 습도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사냥에 매우 요긴한 장비다. 요즘은 드론이나 풍향기 등을 활용하는 사냥꾼들이 없지 않지만, 그리고 그것이 한결 편리하다는 걸 인정하지만, 그물 침대에 누워 잠을 잘 때 다가오는 더없이 부드럽고 맑은 고산 지대 공기의 촉감 그 자체를 맛보는 재미 때문이라도 그는 그물침대를 고집했다.

밤새 불어오는 바람의 온도와 촉감, 습기에 따라, 그는 따뜻한 차를 우려 마시기도 하고 얼려둔 차가운 술을 마시기도 했다. 그때 느껴지는 그 차의 따뜻한 향이나 차가운 독주가 목구멍 안으로 독하게 감기는 맛은 집에 내려가 마시면 전해지지 않는다. 반드시 밤새 불어오는 산정의 차거나 쌀쌀한 바람의 온도와 습기 등에 따라 체온이 적절히 저감되거나 소름이 돋아 있는 상태에서 느껴지는 맛으로, 사람들은 벼랑 위에 홀로 올라가 몇 날 몇 밤이나 구름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직업이란 얼마나 외로울까,라고 지레짐작으로 동정한다. 하지만 공기가 차가운 만큼 따뜻한 차가 필요할 뿐이어서 그 무엇도 부럽지 않을 때가 많았다.

다만 아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미어졌다. 자신은 아버지로부터 칭찬을 받으며 자랑스럽게 경험했던, 이러한 고독을 맛보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마음 아팠다. 자신이 끝내 대학 진학을 하지 않고, 아버지를 따라 구름 사냥을 나섰을 때, 아버지가 자신을 바라보던 슬픈 눈빛을 지금도 기억한다. 하필이면 구름 사냥꾼을 아버지로 두는 바람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벼랑에 홀로 올라가 밤별을 바라보는 고독한 자유 외에는 달리 아무것도 누릴 것이 없는 사냥꾼 길을 자신도 걷겠다고 따라나설 때, 기특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한 감정이 겹쳐, 웃는 듯 우는 듯 실망한 듯 반기는 듯 바라보던 그 눈빛은 얼마나 많은 말을 아끼고 있었던가.

 

3. 티라노사우루스 구름

아이는 아빠 몰래 e-마트 알바를 시작했다. 처음엔 바코드 건을 구입할 목적이었지만, 그만큼을 벌고도 계속 알바를 나갔다. 바코드 건을 구입하고 나면, 또다시 구입하고 싶은 물건이 발견될 거란 사실을 이제까지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는 아이는, 벌 수 있을 때 벌어놔야 한다는, 그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모든 사람이 깨우쳐 알고 있는 사실까지 잘 알고 있었다. 무능한 아버지의 편견과 한물 간 직업, 그럼에도 전혀 바뀌지 않는 고지식한 아집 등을 감안할 때 자신의 미래는 자기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아이는 어쩌면 알바를 하기 위해 태어난 아이가 아닐까 싶게 알바 일을 열심히 그리고 매우 잘 수행했다. 그를 임시 고용한 마트 인력관리 부장은, 어떤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의 외모뿐 아니라 타고난 재능까지 발견해 주는 기쁨을 누리는 표정으로 그를 곧잘 칭찬해 주었다. “야, 너 진짜 일을 잘하는구나!” 그리고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격려와 힘이 되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혹시나 졸업하고 마땅한 일자리 얻지 못하면 날 찾아와, 너라면 자리를 알아봐 줄게!”

아이는 상품이 어디에 진열되어 있는지 정확히 기억하고, 상품 정보에 대해서도 정확히 외웠다. 손님들 차림이나 표정만 보고도 그 손님이 찾는 상품을 알아맞힐 뿐 아니라, 그 손님에게 소개해 주면 좋아할 신상품까지도 정확히 추천했다. “너는 어떻게 이곳에서 몇 년이나 먼저 일한 나보다도 더 오래 한 사람처럼 눈썰미가 밝냐?” 선배 알바생들도 칭찬해 마지않았다. 그러한 칭찬은 단순한 인정이라기보다 조금 더 부려먹기 위한 수작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아이를 바라보고 있으면 그런 사사로운 감정에 매이지 않고, 다만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 특유의 상기된 몰입과 기쁜 만족을 지켜볼 때 전달되는 긍정적인 기운, 나도 저 아이처럼 저렇게 아무 손익 계산 없이 자신이 하는 일을 즐기고 싶다는 의욕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아이가 지나치게 두각을 보이자, 그러잖아도 어떡하든 판매율을 높이고 싶던 영업실장은, 틈날 때마다 그의 실적과 다른 이들의 실적을 비교하며 다그쳤다. “보세요, 얘는 지금 어리고 초짜고 알바생이에요, 알바생 시급 칠천 원 받고 일하는 알바생. 그런데 당신들은 뭐예요. 훨씬 많은 급여를 받으면서 얘가 하는 일의 절반 실적도 내지 못하잖아요. 이제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태만하게 직장생활을 했는지 아시겠습니까?” 보수를 더 주지 않으면 더 일하지 않겠다는 노예근성이 뼛속같이 배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결과가 나오는 거라며 강권했다.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해야 하는 일을 하는 마음으로 해보세요. 그러면 스트레스도 안 받고 실적도 올라가고 얼마나 좋습니까?”

아이는 적잖은 시샘과 핀잔을 각오해야 했다. 일부 직원은 미성년을 고용한 사실을 노동부에 폭로하겠다고 별렀다. 하지만 선배K만큼은 그를 위로해 주었다. 서울서 대학을 다니는, 이혼하여 혼자 사는 어머니의 둘도 없는 자랑거리인 그는, 어머니가 취직을 하는 바람에 학자금 대출이 막혀 휴학을 하고 알바 중이었다. 오랫동안 식당 종업원으로 전전한 그의 어머니가 취업한 회사는, 대기업의 하청업체의 하청업체 직원들 급식으로 들어가는 식자재를 제공하는 소규모 식품제조공장으로, 첫 월급을 받은 기쁨도 무색하게 수익이 잡혀 더는 학자금 대출이 어렵다는 통지를 받은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식당 일이나 하는 건데……” 자신의 어처구니없는 처신으로 등록금 대출이 어려워진 어머니가 그의 눈치를 살피며 중얼거렸을 때, 그는 배운 사람답게 “방법이 있을 거예요.”라며 어머니를 위로했다. “무슨 방법 말이냐?” 어머니가 묻자 웃으며 반문했다. “이러면 대출이 불가능하다는 걸 우리가 몰랐던 것처럼, 대출을 받을 수 있는데 우리가 몰라서 받지 못하는 그런 경우가 틀림없이 있지 않겠어요?”

 

어머니가 늘 힘들어 하시는 걸 보고 자란 그는, 그에 대한 효도의 일환으로 늘 긍정적인 말을 하는 버릇이 있고, 실제로도 뭐든 긍정적으로 바라보았으므로, 아이에게도 격려해 주었다. “나는 살면서 너처럼 마트 알바를 잘하는 아이가 있다는 걸 들어본 적이 없어. 너는 어쩌면 타고나기를 마트 알바를 위해 태어난 아이 같아. 그렇다고 마트 알바만 하며 평생을 살라는 게 아니야. 희망을 갖고 지금처럼 열심히 하면 더 좋은 기회가 주어질 거야. 보통 아이들은 대학 가서부터 알바를 하지만 모든 재능 있는 아이들이 그렇듯, 너는 어린 나이에 알바를 시작했을 뿐 아니라 이미 어른들을 능가하는 영업 솜씨를 발휘하고 있잖니. 이건 네게 남다른 재능이 있다는 뜻이야, 어쩌면 세계적인 영업왕, 아마 미국이나 중국 뭐 그런 나라의, 진열된 휴지만도 몇 십 킬로에 이른다는 그런 초대형 마트로 가서 최고의 영업왕이 되는 그런 멋진 미래가 너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

 

고마운 격려지만 아이가 생각하기에 자신이 알바 일을 잘 하는 이유는 다만 자신의 암담한 처지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전망이 없다는 구름 사냥꾼 일을 고집하시고, 어머니는 아버지 눈치를 보며 아버지의 벌이에 맞춰서만 사시는 분이어서, 자신은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형편이었다. 주변 친구들을 둘러보면 자기 형편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그래도 자기 아버지처럼 한심한 술꾼은 아니며, 무엇보다 마트에 가는 일조차 싫어하시고 금지시키는, 그런 시대에 뒤떨어진 보수주의자는 아닌 것이다. 자신은 자기 집이 가난해서 아버지를 원망한 적이 한 번도 없지만, 아버지와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했고, 스스로 벌어서 스스로 헤쳐나가야 한다고 각오했다. 자신이 아버지로부터 받은 도움이 있다면, 제일 친한 친구 정우가, 자기 엄마는 내가 학원 갔다 오면 밑줄 그은 부분이 몇 곳이고 연습장에 옮겨 적은 단어가 몇 개인지 다 세어본다며, 차라리 너희 아버지처럼 너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방치해두는 게 부럽다고 말할 때나 받은 위로가 전부였다.

 

그러나 아이 엄마가 생각하기에 아이가 저렇게 뭔가에 매달리고 그 일 아니면 다른 일은 못하겠다고 하는 고집이야말로, 제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남편의 가장 좋은 장점이자 가장 나쁜 폐단인 고집불통, 바로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아 보였다. 그녀는 다만 그런 두 사람의 동일한 고집으로 인해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하면, 마치 마주 보고 달리는 기차와 같은 불상사가 날까 봐 두려웠다. 남편이 사냥이라도 가고 나면 그녀는 안심이었지만, 사냥에서 돌아와 행여 아이의 마트 알바를 알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근심에 기도할 때도 다만 다음과 같이 기도할 뿐이었다.

“하느님 아버지. 제발 아이 아빠가 아이가 알바 하는 사실을 알게 되는 불상사만큼은 벌어지지 않게 하소서.”

 

하지만 신은 그녀가 헤아리지 못할 한결 심오한 계획을 갖고 있는 것일까. 사냥에서 싱싱한 토끼 구름 두 마리를 잡아 돌아온 L이 작은 파티라도 열기 위해 아내가 좋아하는 등심과 아이가 좋아하는 케이크를 사려고 마트에 들렀다 아이를 보고 말았다. 아이는 누구보다 신나고 즐겁고 빠른 동작으로 상품들을 찾아내고 구별하여 진열하고 고객들에게 권하고 있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즐거이 몰두해 있는 그 모습은, 바로 자신의 어릴 때 모습, 자신이 구름 사냥법을 배울 때 익히고 맛본 그 동작 그 즐거움이었다.

 

아이는 자신이 물려준 재능을, 자신이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그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로부터 소중히 물려받아 건넨 그 재능을, 그 귀한 재능을 십분 발휘하고 있었다. 그것을 목도하는 것만으로 L은 기뻤다. 그러나 그 재능이 얼마나 귀한 재능인지 모르고, 고작해야 세상을 오염시키고 생계마저 어렵게 만든 무리를 위해 허비하고 있다니 가슴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이렇게라도 아이가 재능을 물려받고 발휘하고 만끽하는 것으로 기뻐해야 하는지, 이렇게밖에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에 절망해야 하는지 헷갈렸다.

 

순간 아이도 아버지를 발견했다. 마치 화살에 맞은 사람처럼 혹은 사냥꾼과 마주한 짐승처럼 사지가 얼어붙은 모양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아버지를 발견한 순간, 아이 역시도 화살에 맞은 사람처럼 혹은 사냥꾼과 마주한 짐승처럼 굳어버린 모양으로 멈춰 섰다. 아이는 아버지 눈빛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가 자신을 더없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동시에 더없이 수치스럽게 여기는 사실을. 그리고 그 역시 자신의 아이가 자기 마음을 알아채고 더없이 기쁜 동시에 더없이 서운한 마음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구름 사냥꾼 자식으로 태어나 고작 마트 알바라니, 네가 지금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을 하는지 정말 모른단 말이냐?’ 그는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았고, 아이 역시 그로부터 물려받은 동일한 눈으로 안타깝게 마주 보았다. ‘아버지. 아버지야말로, 얼마나 바보 같은 고집을 부리고 계신지 모르시겠어요?’

 

그렇게 두 사람이 각각 바코드 건과 사냥꾼 활을 든 모습으로 서로를 마주 바라보고 있는 순간, 그들 머리 위로 거대한 검은 구름 그림자가 덮쳤다. 그것은 이제까지 그도 보지 못한 웅장한 크기의 공룡 구름이었다. 이빨 하나가 일 미터쯤은 족히 되어 보이는 그것은 분명 육 천만 년 전에 생존했던, 그러니까 육 천만 년 동안이나 환생할 몸을 찾지 못하고 떠돌던, 이제는 완전히 멸종했을 거라 여겨졌던 티라노사우루스 구름이었다. 아마도 만년설이나 북극 빙하 어디쯤 얼음으로 갇혀 있었을 티라노사우루스의 영혼이 바야흐로 온난화에 의해 구름으로 환생한 것이다.

 

크기나 동작까지 티라노사우루스 모습을 그대로 빼박은 티라노사우루스 구름이 그들 쪽으로 서서히 이동하여 그들 머리 위로 길고 어둡고 둔중한 그림자를 드리며 멈췄다. 마치 육 천만 년 만에 깨어났지만 동족들이 전혀 보이지 않고, 모조리 멸종된 사실을 확인해야 하는 자의 암울한 비탄으로 그들 부자가 겪고 있는 슬픔을 위로하려는 듯, 미세 중금속 가득한 빗방울을 툭툭, 눈물처럼 떨어뜨리며.

 

 

이만교

소설가, 1967년생
소설집 『예순 여섯 명의 한기 씨』 『머꼬네집에 놀러 올래?』 『착한 남자, 나쁜 여자』 『결혼은, 미친 짓이다』 『글쓰기 공작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