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의 문학
외부의 변화를 받아들인다면……

  • 이 계절의 문학
  • 2021년 가을호 (통권 81호)
외부의 변화를 받아들인다면……

올여름 출판계엔 좋지 않은 사건이 두 가지 벌어졌다. 갈수록 사람들이 책을 안 읽고, 안 산다는 오랜 불황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출판계에 고름처럼 쌓여있다 외부로 터져 버린 문제를 말하는 것이다. 이 사건들로 출판계가 들썩였을 뿐 아니라 출판계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도 곱지 않아져버렸다.

먼저 인세 누락 문제다. 장강명, 임홍택 작가는 자신들의 책을 출간한 출판사가 일부 인세를 누락했다고 폭로했다.

몇몇 출판사 사이에서 명확히 인세를 계산하지 않던 관행이 터진 것이다. 일부 출판인들은 이 폭로에 대해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한 출판사 대표는 “작가들이 책을 만들기 위해 들이는 출판사들의 노고를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받지 못한 인세만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다른 출판사 관계자도 “책은 출판사와 작가가 함께 만드는 것이다. 신인을 키워준 출판사의 실수를 지나치게 확대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물론 책을 만드는 건 작가 혼자의 일이 아니다. 책의 진가를 알아보고, 오탈자를 잡아내고, 만듦새를 정돈하고, 외부에 홍보하는 출판사의 역할이 없다면 책은 독자의 사랑을 받기 어렵다. 자신이 들인 노력을 강조하는 일은 작가뿐 아니라 출판사에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작가와 출판사 간 신뢰가 무너졌다. 함께 책을 만들어가는 동업자가 서로를 믿을 수 없어 하는 상황을 보며 독자들마저 실망했다.

국내 3대 대형서점 반디앤루니스를 운영한 서울문고가 부도 처리된 사건도 있었다. 누구나 이름을 들어봤을 법한 대형 서점의 폐업은 일반인들에게도 충격적이었다. 이번에 문을 닫은 반디앤루니스 지점은 롯데스타시티점, 신세계 강남점, 목동점 등 3곳이다. 이 중 목동점을 제외한 나머지 2곳은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이를 대신할 서점이 없다. 특히 고속터미널역 근처에 있는 신세계 강남점 폐점에 아쉬움을 표하는 이들이 많다. 접근성이 좋은 이곳은 여행객의 쉼터나 만남의 장소 역할을 톡톡히 해 왔다.

온라인 도서 시장이 급성장했지만, 대형 오프라인 서점은 여전히 출판사들이 신간을 선보이는 주요 통로로 기능해 왔다. 모바일로 책을 읽는 독자가 늘고 있지만 작은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책을 살펴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오프라인 서점에서 수십~수백 권의 책을 볼 수 있는 경험과는 차원이 다르다.

오프라인 서점이 문을 닫으면 대형 출판사가 마케팅하는 책이나 베스트셀러 위주로 도서 시장이 양극화될 가능성이 있다. 자본력이 풍부한 대형 출판사들은 유튜브, 페이스북 등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비롯해 다양한 마케팅 수단을 갖고 있지만 소규모 출판사들은 그렇지 못하다. 오프라인 서점을 찾지 못하는 독자들은 한 번이라도 들어본 책이나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 위주로 사기 쉽다. 중소 출판사들의 마케팅 부담은 출판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

아쉬운 점은 두 사건 모두 후속 조치가 미흡하다는 것이다. 인세 누락 문제가 불거진 이후 문화체육관광부와 출판단체는 작가가 인세를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거나 마련 중이라고 대응했지만 아직 안정적인 정착까진 길이 멀어 보인다. 서울문고 부도 이후 출판사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재고를 수거하는 과정이 진행됐지만 사람들을 오프라인 서점으로 다시 오게 할 만한 유인책을 마련한 다른 서점은 찾기 힘들다. 왜 제대로 된 대책이 없을까.

출판계 내부에선 “출판인들이 외부와 너무 단절돼 있다”는 말이 나온다. 출판계가 오랫동안 내부 논리에 익숙해져 외부와 시대의 변화에 둔감해졌다는 것. 실제로 출판계를 취재하다 보면 출판계에서 수십 년을 일한 취재원을 만난다. 이들은 출판계 내부 이야기에 빠삭하지만 외부 사정엔 눈이 어두운 경우가 종종 있다. 세상은 변했는데 이를 따라가려는 노력은 찾기 힘들다. 아직도 수기로 인세를 계산하고, 오프라인 서점을 활성화할 만한 색다른 이벤트를 열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지 않을까. 외부 수혈이 있다면 출판계가 조금 더 살아나지 않을까.

인세 누락 논란을 터트린 장강명은 언론인, 임홍택은 대기업 출신이다. 외부인 출신인 두 사람은 출판계의 오랜 관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인세 누락 사건을 폭로했다. 외부인 출신의 작가가 더 많아진다면 이 같은 문제 제기가 더 늘어날 것이다. 문제가 불거지면 관행은 고쳐진다. 다른 문인이나 작가들도 투명한 인세 정보 공유라는 득을 볼 수 있다.

 

반디앤루니스 롯데스타시티점의 폐점 안내문

 

오프라인 서점 매출이 떨어진 데엔 마케팅의 부재가 크다. 다른 콘텐츠 기업들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을 총동원하지만 아직 서점들의 SNS 마케팅은 소극적이다. 서점은 여전히 엄숙함을 던져버리지 못하는 경향도 있다. 물론 현 출판계 사정으로 외부 마케팅 업체에 의뢰를 하는 건 힘들지만, 책을 사랑하는 마케팅 전문가를 스카우트하면 달라질 수 있다.

출판인들은 출판에 대해선 전문가다. 지적 수준도 높다. 하지만 출판사 대표가 심혈을 기울여 쓴 보도자료나 관행처럼 하던 옥외 광고 대신 대학생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소개 글이 책을 더 잘 팔리게 할 수도 있다. 매번 수기로 인세를 계산하다 작가와 신뢰가 틀어지는 것보다 소액의 결제만으로 이용할 수 있는 전산 시스템을 사용해 인세를 바로 정산하는 게 동업자와 먼 길을 가기에 낫다. 외부의 변화를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조금씩 쌓이면 올가을엔 좋은 소식이 들려오지 않을까. 오랜 불황까지 떨쳐버릴 출판계의 변화를 기대해본다.

 

이호재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1990년생